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고타강령 초안 비판’ (칼 마르크스 저)

연이야 2014. 10. 20. 10:18

독일 사회민주당은 1875년 라살레파와 아이제나흐파의 통합으로 만들어졌으며 통합 대회 장소인 고타의 이름을 딴 고타강령이 작성된다. 맑스는 라살레파의 입장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 이 강령의 초안을 보고 독일 사민당 지도자들에게 비판의 편지를 보내지만 20년 후인 1891년 엥겔스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출판된 것이 고타강령 초안 비판이다.

 

고타강령 비판에는 라살레파의 관점을 철저하게 해부해서 비판하는데 노동전수익권, 철의 임금 법칙, 형식적 평등과 실질적 평등 등등이 주요 비판의 대상이 되지만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라살레파의 중립적 국가관을 비롯하여 분배만을 독립적으로 보며 분배 해결을 통한 빈곤 제거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라살레파의 관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맑스는 통합이전 강령을 보고 그토록 분노를 하고 이런 이유 때문에 엥겔스는 1891고타강령 초안 비판을 출판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맑스의 비판은 이후 역사 전개에서 보면 정말로 타당했으며 1875년 출판되어 좀 더 독일 사회민주당에 영향을 주었다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잘 알다시피 제2인터내셔널에서 수정주의, 제국주의 전쟁(1차 대전), 식민지 논쟁에서 라살셀파의 관점을 계승한 독일 사회민주당 세력은 전쟁과 식민지에 찬성하고 의회주의를 통한 사회주의 이행을 주장(물론 이후 사회주의 강령은 삭제)한다. 이런 주장의 배경이 바로 라살레파의 관점이 그대로 계승된 것임은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나아가 이들은 한때 동지였던 로자, 리프크네히트 등을 살해하고 혁명의 순간에 철저하게 반동 행위를 한다. 뿐만 아니라 라살레파의 관점은 유럽 사민당에도 계승되고 있다. 그렇기에 유럽의 사민당 정권들이 철저하게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치는 것는 이상한 일이 전혀 아니다.

 

-노동전수익권 비판

노동의 수익이 평등하게 모든 사회 성원에게 귀속되어야 한다는 노동전수익권을 맑스는 비판한다. 프루동은 노동없이 착취하는 기생적 계급으로 고리대업자나 상인을 들고 있는데 그 이유를 불평등한 교환에 있다고 봤다. 그래서 공평한 등가교환을 실현하면 문제가 없어진다고 봤다. 노동전수익권도 마찬가지로 노동 산물이 노동자에게 온전히 귀속되지 못한 것을 유통, 분배문제로 본다. 이에 맑스는 자본주의의 모순은 유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산과정에 있으며 생산수단의 재생산과 불가피하게 노동할 수 없는 사람들을 부양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에서도 잉여노동이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에 비판했다.

 

-형식적 평등과 실질적 평등

맑스는 평등에는 형식적 평등과 실질적 평등이 있고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정치적 평등을 주장하며 그것의 경제학적 버전이 상품의 등가교환이다. 하지만 자본가와 노동자는 본질적으로 착취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평등하지 않다고 봤다. 즉 자본주의는 형식적 평등과 실질적 불평등의 체제였다. 그런데 고타강령은 평등한 권리라는 것이 형식적이고 추상적 원리여서 현실을 평등하게 만드는 데 유효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또한 오랜 기간 자본주의를 거쳐 왔기 때문에 곧바로 완전한 공산주의를 실현하기는 어렵고 낮은 단계의 공산주의를 거쳐서 더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로 나아갈 것으로 생각했다. 낮은 단계의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개인들이 능력에 따라 일하고 일한 만큼 분배받는다는 불평등한 원칙이 적용된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완전한 평등은 실질적으로 불평등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에서는 각자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다는 원칙이 적용된다. 이 원칙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몇가지 전제가 있어야 한다. 첫째 노동의 성격이 변해 노동이 자기실현이나 즐거움의 원천되어야 하고 둘째 개인, 집단 간의 능력의 격차가 여러 세대에 걸쳐 재생산되거나 고착되면 안된다. 마지막으로 능력의 정도와 분배의 기준이 되는 획일적인 척도 자체가 없어져야 된다. 왜냐하면 경쟁은 단 하나의 기준만 존재하므로 평등보다 더 획일적이기 때문이다.

 

-철의 임금법칙 비판

철의 임금법칙이란 노동자계급이 투쟁을 통해 임금을 상승시키면 노동자 인구수가 늘어나고 인구가 늘어나면 노동력의 공급이 늘어나니까 임금이 다시 하락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라살레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 투쟁을 할 필요가 없이 국가의 지원을 받는 협동조합을 통해 빈곤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즉 라살레는 생산과정의 모순의 결과로 나타난 분배의 왜곡과 빈곤을 본질적인 것으로 보는 속류 사회주의 입장이다.

 

국가의 지원을 받는 협동조합이 문구는 라살페파의 국가관이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왜냐하면 자유로운 인격체간의 계약을 통한 생산이라는 형식적 평등의 정치적 버전인 11표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형식적 평등만을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는 잉여노동을 통한 잉여가치가 자본가들에게 전유되는 불평등한 사회이고 이것의 정치적 버전이 사적재산권 보호의 법체계이며 국가는 비강권수단도 있지만 이런 법체계를 비롯한 강권적 수단도 존재한다. 물론 피지배계급의 역량에 의해 이들의 의지도 어느 정도 반영되지만 기본적으로 부르주아 국가의 성격을 유지한 가운데서 반영될 뿐이다. 라살레파의 이런 국가관은 앞에서 얘기했지만 이후 역사적 전개과정에서 혁명의 적으로 나타났다. 고전을 읽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고전은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고 현재에도 이어지고 그 당시의 쟁점과 비판의 근거는 아직도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