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빌헬름 라이히와 성정치②

연이야 2017. 11. 14. 17:49

4. 성혁명과 성정치

성정치운동의 시작 : 대중과의 만남

19277월 빈에서 노동자 파업중 경찰의 발포로 백여 명 이상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다. 하지만 노동자의 보호 기능을 맡은 사회민주주의 방위대들은 무사히 복귀했다. 이것은 계급전쟁이 아니라 노동자들끼리 싸움이었다. 경찰은 무감각한 기계이고 군중은 무기력하고 복종적이었다. 억압이 제거되면 자유로울 수 있다고 가정하지만 과연 이러한 대중이 자유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라이히는 사민당에 가입(1년후 공산당 가입)하고 정치적으로 활동적인 의사가 되었다. 그가 경험한 인간의 참상은 단순히 자본주의 체제로부터 연유한 것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진 성의 억압에 있다고 보았다.(그래서 사회학에 정신분석학의 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 그리고 맑스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여 상품 가치는 상품에 투자된 노동력(에너지)에 의해 창조된다는 것을 알고 프로이트가 정신 의학에 한 것을 맑스는 경제학이라는 과학에 했다고 강조한다. , 이념, 가치 판단, 윤리적 배후에서 작용하는 힘의 발견이라는 점에서 프로이트는 무의식적 힘의 지배를 마르크스는 경제적 힘의 지배를 보았다고 생각했다.

 

1927년 빈 노동자 파업 이후 그는 맑스주의에 대한 연구와 함께 대중을 대상으로 정신분석학 강연을 시작했다. 또한 성교육 지역순회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나아가 정치강연도 진행하였다. 그는 개인적인 문제를 정치적 문제와 연결(라이히는 정신 분석,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거세 공포 등에 관한 얘기보다는 결혼, 가족 생활, 성적 어려움 관해 얘기를 통해 사회적 쟁점으로 나아갔다. 부모와 함께 사는 젊은 남녀는 성적으로 구속당한다고 불평 적절한 주택공급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 사회가 필요)시켰다. , 라이히는 구체적인 예를 통해 그 속에 더 큰 개념과 의미를 찾아내는 방식이고 이는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였다.

 

성억압이 사람을 착취와 억압에 쉽게 먹혀 들어가게 만든 것은 분명하지만 의학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개인적인 치료는 사회적 관점에서는 무의미했다. 그래서 공산당 활동을 하면서 성 경제학의 원칙에 기반한 급진적인 성 정치 운동 전개했다.

 

독일에서의 성정치운동

19309월 성개혁을 위한 세계연맹 국제회의에서 라이히는 대부분의 공중 보건 프로그램에서 신경증을 무시하는 상황에서 적절한 주거공간과 영양공급, 피임기구 사용과 낙태의 허용, 아동의 보호와 교육에 대한 사회적 후원, 결혼과 이혼에 관련된 법 개정 같은 일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후 독일로 이주하여 세미나를 조직하고 공산당에 가입했다. 공산당에 공산주의적 기초 위에서 성정치적 대중조직을 창건할 것을 제안하여 독일 프롤레타리아 성정치협회를 건설했다. 1931년 뒤셀도르프에서 개최된 성정치협회 1차총회에서는 성정치 강령을 채택했다. 그 선언에서 자본주의 성고통의 뿌리에 놓인 요소들을 낙태, 주택, 성매매, 신경증과 성장애 등으로 나누어 분석하면서 7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피임약 배분, 낙태 반대법 폐지, 이혼의 자유, 충분한 성교육, 등등)했다. 성문제를 정치화하고 성고통에 대한 의식을 사회정치적인 의식으로 변형시키고 그에 기반하여 사회제도들을 변형시킬 것을 촉구했다.

 

이후 독일에서의 활동은 당 내부 반대파의 반발에 직면했다. 특히 청년들의 성투쟁은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라이히가 공산당에서 제명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 책은 청소년의 성억압이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기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밝히고 그러한 기능들을 명쾌하고 일관되게 설명하였다.

 

당정치에서 대중정치로

개인의 성격분석 치료와 성정치운동을 통한 인간해방을 병행한 라이히는 성정치와 관련해서 당정치와 소련의 사회주의적 변혁에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당정치에 대한 환멸과 소련의 반동화에 대중정치로 나아가게 되었다.

 

대중의 움직임과는 상관없이 당 지도부가 다른 정치세력과 비밀리에 협상하거나 전술을 결정하는 막후정치를 비밀정치/고위정치/맥주홀정치/애무정치라며 맹비난하였다. 혁명정치는 대중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라는 근본질문에 입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중의 생각을 표현하고 고위정치에 직면한 대중의 공포를 없애고 고위정치에 대중을 적응시키는 대신 대중에게 정치를 적응시켜서 정치를 민주화하고 단순화하고 모두가 정치에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원칙을 촉구했다. 그리고 노동민주주의에 대한 구상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구상은 결국 실천지형을 확보하지 못했다.

 

노동 민주주의는 사회적 자기 지배이다. 이를 위한 전제 조건은 일의 자연적 조직화에 대한 지식, 곧 노동 민주주의의 생물학적이고 사회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노동 민주주의의 임무는 일의 조건 및 형식을 일의 쾌락과 조화시킴으로써 쾌락과 일 사이의 모순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상의 외부적 조건을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생물학적 충동을 만끽시키는 내면적 전제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인간 사회의 바람직한 미래의 실제는 만들어져야 하는 이념이나 조건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존재해 왔고 발전되어 왔던 자연의 과정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 민주주의는 정치적 계획이 아니라 생물 사회학적, 자연적인 기본 사회 기능이라고 볼 수 있다. 라이히는 철저하게 자연적 흐름을 가로막는 억압을 거부한다. 이러한 그의 확신은 보편적 우주 에너지인 오르곤 에너지의 발전에 근거하고 있다.

 

성정치의 현재적 의미

라이히가 제기한 문제들은 이후 청소년의 성정치, 여성 성정치, 성소수자의 성정치에 의해서 다시 제기되었다. 이는 단순히 대중에게 향하는 것을 넘어서 대중의 욕망에 귀 기울여 가날 것을 주문하는 것이었다.

결국 계급의식이란 지도부의 의식이지 다양한 주민계층의 계급의식은 그들의 구체적인 생활과 연계되었다. 지도부의 의식을 대중에게 주입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대중의 다양한 구체적 관심들을 이끌어 내고 해결해 가면서 어떻게 커다란 문제와 연결시켜 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된다.

 

성 혁명

성 혁명은 인간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그러한 성격 구조를 창출해낼 수 있도록 하는 목표를 지닌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성 권리를 보장하고 여성의 성 권리를 옹호하며 현존하는 강제적 결혼 제도를 폐지하고 사춘기 청소년의 성 접촉을 허용하고 권장한다. 성 혁명은 좁은 의미의 성 자유를 넘어서서 집단 속에서 개인을 해방하는 문제와 연결되었다. 복종하지 않고 자신 스스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구성해 갈 수 있는 건강한 인간을, 건강한 자율적 주체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동시에 그러한 개인을 포괄하는 집단을 만들어내는 문제와 연결되었다. 이렇게 자란 사회 성원들이 만족스러운 욕구의 충족으로서 노동을 해 나가면서 자치적으로 결집해 나가는 사회가 노동 민주주의1 사회인 것이다.

 

또한 성 혁명은 강제적 결혼에서 벗어나 지속적인 성관계로 나아가야 한다. 지속적인 성관계의 사회적 조건 ; 여성의 경제적 독립, 사회에 의한 아이의 양육과 교육, 경제적인 이해의 방해가 없어야 된다. 지속적인 성관계의 능력은 완전한 오르가즘 능력, 배려 깊은 성과 관능의 성이 분리되어 있지 않아야 함. 근친성관계적인 고착과 성에 대한 유아기적인 불안이 극복 성과 살아가는 기쁨이 완전히 긍정되어 있을 것 권위주의 성도덕의 근본적 요소를 극복해 내고 파트너와의 정신적인 교제 능력이다.

 

 

5. 빌헬름 라이히의 사회 사상 - 파시즘의 대중심리, 계급의식이란 무엇인가

1) 파시즘의 대중심리2

대중은 성 행복과 자유를 향한 갈망도 있지만 성 행복과 자유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히틀러는 대중의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고 대중으로 하여금 스스로 삶을 책임지려는 투쟁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었으며 결국 대중은 히틀러에 의존하려고 하였다.

 

성의 억압은 그 기원에 있어서 결혼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유산법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지배 계급 자체에서 시작되고 순결의 도덕률이 지배 계급의 모든 여성에게 강요된다. 이는 하층 계급의 착취를 통해 얻는 소유물을 안전하게 보존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초기 자본주의와 아시아의 봉건 사회에서의 지뱨 계급은 노예계급의 성억압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 후 물질적으로 억압된 계급이 스스로 조직화하여 사회 정치적 구조의 변혁을 위해 싸우고 전 민중의 문화적 수준을 향상시키려고 할 때 비로소 성의 억압이 생겨났다. 이러한 억압은 성적 불안과 죄의식의 수단으로 합치된 대중 속에 깊은 뿌리를 심어왔던 교회의 권력을 강화시켰다. 이와 동시에 성적 만족을 바라는 염원은 성적 분열과 도착으로 투사되어 나타남으로써 다시 결혼과 가족을 침해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서 성적 억압은 권위에 복종하게 만들고 부모에게 어린이를 묶어 둔다. 이들이 자라면서 국가 권위와 물질적 착취에 굴종하게 만든다. 그것은 결국 억압된 대중의 지성적 비판 능력을 마비시키고 창조적 힘의 발전과 인간 자유를 위한 성취와 열망을 질식시킨다. 이것이 대중 행동의 비합리성3의 근거이다.

 

파시즘의 출현이야말로 라이히의 성 경제 이론의 현대적 검증을 할 수 있게 한 계기가 되었다. 사회적 조건과 민중이 인간의 원초적 생물학적 욕구를 바꾸어 놓고 이것으로 성격 구조의 부분으로 만들어 놓은 다음 그 성격 구조가 이념의 형태로 사회 구조를 재생산하게 되는 보편적 현상을 파시즘에서 발견한 것이다. 가부장 체제와 자본주의 체제의 성의 규제 양식을 연결시려는 작업 속에는 성적 억압의 구조와 사회 경제 구조의 억압을 같은 의미로 해석하려는 라이히의 통찰력이 자리하고 있다.

 

파시즘은 반역적 감정과 반동적 사회사상의 결합이며 보편적 인간 성격의 비합리적 반응의 합이다. 그것은 히틀러나 무솔린의 행위가 아니라 대중의 비합리적 성격의 표현인 것이다. 인간의 원시적인 물질적 욕구의 억압은 반역을 유발하는 반면 성의 억압은 도덕적 방어로 닻을 내리게 하여 무의식적으로 모순, 억압에 대항하는 변혁을 제지하는 반동적 힘을 갖게 한다. 이는 자유에의 공포로 나타난다. 따라서 성의 억압은 정치적 반동으로 이끌고 대중을 피동적이고 반정치적으로 만들 뿐 아니라 인간의 성격 구조에 제2차적인 힘, 곧 권위주의적 질서를 저지하게 하는 가상적 이해관계를 만들어 낸다.

 

히틀러는 바로 이러한 대중의 혁명에 대한 공포 때문에 성공했다. 히틀러는 대중이 가지고 있는 혁명적, 반자본주의적, 사회주의적 열망에 환상적인 만족을 주었으나(대중은 자유를 열망하면서도 자유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다) 독일의 사회주의자들은 이러한 대중 심리 구조의 모순을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경제적 위기가 노동계급의 욕망과 행위를 유발시킬 수 있다면 대중이 혁명을 원하고 자유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평균적 인간의 모순은 세계가 변혁되기를 바라나 그 변혁이 착취와 억압처럼 갑자기 위에서 부여되기를 원했다는 데 있다. 히틀러는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하여 분명치 않은 자유를 분명히 나타나는 민족적 자유의 환상으로 대체시키고 대중에게 책임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것이 위로부터 나오고 자신이 체제를 변혁시키겠다고 약속했던 것이다.

 

여기서 인종이론은 성적 자아상을 만족시키는 구실이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매독에 대한 공포가 시달리고 있었다. 그렇기에 피에 독이 들어갔음을 뜻하는 매독으로부터 순수한 피를 보호하는 약속은 중요한 것이었다. 유태인에 대한 성적 공포와 더불어 자본가에 대한 대중의 증오를 유태인에게 돌리게 했다.

 

가족 이념은 인종 이론과 결부되어 강조되었다. 가부장 국가는 가부장적 가족 제도 속에서 재생산되므로 절대 국가와 전체주의는 가족 이념을 강조한다. 그 결과 볼세비키의 문화 혼돈으로부터 가족과 국가를 보존하자는 것은 대중의 혁명적 사고를 파괴시키고 파시즘의 폭정이 대중의 지지를 받는 두 가지 효과를 달성하게 이른 것이다. , 파시즘의 구조는 형이상학적 사고, 추상적 윤리 사상에의 강박 관념, 총통의 신성 예정설이 대중의 심리 구조와 영합함으로써 모든 국민 사회 당원이 스스로 작은 히틀러로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파시즘의 승리는 대중의 자유 능력 상실에 기인한다. 그러나 대중이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능력 상실도 타고난 것이 아니라 자유에 대한 공포를 심어 준 어린이와 청소년 시절의 성의 억압에 있다는 것이 바로 라이히가 궤뚫어 본 것이었다.

 

마르크스주의가 독일에서 실패한 이유는 뭘까? 마르크시즘은 이론이나 심리학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의 불안과 고통의 사회적 기원에 대한 이론을 제시하지 못했으며 모순의 구조를 갖는 비성숙한 대중의 성격 구조의 특성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곧 사회적 생산 수단의 사회화는 대중이 구조적으로 성숙한 후, 스스로 자신을 관리하는 책임에 대한 의식이 있을 때까지는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내다보지 못했던 것이다. 이상적 사회주의 사회가 건설되지 못하는 보기로서 라이히는 러시아 혁명 이후의 소비에트 사회를 보고 그것 역시 파시즘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자본주의의 사회적 조건은 특정한 자본주의의 생산 양식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교환경제, 대중의 임금 노동, 잉여 생산으로부터 나온다. 그 잉여가 진정한 사회를 넘어서 국가에 귀속되거나 개인에 귀속된다면 이것은 모두 자본주의 체제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소비에트는 대중이 비합리적으로 유발되고 권위에 대한 갈망이 존속하는 한 파시즘 구조로 남아 있게 된다. 마르크스에게는 사회주의적 자유의 목표로서 국가에 대한 언급이 없다. 결국 스탈린주의에서 국가 개념은 당 관료의 모작품인 것이다.

 

2) 계급의식이란 무엇인가?(1934년 저)

계급의식을 지도부의 계급의식과 대중의 계급의식으로 나누어서 분석하면서 계급의식의 구체적 구성요소들과 방해요소들을 파악하고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가 압도해 버린 공산주의 정치를 비판한다.

 

두 가지 계급의식

계급의식 개념은 사회주의 운동과 그 정치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모든 나라의 피억압 주민층이 계급의식화 되는 것이 현 사회체계를 혁명적으로 전복시키는 가장 긴급한 전제조건이다.

 

독일에서는 대략 3천만 명의 반자본주의적인 노동자들(사회혁명을 일으키기에 숫자로는 충분한 것 이상인)이 있었다. 그러나 바로 가장 완강한 반자본주의적인 심성의 도움으로 파시즘은 권력을 장악하였다. 반자본주의적 심성은 계급의식인가 아니면 단지 계급의식의 시작일 뿐인가, 단지 계급의식이 만들어지는 전제조건일 뿐인가? 어쨌든 계급의식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대중 안에 도입되어야 하는가? 사회과정과 그것의 모순들에 대한 고도로 전문화된 이해인가? 자본주의 착취법칙에 대한 완벽한 지식인가? 혁명적인 러시아에서 빨치산들은 그렇게 장엄하게 싸웠을 때 그런 지식을 가졌는가? 아니면 아마도 그들은 아에 그것을 필요하지 않았는가? 그들은 계급의식적인 노동자들과 농민들이었는가 아니면 단지 폭도들이었는가?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그 어느 쪽으로도 나아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피억압계급이 지도부 없이 그리고 자발적으로 생성된 혁명적 의지에서 혁명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는 관념은 확실히 잘못일 것이고 잘못이다. 그러나 그 반대(중요한 것은 지도부가 계급의식을 창조해야 하기 때문에 지도부일 뿐이라는 것)를 믿는 것도 마찬가지로 잘못이다.

 

자본주의에서는 우리가 어떤 선전방법을 사용하든 간에 고도로 전문화된 지식을 실제로 혁명과 전복의 작업을 수행해야 하는 광범위한 대중 속에 결코 주입할 수 없을 것이다. 선거 모임에서 우리가 단순히 구호를 외치곤 할 때 또는 베를린의 스포츠 궁전에서 종종 일어나는 것처럼 당관리가 부르주아의 재정정치학이나 미국과 일본 사이의 모순에 관해서 박학하게 외치면서 수 시간을 소모할 때 대중의 자발적인 열정주의는 살해되었다. 대중이 객관적인 경제분석에 관심을 가졌고 그 분석을 따라갈 수 있는 지적 도구를 가졌다고 가정함으로써 우리는 수천 청중의 계급감정을 진정 죽여 버렸다.

 

지도부의 계급의식과 대중의 계급의식이라는 두 가지 계급의식이 있고 이 둘은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지도부는 객관적인 역사과정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획득하는 것 이외에 다음을 이해하는 것을 과제로 삼는다. 각기 다른 사회층, 직업, 연령집단, 성별에 속한 사람들 안에 잠재해 있는 진보적인 욕망, 관념, 그리고 생각은 무엇인가 이러한 진보적 욕망, 생각 등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욕망, 두려움, 사유, 관념(전통적 속박)은 무엇인가

 

대중의 계급의식은 공산당 지도자들이 믿은 것처럼 이미 형성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사회주의 당 지도부가 믿는 것처럼 완전히 없거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구조화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계급의식은 많은 구성요소들로 나타나며 이 구성요소들은 그 자체로는 아직 계급의식을 구성하지 않지만 서로 결합되어 계급의식이 될 수 있다.

 

혁명지도자의 계급의식의 내용은 개인적인 종류의 것이 아니다. 개인적 관심사가 있을 때 그 관심사는 혁명지도자의 활동을 금지한다. 그에 반해 대중의 계급의식은 완전히 개인적이다. 일상생활의 사소한 문제들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러한 객관적 사실들에 대한 주체적인 반성들과 효과들에 의해서만 인도된다. 그 내용은 음식, 의류, 패션, 가족관계, 가장 좁은 의미에서 성만족의 가능성, 더 넓은 의미에서 성적 유희와 오락 즉 영화, 극장, 오락장, 공원, 댄스홀 등 그리고 또한 어린이 양육, 주거공간의 배치, 여가활동 등과 같은 그런 질문들에 대한 관심이다.

 

인간 존재 그리고 존재조건들은 남성과 여성의 정신 구조를 형성함과 동시에 그 구조 속에 반영되고 닻을 내리고 재생산된다. 객관적인 과정과 그것을 금지하는 또는 격려하는 그리고 통제하는 방식들은 이 정신 구조를 통해서만 우리에게 접근 가능하다. 우리는 인간의 두뇌를 통해서만 인간의 노동의지를 통해서만 인간의 행복 추구를 통해서만 세계를 만들고 변화시킨다. , 대중의 감정, 느낌, 노동의지, 욕망 등 성격구조를 통해서만 세계를 만들 수 있다. 경제주의자들로 타락해 온 맑스주의자들은 이것을 오랜 전에 잊어버렸다.

 

전 지구적 경제정치 정책은 그것이 국제사회주의를 만들고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모든 나라 모든 수준에서 가장 광범위한 대중의 욕망과의 사소하고 진부하고 일차적이고 단순한 일상생활과의 접촉점을 찾아야 한다. 이 방식을 통해서만 객관적인 사회학적 과정은 남성과 여성의 주체적 의식과 하나가 될 수 있으며 두 가지 계급의식 사이의 모순과 거리를 없앨 수 있다. 부와 문화의 물질적 기초를 창조하는 노동자들에게 문화와 교육이 최고에 달한 단계를 보여주어야 하며 그것과 그들 스스로 사는 방식을 대비시키도록 가르쳐야 한다. 노동자들에게 그들이 얼마나 겸손하지 또 그들이 얼마나 겸손의 덕을 만드는지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 후에만 우리는 활기 있는 대중운동의 살아 있는 전술로 삶에 진정으로 연관된 정치활동으로 돌파해 나갈 것이다. 지도자는 첫 번째 계급의식의 화신이어야 하며 두 번째 계급의식을 발전시키도록 해야 한다.

 

정점에 파시즘과 교회를 두고 있는 정치적 반동은 대중이 현세에서의 행복을 거부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정치적 반동은 정조, 복종, 자기부정, 민족과 인민과 조국을 위한 희생을 요구한다. 문제는 반동들이 이것을 요구한다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이런 요구에 순응함으로써 그 반동들을 지지하고 반동들이 살찌도록 하며 그들의 힘을 키우도록 허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동들은 대중 개개인이 죄의식, 타고난 겸손함, 궁핍을 조용하고 기꺼이 때로는 행복하게 감내하는 경향을 이용하며 영광스런 지도자(그 지도자의 인민에 대한 사랑이 대중에게는 그들의 욕구의 모든 실질적인 만족에 대한 대체물이다)와의 동일시를 이용한다.

 

정치적 반동이 설파하는 체념의 원리에 대항하여 우리는 지상에서의 풍요로운 행복의 원리를 세워야 한다. 단순한 사람의 겸손함은 파시즘과 교회의 눈으로는 (최상의) 덕이지만 사회주의적 관점에서는 가장 큰 잘못이며 자신의 계급의식을 방해하는 많은 요소들 가운데 하나이다.4

 

사회주의 경제가 우리의 욕구를 만족시키고 욕구의 성장과 보조를 맞춤으로써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게 하자. 사회주의의 궁극적 목표는 대중 개개인의 즉각적인 목표들을 충족시킴으로써 대중의 욕구를 훨씬 더 커다란 정도로 만족시킴으로써만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단지 그 이후에만 혁명적인 영웅주의는 광범위한 대중 속에서 발생할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 도덕에 대한 레닌의 태도는 혁명에 기여하는 것은 무엇이든 윤리적이며 혁명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 비윤리적이다. 부르주아 질서에 모순되는 것은 무엇이든 전복의 싹을 포함하고 있으며 계급의식의 요소로 간주할 수 있다. 부르주아 질서와의 유대를 창출하거나 유지하고 부르주아 질서를 지지하고 강화하는 것은 무엇이든 계급의식에 방해물이다.

 

계급의식은 대중의 생활로부터 발전한다.

- 새로운 당에 대한 성정치운동의 입장

혁명운동의 재건을 위해 중요한 점은 혁명가들이 광범한 비조직 대중과 진정으로 접촉하는가이다. 그러한 접촉을 하기 위해서 광범위한 비정치적인 또는 정치적으로 잘못 인도된 대중의 언어, 생각, 모순에 진정으로 귀 기울이는가이다. 그들이 그 언어를 이해하고 그것을 혁명의 언어로 번역하고 분명하고 계급의식적인 형식으로 되돌려줄 수 있는가이다. 이러한 기간요원들은 비정치적인 또는 정치적으로 잘못 인도된 대중이 자신들의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것을 아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하여 광범한 대중의 일부가 되도록 당관리들에게 촉구하지 않는 한 군대 없는 참모부로 남을 것이다.

지도부의 과제는 공산주의 강령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이나 대중을 계급의식적인 투쟁가들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지도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객관적인 역사적 과정을 연구하는 것과 더불어 이미 거기에 있는 혁명적 본능을 발전시키는 데 있다. 그리고 동시에 이러한 혁명적 본능을 프롤레타리아와 쁘띠부르주아 그리고 농민에게서 발전시키는 데 있다.

 

어려운 이론들을 모든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단순한 언어로 제시하는 지점들에 도달할 때까지 끊임없이 그 똑같은 것을 맑스주의적 언어로 그리고 대중의 언어로 두 번 말해야 한다.

 

- 혁명적 감정의 원천으로서 포크송과 포크댄스

레닌은 혁명가야말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집처럼 편안하게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우리는 여기에 혁명가는 삶의 모든 영역에 고유한 특정한 혁명적 경향을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추가해야 한다.

 

공산당은 비정치적인 사람들을 포함한 더 많은 사람을 자신들의 회합에 끌어들이기 위해 붉은 카바레를 설립했다. 그 방법은 아주 잘 먹혀들었다. 그러나 형식에 있어서 부르주아적인 것에 가까울수록 혁명적 해결책이 위축될수록 효과는 줄었다. 또한 붉은 카바레를 충분히 만들 수도 없다. 이로부터 혁명적 예술, 혁명적 감정, 혁명적 리듬, 혁명적 멜로디를 대중이 살고 일하고 고통을 겪고 또는 기다리고 있는 장소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 도출된다.

 

- 혁명에 대한 불안

공산주의 혁명운동은 전쟁의 폐지, 지구상의 평화 구축이라는 쁘띠부르주아 평화주의 운동과 똑같은 것을 원한다. 혁명가들은 예를 들어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화시킴으로써만 달성할 수 있다는 견해를 견지한다. 평화주의자들은 단지 폭력을 사용하는 또 다른 예로서 시민전쟁을 거부한다. 이러한 거부로 그들은 자신들이 전쟁을 일으키는 체계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비정치적 대중은 공산주의자들을 폭력적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들은 폭력을 두려워하고 평화를 원한다.

 

오늘날 공산주의 선전은 폭력론을 제기해 왔고 평화주의론를 절대적으로 반대한다. 그것이 사회민주당원의 상당 부분이 공산주의 운동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이다.

 

나치 운동의 주요한 힘 가운데 하나는 독일 혁명이란 환상 외에 그들이 대중에게 비폭력적인 권력장악을 약속했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당연히 아주 무의식적으로 대중의 혁명적 소망과 평화주의적 소망 둘 다에 동시적으로 호소하였다.

혁명운동의 대중적 기반이 넓으면 넓을수록 폭력은 덜 필요하게 되고 따라서 대중은 그들의 혁명에 대한 불안을 더욱 더 버릴 것이다. 그러나 대중적 기반의 넓이는 혁명당이 모든 노동 주민층의 언어를 장악할 수 있고 그리고 그들의 욕망과 혁명적 사고를 드러낼 수 있는 정도에 좌우될 것이다.

 

- 주민의 욕구로부터 혁명적 국가정책의 발전

성정치운동은 주관적 욕구로부터 사회혁명의 필요성을 발전시킴으로써 그리고 대중의 욕구를 과연 만족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만족시킬 수 있는지 하는 모든 정치적 쟁점을 밝힘으로써 모든 수준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혼돈스런 인민들 사이에서조차도 최대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가장 전형적인 개인적 문제들 안에는 개인적인 문제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는 상이한 사회층과 연령집단의 다양한 욕구와 이해의 실천이다. , 혁명정치와 부르주아 정치의 차이는 전자는 대중의 욕구충족에 기여하기 위해서 나서는 반면에 후자는 대중의 구조적으로, 역사적으로 조건지워진 무능력에 전적으로 근거하고 있다.

 

성정치운동은 항상 개인적인 쟁점들에서 시작한다. 이런 쟁점에 대해서 대중들은 관심과 능동적인 참여를 불러일으키고 정치적 질문으로 나아간다. 대중은 정치적으로 능동적이게 되면 스스로 혁명정치의 근본 질문을 해나간다. 즉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가?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내는가?

 

 

6. 나가며

왜 비정규직, 최저임금 노동자들은 그들의 이해관계를 공격하고 침해하는 정치세력을 노골적으로 편들까? 왜 반프롤레타리아는 자신의 욕망(결혼, 취업, 연애 등)을 드러내면서도 생존권 투쟁을 하는 사람을 욕하며 국가 걱정을 할까? 이런 질문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만큼 현재에도 대중들의 비합리적 행동은 만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라이히의 분석 틀은 현재에도 여전히 유용하다. 라이히는 인간의 생물학적 욕구 구조에 대한 인식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것의 억압으로 인한 대중 심리의 반동적 구조와 다시 이와 엇물리는 사회 경제 정치 구조와 이념의 작동을 제시했다. 그의 작업은 모든 종류의 권위주의적 독재체제에게는 위협적이다. 하지만 귄위주의적 독재는 전제주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학술 조직, 종교, 부르주아 국가제도 등등 뿐만 아니라 속류 맑스주의자들에게 나타난다. 이것이 라이히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만들었다. 우리는 라이히를 통해 대중이 원하는 것은 왜곡되어 나타나거나 심지어는 반대로 나타나는 것을 확인했다. 이것이 라이히에 대한 편견을 넘어 라이히의 분석 틀이 우리에게 필요한 지점이다.

 


  1. 강제적이며 어떠한 즐거움도 주지 못하는 노동에서 자연스럽고 즐거운 노동. 노동 민주주의의 긴급한 과제; 노동 조건과 형태를 노동 욕구 및 노동의 쾌락과 조화시키는 것. 그 위에서 사회에 반하거나 위에 군림하는 또는 사회에 반하여 동시에 군림하는 사회적 행정의 기능을 없애는 것이 노동 민주주의의 내재적 성향 중의 하나이다. 자연스런 노동 민주주의적 과정은 사회의 통일성을 촉진하고 사회의 생명력 있는 운영을 용이하게 만드는 행정적 기능만을 받아들인다. 이것은 국가의 참된 소멸이다. [본문으로]
  2. 사회적 성억압 - 자아 스스로 억압 - 성억제 - 신체이상/정신이상,무기력/불안 - 사회적으로 비합리성 재생산 성 억압을 통해 각종 신체적/정신적 이상 나타나고, 인간성격구조 형성 이는 대중 비합리성의 원인이며 이는 가족을 통해 재생산되고 다음세대에도 인간성격구조를 형성 여기서 억압은 역사적/사회적/경제적 토대 반영(즉 무의식도 역사발전의 토대 반영) [본문으로]
  3. 여기서 말하는 비합리성은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이다는 의미가 아니다. 목적에 맞지 않는 행동, 생각을 의미한다. [본문으로]
  4. 착함 이데올로기는 파시즘의 광범위한 잠재적 지지로 간다. 순종적인 여성이야말로 남녀차별의 열렬한 지지자이다. 라이히는 임상관찰을 통해 표면적으로 착한고 순종적인 사람일수록 가장 잔인하고 무기력함을 발견하였다. 이런 성격구조가 결국은 비합리적 행동의 근거인 것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