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이슈

‘보이지 않는 손’의 진실 강의록①

연이야 2013. 11. 13. 11:43

 

1. 정치와 경제의 관계

현재의 주류경제학은 경제학을 사회과학의 한 분과로서 위치지우며 비경제적 요소를 배제하고 순수하게 경제적 요소와 논리만으로 이론을 구성한다. 즉, 주류경제학에서는 경제를 정치와 분리 별개의 문제로 보고 있다. 그러나 정작 가치 판단을 배제한다는 그 주류 경제학이야말로 특정한 가치로 무장했다. '개인은 사회와 관계가 없는 원자로 존재한다', '개인은 이기심만으로 움직인다', ‘개인은 합리적 선택을 한다.’ 등 오늘날 주류 경제학의 전제가 되는 이런 주장이야말로 가치 판단 아닌가? 즉, '이기적인 욕망‘으로만 세상을 바라보겠다는 의도가 주류 경제학에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런 자신의 가치를 감추기 위해서 주류 경제학은 가치중립적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오늘 강의에서 다룬 애덤 스미스는 원래 도덕철학 교수였고 윤리와 경제사이의 불가분의 관계속에서 이론체계를 세워나갔다. 도덕철학은 자연신학, 윤리학, 법학, 정치경제학으로 구성되어있다. 스미스의 자연신학에 의하면 자연과 인간 사회는 미리 주어진 자연적 질서에 의해 움직이고 있으며 이 질서는 인간의 이성에 의해 발견되고 이해될 수 있다고 봤다. 이리하여 자연신학은 자연적 질서는 무엇이고 어떻게 유지되는가를 다른 학문 분야에서 해결하게끔 과제로 남겼다. 즉,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많은 개인들로 구성되는 인간 사회가 어떻게 질서와 안전과 발전을 이룰 수 있는가를 연구하는 것이 윤리학, 법학, 정치경제학의 과제가 되었다. 우선 스미스의 윤리학에서는 타인과 상호 동감을 통해서 즐거워질 수 있다고 봤다. 상호 동감을 얻기 위해서 개인의 이기적 행위가 제3자의 동감을 얻을 수 있는 범위 내에 억제되는 것이 ‘정의’이다. 하지만 이기적 행위는 정의의 범위를 쉽게 넘어가기 때문에 법을 통하여 억제해야 되는데 이것이 스미스 법학의 핵심이다. 그렇지만 경제적 생활이 자립되지 않으면 정의의 법을 집행하더라도 범죄가 줄어들지 않기 때문에 상⦁공업이 발달해서 모든 주민들이 자립하는 것이 범죄 방지에 최선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국부가 무엇인지, 국부를 증진시키는 요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과제가 국부론으로 완성된다. 이처럼 경제학은 처음부터 도덕, 정치와 무관하지 않았다. 그래서 신고전파 이전까지는 경제학이 아닌 ‘정치경제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경제사상사를 봤을 때 정치와 무관한 학파, 경제이론은 존재하지 않았다. 절대왕정 시절 부국강병책의 논리인 중상주의나 상공업위주의 중상주의에서 농업의 부흥을 배경으로 한 중농주의, 그리고 도덕철학 교수였던 스미스, 가치를 배제시킨다는 주류경제학 역시 특정 가치로 무장된 모습을 위에서 봤다. 결국 정치와 경제는 무관하지도 않고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 단적인 예가 2008년 시작된 금융위기이다. 그 이전까지 자본은 국가의 시장 개입을 비효율적이고 성장을 위축시킨다고 반대했지만 막상 위기가 닥치자 국가가 나서서 위기 진압을 서두르라고 재촉, 독점자본에 구제금융을 투입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정치와 경제의 분리라는 이데올로기는 궁극적으로 자본의 이윤극대화를 위한 국가개입은 찬성하지만 자본의 이윤극대화를 막는 국가개입은 반대하고 있다. 그러니까 정치 논리, 경제 논리를 분리해서 얘기하려는 사람들은 자본의 이윤추구 극대화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막으려는 숨은 의도가 있는 사람이다.

 

2. 경제학파 계보

1) 중상주의

중상주의는 금/은만이 국부라고 여겼다.(중금주의) 금, 은을 가지지 못한 국가는 무역수지흑자로 금, 은의 양을 증대해야 된다고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 공업의 장려를 통해 좀 더 값비싼 공산품을 수출 품목으로 정하였다.

 

중상주의는 200년도 훨씬 전의 논리이지만 현재에도 계속 이어진다. 박정희시절부터 현재까지 무역수지 흑자달성을 위한 수출 증대가 그런 예이다. 그런데 수출위주의 정책은 대중들의 고통을 바탕으로 한다. 예를 들면 이명박 정권부터 지금까지의 고환율 정책은 수출 품목의 가격하락으로 수출을 하는 독점자본은 유리하지만 반면 수입생필품은 가격이 인상되기 때문에 일자리 창출, 내수 경제의 진작 등 다른 부분의 희생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얼마전 뉴스 보도를 보면 수출의 80%가 삼성과 현대 등 일부 재벌중심이다. 이러다 보니 주가 총액의 60%를 삼성과 현대가 차지하고 있다. 그야말로 삼성, 현대를 위한 경제, 삼성, 현대를 위해서 다른 모든 부분을 희생시키는 경제이다.

 

2) 중농주의

중농주의는 토지를 부의 원천으로 하여 상업자본을 물리치려고 하였다. 상공업은 단순히 부의 재분배에 불과하다. 하지만 농업만이 농업노동자가 소비하는 이상의 잉여생산물을 산출 상공업 종사자까지 부양한다.

 

중농주의에서 부는 귀금속이 아니라 노동에 의해 재생산되는 소비 가능한 재화들로 구성되고, 매년 재생산을 최대로 하기 위해 완전한 자유만이 유일하게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주장하며 이런 주장은 이후 애덤 스미스에게 계승된다. 하지만 농업노동만이 유일하게 생산적 노동이라고 이해하고 있다는 점은 한계라고 하겠다.

 

3) 고전학파

고전학파는 애덤 스미스부터 존 스튜어트 밀까지 70∼80년의 시차를 가진다. 각 학자의 시대적 배경에 따라 같은 고전학파라도 문제의식은 다양하다. 애덤 스미스는 산업혁명이 막 시작된 시기에 살았으므로 생산에 관심을 가졌고 맬서스와 리카도는 자본주의 발전에 따른 문제점이 생기면서 분배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고전파는 노동가치를 처음으로 정식화하면서 노동이 가치나 부의 유일한 창조자라고 믿었고 상품의 교환가치는 (사회적 필요)노동량에 따라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생산모순에 의해 고전파의 노동가치설은 일관성을 가지지 못하고 파산한다.

 

4) 맑스주의

고전파의 노동가치론은 파산하지만 이후 마르크스에 의해 비판적으로 계승된다. 3, 4강에서 맑스주의를 다루기 때문에 여기서는 한 가지만 얘기하겠다. 맑스주의와 다른 경제학파와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잉여가치이다. 맑스는 노동력과 노동이라는 개념의 구분을 통해 이윤의 유일한 원천은 인간의 노동이라고 강조한다. 자본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 노동자에게 지불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잉여가치이다. 잉여가치는 자본가의 이윤의 원천이며 그래서 자본주의 착취는 구조적/필연적이다. 즉 자본주의 문제는 분배가 아니라 생산에서 발생된다.

 

5) 신고전파

신고전파는 노동가치를 대체하기 위해서 효용을 내세웠다. 상품을 소비함으로써 갖게 되는 가치, 즉 주관적 만족도를 효용이라 부르고 이 때 효용은 가치의 측정 기준이 되고 어떤 상품의 가격은 효용극대화를 통해 설명이 된다. 한계효용이론에는 첫째, 효용은 지극히 주관적 개념이다. 둘째, 가치와 효용은 일치하지 않는다. 즉 한계효용론은 상품의 용도 하나하나를 그 모든 용도 전체와 혼동하는 결정적 한계가 있다. 셋째, 가격의 상승과 하락은 설명할 수 있지만 특정 상품이 특정한 가격대에서 등락하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한계효용이론은 가치의 결정요인이 노동이 아니라 효용으로 본다는 점에서 노동가치론과 결정적 차이를 가진다.

 

6) 게인즈주의

케인즈주의는 국민경제순환모형을 통하여 저축이 반드시 투자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저축은 소득에 대해 반응하고 투자는 기대수익에 반응하기 때문에 저축과 투자는 일치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보면 생산한만큼 소비가 부족하기 때문에 팔리지 않은 상품으로 인한 공황의 가능성을 제기한다. 그래서 불황 타개책으로 정부에 의한 유효수요 창출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3. 노동 가치론

1) 고대/ 중세

노동가치론이란 상품의 가치는 사회적 필요 노동 시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노동가치설의 사례⇒㉠물, 공기 등의 자연물은 가치가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노동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 반면 의경의 산소통은 인간 노동이 들어갔기 때문에 가치(가격)를 지닌다. ㉡일본의 어묵공장에서 사람 손으로 만든 어묵 100만원, 기계로 찍어내는 어묵 몇 백원 역시 노동 투여 시간 반영

 

옷 1벌과 신발 2컬레가 교환된다면 두 상품에는 공통의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그 공통점이 인간 노동이고 두 상품에는 공통의 인간 노동이 들어가 있다. 이처럼 고대, 중세에서는 거래의 공정성을 평가하기 위해서 어떤 상품의 정당한 가치를 각 상품에 들어 있는 노동량에 의해 측정하였는데 이는 고전학파의 노동가치론의 맹아가 된다.

 

2) 중상주의

상인의 이익은 국가 이익과 일치하며 상업에서 가치가 창조된다고 봤다. 하지만 상업에서의 가치 창조는 사회 전체의 총생산이 증가하는 것을 입증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어떤 상인이 원상품의 가치에 10%의 잉여가치를 붙이더라도 다른 사람도 역시 10%를 붙일 것이다. 즉, A가 B에게 100원짜리 상품G를 110원에 팔아 10원의 잉여가치를 남겼다고 하자. 그리고 A역시 100원짜리 다른 상품C를 D로부터 110원에 구매한다면 A는 판매자로서는 10원의 이익을 얻었지만 구매자로서는 10원을 손해 봤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잉여가치를 얻지 못하였다. 결국 모든 상품소유자가 자기들이 가진 상품의 가치보다 10%를 비싸게 판매하더라도 상품들의 가격만 인상될 뿐 사회 전체적으로 부의 총량은 그대로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유통 과정에서 부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3) 중농주의

공업은 토지에서 추출된 원료를 가공하여 형태를 변화시킬 뿐이며 상업은 부를 이전시킬 뿐이다. 즉 상공업은 부의 재분배에 불과하다. 하지만 농업에서는 땅 속에서 새로운 부를 획득하여 농업노동자가 소비하는 이상의 잉여생산물을 산출, 상공업 종사자까지 부양한다. 이 때 잉여생산물을 ‘순생산물’이라 한다. 즉 노동에 의해서 새로운 부를 창출하기 때문에 이는 현대적 의미의 가치론이며 중세의 도덕적 가치판단이라는 주관성을 극복하고 투하된 노동의 양에 의해 결정되는 크기, 노동가치론의 속성을 가졌다. 그래서 중농주의에서는 지주와 경작자 계급을 ‘생산적 계급’이라 부르고 수공업자/제조업자/상인을 ‘비생산적 계급’이라고 한다.

 

4) 로크 - 노동가치의 정치, 윤리적 정당화

근대 부르주아들은 봉건 귀족, 영주에 대항하기 위한 논리로써 노동가치설을 내세웠다. 귀족들은 봉건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농노뿐만 아니라 부르주아에게도 세금 부과와 많은 간섭을 하였다. 이에 부르주아들은 자신들의 부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노동의 가치라는 해결 고리를 제시하였다. 자신의 노동에 근거한 부, 스스로 노력을 통해 성취한 부를 통해서 자연의 일부를 배타적으로 독점할 권리의 정당성을 확보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로크이다. 로크는 인신은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천부적 권리이고 이를 바탕으로 노동에 의한 소유의 권리를 정당화한다. 노동이 특정 대상의 소유로 전환되는 것은 노동이 특정 대상에 유용한 어떤 것을 첨가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근대적 소유권은 노동을 통해서 정당화된다. 하지만 자본주의하에서 가치를 증식하는 것은 타인의 노동이기 때문에 자본 소유권의 정당성은 설 자리를 잃게 되며 바로 여기에 노동에 근거한 소유권의 딜레마가 있다. 결국 이 지점에서 애덤 스미스, 리카도는 좌초하였다.

 

5) 애덤 스미스의 노동가치론

스미스는 상품을 만드는데 드는 인간노동의 양에 의해 상품의 가치가 결정된다는 (투하)노동가치설을 최초로 주장했다. “원시사회에서는 노동생산물 전체가 노동자에게 속하며, 어떤 상품을 획득하거나 생산하는데 보통 지출되는 노동의 양이 그 상품이 보통 응당 구매, 지배, 교환해야 하는 노동의 양을 규정할 수 있는 유일한 요인이다.”-국부론 61p

 

하지만 어떤 소생산자 A가 자기의 작업장에서 자기가 소유한 기계를 가지고 생산한다면 그 결과물은 모두 A의 소유가 되지만 어떤 노동자 B가 C의 작업장에서 C의 기계를 가지고 생산한다면 그 결과물은 전적으로 B의 소유가 되지 않는다.

 

이런 자본주의적 모순 때문에 스미스는 상품의 가치는 임금과 이윤을 더한 것이고 농업에서는 여기에다 지대까지 포함한다고 주장한다. 즉, 스미스는 초기 원시사회에서는 노동생산물 전체가 노동자에게 속하며, 어떤 상품을 획득하거나 생산하는 데 보통 지출되는 노동의 양이 그 상품이 보통 구매, 지배, 교환해야 하는 노동의 양을 규정할 수 있는 유일한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명사회에서는 상품의 가치가 임금, 이윤, 지대로 구성된다고 주장한다.

애덤 스미스가 노동가치설을 포기한 이유

○ 투하된 노동에 의해 가치가 결정된다면 자본가의 이윤은 생겨날 수 없는 자본주의적 모순

○ 자본가와 지주의 소유권의 정당화를 위해 소유에 의한 이윤의 정당화⇒합성비이론

 

상품의 가치 구성

∥불변자본(기계) ∥ 가변자본(임금) ∥ 잉여가치(이윤) ∥

                        ∥←      가    치     생    산    물      →

←         생        산         물           가         치          →

 

구체적으로 보면 위에서 봤듯이 무엇을 생산하든지 늘 도구, 기계를 사용하며 원료를 소비한다. 즉, 상품의 가치는 각 상품의 생산에 참여한 계급들이 얻는 소득의 합계가 아니다. 가령 스미스가 예를 든 수렵민족이 사냥을 할 때도 사냥도구가 필요하며 도구를 유지시키기 위한 원료도 필요하다. 어떤 노동자가 10시간동안 A라는 상품을 만든다면 A의 총가치는 = 도구⦁기계의 감가상각액 20원 + 원료비 10원 + 하루의 노동이 창조하는 가치 50원 = 80원이다. 반면 원시사회에서 문명사회로 넘어와서 가치의 구성부분을 보면 도구⦁기계의 감가상각액 20원 + 원료비 10원 + 임금 10원 + 지대 15원 + 이윤 25원 = 80원이다.

 

스미스의 의견대로 상품의 가치 구성 부분은 변했지만 총 가치는 변함이 없다. 왜냐하면 노동자의 10시간 노동이 자신의 임금과 이윤, 지대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즉 노동자는 2시간으로 자신의 임금을 창조하고 3시간으로 지대를 창조하고 나머지 5시간으로 이윤을 창조한다. 따라서 노동자의 노동 중 임금을 창조한 2시간은 지급받은 노동(필요노동)이고 지대와 이윤을 창조한 8시간 노동은 지급받지 못한 노동(잉여노동)이다. 결국 스미스는 노동가치설을 최초로 주장했지만 상품의 가치는 상품을 만드는데 드는 인간노동의 양이고 임금, 지대, 이윤은 인간노동이 창조한 새로운 가치를 분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노동가치설의 핵심을 버리고 만다.

 

6) 리카도 - 차액지대

리카도가 살았던 당시의 영국에서는 자본가들은 곡물법 폐지를 원했다. 첫째는 더 많은 공산품의 수출때문이었다. 영국은 유럽보다 공산품 가격이 저렴했다. 그런데 유럽인들이 영국 공산품을 사기위해서는 영국에 물건을 팔아서 영국 통화를 손에 넣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영국보다 가격이 더 싼 농산물을 파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영국 농산물 보호법인 곡물법은 폐지되어야 한다. 둘째는 곡물법 때문에 물가가 전반적으로 상승하면 임금도 오르고 그 결과 이윤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주들은 곡물법이 곡물가의 상승을 통해 더 큰 이익을 보장하기 때문에 곡물법 지지한다. 즉 리카도는 자본가의 입장에서 곡물법 폐지를, 맬서스는 지주의 입장에서 곡물법 유지를 주장하고 곡물법 논쟁은 자본가와 지주간의 계급투쟁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맬서스는 외국 곡물을 자유롭게 수입하면 곡물가가 하락하고 이에 따라 전반적인 물가 하락으로 임금도 하락하면 수요가 줄어들어서 과잉생산에 의한 불황이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높은 농산물 가격 때문에 더 많은 임금을 지불해야 하더라도 자본가들은 상품 가격을 올리는 식으로 증가한 임금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한다고 주장하면서 리카도의 견해를 반박했다. 이에 리카도는 차액지대라는 노동가치론을 통해 재반박한다.

 

리카도의 차액지대를 이해하기 위해서 A등급의 토지, B등급의 토지, C등급의 토지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때 100 부셀의 밀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A등급에는 2사람의 노동력이 필요하고 B등급에는 3사람의 노동력이 필요하고 C등급에는 4사람의 노동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1인당 1년 동안의 최저임금을 20 부셀이라고 가장하자. 그러면 A등급에서는 이윤이 60부셀이고 B등급에서는 이윤이 40부셀이고 C등급에서는 이윤이 20부셀이다. 이렇게 되면 A등급이 가장 선호되고 그 다음이 B등급, C등급 순이 된다. 선호 순이 높은 등급의 토지일수록 입찰 경쟁이 치열할 것이고 A, B등급의 이점이 소진되어 C등급의 이윤과 같을 때까지 경쟁은 계속된다.

 

차액지대의 핵심은 열등한 토지가 경작되면서 지대가 이윤을 압박한다는 것이다. 리카도는 토지나 자본은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고 오직 노동만이 가치를 창출한다고 봤다. 따라서 인구 증가로 인하여 토지 사용이 확대될수록 농업에서는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해지지만 공산품 생산에는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므로 노동가치에 의해 농산물의 가치는 오르고 공산품의 가치는 오르지 않는다. 농업 생산에서는 오르는 임금과 지대 때문에 이윤이 압박을 받는 한편, 제조업에서는 변하지 않는 가격과 오르는 임금 때문에 이윤이 압박을 받는다. 이것이 리카도의 이윤율저하의 법칙이다.

 

7) 마르크스

○ 노동의 이중성-구체적 노동-상품의 사용가치 창조

-추상적 노동-상품의 가치 창조

개별 노동자의 숙련도 고저, 노동 강도 고저가 아닌 그 사회의 평균 노동 숙련도, 노동 강도, 생산 조건을 기반으로 한 사회적 필요 노동시간이다.

자본주의에서는 생산수단을 독점한 자본가와 생산수단을 갖지 못한 노동자가 자신의 인격적 자유를 근거로 자유롭게 매매 활동을 수행하는 생산방식이다. 이런 관계에서 노동력의 상품화가 진행

○ 노동력의 가격인 임금은 노동자가 육체적 노동 능력을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생필품의 총계

○ 노동자는 임금의 가치를 창조하는 시간을 초월하여 노동⇒잉여노동시간⇒잉여가치 창출

○ 잉여가치⇒자본주의 모순은 생산과정에서 발생하고 착취는 구조적/필연적이며 계급투쟁을 의미(필요노동시간과 잉여노동시간의 비율의 결정은 노동자와 자본가의 사이의 투쟁을 동반 이 속에서 노동력의 가치가 결정)

 

                              노동자의 1일 노동시간

 

ǀ                                              ǀ

8시간

노동력의가치(임금)             잉여가치

ǀ                           ǀ                        ǀ

         필요노동시간   4시간   잉여노동시간 8시간

 

 

 

8) 노동가치론의 현대적 의의

노동가치설에서 봤을 때 이윤이나 지대는 착취된 노동, 지불되지 않는 노동에 불과하다. 그래서 노동자는 자신이 창조한 가치의 좀 더 많은 부분을 임금으로 받겠다는 요구는 정당하며 이런 요구는 파업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국부론에서도 파업에 관한 내용이 등장하는데 스미스의 주장을 한 번 들어보자. “노동자들은 때때로 이러한 도전이 없더라도 노동의 가격을 올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단합한다. 그들이 보통 말하는 단합의 이유는, 때때로 식료품 값이 올랐다든가, 때로는 고용주들이 자기들의 노동으로부터 큰 이윤을 얻고 있다는 것 등이다. 그러나 그들의 단합은, 공격적인 것이든 방어적인 것이든, 항상 세상의 이목을 끈다. 왜냐하면,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기 위해서 노동자들은 언제나 큰 소리로 소란을 피우고, 때로는 매우 놀라운 폭행과 폭력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절망하고, 그리고 절망적인 사람처럼 온갖 황당하고 제멋대로인 행동을 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은 고용주를 위협해서 자기들의 요구를 곧바로 받아들이도록 하거나 아니면 굶어죽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고용주들도 노동자들을 향해 큰소리를 지르고, 치안판사의 도움을 끊임없이 소리높여 요구하고, 하인․노동자․직인〔도제와 장인 사이에 있는 등급〕의 단합에 대해 엄한 현행 법률의 엄격한 집행을 소리높여 요구한다. 이리하여 노동자들은 이 소란스러운 단합의 폭력행사로부터 거의 아무런 이익도 얻지 못하는데, 부분적으로는 치안판사의 개입 때문에, 부분적으로는 고용주들의 뛰어난 침착함 때문에,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의 당장의 생존을 위해 굴복할 수밖에 없는 필연성 등 때문에, 이러한 폭력행사는 주모자의 처벌과 파멸 이외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끝나고 마는 것이 보통이다.”-국부론 상 p88∼89

 

이처럼 스미스가 살았던 시대에도 노동자 파업은 많은 어려움 속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사정은 아직까지 변하지 않았다. 특히 최근에는 노동자가 파업을 할 때마다 자본과 언론, 정부에서는 노동을 하지 않았으니까 임금도 없다는 무노등=무임금을 주장한다. 임금이 노동의 대가라면 그럼 자본의 이윤은 어디서 생기는가? 한마디로 노동자들이 행한 노동 중에서 노동자에게 지불되지 않은 노동이다. 즉, 무노동=무임금은 임금의 본질을 은폐하거나 왜곡하기 위한 주장에 불과하다.

 

현대 자본주의 생산은 과학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생산의 기계화가 고도로 발달하면서 실업자와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노동강도는 강화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생산시스템이 기계화가 되어도 노동자가 노동을 하지 않으면 기계는 녹슨 고철로 될 뿐이며 인간 노동이 들어가야만 기계와 원료의 가치가 상품으로 이전된다. 즉 고도의 기계화는 같은 노동으로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하므로 상품의 가치는 줄어든 노동의 양만큼 줄어든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과거보다 적은 노동시간으로도 충분히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할 수 있고 자아의 가치를 창출하는 시간 및 여가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자본에 대한 사적 소유 폐지가 전제가 되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베블런은 ’지식은 사회공동체가 오랫동안 축적한 경험, 기술, 발명, 발견의 총체로써 자본의 독점적 소유는 정의롭지 못하다.’ 고 주장한다.

 

○지적 재산권은 창작자의 경제적 이득을 보장해줌으로써 창조 의욕을 높이고, 그에 따라 생산되는 정보의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반박

①새로운 아이디어는 인류의 누적적인 지식에서 나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아이디어를 냈다는 이유로 모든 이익을 차지하는 것은 불합리

②제약, 화학, 소프트웨어, 연예 등 비교적 복제가 용이한 산업을 제외한 다른 대부분의 산업분야⇒자연발생적 우위로 인한 일시적 독점이윤만으로도 혁신에 대한 충분한 보상

③자연발생적 우위

-모방시차: 다른 사람들이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는 데 걸리는 시간

-명성의 우위: 최초 개발자이자 유명 생산자

-학습곡선경주에 있어서 출발의 우위: 경험 축적을 통한 생산성의 자연스런 증대

④복제가 용이한 산업분야에서도 전세계으로 수많은 연구자들이 특허독점권의 이익을 확보하고자 하는 동기 없이 연구 진행, 사례 2000년 미국제약연구에서 제약업자 투자 자금 43%, 나머지는 민간자선단체, 대학, 정부

⑤특허에 따른 독점⇒독점이윤, 연구자들 사이의 연구 중복 현상 초래(주류의 합리적 선택의 반례)

⑥기술발전의 장애⇒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아이디어를 다른사람이 소유하고 있다면 대가 지불에 따른 생산 비용 증가

⑦지적재산권은 선진국과 독점자본들이 특허권의 대부분을 차지⇒독점자본의 독점권 강화⇒경제적 불평등의 악순환으로 이어짐

정보재 상품은 초기 개발 비용이나 노동시간이 많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재생산하는데 거의 아무런 노동도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가치는 0에 가까운데 국가 폭력(지적 재산권)에 의해 인위적인 독점가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