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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익공산주의-혁명적 맑스주의 역사와 논쟁(오세철 편저자)⑤

연이야 2016. 4. 6. 18:27


3부 혁명전략

1. 혁명역량의 국제적인 재편이 프롤레타리아혁명 승리의 전제 조건이다.

혁명조직은 정확히 무엇인가?

조직은 노동계급의 역사적 본질과 경험, 투쟁의 물질적 조건에 의해 결정. 대중조직은 모든 노동자들이 공동의 투쟁속에 결집, 즉각적인 경제적 요구를 옹호, 정치조직은 계급의식 발전에 기여. 특히 과거의 혁명계급들은 낡은 사회내에서 경제력을 갖고 있어서 그것을 정치장악에 이용, 하지만 프롤레타리아는 경제력을 소유하지 않기 때문에 유일한 물질적 힘은 조직에 있다.

대중조직은 19세기에 향상된 생활조건 획득 요구로 여러 상이한 형태의 조직 존재 대표적으로 노동조합, 각종 친목회, 스포츠클럽, 문화협회 하지만 20세기에 와서 자본주의 내부투쟁을 위해 만들어진 노동조합은 혁명투쟁에는 전적으로 부적절함이 판명, 1905년, 1917년 러시아 경험은 프롤레타리아로 하여금 노동자소비에트 창조

정치조직 - 공산주의자동맹(세계혁명이라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궁극적 목표에 이론적인 형식 부여,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원칙 명시), 1인터내셔널(노동계급에 의한 권력 장악은 소수 혁명가들에 의해 인민을 위해 수행 될 수 없으며 노동계급의 해방은 노동계급 자신에 의해 획득되어야 한다고 강조), 2인터내셔널(맑스주의가 광법위한 이론적 실천적 정치경향), 3인터내셔널(즉각적이고 실천적 필요성으로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세계적으로 하나의 집중화된 정치조직 건설 목표)


3인터내셔널은 스탈린의 반혁명의 도구로 변질, 그러면서 코민테른으로부터 축출된 3가지 좌파 경향

①트로츠키 경향

노동계급이 국제적으로 패배를 당했음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소련이 또 다른 자본주의 제국주의 국가가 되어버렸다는 생각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당이 계급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당의 출현 자체가 프롤레타리아 계급 내부에서 성숙하는 의식의 표현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동안 민주주의적 제국주의들을 지지 또한 스탈린주의에 의해 야기된 모든 전쟁을 지지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포기

②네덜란드/독일 좌파

노동계급의 이해 옹호를 위한 의회 이용불가능, 사민주의의 배반과 반동적 본질, 노동조합이 자본주의국가의 옹호자이자 제국주의 전쟁 지지, 새로운 시기 프롤레타리아 투쟁은 소비에트와 동일한 원칙들에 근거한 새로운 형태의 조직을 필요

그러나 볼세비키당이 국가자본주의 기관으로 변형된 것을 혁명 패배의 결과이기 보다는 원인이라고 잘못 파악, 그래서 당의 반혁명적 본질을 이론화하고 평의회주의 경향

③이탈리아 좌파

프랑스, 벨기에로 망명한 이탈리아 노동자들은 빌랑 그룹 형성, 그들의 이론적 공헌은 거대하지만 특히 당과 분파사이의 관계는 중요한 공헌 중 하나 당을 계급의식의 능동적 인자이자 동시에 계급 전체 내에서의 의식 발전의 표현으로서 파악, 당의 창건 자체가 혁명문제를 제기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 전체의 능력의 표현

하지만 내부적 망명(감옥)과 이탈리아 외부의 성취된 이론 발전에 참여하지 않았던 내부의 이탈리아 좌파들은 이런 부분들을 공유하지 못했다.

- 미래의 당 자체의 본질에 대하여

▪당은 계급을 대신하여 권력을 장악하지 않는다. 노동자평의회를 통해 권력을 장악하고 행사하는 것은 전체로서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이다. 당은 계급의식과 조직의 발전에 핵심적 요소

▪당은 국제적이다. 프롤레타리아는 수행할 어떤 민족적 임무도 없다. 당 자체는 국가그룹이나 정당들의 일종의 연합이 아니라 곧바로 세계적 기초 위에 건설될 것이다.

▪당의 건설은 노동계급의 의식과 투쟁성의 발달에 의존, 당이 가능하기 위해서 노동계급이 그 당을 그 자신의 것으로 인정할 수 있고 그 정치적 지향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지점에 도달해야 한다.

- 당 건설로 이끌게 될 과정에 대하여

▪당 건설의 가능성은 계급의식의 발전에 의존 또한 혁명적 그룹들과 조직들에 의해 행해지는 의식적인 노력에 의존

▪오늘의 혁명적 그룹들이 이 과정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 그들은 국제주의 원칙에 대한 확고함과 타인으로부터 배울 태세, 논쟁에서의 개방성을 결합해야 한다.


2. 노동자 국제주의에 대하여

프롤레타리아가 민족해방투쟁에 왜 참가하지 말아야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왜 그것을 지지해야 하는가는 공산주의자가 민족해방투쟁에 대해 가져야 할 관점(부르주아혁명이 가능하고 프롤레타리아혁명이 아직 역사적 의제에 오르지 않았을 때만 의미가 있다.)


레닌과 룩셈부르크의 민족문제에 대한 논쟁

레닌도 맑스와 엥겔스처럼 민족해방투쟁이 부르주아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정확하게 보았다. 러시아와 식민지국에서 봉건제를 전복하고 민족도립을 성취하는 부르주아의 임무는 완수되지 않았다는 근거로 룩셈부르크의 비판으로부터 민족자결권의 구호를 유지하는 볼세비키의 입장을 방어했다. 맑스의 방법론을 적용 그 당시의 식민지에서의 민족해방운동은 독립적 자본주의 발전과 프롤레타리아 형성의 기반이 되는 진보적 내용을 갖는다고 주장. 레닌의 제국주의 본질은 자본주의 중심에서의 자본의 높은 유기적 구성으로 악화되는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기 위한 선진 자본주의 운동

반면 룩셈부르크는 제국주의가 단순히 후진 국가에 대해 선진 자본이 저리른 강도적 형식이 아니라 세계자본주의 관계의 총체성의 표현. 자본주의 위기의 구체적 뿌리는 잉여가치 실현의 문제에 있다고 주장.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세계시장의 발전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세계를 다른 역사적 부분 - 한편은 쇠퇴하는 자본주의와 또 다른 편에서는 역동적인 자본주의로 구분할 수가 없다고 봄. 세계시장을 제국주의 강대국이 분할하고 있을 때 민족해방투쟁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음 즉, 현재의 제국주의적 환경에서 민족방어전쟁은 있을 수 없다는 것.

1918년 룩셈부르크가 볼세비키 민족정책을 비판했을 때 볼세비키는 서구에서 혁명을 바라고 있었지만 혁명의 물결은 자자들었고 볼세비키는 국제 노동계급의 신뢰를 잃는 명백한 징조를 보이기 시작. 그 후 점점 러시아혁명을 민족해방투쟁과 결합시키려는 경향 강화, 그 다음은 소비에트 러시아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경쟁으로 필연적으로 나아가는 것


국제주의 대 소련의 방어

이탈리아 좌파내 다수와 트로츠키의 공통점 : 부르주아 재산이 몰수되어 10월 혁명에 의해 만들어진 국가 있다는 근거로 소련은 퇴행했지만 프롤레타리아 국가

이탈리아 좌파와 트로츠키의 차이점 : 트로츠키에게는 프롤레타리아적 성격은 방어주의 정책을 정당화, 반면 이탈리아 좌파는 프롤레타리아는 심각한 패배의 고통을 입었고 그래서 2차 세계대전으로 향한다는 것(독일에서 나치즘의 승리, 반파시즘의 깃발 아래 민주적국가(서유럽 자본주의 국가)들의 프롤레타리아 참전이 증거-왜냐하면 전쟁으로 향하는 역사적 진로와 혁명으로 향하는 역사적 진로는 동시적일 수 없기 때문), 그리고 스탈린주의의 승리가 소련과 공산당들 내에서 이루어지고 이에 따라 지구의 재분할이라는 새로운 제국주의의 행진으로 소련이 포섭되는 것(소련의 국제연맹 가입은 다음 전쟁을 위한 제국주의 블록의 하나로 참여하는 문제를 제기) 특히 스탈린주의 반노동자성 잔인성은 스페인 내전, 혁명가를 숙청한 모스크바 재판으로 입증, 결국 이런 관점은 소련의 방어정책을 거부하고 트로츠키와 결별하게 됨.

트로츠키는 제국주의 공격으로부터 프롤레타리아국가를 방어하는 것이라면 이탈리아 좌파는 세계자본주의는 소비에트국가와 그 국유화된 경제에 대해 경제적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군사적 수준에서도 쉽게 적응할 것이라고 보았고 트로츠키의 방어주의는 제국주의 전쟁을 맞아 국제주의를 포기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

이탈리아 좌파는 세계상황의 진화를 따를 필요와 단순하지만 명확한 기준으로 소련을 방어하는 문제를 인식했다. 국제수준에서 완전한 반혁명적 역할을 수행했는가? 아닌가?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러시아 한계 내에서 10월혁명으로부터 살아남은 구체적 이득이 있는가의 쟁점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트로츠키와 결별을 하였다.

볼세비키 레닌주의자들 입장 역시 (트로츠키와) 별반 다르지 않다 제국주의 국가와 동맹을 반대하지만 동맹을 맺더라도 러시아를 방어해야 한다고 주장. 하지만 동맹을 맺은 부르주아에 대항하는 파업을 금지하자마자 이는 계급 배신 임.

또 이탈리아 좌파는 러시아에서 공업화의 중단 없는 진보는 노동자의 이해와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노동자는 경제력의 노예가 된고 자본주의는 이 노예의 표현이라고 주장. 러시아내 작업장의 거대한 건설이 자본주의 축적법칙 아래서 이루어지고 노동자는 이러한 공업화의 논리의 처분에 따르게 된다. 결국 1930년대 소련의 가속화된 공업화는 사회주의 건설이 아니라 세계의 학살을 준비한 전쟁경제의 건설 임.

트로츠키는 ‘배반당한 혁명’에서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내세운 소련의 엄청남 경제 성취를 찬양했다면 빌랑은 사회주의를 향한 진보는 불변자본의 성장에 의해 측정될 수 없고 대중의 생활 및 노동조건의 실질적 증진으로 측정될 수 있다고 응수

빌랑은 소련을 프롤레타리아 국가로 보는 것을 주저했고 세계자본의 대리인으로 보았다. 그러나 지구적 자본, 세계경제는 민족자본의 경쟁적 단위의 격돌 밖에 존재하는 추상이 아니며 이것이 이탈리아 좌파가 성공하지 못한 수수께끼의 마지막 조각이다.

하지만 2차 대전으로 소련의 문제를 명확하게 했다. 생산의 목적은 경제의 자본주의적 성격을 확인하기 위해 잉여가치의 추출을 남기고, 러시아는 프롤레타리아를 분쇄하는데 반혁명적 기능 때문뿐만 아니라 원료의 원천을 방어할 필요를 통해, 잉여가치를 실현할 세계시장에서의 지위를 확보할 필요를 통해서, 영향력의 경제적 영역을 확대하고 그 접근경로를 보증할 욕구와 필요를 통하여 그 자신의 자본주의적 본질 때문에 전쟁을 향한 길에 참여. 소련은 축적과정에서 연유한 스스로의 제국주의적 동학을 가졌다. 왜냐하면 축적은 폐쇄회로에서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 확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료주의는 그 말대로 지배계급이다.

※GCF는 1950년대 이론연구에서 국가자본주의는 자본주의 쇠퇴기에 상응하는 형식으로 분석. 국가자본주의는 하나의 부르주아 분파나 특정한 이념분파의 특수형태가 아니라 미국, 독일, 영국, 소련에서 정착됐다고 봄 러시아에서의 경험은 자본가를 만드는 것이 자본주의이고 자본주의 생산원칙은 잉여가치 수혜자로서 자본가의 법적 소멸, 심지어 실질적 소멸 이후에도 존재. 잉여가치는 사적자본주의 아래에서와 같이 더 큰 잉여가치를 추출하기 위해 생산과정에 재투자. 멀지않아 잉여가치의 존재는 그를 점유하는 계급을 형성하는 사람들에게 발생. 생산에 참여하는 사람이 기생충이건 관료이건 기술자이건 잉여가치가 직접적 방식 또는 간접적으로 국가의 개입을 통해 또는 높은 봉급이나 여러 형태의 특권 형식으로 분배되건 이것은 자본가계급 임.


2차 세계대전 이후

수많은 국지전은 세력균형의 산물임과 동시에 자본주의가 인류의 필요에 부응할 수 없는 무능력과 구식민지역의 극단적인 사회 해체 때문. 또한 지역 부르주아는 그들 자신의 특수한 이해를 가진 제국주의적 성격을 지님. 자본주의 쇠퇴의 시대는 모든 민족국가는 제국주의 권력임

1960년대는 민족해방 신화의 전성기. 그러나 프롤레타리아는 더 이상 주요 혁명세력이 아니었고 혁명의 추동력은 훈련된 게릴라 군대가 이끌고 도시에서의 새로운 혁명전위(학생, 흑인, 여성)와 연대함으로써 농민과 빈민대중의 봉기 임. 이런 상황에서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노동계급은 이 신화로부터 제국주의가 준 돈을 받고 면제, 제3세계 인민의 등위에서 세워진 자본주의 번영의 혜택을 즐김.

1980년대와 1990년대는 반세계화 운동과 미제국주의 반대운동이 나타났다.

반세계화 운동은 자본주의는 유일한 가능한 체제이고 개혁이 유일한 대안, 잘 규제된 자본주의가 사악한 금융자본을 몰아내면 인간화될 수 있다. 위기는 신자유주의 탈규제화, 금융자본의 독재의 결과, 내핍/금융불안/불경기는 부르주아내의 새로운 힘의 균형의 결과에 불과

미제국주의 반대운동은 반미 정서와 빈곤화되는 농민, 도시빈민, 노동자의 밑으로부터의 혁명적 분출을 기반으로 한 남미의 민중주의 경향. 그러나 한 국가내 미국자본과 민족자본의 대립에 근거한 국유화 조치는 세계자본내에 경쟁하는 자본의 분파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