도서

임금노동과 자본(칼 마르크스 저)

연이야 2014. 2. 27. 14:19

 

이 책은 1847년 브뤼셀 독일 노동자 협회에서 강연을 기초로 1849년 ‘신 라인 신문’에 게재된 논설이 중심이다. 맑스는 1840년대 정치경제학에 대한 완결을 짓지 못했고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1859년) 이후 정치경제학에 완결을 짓는데 그 결정판이 ‘자본론’이다. 그래서 엥겔스는 1891년 독일어판 서문에서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이전과 이후의 저서에는 차이가 있고 심지어는 모순되기 까지 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럼에도 저자의 정신적 발전 속에 초기 입장도 존중되어야 함을 밝힌다. 다만 맑스가 1849년이 아니라 1891년에 썼다면 수정해야 할 부분만 수정한다고 밝힌다.

 

엥겔스의 수정은 한 지점인데 바로 ‘노동자는 임금을 받고 자본가에게 노동을 판다’가 아니라 ‘노동력을 판다’라는 부분이다. 엥겔스의 주장을 따라 수정한 이유를 보자. 고전파는 상품의 가치는 생산비와 일치하고 마찬가지로 노동의 가치는 노동의 생산비로 확인하려 했지만 결국 확인 불가능한 물음 대신 노동자의 생산비에 대해 연구한다. 그래서 노동자의 생산비란 노동능력이 있게 만들고 노동능력이 있도록 유지, 그리고 연로, 질병, 죽음으로 인한 새로운 노동자 교체에 필요한 생활 수단의 합이다라는 연구 결과가 나온다.

 

어떤 상품에 21M(재료, 기계 감가상각비), 3M(임금)이 포함되었는데 그 상품은 27M에 교환된다. 그런데 자본주의에서는 등가교환이므로 27M은 그 속에 들어있는 노동과 같다. 21M은 노동이전에 존재하던 가치, 6M 노동자에 의한 새로 창출된 가치(12시간)이다. 그런데 노동자 입장에서는 3M밖에 받지 못했다. 즉, 노동자는 12시간 노동하고도 6시간 노동생산물의 가치밖에 받지 못했다. 왜 12시간 노동하고 6시간 노동생산물을 받는지 노동의 판매와 구매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고전파는 파산을 한다.

 

그래서 맑스는 노동의 생산비가 아니라 노동자 자신의 생산비, 즉 일정 시간에 일정 작업을 수행하는 노동력을 판매한다고 한다. 노동력은 노동자의 몸속에 있기 때문에 노동력의 생산비는 노동자의 생산비라고 밝혔다. 노동력이란 상품의 특수성은 가치 창조, 게다가 자신의 가치보다 더 많은 가치를 창조한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과학적 발견과 새로운 기술적 발명이 있을 때마다 노동자 자신의 하루 생산물 중 자신의 하루 비용을 초과하는 이 잉여분은 더 많아진다. 그 결과 한쪽에는 수많은 부, 생산물의 과잉 다른 한쪽에는 다수가 임 노동자화하며 사회는 과잉속에서 질식(공황), 다수는 곤궁속으로 빠져든다고 엥겔스는 강조한다.

 

○ 본문 요약

임금이란 무엇인가? 노동력의 대가이다. 노동자는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계 유지를 위해서 노동력을 판다. 노동력이 늘 상품이었던 것은 아니고 자본주의 사회의 역사적 특수성이다.(생산수단, 인격의 자유-이중의 자유)

 

그렇다면 임금이란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가격이고 가격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의 경쟁인데 이 경쟁은 판매자들 사이에서, 구매자들 사이에서, 구매자들과 판매자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수요가 초과하면 가격이 오르고 공급이 초과하면 가격이 내린다. 즉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결정된다면 수요와 공급은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가? 바로 생산비이다. 특정 자본가 자기 상품의 교환가치가 생산비보다 높으면 교환가치가 생산비 이하로 떨어질 때까지 공급이 증가하고 그 반대면 공급은 줄어든다. 생산비에 의한 가격 결정은 노동 시간에 의한 가격 결정과 같다. 왜냐하면 일정한 양의 노동 시간을 들여 생산된 원료, 도구의 마모분과 시간을 척도로 삼는 직접적 노동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임금 역시 노동력을 만들어 내는 데 요구되는 노동 시간에 의하여 결정된다. 노동력의 생산비란 노동자를 노동자로서 유지시키고 노동자로서 훈련시키는 데 요구되는 비용이다. 뿐만 아니라 번식 비용(2세 출산, 육아, 교육)까지도 포함된다. 이 부분은 맑스의 말을 직접 들어 보자

‘공장주는 노동 도구들의 마멸을 계산에 넣는다. ...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단순 노동력의 생산비 속에는 노동자 종족이 번식하고 또 닳아 없어진 노동자들을 새로운 노동자들로 교체할 수 있기 위한 번식 비용이 삽입되어져야만 한다.’

 

자본은 원료, 노동 도구, 생활 수단으로 구성되고 이것은 노동의 창조물이고 노동의 산물로서 축적된 노동이다. 이런 것들은 일정한 관계속에서만 자본으로 된다. 즉 자본은 인류 역사의 특수한 발전 단계인 부르주아적 생산 관계이다. 자본은 일정한 양의 생산물로서 일정한 양의 교환 가치이기도 하다. 일정한 양의 상품, 교환 가치들이 자본으로 되는 것은 산 노동력이 축적된 노동의 교환 가치를 유지하고 증식시키는 수단으로서 관계하기 때문이다. 자본과 임 노동자 사이의 교환에서 노동자는 생활수단을 얻지만 자본은 노동자가 소비한 것을 보상할 뿐만 아니라 축적된 노동에 이전에 가지고 있던 것보다 더 큰 가치를 얻는다.

 

임금은 인플레이션, 생필품의 가치 상승, 하락에도 영향을 받지만 무엇보다도 이윤과의 관계에 의해서 결정된다. 실질임금이 노동의 가격을 다른 상품들의 가격과의 관계 속에서 표현한다면 상대적 임금은 산 노동에 의해서 창조된 가치 중 노동이 받는 몫을 축적된 노동(자본)과의 관계 속에서 표현한다. 실질임금이 그대로거나 오르더라도 그럼에도 상대적 임금은 떨어질 수 있다. 이윤은 노동의 몫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비율로 올라가고 임금이 올라가는 것과 같은 정도로 떨어진다. 따라서 노동자 계급에게 가장 좋은 상황, 가능한 한 급속한 자본의 성장조차 자본과 노동의 대립을 폐기하지는 못한다. 자본이 급속히 성장하여 임금이 오르면 노동자의 물질적 처지는 개선되어질 수 있지만 그것은 노동자 자신의 사회적 처지의 희생위에서 개선된 것일 뿐이다.

 

자본이 성장하면 할수록 자본 사이의 경쟁도 증가하기 때문에 노동 생산력의 제고는 필연적이다. 그 결과 분업의 확대와 기계의 전면적 도입과 개선이 따르고 그 자본가는 더 많은 상품을 팔고 더 큰 시장을 정복하게 된다. 그에 따라 다른 자본가들도 이런 체제를 도입한다. 이렇게 해서 분업은 더 큰 분업으로 더 확대된 기계 사용과 더 큰 규모의 노동을 필연적으로 가져온다. 이런 자본의 성장으로 노동자사이의 경쟁도 증가하고 실업도 증가하고, 노동은 단순화되며 노동이 단순화될수록 임금은 하락한다.

 

○ 흔히들 기존 사회를 비판하면 제일 먼저 나오는 얘기가 대안을 묻는다. 대안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현실의 문제, 문제의 본질을 지적하고 제기하며 그 문제를 해결해 가는 것이 대안이 아닐까 한다. ‘임금노동과 자본’에서는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고 그것을 제기하고 있는 현실에 발을 디디고 있는 맑스를 만날 수 있다. ‘임금노동과 자본’은 초기에서 중기로 넘어가는 시점의 저작으로 맑스가 정치경제학을 완결짓지 못한 상태에서 출간되었다. 그럼에도 축적된 노동이든 산노동이든 역사적으로 특수한 생산관계속에서만 나타나며 맑스 정치경제학의 핵심인 잉여가치의 토대를 밝힌다. 이런 과정에서 맑스 정치경제학이 완결된다. 엥겔스가 밝혔던 ‘초기 저작도 저자의 정신적 발전 과정의 한 부분으로 당당히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는 주장의 의의가 여기에 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다. 왜냐하면 맑스는 관념, 공상 속에서 대안 사회를 주장하지 않고 현실에 발을 디디고 현실의 모순에서 출발한다. 공상에서 나와 현실에 발을 디디고 현실 문제를 보고 문제의 본질을 파헤치고 제기했을 때가 대안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