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박노자 저)

연이야 2013. 1. 24. 21:44

  몇 년전 헌법에 명시된 의무교육에 따른 무상 교육도 아닌 무상급식이 이슈가 되었을 때 정부 여당, 보수세력은 미국에서 시작된 신자유주의의 위기가 유럽을 강타하면서 북유럽도 복지 수준을 줄이고 있다고 떠들었다. 물론 이 책은 지금의 경제 위기 이전에 쓰여 졌다. 그리고 사회민주주의가 대안이라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 책의 집필 목적중 하나는 사회민주주의의 장점 뿐만아니라 한계도 밝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세계 최장 노동시간, 저임금 고용 비용, 자살율, 비정규직/자영업 비율, 국공립 대학 등록금, 공교육 학부모 부담 등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사회에서 국가/민족 이데올로기로 인해 이런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박노자 교수는 한국사회와 노르웨이를 직접 비교할 수는 없지만 밑으로부터의 군사주의 전복과 해체, 평등의식의 보편화, 일상적인 국제성과 개방성의 확립은 한국사회에서도 참고할만하다고 주장한다. 국가/민족이데올로기에 가려진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해외자본 도피율 세계 3위라는 통계에서 보듯이 보수세력의 도덕적 해이와 빈부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는 차보다 자전거가 거리에 훨씬 더 많다. 이는 시민들의 환경의식, 근검절약 습관, 부를 과시할 필요 없는 평등지향의 분위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등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저렴한 중국산 자전거를 타는 노르웨이 사람들의 이면에는 중국 노동자의 희생을 이용하고 있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즉 이 책에서는 사민주의의 평등지향성 등 장점도 소개하지만 노르웨이 사회의 풍요, 평등,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는 바탕에는 제 3세계의 희생이 있음을 명확히 지적한다. 다음은 이 책의 요약이다.

 

  1부 또다른 세계, 북유럽에서는 사회민주주의의 나라 노르웨이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은 그 중 일부이다.

  노르웨이 대학에서는 누가 학생이고 교수인지 구분이 전혀 안된다. 사제관계지만 동료관계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왜냐하면 학생은 교수, 행정 직원과 함께 학교 운영의 주체로서 대학 예산, 인사, 연구 발전 방향에 교수와 똑같은 권리를 행사하기 때문이다. 또한 직업, 관등, 연령의 위계질서를 의례적, 일상적 언행으로 드러내는 체통에서도 노르웨이 사회는 완전히 벗어났다. 박노자는 한국 학생들의 근면성과 소장파 학자들의 학구열은 유럽보다 높지만 많은 분야에서 낙후성을 보이는 것은 바로 비판과 토론을 막고 있는 지배층의 체통의식이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노르웨이에서는 특수교육을 받는 대학생이나 고졸이라도 영어가 유창하다. 그리고 대학에서도 교양영어, 토익 같은 과목은 없다. 이들이 영어가 유창한 것은 언어의 구조적, 어휘적 유사성과 문화의 친근성도 있다. 하지만 또 다른 비결은 성실하고 체계적인 의무교육에 있다. 15∼20명을 넘지 않는 반에서 경쟁시키지 않고 재미있게 배우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교 졸업후에도 영어 실력을 유지하는 것은 개방적이고 국제적인 분위기 때문이다. 즉 대중의 영어 실력은 사회 평등과 사회 정의의 산물일 뿐이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근검절약형 자급자족의 습관을 가지고 있지만 국제 원조에는 적극적이다. 이는 루터교와 사회민주주의 영향도 있지만 풀뿌리식 민중적 자본주의의 영향이 가장 크다. 데모는 노르웨이에서는 일상적이면서도 합리성과 교육적 효과를 유발한다. 노르웨이 진보세력에게 ‘진보는 우리 동네부터’라는 생각은 불문율이자 상식이다. 특히 ‘사회주의 좌익당’은 ‘지역에서의 작은 진보’를 전략으로 삼으면서 보수화된 노동당보다 지역주민의 고충을 훨씬 잘 대변한다. 가장 대표적인 공약이 ‘비정규직 양산 결사 저지’, 대학생들의 복지 정책, 지방 공무원의 증원과 장애인 고용의 활성화, 유치원에 대한 국고 지원 증액을 내걸며 10% 중반대의 지지를 받고 있다.

  부산 인구 정도의 노르웨이에는 84개의 일간지가 발행될 정도로 다양하다. 각 정당에 동조하는 언론이나 직속 언론, 지방마다 6∼8개의 일간지가 있다. 발행부수가 5,000∼2만 부에 불과한 일간지의 생존 비결은 소형 신문일수록 국가가 좀 더 많은 경비를 지원해 주는 보조금 때문이다.

  근대국가의 특징 중 하나는 대중 격리공간의 창출이다. 군대, 학교와 공장의 기숙사, 감옥, 수용소가 여기에 속한다. 그런데 스칸디나비아의 격리공간은 탈현대로 접어들었다. 특히 감옥은 감시와 처벌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서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의 사회 적응 능력을 길러 건강한 사회인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목표이다.

 

  2부 과연 그들은 건강한가에서는 제 3세계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유럽 사민주의가 전 세계의 평등을 지향하고 실천할 때만이 진정한 평등이며 이런 인식이 부족한 사민주의의 한계를 지적한다.

  헤위에르달의 탐험 낭만주의의 사례를 통해 서구인들은 유럽 중심주의에 갇혀있음을 지적하며 린드크비스트의 논리를 바탕으로 유럽 중심주의가 현실에서는 제 3세계에 대한 약탈과 멸종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런 점에서 서양과 일본을 쫓아다니는 것을 지성과 미덕으로 알고 있는 한국의 집단심성은 건전한가라고 묻고 있다. 또한 서구인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은 여러 사례를 인용하여 지금에 있어서는 단지 사회의 관습일 뿐이라고 꼬집고 있다. 즉 현재 서구의 풍요와 번영, 민주주의와 평등은 철저하게 제 3세계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도 서구인들은 구조적이고 필연적인 남북문제를 유럽 중심주의에 갇혀서 비유럽 지역을 인종적 차별로 대하고 있다. 그리고 선진국과 주변부와의 불평등한 계약, 독재정권에 대한 후원하고 있는 국제 에너지 기업 셸은 전형적인 사례이다.

  또한 노르웨이는 다른 유럽에 비해 민족주의가 상대적으로 건전했다. 민족주의는 인명 존중, 생명 경외에 비하면 하위의 가치에 있고 혈통보다는 문화를 민족 개념의 중심에 놓고 있으며 민족성과 민중성, 애향심을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 개념으로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 동원 이데올로기라는 태생적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고 극우 파시스트들이 성장하는 토양을 준다고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스카우트, 포르노 여성 배우들의 현실, 사냥, 동물원, 학교 폭력, 대량 살육 중심의 역사, 살만 루시디 시각의 한계, 오슬로 협정의 한계, 서구 제국주의의 전략적 무기의 역할을 하는 언론, 미국의 중동패권 전략 등등의 사례를 통해 폭력과 차별을 넘어서 평화적이고 평등한 세계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좌파의 역사는 타협, 야합, 우경화, 몰지각으로 점철된 역사도 있지만 여기에 대한 지속적인 반성과 자정작용, 극복의 역사도 있다. 그렇기에 주변부 좌파의 정치세력화와 집권은 세계적 부의 재분배를 이룩하는 바탕이 된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