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

연이야 2012. 6. 6. 23:42

슬픈 열대는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해야한다. 구조주의는 학자마다 내용과 방법의 차이가 크다. 자크 라캉은 프로이트의 이론과 구조주의 언어학 간의 관련성속에서 의식과 전의식, 자아와 원초적 자아의 분석에 관심을 두고 있다. 또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반인간주의적, 반역사주의적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적 구조주의는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다양한 사회 현상, 행위를 관계/법칙으로 체계화한다는 점이다. 그의 관점에서 자연이나 사회현상에는 임의적 요소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래서 서구 문명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은 아마존의 선주민 집단을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그에게서 의식과 사회 현상은 무의식적 실체의 표현으로 정신, 언어의 다양성을 하나의 법칙으로 환원시킬려고 한다.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에 영향을 끼친 지적 특성은 3가지이다. 먼저 마르크스는 사회과학이 개별 사건들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 주었고 그 다음은 프로이트로, 감정적 활동, 비논리적 결과, 전논리적 입증은 최고의 의미를 지님을 보여 주었고(무의식의 발견) 마지막으로 지질학은 겉으로 보기엔 무질서한 풍경이 풍경의 역사와 암석의 구조가 존재함을 보여 준 점이다. 이는 감성의 희생 없이 이성적인 추론에 통합시키는 초이성주의를 지향하였다.

 

 이런 점에서 레비-스트로스는 사회구조란 경험적 실체와 아무런 관계도 없고 경험적 실체를 따라 설립된 모델에 관계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구체적으로 그의 구조의 개념은 구조는 한 체계의 특성을 나타내며 구조를 이루는 몇 가지 요소의 변화는 다른 모든 요소에 변화를 초래, 모델의 요소들 가운데 하나 또는 그 이상이 수정을 받게 된다면 그 모델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고 모델은 모든 관찰되는 사실들을 즉각적으로 유의미하게 만들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 한다. 즉 그의 구조는 어떤 필연성을 발견하려는 탐구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슬픈 열대에서 아마존 선주민 사회는 야만스럽다거나 비합리적이지도 않으며 서구와 다른 사회일 뿐이라며 서구 중심주의, 서구 우월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예를 들어 불리한 지리적 조건의 극복에 있어서는 이누이트(에스키모)이며, 가족 및 사회집단의 조화라는 면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선주민 사회가 최고이다. 또한 식인 풍습은 선주민에게는 영혼과 육신의 일체화, 중화 혹은 종교적 의식 행사일 뿐이지만 서구의 고문, 학살, 시체 해부는 비인간적이며 기독교의 논리와도 모순이라며 지적한다. 아무튼 슬픈 열대에서 그는 이미 존재하지 않고 존재한 적도 없고 미래에도 존재하지 않을 어떤 상태를 파악하려고 한다. 즉, 안정된 전체감을 주고 슬픔을 축제에 의해 해결할 수 있고 인간을 둘러싼 영혼의 지배력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황금 시대이다. 이런 점에서 레비-스트로스는 루소에게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려고 했다. 루소는 자연상태를 그 자체로서 미화시키지 않았으며 자연인과 사회인은 분리되지 않았으며 사회란 인간 고유의 것이기에 사회의 악이 선천적인가에 대해 의문시 했다. 그래서 레비-스트로스는 이 사회적 상태에서 자연적 인간을 발견하려고 했다. 하지만 조화의 구조를 지닌 아마존 선주민 사회는 파괴되고 소멸되어 가고 있기에 열대는 슬프다고 한다.

 

레비-스트로스는 슬픈 열대에서 카두베오족, 보로로족, 남비콰라족, 투피 카와이브족을 탐방 이들의 문화 소개하였다. 카두베오족의 안면도식은 자연과 문화, 동물과 인간의 대칭을 표현하기 위해 남자의 조각, 어자의 회화를 통해 음화 양화의 조화로 완성되었다. 보로로족은 주거지역, 결혼법칙을 통한 조화를 보여 주었다. 또한 각 무리의 족장은 권력자가 아니며 구성원의 동의와 합의를 기초로 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족장은 전쟁에서 늘 선두에 서며, 솔선수범해야 하며, 무기와 유희 도구의 제작기술, 그리고 이동, 정착, 사냥등을 능숙하게 지휘해야 한다. 족장의 유일한 특혜는 일부다처이다. 무리 전체는 족장에게 일부다처를, 족장은 집단 전체의 안전 보장을 교환한 셈이다.

 

그외에도 소제목 24 ‘잃어버린 세계’에서는 인류의 아메리카 이동을 2 ∼ 1만 년 전으로 보고 있다. 고에스키모족은 고대 중국과 스키타이족의 문화를 연상시키며 또한 최소 40종의 곡물은 아시아의 품종과 같거나 파생된 염색체이다. 그리고 보르네오와 북미지역에서 신화의 동질성도 나타나고 있다. 또한 북유럽의 성배 전설의 유사성, 원추형 텐트의 유사성으로 보아 북방 민족은 스칸디나비아에서 시베리아를 거쳐 캐나다로의 이동을 추론하고 있다. 그래서 동남아시아와 스칸디나비아, 아메리카는 2만년과 1만년 사이에도 활발한 교류가 있다고 보고 있다. 또 소제목 28 ‘문자의 교훈’에서는 문자가 과학의 확대에 기여한 것은 인정하지만 문자 그 자체가 과학의 확대를 설명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문자가 발생하는 것은 사유 재산을 바탕으로 한 계급의 분화, 국가의 형성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문자는 재산의 관리 뿐 아니라 군림, 지배의 상징이며 도구로서 기능이 주였다.

 

슬픈 열대는 한 인류학자가 사회적 상태에서 자연적 인간을 발견하려고 아마존을 탐방하여 그들의 문화를 소개할 뿐만 아니라 서구 문명에 대한 비판, 인류학자가 된 이유, 청년기의 체험 등을 지적 자서전 형태로 저술했다. 아무튼 인류학적 구조주의는 이후 많은 논쟁을 낳기도 하였는데 레비-스트로스가 비판받는 것은 구조주의 반역사성 때문이다. 사르트르와 논쟁을 통해 레비-스트로스는 역사는 철학자, 사학자가 부여하는 의미와 상관없이 그 자체의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 것이며 또한 인간사회를 더 좋은 상태로 인도하는 것도 아니하고 하였다. 그리고 인류학자로서 현지조사의 경험이 적었으며 비역사적 정신으로서 인간을 추상적으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