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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배출권 거래의 ‘시장 실패’

연이야 2011. 5. 4. 23:11

지난해 11월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도’ 법안을 내놨다. 그런데 산업계가 반대하자, 지난 2월 규제개혁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한 수정 법안을 재입법 예고했다. 이제 탄소시장의 운명은 국회로 넘어갔다. 이 와중에 최근 시민사회 네트워크인 ‘기후정의연대(준)’가 출범했다. 소속 단체들은 정부의 ‘불통’과 친기업적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정부는 경제단체·환경단체·노동계가 참여한 공청회를 진행했다고 하지만, 반쪽만 사실이다. 경제단체와는 수십 차례 만나 법안을 조율했고, 공청회에는 제도 도입에 찬성하는 환경단체만 불렀다. 그 결과 원안보다 더 후퇴한 안이 제출됐다.

 

먼저 배출권 거래제의 뿌리를 살펴보자. 그 뿌리는 ‘저탄소 녹색성장’이고, 줄기 중 하나가 탄소배출권 거래제이다. ‘녹색성장’은 우파 환경주의 또는 녹색 신자유주의와 다름없다. 4대강 토목사업, 원전 40기 신규 건설과 80기 수출이 그 실체다. 여기에 배출권 거래제라는 극약 처방이 더해졌다.

 

한국 역시 세계 여덟 번째의 탄소 다배출 국가다 보니 적극적으로 감축해야 할 상황이다. 그렇다고 배출권 거래제가 만병통치약 또는 주요 감축 수단이 될 수 있을까? 윤리적·이론적·경험적 비판이 넘쳐나는데 한국 정부는 왜 여기에 집착하는 걸까? 탄소를 사고파는 탄소시장은 환경문제를 ‘시장의 외부성’ 때문에 발생한다고 보고, 오염에 ‘경제적 가격’을 부여하는 환경경제학을 따른다. 오염 가격을 ‘내부화’하고 ‘자연자본’으로 치환한다. 기후변화 논의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시장 메커니즘은 자본주의 초기 단계에서 발생한 토지 공유지의 인클로저를 연상시킬 정도로 대기 공유지의 상품화와 자본화를 시도하고 있다. 토지와 물, 그리고 이제는 대기로 거래 대상이 확대되는 것이다.

 

개념적으로 보면 ‘온실가스’라는 부정적 용어에 ‘권리’라는 긍정적 개념을 결합해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배출을 도덕적으로 정당화하고 있다. 사실상 ‘오염허가권’인 셈이다. 이런 21세기 ‘면죄부’는 당초 배출하고 있던 온실가스 양을 기준으로 삼아 아직 배출하지 않은 오염물질에 배출권을 할당하므로 ‘미래 오염권’이라는 특성도 갖는다. 오염 집단의 기득권을 보장해, 이 집단들이 져야 하는 ‘기후부채’(Climate Debt)를 묵살한다. 한마디로 돈 있으면 돈 낸 만큼 오염시켜도 좋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명료한 자본주의의 환경윤리를 찾아보기 힘들다.

 

배출권 거래제의 이론적 전제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감축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합리적으로 줄인다. 둘째, 거래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인센티브를 통해 참여 주체의 접근성을 높인다. 이론적으로는 야심찬 총량규제가 전제되고, 감축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저감되면 사회적 편익이 늘어날 수 있다. 그러나 경제성장이 되면 빈곤이 사라지고 사회가 풍요로워진다는 주류 경제학 교과서의 허구와 동일하다. 배출권 거래제는 피상적으로 볼 때 기업의 이익을 저해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새로운 축적 전략으로 기업의 경제적·정치적 이익을 보장한다. 특히 정부 법안은 도입 시기, 무상할당, 과징금·과태료, 적용 대상 등 주요 조항이 모조리 ‘친기업적 퍼주기’로 변질됐다.

 

 

수많은 문제 산적한 탄소배출권 시장

법적으로 보장되는 오염할 권리는 ‘오염자 수익 원칙’으로 작동한다. 가장 큰 탄소배출권 시장인 유럽(EU-ETS)에서 확인할 수 있듯, 초과할당과 높은 무상할당 비중, 탄소 가격 변동성, 소비자에게 비용 부담 전가, 투기자본 유입 등 ‘카우보이 기후 자본주의’로 불릴 정도로 탈규제적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이런 까닭에 인터폴은 조직범죄가 관여할 개연성이 높은 문제투성이 제도라고 경고하고, 일부 연구자는 ‘제2의 서브프라임’ 사태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불편한 진실’을 말한다. 혹자는 시장의 문제점은 인정하나 감축 효과만 있으면 긍정적이라고 주장한다. 어차피 신자유주의가 판치는 세상이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잘못 짚었다. ‘탄소세’라면 모를까 자유시장에 맡기는 방식은 감축 효과가 불확실하다. 이 역시 낡은 경제학적 사고에 불과하며, 기후변화의 시급성에 비춰보면 책임 회피를 위한 시간 끌기에 불과하다.

 

 

아직 배출권 거래제도가 다른 감축 방안에 비해 효과가 크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는 없다. 반면, 시장환경의 변화에 따른 유동성이 큰 시장 메커니즘에 기반하기 때문에 감축 목표 달성 가능성도 불확실하다. 가격 유연성뿐만 아니라 이월과 차입 등 시간적 유연성을 보장하기 때문에 ‘탄소시장 실패’의 가능성은 일반적인 시장 실패 원리와 같다. 유럽 탄소시장은 제1기(2005~2007년)에 배출권을 과잉 무상할당하면서 가격이 폭락해 시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현재 제2기의 배출권 가격은 상대적으로 안정됐기 때문에 문제점이 보완된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하지만 2기의 배출권 가격 역시 2008년 중·후반부터 폭락세로 접어들었는데, 세계적인 경기 하락으로 탄소배출산업이 위축됐기 때문이다. 즉 감축 노력에 따른 가격 유동성보다 경기에 따른 배출권 가격 유동성이 더 크기 때문에, 탄소시장에서 실제로 탄소가 감축될 것인지 불투명하다.

 

특히 온실가스는 현재 각국의 온실가스 인벤토리(목록)가 명확하지 않고, 다른 오염물질에 비해 배출원이 방대하기 때문에, 그 정확한 양을 계측하기 어렵다는 특성을 감안해야 한다. 그럼에도 ‘역사상 가장 큰 실패’라는 기후변화 문제를 다시 시장에 맡기는 어리석음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해외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시티그룹, <월스트리트저널>, <이코노미스트>조차 탄소배출거래제의 승자는 전력·석탄·원자력 대기업과 헤지펀드이고, 패자는 소비자와 빈곤층이며, 기후변화 완화에는 기여한 것이 없다고 평가한다.

 

그러면 배출권 거래제가 제 역할을 하도록 개선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시장 실패와 이와 밀접하게 관련된 감축 실패 문제인데, ‘기후정의’(Climate Justie) 관점이 유용하다. 기후정의 관점은 더 민주적인 생태사회 모델을 지향하면서, 제도적 차원에서 두 가지 감축 원칙을 제시하며 통합적인 기후정책을 주장한다. 첫째는 공정성 영역으로, 기후변화의 영향과 대책이 민주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탄소를 다배출하는 산업계와 부유층이 ‘우선적’이고 ‘실질적’으로 감축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둘째는 효과성 영역으로, 규제적·생태전환적 방식으로 감축 목표를 달성한다는 원칙이다. 과거 산성비 해결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비용효율적’ 방식보다 환경 효과가 높은 ‘규제’ 방식을 선호한다.

 

공정성과 효과성을 높이려면 수많은 제도를 바꿔야 한다. 즉 △기후과학과 사회정의 관점에서 배출 상한선 결정 △모든 상쇄(Trade-off) 방식 제거 △투기적 거래행위 금지 △모든 배출권 경매 △국제 규제 마련 △같은 산업 분야에서만 거래 허용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초기 탄소시장 형성에 정부의 엄격한 시장조정자 역할이 동반돼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세 가지 난점이 있다. 첫째, 예외조항투성이인 법안 작성 과정을 보더라도 우리나라 현 정부에서는 이를 개선할 의지가 없다. 아직 의무 감축 국가로 편입되지 않은 국제적 위치, 탄소배출권 도입 시기 연기(2015년), 선거 일정(2012년)을 감안하면 4대강 사업처럼 그저 ‘녹색분칠’(Green Wash)을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 에너지관리공단에서조차 “배출권 할당을 받은 기업 가운데 상위 5% 정도만 할당량을 초과 달성할 것”으로 보고, “1천만t 정도가 시장에 풀리는데 거래 금액을 EU-ETS 수준으로 쳐서 t당 1만7천원이라고 해도 고작 1700억원짜리 시장이 형성되는 것”이라고 예측했다. 시장 형성 자체가 불투명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셋째, 유럽에서 6년이 넘는 세월 동안 탄소배출권 시장을 개선하면서도 풀지 못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데, 이런 복잡한 문제를 개선하는 데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낭비돼야 할 것이다. 결국 기후변화의 시급성을 고려하면 배출권 거래제를 개선하는 것보다 포기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한국은 ‘2020년까지의 온실가스 배출량 전망치(BAU) 대비 30% 감축’이라는 낮은 수준의 국가 감축 목표를 설정해놓고 있다.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이번 법안에 따라 2015년에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하더라도 그후 5년 안에 감축 목표를 달성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 장담할 수 없다. 그런데도 일각에서는 “기후정의를 주장하는 진영에서도 배출권 거래제를 옹호하고 있다”는 기상천외한 주장을 한다. 여태껏 기후정의 진영에서 탄소배출권 거래제에 대해 찬성한 것을 들어본 적 없다. 기후정의 진영은 산업계의 탄소배출거래제 도입에 대한 반대 이유(부담 증가와 경쟁력 약화)와는 정반대의 이유로, 즉 배출권 거래제가 기업에 면죄부를 주기 때문에 더욱 강한 규제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이런 억지 주장은 사회적 결과가 어찌됐든 환경만 지키면 된다는 ‘에코 파시즘’적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거나(그러나 감축 효과는 불확실하다!), 환경문제를 시장원리로 해결해보려는 ‘자유시장 환경주의’를 기후정의 담론으로 포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탄소세는 이중배당 효과 있어

온실가스 감축의 현실적인 대안은 무엇일까? 이미 대기·수질오염 물질 등에 배출 기준을 두고 ‘규제’하는 방식은 보편화돼 있다. 온실가스에도 유사한 직접 규제를 도입하면 된다. 그런데 올해부터 실행될 ‘온실가스·에너지 목표관리제’는 기업이 감축 목표를 지키지 않아도 1천만원만 내면 얼마든지 내뿜어도 되도록 허용한다. 규제 기능을 상실한 사실상 ‘배출 허가증’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러나 배출권 거래제와 달리 제도 자체에 문제점이 내재돼 있는 것은 아니므로 규제력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 감축 총량 목표를 엄격하게 설정하고, 허술한 처벌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 

 

탄소세 도입은 어떨까? 탄소세 역시 탄소에 가격을 매기는 시장 메커니즘의 일종이기는 하지만, 배출권 거래제에 비해 규제 요소가 훨씬 강하고 이산화탄소 감축의 중요한 수단임이 분명하다. 영국·덴마크·핀란드·아일랜드·네덜란드·스웨덴·노르웨이 등은 이미 탄소세를 도입했고, 여러 연구자들이 탄소세가 탄소 감축에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실증분석하고 있다. 탄소세로 확보된 세수를 ‘녹색복지’와 ‘녹색사회’ 전환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감축 효과와 재분배 효과라는 ‘이중배당’(Double Dividend)을 기대할 수 있다. 현재 ‘교통에너지환경세’ 명목으로 도로교통에 쓰고 있는 세금을 탄소세로 전환해 확대하거나, 새롭게 세금을 신설해 기업의 탄소배출을 억제하는 세제 개편이 필요하다. 물론 탄소세 역시 어떻게 제도를 설계하느냐에 따라, 조세 역진성과 ‘소비자에게 비용 부담 전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문제는 녹색복지 차원에서 에너지 기본권을 보장하고, 더 누진적인 조세를 도입하면 해결할 수 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