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무엇을 할 것인가(니꼴라이 체르니셰프스키)

연이야 2017. 4. 21. 22:20

이 책이 집필될 당시 러시아는 물론이고 서구 사회도 여성들은 법적 권리가 전무하던 시절이다. 이런 상황에서 니꼴라이 체르니셰프스키는 베로치카, 로뿌호프, 끼르사노프 등의 인물을 통해 사회주의와 남녀평등을 구현하였다. 이는 많은 러시아 혁명가들에게 사회주의와 여성 해방에 관해 많은 영감을 주기도 하였다.

 

니꼴라이 체르니셰프스키는 1828년 볼가 강 근처의 사라또프에서 성직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대학을 다녔던 시기는 유럽에서는 시민혁명과 자본과 노동자간의 계급투쟁이 발발하였고 러시아에서 이에 대한 반동으로 강압 정치가 이루어지던 때였다. 졸업 후 고향에서 중등 교사를 재직했었지만 학생들에게 혁명사상을 불어넣고 있다는 혐의를 받아 그만두었다. 그 후 동시대인지에서 정치평론 활동을 하면서 짜르 정권의 정책을 공공연하게 비판하였다. 당연히 당국은 그를 주목하며 증거 조작을 통해 수용소에 투옥시킨다. 그리고 수용소에 투옥된 그 시기(1863)에 레닌을 비롯한 급진파들과 혁명가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집필하였다. 이 소설의 영향은 1860년대와 1870년대는 물론이고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특히, 레닌은 이 책의 감명을 1902년 자신의 정치 저작물 제목인 <무엇을 할 것인가>로 정하기도 했다.

 

1863년 러시아 사회는 농노 해방이라는 짜르의 기만적 정책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었다. 당시 청년들은 기성세대의 무기력한 태도에 대한 실망도 하였지만 구체적 행동도 불사할 태세였다. 바로 여기에 불을 당긴 것이 체르니셰프스키였다. 체르니셰프스키는 이미 1859년 짜르의 개혁안이 농민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것임을 경고한 바 있었다. 짜르는 진정한 농민 해방을 수행할 수 없으며 토지 개혁령은 안정과 자유라는 미명하에 자유주의자, 지주들과의 타협일 뿐 실제로는 농민을 파멸시키고 지주에게 팔아넘기는 기만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18612월 농노 해방령이 발표되자 체르니셰프스키의 주장은 옳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농노들은 자신의 생계를 위해 경작해 오던 토지마저 유상으로 분배받아야 했다. 농노들은 분배받는 토지의 지불 대금중 20%는 지주에게 지불하고 80%는 국가가 지주에게 미리 지불하고 토지지불 상환금 명목으로 원금과 6%의 이자를 합해서 49년 동안 국가에 상환해야 했다. 이런 기만정책으로 농민들은 그들 소유로 된 토지의 시장 가격이 총 54천 루블을 넘지 않았는데도 실제로는 약 20억 루불을 지불했다. 그 결과 농민들은 더욱 불리하게 지주에게 매이고 그들을 파멸로 몰아갔다.

 

이 소설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바탕으로 당시의 청년세대들을 이상화하였다. 이들은 도덕적 정열을 지닌 합리적이고 유물론적인 인물들로서 자기 자신의 이익과 사회 전체의 이익이 일치한다는 신념에 따라서 행동했다. 특히 레닌은 체르니셰프스키의 위대한 공적은 올바른 마음가짐을 지닌 진지한 사람은 누구나 혁명가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혁명가는 어떤 종류의 사람이어야 하며, 그는 어떤 행동 규칙을 준수해야 하고, 어떻게 그의 목표를 수행해 나가야 하며 그리고 어떤 수단에 의해서 그것을 달성해야 하는가를 보여 주었다는 데 있다.’고 평가했다.

 

당시 러시아는 짜르 왕조의 전제정으로 공공연한 정치적인 글은 출판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당시 인텔리들은 검열을 의식하여 이숍우화식의 서술을 사용하기도 했다. 체르니셰프스키역시 베라 빠를로브나의 네 번의 걸친 꿈과 봉제공장조합을 통하여 사회주의 이상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진보와 인간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토양이 아무리 척박해도 또 그것이 아무리 보잘것없는 땅뙈기라해도 그것은 건강한 밀을 생산한다.’), 새로운 인민의 출현에 대한 확신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소설은 150년 전에 집필되었지만 봉건제 사회의 모순에 따른 사회적 악습에 맞선 등장인물들의 분투는 아직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또한 이 소설에서 제기하는 남녀평등을 위해서 무엇이 전제되어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시사점을 주고 있다. 아래의 레닌의 말은 왜 이 소설이 오래동안 영향력을 가졌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체르니셰프스키의 철학이 간단한 사실들에 바탕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 우리는 아담과 이브가 아니라 유인원의 자손이다. 삶은 짧은 생물학적 과정이고 따라서 모든 개인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어야 한다. 이것은 탐욕, 증오, 전쟁, 이기주의, 계급이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사회혁명이 필요하다는 사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