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읽기자료-이슈분석

루이 알튀세르①

연이야 2011. 5. 2. 19:06

(가)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알튀세르는 다른 구조주의의 대가들과 비견될 만한 유일한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또는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주의자이자 구조주의자 또는 마르크스주의자로서 구조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레비-스트로스, 푸코, 들뢰즈, 데리다 등은 마르크스주의와 상당히 애매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 알튀세르의 작업은 어떤 의미에서는 처음부터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곧 알튀세르는 다른 어떤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보다 더 적극적으로 비마르크스주의적인 이론적 요소들을 수용하여 마르크스주의를 개조하려고 시도하였다. 스피노자의 철학, 마키아벨리의 정치철학, 바슐라르/캉귈렘의 과학철학, 프로이트/라캉의 정신분석 등 이다. 이느 알튀세르 이론이 비(非)교조적인 성격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주의의 고유한 개념들을 포기하거나 비마르크스주의적 개념들로 대체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나) 변증법의 옹호자

알튀세르가 변증법의 옹호자였다는 점은 그가 마르크스주의자였다는 점과는 구분되어야 할 점이다. 모든 마르크스주의자가 변증법을 옹호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구조주의의 사상가들이 변증법을 불신하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개념적 요소를 차이 개념에서 찾고 있었던 것에 비해, 알튀세르는 계속해서, 헤겔주의 변증법과 구분되는 유물론적 변증법을 쇄신하려고 노력하였다.

 

(다) 이데올로기 개념의 보존자

알튀세르의 또다른 특징은 이데올로기 개념을 완강하게 고수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레비-스트로스 이후의 프랑스 철학자들은 공통적으로 상상과 실재의 대립을 거부하고, 상상을 실재를 구성하는 한 요소로 간주하였다.

 

 

1.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해석 → 이데올로기론 지위

 

(가) 이데올로기의 개략적 정의

이데올로기는 하나의 주어진 사회 내에서 역사적인 존재와 역할을 부여받은 표상들의 체계다. 표상들의 체계로서의 이데올로기에서는 실천적-사회적 기능이 이론적 기능(또는 인식의 기능)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데올로기와 과학은 구분된다.

 

(나) 이데올로기의 사회적 기능의 본질

(i) 이데올로기는 모든 사회적 총체성의 유기적 부분을 구성한다.

모든 사회, 심지어 공산주의 사회 역시 이데올로기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ii) 이데올로기는 무의식적이지만 사람들의 의식에 관계한다.

이데올로기는 사실상 ‘의식’과 거의 아무런 관련도 갖지 않는다. 이데올로기는 심지어 반성적인 형태 아래에서 드러날 때조차도 심층적으로 무의식적이다. 그럼에도 이데올로기가 사람들의 ‘의식’과 관계된다고 말할 때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사람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이데올로기 속에서, 이데올로기를 통하여 그리고 이데올로기에 의하여 체험한다는 것이다. 곧 역사에 대한 관계를 포함하여 세계에 대한 사람들의 '체험적' 관계는 이데올로기를 통과하며 게다가 이데올로기 자체라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마르크스는 사람들이 세계와 역사 속에서 자신들의 위치에 대해 의식하게 되는 것은 이데올로기 속에서라고 말했던 것이다.

 

(iii) 사람들이 자신들의 실존 조건들에 대한 관계를 살아가는 방식으로서 이데올로기

이데올로기 안에서 인간들은 자신들의 실존 조건들에 대한 관계가 아니라, 그들이 자신들의 실존 조건들에 대한 관계를 살아가는 방식을 표현한다. 이데올로기는 원칙적으로 능동적이며, 이는 이 상상적 관계 자체 내에서 인간들이 자신들의 실존 조건들과 맺고 있는 관계를 강화하거나 변형한다. 이로부터 이 활동은 결코 순수하게 도구적일 수 없다는 점이 따라나온다.

 

(iv) 계급 사회의 이데올로기

계급사회에서 지배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다. 하지만 지배계급과 지배이데올로기의 관계는 유용성이나 계략의 관계가 아니다. 부르주아는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진실로 받아들이며, 이를 통해 자신을 지배계급으로 구성한다.

 

(v) 계급 없는 사회의 이데올로기

인간들을 형성하고 변형시키고 그들의 실존 조건의 요구에 부응하도록 하기 위해서 (대중들의 표상체계로서의) 이데올로기가 모든 사회에서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은 명백하다.

 

 

☞ 알튀세르에게 이데올로기는 비합리적이고 부조리한 것이 아니라 일반 대중들로 하여금 믿도록 만드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데올로기 생산의 경제 과정을 분석했지만 주체와 사회관계에서 이데올로기의 조직 법칙을 밝히지는 않았다. 주체는 하나의 허구로서 심지어 착취의 희생자이며 착취받는 조건을 오인하는 희생자이기도 하다. 허구의 주체는 현실 주체와 대립(이때 억압의 기초는 현실의 주체는 자율성을 지녔다고 여기지만 실상은 자율적이지 않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데올로기는 실제로는 경제 관계에 따라 행위하면서도 자기 스스로 행위하고 책임진다고 오인시킨다.

 

● 알튀세르 이데올로기론의 난점

(가) 이데올로기를 왜 수용하는가?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개념만으로는 왜 ‘개인들’이 이데올로기를 수용하는지, 왜 호명을 받아들이는지 해명이 되지 않음. 기능주의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

 

2.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해석 → 잉여가치의 경제적 개념

마르크스의 저작은 ‘자본론’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져야 한다. 이 단절은 역사에 대한 인간주의적 해석으로부터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 분석이 옮겨가는데서 생긴다. 이 단절의 핵심은 잉여가치이다. 노동가치설에 바탕을 둔 마르크스의 잉여가치는 노동자가 임금 이상의 가치를 생산하고 그 잉여가 자본가에게 귀속되고 이를 바탕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혁명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하지만 알튀세르에게 잉여가치는 계산될 수 없고 수량화가 불가능하지만 조작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래서 법칙으로 주장은 가능하지만 사실로 평가할 수 없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알튀세르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결합의 신화를 반대한다. 잉여가치가 수량화될 수는 없지만 자본주의적 착취 폐기로써는 알튀세르에게는 여전히 유용한 셈이다.

 

 

3. 인간주의와 사회주의의 결합은 이율배반이다.

인간, 계급은 계급투쟁에 앞서는 것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산물이며 계급투쟁은 역사의 동력이다. 즉 역사는 인간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경제 구조가 만드는 것이다. 인간주의는 환영이고 착취를 은폐하는 이데올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