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이슈

“조류독감, 철새를 주범으로 몰면 안돼”

연이야 2014. 1. 22. 21:34

 

전문가, “철새를 원인으로 보는 것은 성급하고 대책 마련에 혼선 부를 수도”

   

지난 17일 전북 고창의 한 오리농가에서 발생한 조류인플루엔자(AI, H5N8형)가 부안의 집단 사육농장에서도 발견된 가운데, 정읍에서도 의심신고가 들어와 AI 확산에 대한 우려감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언론이 농림부와 전라북도의 의견을 빌어 18일 고창 동림저수지에서 철새 1,000여 마리의 사체를 발견했다고 보도하면서 여론은 이번 AI의 주범을 철새로 보고 있는 분위기다.

 

그러나 실제 동림저수지 근처에 살고 있는 한 농가와 당시 현장을 방문한 환경전문가에 따르면 16일과 17일 행정당국이 수거한 철새 사체는 81마리였다. 그리고 환경부가 20일 발표한 것에 따르면 19일까지 행정당국이 수거한 사체는 98마리였다. 이들 중 가창오리는 89개체로 확인됐다. 이 중 25마리를 검역본부에서 정밀조사 한 결과, AI(H5N8형)로 판정됐다.

 

AI확진 발표는 이번 AI 확산의 주범을 철새로 보는 입장에 힘을 실었다. 주이석 농림축산검역본부 동물질병관리부장은 21일 SBS 라디오 <한수진의 SBS전망대>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 발생했던 농가의 가운데 한 5Km 떨어진 곳에 동림저수지가 있었다”면서 “AI가 발생하면 그 주위에 철새 도래지 여부를 확인하는데, 주로 철새의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파악한다. 그랬더니 동림 저수지 안에 폐사된 야생 조류가 있었다”고 밝히며 AI의 발생 원인을 철새로 파악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환경단체와 동림저수지 인근 농가 농민, 조류전문가들은 이런 견해에 수긍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우선 최근 동림저수지에서 확인된 조류만도 약 20만 개체로 최초 정부의 발표대로 ‘집단폐사’로 볼 수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동림저수지 인근 만각동에 살고 있는 이대종(농민)씨는 철새를 AI 매개체로 보는 시선에 대해 “AI 등이 터지면 나오는 이야기가 철새를 주범으로 모는 여론몰이”라면서 “동네 주민들은 집에 풀어놓은 오리와 닭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 AI 여론몰이에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태”라고 말했다.

 

그리고 여론의 분위기처럼 철새(가창오리떼)들이 AI 바이러스를 뿌렸다고 단정하는 것도 성급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 조류전문가는 “이번에는 집단사육농장의 오리에서 AI가 나온 후, 철새에서 발견됐다”면서 “섣불리 철새들이 AI 바이러스를 유포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전했다. 전북환경운동연합 이정현 사무처장도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고병원성 AI는 자생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있다. 철새가 AI를 전파한다는 시각이 많이 입증되었다고 하더라도 기정사실로 가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처장은 “발생원인에 대한 규명은 곧 방역대책과 연계될 수 있다”면서 “철새를 언급하는 순간 방역은 철새 도래지와 이동경로 중심으로 마련될 수 있다. 결국, 정부 방역체계의 혼선과 실효성이 없는 대책이 마련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철새를 주범으로 보는 것은 성급하고 위험한 결론”이라고 말했다.

 

한국동물보호연합 이원복 대표는 “AI 발생 원인을 야생오리에게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닭과 오리를 좁고 불결한 공간에서 가둬서 기르는 공장식 밀집 사육방식을 개선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면서 “현재 정부의 대책이 ‘살처분’말고 뭐가 있나? 대책은 없이 일방적으로 예방적 살처분이라는 명목으로 죽이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가장 중대한 동물학대”라고 말했다.

 

농림부는 20일 현재까지 최초 AI 발생농장(고창)과 반경 500m 이내 농장 등에 대한 살처분을 진행했다. 발표에 따르면 13개 농장 약 20만수에 이른다. 이원복 대표는 “AI는 앞으로 자주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데 매번 이렇게 수십, 수백만 마리를 묻는 방식으로 처리할 생각인가”라면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참세상 문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