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과 1966년 사이에 게바라는 소비에트의 ‘정치경제학 편람’에 비판적 주석을 달았다. 이 주석은 부인을 통해 그의 부관이었던 보레고에게 전해졌다. 하지만 보레고는 이 노트를 40년 동안 숨겨놓았다. 왜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기에 꽁꽁 숨겨놓았을까? 게바라는 이론적 분석과 대안적 경제관리시스템에 확신을 얻은 후 사회주의 나라와 사회주의 혁명을 하고 있는 나라를 위해 대안적인 이행 모델을 제시하려고 했다. 이는 사회주의 블록에서 소련의 지위에 대한 도전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노트를 통해 게바라는 자율재정시스템을 비판함으로써 자본주의적 요소를 가진 사회주의에 내재한 위험들을 밝힐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사망하기 직전까지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몰려 있던 레닌이 신경제정책으로 귀결되는 조치들을 취함으로써 전국적으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다시 도입했고 현재의 소련 사회의 법적. 경제적 토대가 전독점자본주의의 관계와 범주를 허용하는 신경제정책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즉 소련은 자본주의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비판적 주석 노트를 자세히 살펴보면 정치경제학 편람이 제국주의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계급관계 개념을 그대로 따랐다고 비판했다. 제국주의는 개도국에서 착취하는 잉여를 자국의 노동자와 나눠 먹고 이런 이유에서 제국주의 국가의 노동자들은 더 이상 혁명의 전위는 아니라고 봤다.
그리고 콜호스 집단농장에 대해서도 첫째, 콜호스는 소련의 특징이지 사회주의의 일반적인 특징이 아니며 둘째, 상부구조에 자본주의적 소유관계를 부여한다고 주장한다. 소련에서 토지는 사회적 소유지만 콜호스에 속한 생산수단은 사회적 소유가 아닌 콜호스 소유이기 때문에 사회와 콜호스간에 간극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심화된다고 봤다.
편람에서는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평화적 이행의 가능성을 언급하지만 게바라는 이를 간단히 무시하고 투쟁의 불가피성을 주장한다. 또한 편람에 나오는 사회주의 경제법칙에 이의를 제기하며 조목조목 비판했다. 게바라는 사회주의 블록에서 자본주의적 범주를 사용하고 도덕적 인센티브와 교육을 배제함으로써 자본주의 상부구조가 사회주의 하부구조와 충돌하게 된 사회주의 블록에서 혼합체제가 등장 사회주의 발전을 막았다고 생각한다.
게바라는 공산주의가 반드시 자본주의보다 생산성이 높아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했다. 자본주의와의 경쟁보다는 사적 생산수단의 존재로 초래된 모순을 해결하고 공산주의 교육을 확실히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봤다.
소련의 수정주의 경향은 실용주의와 과학적 분석의 부재 때문이라고 게바라는 결론을 내렸다. 쿠바에서는 소련의 지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소련의 수정주의 경향을)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조금씩 재정 보유고를 확충해 나갔고 이런 준비가 사회주의 쿠바가 아직까지 존재하는 이유가 되었다. 게바라는 1965년 4월 쿠바를 떠났지만 자본주의적 산업이 사회주의적으로 운영되는 이행을 후유증 없이 순탄하게 진행했다. 물론 떠나고 난후 그의 유산들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거나 페지된 것도 있지만 많은 정책들이 쿠바에 깊숙이 뿌리내렸다. 특히 예산재정시스템은 그의 가장 큰 공헌이었다.
'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학의 몽상(이진경 지음)① (0) | 2012.10.17 |
---|---|
강철구의 우리 눈으로 보는 세계사 - 유럽 중심의 세계사를 우리 관점에서 비판한다 (0) | 2012.10.09 |
체 게바라 혁명의 경제학 ② (0) | 2012.09.10 |
체 게바라 혁명의 경제학(헬렌 야페 저)① (0) | 2012.09.06 |
새롭게 읽는 공산당 선언 - 레즈를 위하여② (0) | 2012.08.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