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이슈

미·일 양적완화 공조, 새로운 글로벌 통화질서 되나? ②

연이야 2013. 2. 24. 16:18

‘아베노믹스’가 시도하려는 혁신적(?) 조치, 중앙은행의 국채 직매입

그러면 여기서 ‘아베노믹스’가 시도하려는 양적완화는 어떤 쟁점을 가지고 있을까요? 미국이나 유럽에서 하고 있는 국채매입과 어떤 점이 다를까요? 바로 중앙은행이 국채를 정부로부터 직접 구매한다는 점입니다. 기존의 양적완화는 채권거래시장에서 구매하는 것입니다. 물론 중앙은행이 채권시장에서 구매한 양만큼 다시 정부가 발행시장에서 채권을 쏟아낸다면, 산술적으로 볼 때 결국 중앙은행이 정부로부터 국채를 구매한 것이 됩니다. 허나 금융시장에서의 최소한의 규율을 유지하려는 그들에게 있어서는, 어쨌든 시장논리에 따라 채권을 사고 파는 과정을 거친 것이라 보이는 거죠. 이 과정에서 수요공급의 밀고 당기는 시장논리에 따라 금리결정이 이뤄지니 적어도 무질서한 양적완화는 아니라는 것이 그들의 논리입니다.

 


그런데 ‘아베노믹스’에서 추진하는 양적완화 방식은 중앙은행이 국채를 직접 사도록 하여 정부가 중앙은행으로부터 직접 돈을 조달하는 것입니다. (참세상 논평 참조, ‘일본의 도박: 윤전기 아베경제학의 미래는?’) 그렇다 보니, 세계적으로 커다란 논란이 불거지는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중앙은행을 맘대로 주무르는 군부독재 하에 있는 소국들에서나 볼 수 있는 조치라고 우려하면서,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불러일으킨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쪽에서는 20년째 디플레이션이 빠진 일본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재정투여로 인위적인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도대체 누구 말이 맞는 것일까요?

‘양적완화’라는 ‘흑묘백묘’, 결과만 좋다면 할 수 있는 놈은 한다

누구 말이 맞고 자시고 할 것 없습니다. 결과가 좋으면 그냥 옳은 게 되는 셈입니다. 줄에서 떨어지면 죽고 떨어지지만 않으면 사는 거죠. 뭐 이런 막무가내식 주장이 있나 싶으시겠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달라진 현실이 그러합니다. 요동치던 경제가 정치적 결정과 타협에 의해서 순간 진정이 되었다가도, 예기치 못한 정치적 사건으로 하루 사이에 위기논란이 불거지는 형국입니다. 가령 두 달 전 ‘재정절벽’이라는 이상한 말을 가지고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가면극을 떠올려 봅시다. 세계경제의 향방이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의 협상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고들 한참 떠들지 않았습니까? 그러다가 재정 감축 시한을 두세 달 연장하고 나서 금새 잠잠해 지더니, 요즘 미국의 경제지표가 좋게 나오고 있다며 완만한 경제회복을 외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냉온탕을 오가며 불안정한 줄타기가 계속 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극단적이라 평가받던 예외적 조치가 일상화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바로 예전엔 상상하기 힘들었던 양적완화라는 예외적 상황이 5년간 지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5년 전 누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무제한적 양적완화’라는 표현에 동의했었습니까? 다들 미친 헛소리라고 말했지만 지금 어떻습니까? 신자유주의 금융지배질서의 첨단을 걸었던 미국과 여기에 복속된 일본이 양적완화라는 통화정책에 있어서 함께 공조를 취하고 있지 않습니까? 심지어 일본은 중앙은행으로 하여금 국채를 받고 돈을 정부에 직접 주도록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일본을 비판하는 다른 나라들이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영국도 수년간 6000억 달러 규모의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캐나다 중앙은행도 2011년부터 알게 모르게 국채매입을 급격히 늘려 돈을 풀고 있습니다. 심지어 캐나다달러 환율은 엔화약세보다도 더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습니다. 유럽도 내부적 진통은 있지만 작년 역내 금융안정을 위해서 유럽중앙은행이 채무위기 국가의 국채를 무제한적으로 매입하겠다는 선언을 했었습니다. 1조 유로 규모의 중장기 대출 프로그램도 시행하고 있구요. 앞에서는 일본의 양적완화정책을 비판하면서도, 다들 뒤에서는 자국의 경기부양과 금융안정을 위해 과감한 양적완화를 거침없이 하고 있습니다. 마치 ‘양적완화’라는 새로운 국제적 트렌드가 만들어지는 형국이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신자유주의 교과서에 적혀있는 내용 중에서 해서는 안 되는 철칙 중의 핵심 내용입니다. 그렇다고 이런 국가들이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에서 근본적으로 이탈하는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요? 참 혼란스럽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과감한 통화정책을 취할 수 있는 나라들은 몇 나라 없습니다. 앞에서 열거한 나라들은 미국의 영향력 하에 있었던 G7(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라 불렸던 선진국들입니다. 국제화폐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이들만이 이런 과감한 양적완화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양적완화의 부작용인 고인플레이션을 완충시킬 장치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바로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입니다. 2008년 미국에서 벌어진 금융위기 시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달러를 구하느라 목숨 걸었던걸 상기해 봅시다. 양적완화에 의한 달러의 과잉을 말하지만 교역을 위해서 모두가 달러를 원하기 때문에 달러가치는 폭락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달러가치를 상대적으로 평가하는 통화항목에는 유로 57.6%, 엔(일본) 13.6%, 파운드(영국) 11.9%, 캐나다 달러 9.1% 등이 포함됩니다. 그리고 이들 국가들은 통화안정을 위해서 미국과 통화스왑을 체결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한 식구라는 얘기죠. 이번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왜 별다른 얘기들이 없었는지 이해되실 것입니다. 식구끼리 싸우다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꼴은 막자는 것입니다. 앞으로 어떤 논란이 벌어질지 모르겠으나 이들 내부에서는 암묵적 합의가 도출될 것입니다. 과연 그것이 글로벌 통화질서의 새로운 장을 여는 신통한 ‘흑묘백묘’가 될지 매우 궁금해집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그들의 이런 갈등과 봉합이 아닙니다. 그들이 뭐라 한들 내정간섭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외환시장을 통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투기적 핫머니들의 피해를 고스란히 당하는 쪽은 양적완화를 맘껏 펼치는 그들이 아닙니다. 바로 외환위기를 대비해서 그들과 통화스왑을 체결해 달라고 애걸복걸해야 할 우리들입니다. 그들은 우리한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니들도 할 수 있으며 해봐!”


-참세상 송명관(참세상 기획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