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좌익공산주의-혁명적 맑스주의 역사와 논쟁(오세철 편저자)③

연이야 2016. 4. 6. 18:21


4. 1930년대 : 이행기 논쟁

프롤레타리아국가가 프롤레타리아에 맞서다

빌랑은 1933년에 다시 출간되었다. 그 시기는 히틀러는 독일에서 권력을 잡았고 베트남 노동자에 대한 탄압, 프랑스 공산당이 프랑스 재무장에 서명한 것, 국제연맹에서 소련이 도둑들의 소굴로 들어가는 것을 승인한 시기이다. 즉, 코민테른은 프롤레타리아 계급 이해를 방어할 수 없음을 드러내었다. 이 시기 빌랑은 주요한 과업에 착수하게 된다. 그 과업이란 소비에트국가가 세계혁명의 도구에서 반혁명의 요새로 전환되었던 방법을 이해한는 것, 그와 함께 미래의 혁명을 위해 이러한 경험의 교훈에 대해 노동자운동안에서 토론을 시작하는 것이다.

빌랑는 1917년 10월을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규정했고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한 출발점이라고 봤다. 왜냐하면 불균등 발전은 단순히 자본주의 세계 경제가 전개되었던 방식의 한 측면이었다. 자본주의는 확실한 단계에서 인류를 한 걸음 더 발전시킬 것이긴 했지만 그러한 단계가 뒤쳐져 있을 때, 그 체제는 보편적으로 노년기에 접어들기 때문이다.(1차 대전, 10월 혁명의 사례) 그런데 왜 프롤레타리아 도구인 소비에트가 프롤레타리아에게 대항하게 되었는가? 이 질문에 대응하여 이탈리아 좌파는 역사와 엥겔스의 저작에 의존하여 이행기 국가의 본질과 기능에 대한 많은 중요한 통찰을 발전시켰다. 부르주아 국가의 전복 이후 나타난 프롤레타리아국가도 보수세력 심지어 반혁명 세력의 진원지로 될 태생적 위험을 포함하고 있다.

국가의 본질은 계급착취의 정권을 보호하려고 노동대중의 이해관계를 억제하거나 아니면 프롤레타리아가 승리하고 나서 프롤레타리아가 지닌 해방 임무에 훨씬 더 반대로 나아가고 있는 사회적 계층화를 불러일으키도록 위협하는 것이다. 이것은 맑스주의 이론에 빌랑이 가장 중요하게 이바지 한 부분이다. 레닌의 국가와혁명은 사민주의 왜곡에 맞서 국가에 대한 맑스주의 교의를 다시 확인하는데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빌랑은 코뮌국가도 위험에 처한 혁명적 계급을 무시하게 한 근본적 허약성을 어떻게 가지게 되었는가를 강조했다.


당과 국가

노동계급의 대부분이 지배 이데올로기의 희생자로 남게 된 상황에서 프롤레타리아는 경제, 정치적 구속의 조직으로 남아있는 국가의 본질을 바꾸지 못한다. 따라서 당은 지배계급을 정치적으로 전복하고 나서도 노동해방을 위한 정치교육을 해야 하지만 국가는 역사적 목표를 추구하고 실현하는 것과 전혀 일치한지 않은 도구로 남는다.

당과 국가사이의 또 다른 측면은 국가는 경제적 이해와 동일시하려는 경향, 반면 당은 노동계급의 국제적 필요에 조직적으로 연계, 이탈리아 좌파는 당을 처음부터 통일된 세계당으로 여겼다. 그래서 민족국가가 당에 자신의 협소한 이해관계를 부가하려는 경향은 국제 당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통해 해결 가능하다고 봄(이탈리아 좌파의 중요한 결점)

아무튼 국가의 필요와 당의 필요는 대립되며 이탈리아 좌파의 방법과 독일/네들란드 좌파의 통찰을 종합한 프랑스 좌파는 당이 권력을 실행해야 한다는 사상은 부르주아 의회의 시기에서 나온 유물이라고 주장. 어쨌든 빌랑은 당에 대한 경계와 강령적인 명료성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


프를레타리아적 해결방법을 위한 필요

프롤레타리아가 이행기 국가의 요구에 대항하는 자신의 직접적인 경제적 이해관계를 방어하려고 독자적인 노동조합을 유지해야 함. 소비에트는 혁명의 첫단계(내전의 단계)에서는 중요한 반면 그 후에는 프롤레타리아의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방어하는 임무를 소비에트 안에서 찾을 수 없다. 그럼에도 소비에트는 당의 활동을 통제하기 위한 하나의 요소를 대표할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 국가 개념에서 결점

빌랑은 1934∼1936년에도 소련이 노동자국가였다고 봄 타락한 소비에트국가를 세계자본의 도구로 봄 소련은 전지구적 제국주의의 일부로서 반혁명적 역할을 했기 때문에 소련을 방어하는 것이 국제주의 포기로 이끈다고 봄(트로츠키와 차이)


외교정책의 문제

1921년 네프 도입, 1922년 라팔로 조약 체결 했을 때 세계적 규모에서 벌어진 계급투쟁에서 프롤레타리아국가는 변화하기 시작 1921년 이후 세계젹 혁명의 물결은 사라졌고 프롤레타리아국가는 투쟁을 받아들이거나 투쟁을 피하거나 해야 했다. 그 결과 프롤레타리아 기능을 파괴하게 된 길을 따라 점진적으로 그리고 불가피하게 이끌었던 타협을 받아들였다.


프롤레타리아 경제정책

‘공산주의 경제의 토대가 세계적 지평에서 나타나고 하나의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국경 안에서 결코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은 맑스주의의 기본...’(빌랑 no21. p717)

빌랑은 국가에 의해 방어되었던 국가적 이해관계를 넘어 프롤레타리아의 이해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 착취와 가치법칙은 하룻밤 사이에 폐지될 수 없음. 결국 노동자는 자신들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방어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국가에 맞서야 함. 결국 진보는 노동자 생활의 실질적인 향상 및 여가시간과 정치생활에 참여를 포함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