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입시

ㆍ청소·배식 등 반강제 동원 ‘달라진 게 없다’

연이야 2011. 5. 7. 23:28

초등학교 4학년과 유치원생 두 아이의 엄마인 이모씨(37)는 한 달에 한두 번 녹색어머니 당번이 돌아올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른 아침에 둘째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학교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아이를 두고 온다. 교통안전지도를 하는 40분 동안 깃발은 드는 둥 마는 둥 가슴만 졸이기 일쑤다. 학부모총회 때 “돌봐야 할 어린 아이가 있어서 힘들다”고 했지만 “○○ 엄마는 일도 안 하지 않느냐”는 교사의 말에 더 이상 거절할 수가 없었다.서모씨(37)는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학급회장을 맡은 이후 교실 문턱이 닳도록 학교를 드나들고 있다. 청소당번 조를 짜는 것은 회장 엄마의 기본 임무고, 학교에 급한 일이 있을 땐 어김없이 선생님이나 다른 학부모의 호출이 뜬다. 교육당국이 2006년 급식 배식에 학부모 동원을 금지하면서 학부모 노동력 차출은 ‘공식적으로’ 사라졌지만 실제적으로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청소 봉사부터 시작해 환경미화 봉사, 녹색어머니회, 어머니둥지회, 독서도우미, 어머니봉사단(샤프론 봉사단), 학부모 명예교사, 예절교사, 시험감독 도우미, 급식 검수, 진로교육지도 도우미, 체험학습 도우미, 엄마품멘토링 동아리, 책읽어주기 어머니회, 학습지도 명예교사단(야간 자율공부방 보조), 배려대상 도우미, 학교 홍보활동 도우미 등 학부모 참여 활동은 수십가지에 이른다. 특히 5월이 되면 스승의날 등 학교 행사가 많아서 엄마들은 더 바빠진다.학기 초에 진행되는 학부모총회는 ‘학부모 노력 동원 스케줄’을 짜는 행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통 담임교사는 나가 있고 학부모 대표가 진행하는데, ‘이걸 다 채우기 전에는 자리를 못 뜬다’는 식의 강압적 분위기에, 참가 학부모 모두들 한두 개씩 봉사 업무를 맡고서야 회의가 끝난다.학부모들이 “싫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혹시 아이에게 불이익이 있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학부모 박모씨(41·서울 개포동)는 “아이를 학교에 맡긴 죄로, 학교에서 부르면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학부모의 참여가 학교 교육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데는 학부모들도 공감한다. 그러나 학부모들의 자발적 참여와 노동력 동원은 구분해야 한다. 특히 전국적 학부모 조직이 필요한지는 의문이다. 등하굣길 교통안전지도를 하는 녹색어머니회는 경찰청 소속으로 2009년 말 현재 4663개 단체에 43만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홍인기 좋은교사운동 정책실장은 “지금처럼 제대로 된 소통의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 학부모 참여만 독려하는 것은 구색 맞추기식 정책의 도구로 이용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반강제적 노동력 동원에 학부모들의 불만이 높지만 교육 당국은 “학부모가 원하지 않을 경우 안 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당국은 얼마나 많은 학부모들이 어떤 활동에 어느 정도 참여하는지 실태 파악조차 하지 않고 있다. ‘학부모 도우미 금지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한나라당 배은희 의원이 16개 시·도교육청에 ‘학부모 동원 금지 지침을 각 학교에 내린 적이 있는지’ 물은 결과 부산교육청만 ‘있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박정옥 부산교육청 교수학습기획과 장학관은 “학부모가 자발적으로 하는 청소 봉사도 한부모가정이나 맞벌이부모의 아이들에겐 상처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삼성경제연구소가 펴낸 ‘워킹맘의 실태와 기업의 대응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취학 자녀를 둔 ‘워킹맘’의 57.6%가 직장과 육아의 양립을 위해 필요한 정책으로 “학교에서 엄마의 노동력 사용을 금지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학부모 송모씨(37·서울 신천동)는 “당국이 엄격한 금지 방침을 정하고 강력히 대처하지 않는 한, 학교에 와서 눈도장 찍는 엄마들과 이를 이용하는 학교의 공생관계는 유지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범이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수석부회장은 “교육예산 부족도 문제지만,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 없이 모든 것을 학부모 힘을 빌려 해결하려는 당국의 태도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 경향신문 송현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