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이슈

미·일 양적완화 공조, 새로운 글로벌 통화질서 되나? ①

연이야 2013. 2. 24. 16:17

과감한 통화정책, 풀린 돈의 행방



지난번 연재에서 ‘아베노믹스’의 뜨거운 쟁점인 글로벌 환율전쟁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아니다 다를까, 그 2주일 동안 엔화약세에 대한 논란은 더욱 심화되더군요. 그런데 의미심장한 사건이 하나 터졌습니다. 미국의 재무차관이 ‘아베노믹스’의 양적완화정책에 대해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해 취할 수 있는 적절하고 적극적인 방법이라고 평가한 것입니다. 이로써 논란이 되었던 엔화약세를 사실상 용인한 것인데요, 엔화약세의 추세는 더욱 가파르게 변화하리라 예상됩니다. 벌써부터 달러당 100엔선까지 밀릴 것이라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미 재무차관 “아베노믹스 지지” “디플레 탈피 노력” 옹호 발언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당장 유럽에 발등이 떨어졌습니다. 프랑스의 올랑드 대통령은 우리도 환율개입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통화안정을 중시하는 보수적 입장인 독일은 일본의 의도적인 엔화약세에는 반대하지만 섣부른 대응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며 유로화개입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정치통합 없는 화폐통합의 한계로 인해 유로화의 통화가치는 금융위기가 불거지면 순식간에 불안정한 상태에 빠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지난 3년 동안 보았던 유럽의 채무위기가 이를 보여줍니다. 그렇다보니 유럽은 가뜩이나 꼬여있는 내부의 정치적 갈등에다가 외부적인 환율갈등이 하나 더 얹게 된 형국입니다.

그런데 지난 15일 열린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인위적인 환율개입을 반대한다”라는 2010년의 G20 선언내용을 확인하는 수준에서 이 문제는 봉합되었습니다. 과열된 환율논쟁을 좀 가라앉히자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데요, 논란이 되는 엔화약세에 대한 논의는 거론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엔화약세의 추세가 숨고르기를 할지 아니면 재차 지속될지 지켜볼 일입니다. 과연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한 회심의 한방이 될 것인가? 아니면 글로벌 환율전쟁의 기폭제가 될 것인가? 좀 더 유심히 지켜 볼 일입니다.

그런데 가만 한번 생각해 봅시다. 왜 디플레이션 탈출을 외치는 일본의 통화정책이 다른 국가들로부터 욕을 먹을 정도로 논란이 될까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내정간섭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미국만 빼고 다들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한마디씩 하는 모습이 좀 의아스럽습니다. 일본은 분명 자국의 경기부양을 위한 통화정책이라고 강조하는데 말이죠.

풀린 돈들은 도대체 어디로 갔나?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우리는 5년 동안 선진국들이 경기부양을 위해 돈을 대거 푼다는 뉴스를 자주 접했습니다. 이럴 때마다 우리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풀린 그 돈들이 어디로 갈까? 다시 부동산 거품이 생기려나? 혹시 내 호주머니로 좀 들어올 수 없나? 주식시장이 들썩이면서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뉴스를 들으면 그 돈들이 주식시장으로 몰려간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왠지 나도 그 대열에 좀 껴야 뭐라도 건질 수 있는 건 아닌지 혼란스런 생각들이 들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현실을 돌아보면 참 의아스러울 것입니다. 지난 5년 동안이나 저금리와 양적완화를 외치고 있지만 변동성 높은 식료품물가를 빼고 전반적으로 물가는 크게 오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집값은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중국, 인도, 브라질처럼 성장국면에 있는 나라들을 빼고 완화된 통화정책을 수년째 하고 있는 미국, 일본 등은 여전히 실물부문에서 돈이 줄어드는 디플레이션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과연 뉴스에서 그토록 많이 풀렸다고 떠들었던 그 돈들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요? 이들의 행방을 찾기 전에, 먼저 돈을 푸는 방법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봅시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추는 것입니다. 그러면 낮아진 금리로 중앙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린 시중은행들이 기업과 가계에 대출을 쉽게 하도록 독려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전 세계 선진국들은 장기불황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시중은행들은 확실한 이익을 볼 수 있는 우량사업체나 주택담보대출처럼 담보물이 확실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대출을 기피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시중은행들이 일반인들에게 대출하는 금리는 기준금리처럼 이렇게 낮지 않습니다. 가령 미국의 학자금 대출 금리는 6.8% 수준입니다(한시적으로 연방정부가 대출금리의 절반을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도 담보가 없다면 얼마 못 빌릴 것입니다. 그것도 10%가 넘는 높은 금리를 물고서 말입니다. 은행들은 저금리로 돈을 조달하지만 서민들은 고금리로 돈을 빌려야 합니다. 중앙은행과 시중은행은 가까운 이웃이지만, 이들과 돈이 정말 절실한 가계 사이엔 건너기 힘든 커다란 강이 놓여 있는 거죠. 중앙은행이 “뿌려준다”는 어마어마한 돈들 중에서 강 건너에 있는 우리에게 돌아갈 몫은 애초부터 없던 거였습니다. 그렇다 보니 초저금리 정책을 5년째 지속해도 대출을 통한 경기부양에 별 효과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저금리 정책에 가려진 진실입니다.

중앙은행의 새로운 대안, 양적완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출기피로 인한 ‘돈맥경화’를 풀기 위해 중앙은행이 직접 나서서 돈을 공급하고자 합니다. 방법은 중앙은행이 채권거래시장에서 국채와 같은 여러 채권들을 매입하는 것입니다. 언론에서 말하는 양적완화라는게 이런 거죠. 현재 미국과 같은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취하는 방법인데요. 채권을 매입하면 지불한 돈이 시중에 풀리니까 이 돈이 경기부양 효과를 내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강 건너로 화살에 돈을 매달아 직접 쏴주는 것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근데 가만 생각해 봅시다. 과연 국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보통 일반시민들이 국채를 들고 있을까요? 여러분 주변을 둘러보면 이해될 것입니다. 혹시 이런 채권 갖고 계신 거 있냐고 한번 물어보십시오. 과연 누가 얼마나 들고 있는지. 미국이라 해서 가구당 국채를 한 묶음씩 가지고 있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아마도 상당한 부를 축적한 금융자산가들이거나 기관투자를 담당하는 글로벌 자금운용사, 시중은행, 금융자산 형태로 사내보유금을 가지고 있는 기업들일 것입니다.

이들이 중앙은행한테 채권을 팔아서 생긴 돈을 어떻게 할까 한번 생각해 봅시다. 경기부양을 위한 투자로 흘러들어갈까요? 아니면 다른 금융자산을 사려고 할까요? 경기부양을 위한 투자로 흘러갔다면 미국이 5년째 양적완화를 외치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신 양적완화 소식이 들릴 때마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주식시장과 채권시장, 원자재시장은 들썩거렸습니다. 국제금융시장에서만 돈이 돌고 있는 거죠.

이로써 우리는 그 많은 돈들이 어디로 갔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금융시장의 안정만으로 본다면 양적완화정책은 효과를 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비롯한 전 세계 주식시장은 위기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채권가격도 날로 높아졌습니다. 누군가(?)에겐 이런 양적완화가 정말 절실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금융자산과는 거리가 먼 서민들에겐 그저 별나라 이야기일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