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영화 ‘똥파리’와 우화 ‘위대한 똥파리’

연이야 2012. 6. 7. 00:15

 

영화 똥파리의 줄거리

동료든 적이든 가리지 않고 욕하고 때리며 자기 내키는 대로 살아 온 용역 깡패 상훈.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상훈이지만, 그에게도 마음 속에 쉽게 떨쳐내지 못할 깊은 상처가 있다. 바로 ‘가족’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길에서 여고생 연희와 시비가 붙은 상훈. 자신에게 전혀 주눅들지 않고 대드는 깡 센 연희가 신기했던 그는 이후 연희와 가까워지고 그녀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그리고 어머니를 죽인 아버지가 15년 만에 출소하면서 상훈은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아픔을 아버지를 구타하는 것으로 푼다. 그의 마음에 깊은 상처는 가족에 대한 증오와 애달픔이다. 그래서 그는 이 상처를 쌍욕을 하며 삶의 절박함과 간절함을 해소하며 살고 있다. 누구든지 상훈이 기분이 좋지 않을 때 걸리면 이유없이 맞고 쌍욕을 듣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증오를 하던 아버지에게 자기의 피를 수혈해주고 난 상훈은  하던 일을 그만두려고 결심을 한다. 하지만 상훈과 영재(연희 오빠)가 마지막으로 일하러 간 집에는 아버지와 아들, 딸이 있었다. 돈이 없다고 하자  영재가 달려들어서 그 남자를 마구 구타한다.  아이들이 울면서 아빠를 때리지 말라고 말리는 모습속에서 상훈은 어릴적 자기와 동생의 모습을 보게 된다. 상훈은 영재에게 그만 하고 돌아 가자고 했지만 결국 독이 오른 영재에 의해 상훈은 길바닥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우화 ‘위대한 똥파리’

- 작가이자 터키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손꼽히는 아지즈 네신이 쓴 ‘당나귀는 당나귀답게’속에 있는 우화.

 

줄거리

젊은 파리 한 마리가 유리창을 통과하겠다며 계속해서 유리창에 부딪친다. 늙은 파리들은 불가능하다며 말렸지만 젊은 파리는 계속해서 유리에 부딪치자 결국 죽고 말았다. 남은 파리들은 젊은 파리의 죽음을 슬퍼했다.

 

☞ 본문 일부

 

그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던 늙은 파리 한 마리가 젊은 파리에게 말했다.

“네가 불쌍하구나. 얘야, 유리를 통과하지 못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왜 그렇게 자꾸 몸을 부딪치는 거냐?”

그 저돌적인 젊은 파리가 말했다.

“하지만 희망이 있잖아요. 저의 이 시도는 희망을 나타내는 거예요. 밖이 환한 이상 희망을 버릴 수 없어요.”

“하지만 너는 절대로 유리 저편으로 통과할 수 없어, 그건 불가능한 일이니까.”

“알아요. 통과하지 못한다는 거. 하지만 알 수 없잖아요. 이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는 통과하게 될지도……. 만약 제가 통과한다면요?”

늙은 파리는 화가 잔뜩 나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 바보야. 통과할 수 없다니까!”

그러자 젊은 파리가 물었다.

“그렇다면 빛은 어떻게 유리를 통과하지요?”

늙은 파리가 또다시 소리를 질렀다.

“이런 엉뚱한 놈! 넌 파리야. 빛이 아니란 말이야! 혹시 네가 빛이라고 착각하는 것 아니야? 이 멍청한 놈!”

그러자 다른 파리들도 한 마디씩 거들며 잘난 척을 하였다.

“빛은 유리를 통과하지. 하지만 소리는 유리를 절대로 통과하지 못해.”

그래도 젊은 파리는 꿋꿋했다.

“어쩔 수 없지요. 뭐. 하지만 전 밝은 곳으로 나가려는 시도를 계속할 거예요.”

이렇게 말한 후, 다시 공중으로 날아올라 유리창으로 돌진했다. 이번에는 너무나 빠른 속도로 부딪혔기 때문에 그 충돌의 여파가 매우 컸다. 젊은 파리는 힘없이 창문턱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았다. 가느다란 다리로 몸을 어루만진 뒤 날개를 곧게 폈다.

잠시 후, 젊은 파리는 다시 날아서 빠른 속도로 유리창에 부딪혔다. 늙은 파리가 근엄하게 말했다.

“이건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다. 넌 밖으로 절대 나갈 수 없어! 쓸데없는 짓하지 마라. 다친다. 다쳐!”

그러자 젊은 파리가 화를 내며 말했다.

“아니, 그럼 당신들은 밝은 세상으로 나가려 애쓰지도 않고 여기 앉아서 뭘 하시는 건가요? 아무것도 하지 않잖아요! 그냥 그렇게 앉아서 시간만 죽이고 있으면 되나요? 전 당신들처럼 시간만 죽일 순 없어요. 최소한 탈출구를 찾기 위해 희망을 갖고 노력은 해야지요. 제가 하는 일이 죽치고 앉아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제발 제 일에 간섭하지 마세요.”

늙은 파리들은 체념하였다. 말귀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이 고집불통에게 더 이상 충고를 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고집쟁이 젊은 파리는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해도 말릴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중략>

그러다 어느 순간, 그는 유리창 위에 납작하게 붙어 버렸다. 너무나 빠른 속도로 날아가서 부딪혔기 때문이었다. 피부가 갈기갈기 찢기면서 몸 전체가 짓이겨졌다. 이윽고 피가 유리창 위로 천천히 번져 나갔다. 젊은 파리는 그대로 죽고 말았다. 집 안에 있던 파리들은 젊은 파리의 시체 주위로 모여 들었다. 그들은 통곡을 하였다. 그동안 파리가 죽는 것을 수없이 많이 봐 왔지만, 단 한 번도 이렇게 슬퍼하면서 눈물을 흘린 적은 없었다. 그들에게 젊은 파리의 죽음은 의미가 달랐다.

 

<중략>

파리들은 눈물을 흘리며 젊은 파리의 시체 앞에서 경건하게 묵념을 했다. 그곳에 모여 있던 파리들 중 나이가 가장 많고 학식도 가장 풍부한 파리가 말했다.

“이 용감한 파리의 주검을 기리기 위해 유리 위에 기념비로 남기도록 하자. 밝은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서 목숨을 바친 그의 영혼이 거룩하기 때문이다.”

 

<중략>

늙은 파리가 한 말은 옳았다. 젊은 파리의 기념비는 영원히 남았다. 영원이라는 것은 생물체에

따라 다르다. 나비에게 세 시간이라면, 사람에게는 삼만 년이고, 파리에게는 몇 시간 동안이기 때문이다.

기념비로 남은 젊은 파리는 파리들의 역사에 영웅으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어떤 파리는 여전히 그가 불가능한 시도를 하다가 죽었으므로 바보 혹은 미친놈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어느 쪽이 맞을까? 파리들은 각자의 마음이 내키는 대로 이해하기로 결정했다.

 

 

영화 똥파리에서 상훈은 고교생 연희, 조카 형인을 보면서 폭력에 찌든 삶을 정리하고자 한다. 물론 그 결과는 싸늘한 죽음뿐이었다. 또한 위대한 똥파리에서도 한 젊은 파리는 모든 파리들이 시도조차하지 않는 행동을 했지만 역시 그 결과는 죽음뿐이었다. 이들의 죽음은 보는 시각에 따라서 무모한 죽음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훈이 폭력에 찌든 삶을 정리하고자 함은 자신의 상처에 대한 스스로의 치유와 극복의 의미를 담고있다. 물론 상훈은 그 댓가가 죽음일지는 상상도 못했지만 하지만 상훈이 죽음을 예상했더라도 상훈은 그 길을 택했을 개연성은 높다. 왜냐하면 평소의 삶(용역 깡패)은 상처를 치유하기는 커녕 상처를 키우고 덧나게 할뿐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똥파리는 현실의 모순을 벗어나고자 어떤 장벽에도 굴하지 않고 과감히 전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역사에서 지배체제에 맞선 수많은 항쟁과 민중운동을 볼 수 있다. 그 결과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항쟁의 주체들은 온갖 억압과 차별, 무시, 인권 유린, 배고픔 등을 벗어나기 위해 과감히 도전하였다.

 

현재 우리 사회는 결과만을 압도적으로 논하고 있다. 하지만 각자 개인의 삶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며 이 과정에서 실패와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과 모험은 주체에게 능동적이고 자율적인 삶을 부여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