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입시

당사자, 책임자 없고 전문가 뻘소리만 가득한 학교폭력대책

연이야 2013. 4. 23. 20:22

말해야 하는 사람이 말할 수 있는 자리, 들어야 할 사람이 듣는 자리가 만들어져야

 

4월 10일 학교 폭력을 주제로 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올해 들어서도 학교 폭력에 관한 토론회가 지역에서 꾸준히 있었지만 이번 토론회는 좀 달랐다. 현병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과 우동기 대구교육감이 함께 하는 토론회였다. 학교 폭력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2년여가 지났지만 학교 폭력과 관련해 현병철 위원장과 우동기 교육감이 공개석상에 동석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학교 폭력에 대해 정부는 학교를 탓하고 학교는 가정을 탓하고 서로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만 하는 상황에서 가장 책임 있는 두 사람이 동석하는 토론회였기에 기자들의 취재열기도 뜨거웠다.

 

하지만 기자들만 뜨거웠다. 토론회가 열린 평일 오후 1시 반이라는 시간은 기자와 관련 단체 활동가들을 제외하면 참석하기 힘든 시간대였다. 이를 예상한 주최측(경북대 사회과학대학)은 학부 학생들에게 자리를 채우게 했고 타의로 참석한 학생들은 토론회 중간 중간 수업시간이 되면 자리를 떴다. 심지어 현병철 위원장과 우동기 교육감 역시 축사만 하고 토론회장을 빠져나갔다. 토론회에서 이루어지는 논의에 누구보다도 귀 기울여 듣고 정책에 반영해야할 우동기 교육감은 사회주요인사의 자살이 청소년 자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말과 대구의 청소년 자살율이 전국 수준에서 평균정도라는, 2012년 한 해 내내 물의를 일으켰던 발언들을 그대로 반복하고는 자취를 감췄다. 그 누구의 이야기도 듣지 않았다. 오히려 현병철 위원장은 요즘 사람들이 말을 너무 거칠게 한다고 좌중을 훈계했다.

 

 

학교 폭력에 대한 논의에 반드시 참석해야 할 학생 당사자와 학교 관계자들, 학교 폭력 대책에 대한 정책적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없는 토론회는 말해야 할 사람도 들어야 할 사람도 없이 공허했다. 그렇게 시작된 토론회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로 채워졌다. 하지만 그 ‘전문가’라는 이들이 하는 이야기도 귀를 의심하게 하는 내용이 다수였다.

 

대구교육청 및 경북교육청 관계자는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업무개괄에 가까운 발언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사용했고, 박태환 경북도의원은 자녀를 양육해본 경험이 없는 교사가 너무 많아 학교 폭력 문제의 해결이 어렵다며 교사들의 출산장려를 역설해 청중을 당황케 하기도 했다. 그 중 가장 우려스러운 발언은 장문선 경북대 심리학과 교수의 발언이었다. 장문선 교수는 두 가지 사례를 들어 학교 폭력 대책을 논했는데, 첫 번째 사례는 일진이 있는 학급 담임으로 발령난 신규교사의 이야기였다. 장 교수는 강한 학생들에게 약한 교사가 배정되는 것을 문제로 지적하며 이 신규교사가 일진 학생에게 강하게 대응한 것을 좋은 사례로 설명했다. 급기야 일진 학생이 유리창을 주먹으로 깨 팔에서 피가 흐르는 상황에서도 교사가 감정적 동요를 보이지 않고 강한 태도로 일관한 것을 좋은 대처로 들었다.

 

이것은 폭력에 대한 대책이 아니다. 대책이라기보다는 일진을 힘으로 누르기 위해 교사에게 더 강한 일진이 되라고 말하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교사에게 비공감적 존재가 되라고 강요하는 점에서 또 하나의 폭력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다른 학생이 끔찍한 폭력에 시달리는데도 어떠한 조력도 행하지 않는 방관자들에 대해 그리고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가해자들에게 공감능력 결여, 심한 경우에는 사이코패스라는 분석들을 들이댄다. 그리고 학교 폭력 대책은 그런 방관자들을 없애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장 교수가 내놓은 대책에 따르면 교사는 학생의 고통이나 분노에 반응하지 않는, 사이코패스와 같이 행동해야 한다. 그 대상이 가해학생이라 하더라도 교사가 왜 자신의 공감능력을 거세해야 하는가. 또한 인간이 상대방을 상황에 따라 취사선택하여 즉각적으로 공감 혹은 외면하는 것이 가능하긴 한가?

 

장 교수의 두 번째 사례는 자살을 계속 시도하는 한 청소년의 케이스였다. 어머니의 연이은 자살 시도가 그 원인이었는데 상담을 이어가던 어느 날, ‘하긴 어차피 이혼한 부모는 이혼하겠죠. 나는 신경 끄고 공부나 해야겠다’라고 ‘바람직한’ 반응을 보였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가족 중 한 명이 자살 시도를 하고 있는데 신경 끄고 공부해야겠다는 반응이 정말 바람직한 것일까? 이것은 같은 반 학생이 집단 따돌림을 견디다 못해 자살을 선택한 상황에서도 수능대비 문제집을 풀고 있는 상황과 다를 게 없다. 학교 폭력이나 청소년들의 자살이 문제인 것이 공부에 집중하지 못해서인 것도 아닐 텐데 문제는 그대로 둔 채 ‘신경 끄고 공부나’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결과라는 것은 대체 어떠한 논리의 결과인지 전문가라는 호칭이 의심스럽다.

 

우려스러운점은 장 교수가 말하는 두 사례가 장 교수만의 생각이라기보다 학교 폭력 대책 논의에서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란 점이다. 남자 교사 비율을 높여야 한다거나 교사의 통제권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 그리고 ‘주변의 상황에 굴하지 않고 네 삶의 중심을 네가 잡아야 한다’라는 조언이 이와 유사한 맥락이다. 힘으로 학생을 누르는 것으로 문제를 ‘관리’할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다른 문제에 눈감고 귀 닫고 소위 학생의 본분인 공부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한 10대의 모습이라는 그릇된 신념이 만들어내는 결과인 것이다. 무엇보다 학교 폭력 대책 논의의 바탕이 되어야 할 학생 당사자에 대한 공감이나 이해가 결핍되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5시간 가까이 계속된 이 토론회에는 단 한번의 질의응답 시간도 없었다. 패널간 토론도 없었다. 이 토론회만 그런 것은 아니다. 학교 폭력을 주제로 하는 각종 토론회와 포럼들에서는 질의응답 시간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토론회인지 전문가들의 발표회인지 애매한 토론회들. 그리고 당사자의 목소리 없이, 책임있는 자들이 귀를 막고 떠난 자리에서 전문가라 불리는 이들이 떠들어대는 소리만 난무하는 토론회들. 그런 자리들이 계속된 들 학교 폭력 해결에 과연 무슨 도움이 될까. 오히려 전문가들의 권위가 학교 폭력 해결에 걸림돌이 될테고 아무도 듣지 않는 불통 속에서 문제는 곪아갈 뿐이다. 말해야 하는 사람들이 말할 수 있는 자리, 들어야 할 사람들이 듣는 자리가 만들어져야 비로소 뻘소리가 빠진 논의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뉴스민 진냥(편집위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