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게바라가 갖고 있는 반군 사령관, 무장한 국제주의자라는 인식을 넘어 1959년부터 1965년까지 쿠바 경제관료로서 그의 사회주의 정책에 대한 연구서이다. 이 책을 편찬하기 위해서 저자는 오직 쿠바 안에서만 유포된 자료와 회의 기록, 측근을 비롯한 60명의 인터뷰 내용, 쿠바 밖의 2차 문헌까지 참고하였다.
쿠바 사회주의를 비판하기 위한 이데올로기 전쟁에 주안점을 두는 (영어권)쿠바학은 성장률과 생산성에만 초점을 맞춰서 혁명 직전의 쿠바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실상은 쿠바는 설탕에 의존하는 단일작물경제였고 미국의 투자와 무역에 지배받는 자유기업경제였으며 빈곤과 실업, 불완전 고용으로 인한 빈부격차 심화, 수도와 지방의 불균형이 만연해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혁명 직후의 문제는 저발전 상태에서 사회주의체제에 부합하는 새로운 의식과 새로운 사회관계의 형성을 방해하는 자본주의적 매커니즘에 의지하지 않고 어떻게 생산력과 노동 생산성을 높일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쿠바는 여기서 자본주의적 개혁을 거부하고 기존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제 정책도 순순히 따르지 않는 조치를 취했다.(시장을 통한 상품거래, 기업의 이윤 추구, 노동자들에 대한 성과급 지급, 개별 기업의 독립채산제가 없어지지 않으면 소련은 자본주의로 후퇴하리라는 것을 1965년에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특히 예산재정시스템이라는 경제관리시스템을 수립, 발전시켰고 이 시스템은 이 책의 주요 논의 대상이다. 이렇기 때문에 김수행 교수는 새로운 사회를 어떻게 세울까 고민하는 모든 사람은 이 책을 반드시 읽을 것을 강조했다.
혁명후 쿠바는 경제구조에서 비롯된 사회경제적 문제들에 봉착했다. 경제는 설탕 관련 상품의 무역에 의존했고 이 무역은 미국에 종속되었고 가장 중요하고 복잡한 산업은 미국 기업과 기술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한 상황에서 불완전 고용, 빈곤은 극심했다. 이런 상황에서 급진적 입법에 반발한 자본가들은 투자 동결, 조업 시간 단축 등의 사보타주를 단행했다. 농업개혁법은 다소 온건하였지만 농업에 대한 국가 개입, 협동조합화 원칙, 궁극적으로는 집산화에 있었다. 아무튼 자본가의 사보타주를 막기 위해 혁명 정부는 산업 시설을 국유화하였다. 이에 미국은 유럽과 남미에 압력을 넣어 쿠바 경제봉쇄 조치로 맞섰다. 그러자 혁명 정부는 생산관리와 계획 경제를 위해 새 기구 설립과 기존 조직들의 조직 개편을 단행하였다. 그 결과 혁명 2년후에는 미국의 지배를 받던 자유기업 경제에서 산업의 84%를 국가가 통제하는 계획경제로, 교역관계도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회주의 국가로 옮겨갔다.
이런 시기 게바라는 쿠바국립은행 총재에 취임해 미국과의 종속 관계 청산과 계획경제 도입을 위해 은행의 국유화를 주도하였다. 쿠바에 개설된 미국은행의 국가 몰수와 화폐 발행, 신용 제공, 예금과 저축, 담보 대출 등등을 계획 경제에 기초해 관리되기 시작했다. 게바라의 목표는 레닌의 사회주의 국영은행 모델을 바탕으로 하나의 국가독점은행을 세우는 것이었다. 그리고 1960년 무역사절단을 이끌고 사회주의 국가들을 방문하는 중 새로운 은행권 발행의 지시를 내린다. 이는 반혁명 세력의 자금줄을 차단하는 데 아주 중요하고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 철저한 보안속에서 추진했다. 그 결과 국립은행의 부채 탕감과 자본 도피 차단과 반혁명 세력의 자금을 종이조각으로 만들었고 중앙계획경제의 초석이 되었다.
이후 게바라는 산업부흥부장으로 자리를 옯겨 설탕등 원자재 수출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 탈피와 산업의 국유화를 주도한다. 국유화의 과정에서 각 사업장의 관리자를 물색하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지배계급의 망명으로 노동자, 농민이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혁명을 급진적으로 발전시킬려는 노력이 기술적 경험만큼이나 중요하고 관리자와 노동자들 간의 협력도 중요하다는 것을 게바라는 깨달았다. 실현가능성이 적다는 이유로 경제적 독립을 달성, 유지하는 필요한 조치를 미루거나 멀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산업부흥부로 이관된 업체중에는 파산한 업체도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게바라는 예산재정시스템으로 발전하는 행정의 집중화, 재정의 집중화를 확립하였다. 산업부흥부 직원들이 사업장을 방문 봉급 총액과 주요 지출 항목을 조사 연간 예산을 산정하고 예산을 공정하게 분배하였고 추가로 배정받을 수 없었다. 또한 생산의 효율성 뿐만 아니라 새로운 관리 유형이 필요했다. 그래서 자문평가법이 도입되는데 매달 공장 운영 상황을 보고 받고 이를 분석 평가해서 각각의 등급에 따라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이다. 그리고 자문평가법은 예산재정시스템에 통합되어 운영되었다. 하지만 국립농업개혁원과 대외무역부는 소련이 고안한 자율재정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결과 혁명 정부내에 두가지 시스템이 공존하는 모순이 발생 대논쟁으로 이어진다.
대논쟁
비고 |
예산재정시스템 |
자율금융시스템 |
기업 |
산업부문에 따라 연합기업소 단위로 묶인 기업들. 중앙 통제를 받는 재정과 관리 |
작업장마다 법적 독립성을 가짐. 재정 역시 자립적임 |
화폐 |
계산 단위로, 기업 실적을 나타내는 가격으로 기능하고 중앙기구의 분석 수단이 됨. 기업은 자기 기금을 갖지 못하고 대출을 받거나 줄 수도 없음 |
계산 단위로서 뿐만 아니라 지급 단위로 기능, 생산 단위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기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간접적인 통제 수단으로 사용됨. 기업은 은행에 자체 기금을 맡길 수 있고 대출도 받을 수 있음 |
은행 |
국가생산계획에 따라 기업들이 기금을 예금하고 인출할 수 있는 별도의 계정 보유 |
기업들과 관계는 자본주의의 그것과 비슷함. 기업들이 돈을 대출받기 위해 계획을 설명하고 지급 능력을 입증해야 함. 하지만 모든 결정은 국가계획에 종속됨 |
인센티브 |
개인적으나 집단적으로 물질적 인센티브가 법적으로 용인되지만 보상 방식은 임금이나 보너스 지급으로 한점됨. 그렇다고 이런 인센티브가 생산의 주요 수단으로 사용되지는 않음. 승진해 높은 봉급을 받으려면 전문가훈련을 반드시 받아야 함. 도덕적 인센티브가 자발적 노동 같은 메커니즘을 통해 사회주의 의식을 고양하는 데 더 중요한 역할을 함 |
물질적 이해관계가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생산성 증대를 위한, 즉 사회주의 의식 고취를 위한 전제 조건으로서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주요 지렛대임. 물질적 인센티브의 적용은 규범보다는 생산 실적이나 노동성과에 따른 보너스 지급 방식을 취함 |
가치법칙 |
상품 사회의 잔재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작동. 하지만 그것의 반테제라고 할 수 있는 계획경제와 새로운 사회관계로인해 계속 잠식됨. 국영기업들 간의 교환은 기본적으로 상품 교환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음. 이윤이 아닌 비용 절감이 기업의 성과를 평가하는 주요 잣대 |
저발전 상태는 사회주의로의 이행기에 가치법칙의 존재와 효용을 설명해줌. 가치법칙은 계획경제와 반테제가 아니라 그것의 한 차원으로 간주해야 함. 상품관계가 아직 기업들 간의 교환에 남아 있음. 재정 수익성이 생산을 평가하고 자극하는 핵심 요소 |
가격 |
모든 수입 원자재의 가격은 세계시장 가격에 기초해 고정되어 있음. 기업이 생산하는 상품의 가격은 이윤이 아닌 비용에 따라 책정되고 세계 생산성을 나타내는 세계 가격과 비교됨. 소매 가격은 기본 수요에 따라 조정됨. |
가치법칙에 따라 결정. 소비자 가격은 재화의 수요-공급에 의해 결정 |
역사적으로 사회주의를 건설을 시도한 나라들은 저발전국가였다. 특히 소련은 역설적이게도 산업화과정을 높이기 위해 경쟁, 이윤 동기, 물질적 인센티브, 신용, 이자 등 자본주의적 도구를 사용했다. 하지만 게바라는 인간의 태도와 가치를 바꾸지 않은 채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자본주의적 수단에 의존하면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와 의식을 재생산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소련의 자율재정시스템 도입을 반대했고 저발전국가에서도 사회주의 건설 과정에서 생산성뿐만 아니라 의식도 같이 높일 수 있는 대안적 시스템인 예산재정시스템을 수립했다. 하지만 국립농업개혁원과 대외무역부를 중심으로는 자율재정시스템을 적극 지지했다. 게바라의 대안은 검증되지 않았고 한편으로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쿠바에 파견된 기술자, 경제학자들역시 게바라의 안을 거부하였다. 그 결과 쿠바는 두 가지 경제관리시스템이 경쟁하는 양상을 띄었다.
대논쟁은 그 당시 침체된 사회주의권 개혁 논쟁과 관련이 있었고 그 중심에는 사회주의 경제와 관료주의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자본주의적인 메커니즘을 도입할 것을 요구한 ‘시장사회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대논쟁은 논자에 따라 다양한 각도에서 해석됐다. 사회주의에서 가치법칙의 작동, 도덕적 인센티브 사용에 대한 의견 불일치, 기업의 재정 (탈)집중화 정도에 대한 논쟁, 기타 등등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핵심은 사회주의 이행기에 가치법칙이 작동하는가 여부였다. 가치법칙을 논하기 위해서는 상품 생산은 교환을 전제로 하고 상품에 체화되어 있는 노동시간은 사회적 필요 노동시간이라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이행기에서는 아직 노동이 필요에 따라 보상받을 수 있을 정도로 풍요롭지 않으며 이 상태에서 어떻게 공산주의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사회주의 권에서 나온 해답은 가치법칙에 기초한 생산, 분배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게바라는 가치법칙에 의존하는 것은 공산주의 건설을 방해할 뿐이며 국가계획, 연구기술투자, 관리매커니즘, 사회주의 의식 같은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게바라는 쿠바는 거대한 공장으로 봐야 하고 국영기업들 사이에서는 가치법칙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이행기에 기본 모순은 비자본주의적 생산방식(생산수단의 사회화)과 부르주아적 분배양식(노동에 따른 분배)간의 모순이라고 밝힌다. 그래서 그는 사회주의 국가는 가치법칙을 사용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 법칙의 작동 영역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완전 폐지를 위해 국가가 개입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즉, 생산 능력을 높여 가치법칙을 무시해도 될 정도로 물질적 풍요를 달성해야 됨을 의미한다.
예산재정시스템에서 계산 화폐는 중앙계획이 생산 및 투자 결정 인자로 기능하도록 보장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다. 계산 화폐는 회계 보고, 감독, 재고 관리를 강조하는 관리통제기구의 역할과 기능에 힘을 실어주었다. 사회주의 국가는 은행과 은행이 자금을 제공한 공장들에서 생산한 재화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신용이 작동할 여지가 없으며 이자 또한 있을 수 없다.그리고 은행이 투자 결정에 관여할 하등의 이유가 없으며 투자 결정은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문제로 중앙계획위원회가 담당할 일이라고 밝혔다. 생산 비용을 낮추는 것이 노동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핵심이며 예산재정시스템에서는 이를 위해 이윤 동기가 아니라 기술과 조직 혁신, 도덕적 인센티브와 숙련도 향상에 초점을 맞추었다.
경제생활의 많은 영역에서 가치법칙이 작동하지 않으면서 생산성은 어떻게 높일지, 정신/육체 노동의 이분법은 어떻게 극복할지, 생산수단에 대한 투자와 소비수단에 대한 투자는 어떤 식으로 균형을 유지할지 등등의 많은 과제를 낳았다. 게바라는 사회주의 건설을 목표로 둔 노동자들의 의식적 행동에 의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이런 관점에서 도덕적 인센티브는 사회적 의무로서 노동이라는 새로운 노동 개념을 만들기 위한 도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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