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논쟁
첫 번째 논쟁 - 자본주의 국가에 대하여
마르크스, 엥겔스 국가론 제1명제 국가는 생산관계로부터 출현한 것이다. 국가는 시민사회의 모순으로부터 파생되었으며서도 시민사회로부터 분리되어 지배권을 행사하는 관료기구에 불과하며 여기서 시민사회는 자본주의적 경제활동을 의미한다. 제2명제 생산관계로부터 출현한 국가는 공동선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에 고유한 계급구조의 정치적 표현이다. 제3명제 결국, 부르주아 사회에서 국가는 부르주아의 억압적 무기다. 즉, 국가는 생산관계라는 토대에 의해 규정되는 상부구조며 역사속의 모든 국가는 생산관계로부터 비롯되는 계급투쟁속에서 지배계급의 지배 수단이다. 특히, 현대 국가는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계급인 부르주아에 대해 어느 정도 자율적인 관료기구로 이루어져 있다. 즉 국가가 항상 당연히 부르주아에 의한 집행위원회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현대의 국민국가는 절대주의를 거쳐 시민혁명을 통해 형성되었다. 마르크스는 국민국가의 형성은 부르주아의 이익에 봉사하는 행위라고 비판한다. 1871년 파리코뮌당시 프랑스 부르주아는 적국 독일과 손을 잡고 피지배계급을 학살하는 장면은 ‘국민’이라는 수사의 허상이 드러난다. 마르크스는 혁명을 통해 기존의 국가 기구는 철저히 파괴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기관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형식에 있어서도 기존의 형식이 아니라 유권자들이 선출과 소환을 자유로이 하며 입법과 실행을 동시에 행하는 대표들로 이루어진 평의회체계가 필요하며 계급 지배를 폐절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 국가관은 마르크스 사후 베르슈타인에 의해 부정당하기도 하지만 레닌은 국가 관료기구가 부르주아의 계급 지배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트혁명 과정에서 기존 국가기구는 철저히 파괴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그러나 복지국가의 등장은 커다란 도전이었고 베른슈타인의 입장이 승리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60년대 사회투쟁의 재발과 70년대 불황과 함께 복지의 축소는 마르크스⦁엥겔스⦁레닌의 사상은 재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복지국가가 존재할 수 있었고 노동계급의 혁명이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해명이 필요했다. 여기에 가장 적극적인 대답을 내놓은 이가 그람시였다. 현대국가가 민중들에게 경제적 이해를 제공하거나 이데올로기적인 영향을 끼침으로써 단순한 억압이상의 역할들, 즉 피지배계급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계급이 혁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유기적 지식인의 활동을 통해서 지배계급의 헤게모니가 성공적으로 형성되는 것에 균열을 내고 자신들의 지적, 도덕적 역량을 물질적 힘으로 다져가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활동의 중심에 바로 노동계급의 혁명적 대중정당이 있다.
두 번째 논쟁 - 소유의 사회화에 대하여
공산주의의 특징은 소유 일반의 폐지가 아니라 부르주아적 소유의 폐지에 있다. 마르크스는 (생산수단의)사적 소유와 (소비수단의)개인적 소유를 구분 사적 소유는 부정되어야 하나 개인적 소유는 오히려 소유의 사회화를 통해 비로소 실현되는 것이라고 한다. 일본의 좌파 경제학자 히라타 기요아키는 협업, 토지 및 생산수단의 공동 점유를 기초로 하는 개체적 소유, 즉 사회적으로 개체적인 소유의 기초위에 자유로운 개체성 연합으로서의 사회가 형성된다고 봤다. 이런 주장은 국유화 일변도의 기존 사회주의관의 비판으로 이어진다. 사회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소유제도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사회적으로 개체적인 소유’를 만들어내는 것, 즉 새로운 연합사회의 구성원이 될 사회적 개인들의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부르주아적 개인 관념을 비판했다. 실제 현실은 생산의 협동적 성격이 증대하며 인간의 사회적 성격은 유례없이 고양되고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근대 개인의 관념을 변증법적으로 계승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연합사회’라는 문구 표현하고 있다. 이는 스탈린주의나 동아시아의 가부장적 사회주의와는 분명히 다르며 평등의 이름으로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 평등, 우애’의 동시 실현을 추구하는 것이다.
사회주의운동의 소유문제 대안은 국유기업 형태든 임노동자기금, 형동조합기업, 노동자 소유 주식회사 등등의 형태가 되어야 할지는 구체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국공유기업은 국가관료집단, 기업 엘리트에 의해 관료적으로 운영되어서는 안 되며 다양한 경제주체들이 참여하는 경제정책위원회의 계획에 따라야 하며 노동자, 소비자 집단, 지역 주민등이 참여하는 세밀한 참여계획에 종속되어야 한다. 그리고 중소 규모의 기업들은 이행기 과정에서도 계속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노사 공동경영제도가 관철되어야 하며 외적으로는 기업간 협동 네트워크에 참여해야 한다.
세 번째 논쟁 - 폭력혁명에 대하여
폭력 혁명은 국가는 지배계급의 조직된 폭력이고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가 계급의 조직된 폭력이다. 따라서 노동계급은 자본주의체제를 극복하기 위해 현존 국가에 도전해야 하고 이는 대항 폭력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또한 국가의 폭력은 1848년 혁명과 파리코뮌을 거치면서 무차별 포격으로 나타났다. 레닌은 이런 국가 폭력의 인플레이션을 누구보다도 분명히 자각하였다.
그람시는 자본주의 국가는 ‘폭력’ 뿐만 아니라 물질적 양보, 시민사회의 조직화, 이데올로기 공세를 통해 ‘동의’도 생산하기 때문에 발전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혁명은 기동전과 진지전의 반복을 요구하는 장기전이라고 봤다. 알튀세르는 이를 ‘억압적 국가기구’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의 구분으로 설명했다. 군대, 경찰과 같은 억압적 국가기구는 오직 파괴될 수 있을 뿐 장악되거나 활용될 수 없으며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는 장구한 변혁 과정을 요구한다고 봤다. 이에 반해 풀란차스는 국가를 계급투쟁의 장으로 본다. 노동계급은 국가를 그대로 접수하거나 일격에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민주화하고 변형해야 하며 대의제 내부에서의 공격과 직접민주주의를 통한 포위의 양면 전략을 통해 현존 국가의 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2차 대전 후 미국의 우산 아래서 케인즈주의의 타협에 만족하게 된 서구의 사회민주당, 심지어 공산당마저도 평화혁명의 가능성을 확신하였다. 그러나 1973년 세계 역사상 최초로 선거혁명을 통해 사회주의 이행을 한 칠레는 군사 쿠데타로 붕괴되면서 모든 낙관론을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이에 유럽 공산당 내 좌파는 신중간층을 획득하기 위한 통일전선의 시도는 필요하지만 우파의 양보로 얻어질 수 있는 게 아니며 사회운동을 고양시키고 직접민주주의의 진지를 건설함으로써만 추진될 수 있다고 봤다. 영국 마르크스주의자 밀리반드는 서유럽에서 진지한 사회주의 변혁이 추진된다면 미국과의 공모 아래 폭력적 대응이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하였는데 이는 결코 기우가 아님을 세계 곳곳에서 밝혀졌다. 이렇듯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길은 태평한 몽상의 길은 아니다. 새로 집권한 좌파세력이 진지한 강령을 추진하면 처음에는 정치, 이데올로기적 전쟁이 이후 군사적 대결의 내전에 빠질 것이다. 이런 대결 국면에서는 헌법을 보다 민주적으로 개혁하고 보수세력의 약점을 폭로하고 진보적 사회운동을 복돋우며 노동자, 민중이 주도하는 대중 권력기관들을 공장을 비롯한 사회 곳곳에 건설하는 대담함만이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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