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이슈

우리 시대의 경제 위기①

연이야 2012. 4. 17. 01:18

세계 경제·금융 위기는 몇 차례 전환점을 지나왔다. 첫 번째 전환점은 2007년 8월 신용 경색이 시작된 때였다. 두 번째는 2008년 9월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한 때였다. 리먼 브라더스 파산으로 1929년 이후 최악의 금융 폭락 사태가 벌어졌다. 세 번째 전환점은 2010년 봄 유로존 위기가 시작된 때였다. 2011년 여름은 또 다른 전환점일 것이다. 위기가 시작된 지 4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금융시장은 패닉에 빠졌다. 이 잡지[《인터내셔널 소셜리즘》 — 옮긴이]가 인쇄에 들어갈 즈음,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경제가 다시 위험한 국면에 들어섰다”고 인정했다.

 

마르크스가 부르주아지의 “고용된 앞잡이들”이라고 부른 사람들도 이 암울한 상황을 인정한다. 그래서 <파이낸셜 타임스>의 수석 경제 평론가인 마틴 울프는 지난 8월 말 다음과 같이 썼다. 소득 수준이 높은 나라들이 ‘더블딥’ 불황에 빠질 위험이 있는지 묻는 사람들이 많다. 내 대답은 그럴 위험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첫 번째 불황도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불황, 즉 경기 ‘수축’이 얼마나 더 심각하고 오래갈 것인지가 문제다. 중요한 사실은 2011년 2사분기까지도 6대 경제 대국의 생산량이 2008년 경제 위기 전의 수준을 결코 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울프는 또, 흥겨운 어조로 “영국의 이번 불황은 적어도 제1차세계대전 이후 최장기 불황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울프의 이런 주장은 놀라운 변화다. 2년 전만 해도 울프의 태도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예컨대, 2009년 11월 자본주의의 미래를 주제로 나와 논쟁했을 당시 울프는 “평화 시에 정부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탁월한 대응 … 역사상 가장 케인스주의적인 정책” 덕분에 금융 시스템이 붕괴하지 않았고, 금융 폭락에 따른 세계적 불황이 빨리 끝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요즘 논쟁에서 케인스주의를 편드는 윌 허턴도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지난 30년 동안 사람들이 생각해 온 자본주의의 이상과 작동 방식이 갑자기 파탄났다. 이 점을 깨닫지 못하면, 그리고 깨닫기 전까지는 서방 경제는 계속 지지부진할 것이고, 그 부진은 심각한 경제적 재앙으로 바뀔 수도 있다.” 이런 태도 변화의 징후 하나는 주류 경제 평론가들이 갑자기 마르크스를 우호적으로 인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사람이 누리엘 루비니인데, 2000년대 중반의 신용 호황이 재앙으로 끝날 것이라고 경고해서 유명해진 루비니는 지난 8월 <월 스트리트 저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칼 마르크스가 옳았습니다. 자본주의는 어느 순간 스스로 파멸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노동에서 자본으로 소득이 계속 이전되면 과잉 설비와 유효수요 부족이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시장이 제대로 작동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지 않았습니다. 개별적으로는 합리적인 것이 … 스스로 파멸하는 과정입니다.”

 

똑같은 생각을 나타낸 사람들 중에 조지 매그너스도 있다. 스위스계 대형 은행인 UBS의 선임 경제 고문인 매그너스는 ‘마르크스가 옳다 학파’의 일원을 자처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간단히 말해서, 1980년대부터 2008년까지 장기 호황의 동력이었던 경제 모델이 망가졌다. 불황의 규모, 분명히 드러난 선진국 경제 체제의 고장을 감안할 때, 2008~09년의 금융 위기는 한 세대에 한 번뿐인 자본주의의 위기를 불렀고, 그 흔적은 선진국 경제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 질서에 대한 광범한 도전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이 내 주장이다. 시장은 실제로 이 사실을 문득 깨달았을 수 있다. 주가지수는 널뛰기만 할 뿐 경제 위기 전의 최고치를 회복하지 못했고 채권시장은 갈수록 일본을 닮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말은 별로 인기가 없다. 특히 정책 입안자들에게 그렇다.

 

금융 균열의 심화

시장의 소용돌이와 평론가들의 해석은 모두 인상적 평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물론 그런 인상적 평가가 시장의 움직임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계 자본주의의 상황이 지극히 심각하다는 점이다. 이 점은 세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생산, 고용, 판매, 소비 심리, 주택 가격 등에 관한 수많은 자료를 보면, 선진 자본주의의 두 중심인 미국 경제와 유럽연합 경제가 천천히 둔화하면서 거의 정체하거나 오히려 더 나빠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제가 2008~09년의 대불황에서 회복됐다는 주장은(경기 수축이 금방 끝났다는 것을 함의했으므로 너무 성급한 주장이었다) 완전히 틀렸음이 드러났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경제 위기의 원인이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이 정기간행물[《인터내셔널 소셜리즘》 132호 — 옮긴이]에 실린 다른 글들에서 구이옐모 카르케디와 조셉 추나라가 설득력 있게 주장하듯이, 이번 경제 위기의 주된 원인은 마르크스가 이윤율 저하 경향이라고 부른 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대규모 구조조정과 착취율 급증에도 선진 자본주의 경제들이 1960년대에 발전한 과잉 축적과 이윤율의 장기적 위기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매그너스가 “장기 호황”이라고 잘못 부른 시기(1970년대 말 불황 때 시작된 신자유주의 시대)에 세계경제가 파산하지 않도록 떠받친 것은 저리 금융의 홍수였다. 당시 미국 주택시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금융 거품이 최근에 터지면서 지금의 경제 위기가 시작된 것이다. 신용 거품이 붕괴해서 불황이 닥치면 치유하기가 특별히 힘들 수 있다. 노무라증권연구소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리처드 쿠는 1990년대 초에 시작된 일본의 장기 불황과 1930년대 대공황을 비교해 대차대조표 불황 개념을 발전시켰다. 경제에 거품이 생기면 각종 자산의 가격이 장기적 평균치보다 훨씬 높게 치솟는다. 2000년대 중반에 특히 미국·영국·스페인·남아일랜드의 부동산 가격이 그렇게 치솟았다. 이것은 단기적으로 이른바 ‘자산 효과’ 덕분에 경기 부양책 구실을 할 수 있다. 집값이 오르면 가계는 돈을 더 많이 빌려서 더 많이 소비하고, 그래서 유효수요가 증가할 수 있는 것이다.

 

리카르도 벨로피오레는 이 “자산 거품이 주도한 민간 케인스주의”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경제 성장의 주요 동력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거품이 꺼지자 자산 가격이 폭락했다. 기업과 가계는 파산 위기에 처했음을 깨달았다. 자신들이 생각보다 훨씬 더 가난하고, 거품 호황기에 누적된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지출을 줄이고 빚을 갚는 데 주력했다. 이제 자산 효과는 정반대 효과를 냈다. ‘디레버리지’[자산을 매각해서 부채를 줄이는 것 — 옮긴이] 때문에 총유효수요는 감소하고 경제는 불황의 덫에 빠진 것이다. 서방 경제가 대차대조표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듯하다. 예컨대, 영국의 주택 가격은 이미 최고치에서 20퍼센트 하락했지만, 앞으로 몇 년 사이에 3분의 1쯤 더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이것 자체가 소비 지출을 엄청나게 줄이는 효과를 낼 것이다. 1980년대 이후 영국 경제성장의 핵심 요인이 주택시장 활황이었기 때문이다. 선진 자본주의 세계 전역에서 소비자들은 금융 사정이 나쁘다 보니 최근의 물가 상승에 지출 삭감으로 대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평범한 가계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신용 거품을 부추긴 것은 은행들이었다. 은행들은 아낌없이 대출했을 뿐 아니라 대출 자금을 조달하려고 막대한 금액을 차입했다. 그래서 영국 은행들의 레버리지 ─ 주주들이 납입한 자본[자기자본 — 옮긴이]과 자산(대출 등)의 비율 ─ 는 2007~08년의 경제 위기 초기에 거의 50배에 달했다. 거품이 붕괴하자 은행들은 거액의 부채를 떠안게 됐고, 그들의 많은 자산은 쓸모없어졌다. 2008년 금융 폭락 때 국가의 구제금융 덕분에 살아남은 은행들은 다시 자립해야 했지만, 지금 서방의 금융 시스템은 여전히 매우 취약하다. 유로존을 위기에 빠뜨린 요인 하나는 유럽 은행들의 부실 대출 규모가 여전히 심각하다는 의심이 널리 퍼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채권시장의 표적이 되는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 이 점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국제통화기금의 자료를 보면, 유로존 은행들은 레버리지가 훨씬 더 높아서 미국이나 영국 은행들보다 단기자금 의존도도 더 높다. 고든 브라운은 이미 2008년 10월 유로존 정상회담 때부터 자신이 유럽 은행들의 자본 확충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묵살됐다고 주장한다. 허턴은 심지어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많은 유럽 은행들은 엄밀히 말하면 파산 상태인데, 이 점은 국제통화기금의 새 총재인 크리스틴 라가르드도 인정한다. 은행들 자신은 인정하지 않지만 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실 대출 규모가 크다고 의심받는 은행들은, 예컨대 미국 화폐시장에서 달러를 빌리기가 더 어려워졌다. 그래서 은행들의 주가는 폭락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지난 9월 15일(리먼 브라더스 파산 3년째 되는 날) 미국 연준, 영국은행, 일본은행, 스위스 국립은행, 유럽중앙은행은 유럽 은행들이 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3개월 만기로 달러를 대출해 주겠다고 발표했다. 한편, 곤경에 처한 은행들은 대출, 특히 중소기업 대출을 꺼렸다. 그래서 미국과 영국의 중소기업들은 은행 융자를 얻을 수 없다고 끊임없이 불평한다. 대규모 제조업체와 유통업체의 상황은 훨씬 더 낫다. 2008~09년의 심각한 불황 때 노동비용을 혹독하게 쥐어짰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비니가 지적하듯이, 임금을 쥐어짜면 유효수요도 감소한다. 그래서 <파이낸셜 타임스>의 투자 섹션 편집자인 제임스 매킨토시는 기업 이윤이 급증하는 것은 독배毒杯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윤 감소 폭이 [예전 불황 때보다] 더 컸던 만큼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하자마자 이윤은 크게 반등했다. 이제 이윤은 과거 수준을 거의 회복했고, 애널리스트들은 실제로 이윤 전망치를 경제 위기 전보다 더 높게 잡고 있다. 2006년 말과 2007년 초의 짧은 기간을 제외하면, 린든 존슨이 대통령이었던 1960년대 이후 미국의 이윤이 이토록 높았던 적은 없다. 이것은 주가를 떠받치는 큰 버팀목인 동시에 커다란 위험 요인이기도 하다.

 

… 기업 이윤은 수익과 비용의 차이다.

기업의 비용은 주로 노동비용이므로 불황 때 일자리가 줄어들면(2008~09년의 불황기에 미국에서는 일자리 약 7백만 개가 사라졌는데, 이는 그 전의 경기 침체 때보다 더 늘어난 수치다) 이윤은 늘어난다. 그러나 흔히 일자리가 감소하면 자연히 소비도 감소해서 기업의 수익이 비용보다 더 빠르게 감소한다. 그러면 일자리 감소에 따른 이윤 증대 효과가 상쇄된다. 이번 경제 위기 때 미국 정부는 소비를 떠받치려고 유별나게 깊숙이 개입했다. [정부가 저소득층에게 제공하는 — 옮긴이] 식료품 할인 구매권 같은 보통의 소비 증진 정책 말고도 실업급여 인상, 세금 감면, 각종 공공사업, 의료 서비스 확대 등의 정책을 실시했다. 재정 적자는 전시에나 가능한 수준으로 높게 유지됐다. 다시 말해, 기업들은 노동비용의 많은 부분을 정부에 떠넘겨서 여느 때와 달리 수익에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 그러나 [비용의 — 옮긴이] 정부 이전이 기업 이윤을 떠받치고 있다면, 공화당 국회의원들이 오바마 정부에 24억 달러의 비용 절감을 강요한 조처는 이윤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 마르크스21 알렉스 캘리니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