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적대적 공범자들(임지현 저)

연이야 2011. 9. 15. 03:14

임지현은 대학 입학 후 학생운동에 뛰어 들지만 학생운동의 획일성은 임지현에게는 의문(해방을 주장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구속)이였다. 그 후 임지현은 맑시즘과 창조적 변용에 관심을 가지지만 그럴수록 민족문제는 그에게 큰 수수께끼였다. 그래서 임지현은 민족문제에 청춘을 걸기로 작정하였다. 민족문제에 관한 여러 저서 중 적대적 공법자들은 한편이다. 민족국가는 근대의 산물로써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내부의 다양성과 여러 모순을 덮어 버리는 측면에서 민족국가의 기득권층은 적대적 공범 관계에 있다고 주장한다.

 

① 테러리즘과 전쟁의 차이는 비공인 소수 집단이라는 주체와 공인된 국가라는 주체의 차이이다. 주체의 차이는 공인된 테러 대 공인 받지 못한 테러, 공적 테러 대 사적 테러로 나뉜다. 이미지의 생산, 소비 구조가 국가권력에 포섭되어 있는 한 전쟁의 승자는 국가이다. 그러나 이미지 전쟁의 승패 구도는 미국 대 아프간/이라크가 아니며 이는 이미지 전쟁이 만든 환영에 불과하다. 진정한 구도는 미국과 이슬람 민족주의 세력을 승자로 하는 한 축과 미국 시민, 아프간/이라크 시민을 패자로 하는 다른 축이다.

미국의 대 아프간/이라크 전쟁은 이슬람에서 반서구 옥시덴탈리즘을 강화함으로써 이슬람 민족주의의 반동을 정당화한다. 그에 대한 대가는 반동 이슬람 민족주의와 미국의 무차별 공습이라는 폭력의 대상이 된 아프간/이라크 민중들이 지불한다. 또 미국 시민역시 9.11 이후 미국 민족주의의 능동적 피해자, 공적 테러의 참여적 피해자가 된다. 9.11 피해자의 1/3에 달하는 외국인 희생자는 배제되었고 소수 민족, 유색 인종의 미국 시민들은 테러의 대상 및 초법적 수사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이슬람 민족주의 테러는 미국 국가 권력을 강화하는데 일조한다. 강화된 미국의 국가주의는 인디언, 흑인, 아일랜드인, 이탈리아인, 유대인, 동유럽 이민자들, 아시아계, 히스패닉계 등을 이등 국민으로 배제, 포섭하는 국민 만들기의 부활과 여럿에서 하나(백인, 남성, 앵글로 색슨, 프로테스탄트의 정체성을 지닌 시민)로 무게 중심이 옮겨지고 있다. 여기서 소외된 소수 민족은 미국 민족주의에 자발적으로 포섭까지 되고 있다. 국가 권력이 강화된 미국의 공습은 이슬람 민족주의의 정통성을 세워줌으로써 이슬람 민족주의와 미국의 민족주의는 결국 내연의 적, 적대적 공범 관계이다.

여기서 미국 좌파는 민중을 단일한 집단적 주체로 설정하고 대안적 전통이라는 개념에 집착 애국주의 담론에 쉽게 포섭되었다. 비단 미국 좌파 뿐만 아니라 20세기 사회주의 운동, 한국 좌파 역시 민족주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같은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② 역사적 진실의 정치성은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 드러냄의 대상이다. 법정의 심판을 통해 과거를 단죄하고 청산하는 방식을 넘어 과거를 드러내서 살아 있는 사회적 기억으로 만들 때 과거는 극복될 수 있다. 법정의 심판이 과거 극복의 진정한 계기라고 하기 어려운 이유는 나치즘의 전범자들은 죄책감을 느끼지 않거나 정체가 드러난 후에야 죄책감을 느꼈다는 부분에서도 드러난다. 이보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은 침묵의 공모이다. 나치 전범에 대한 심판은 대다수의 평범한 독일인에게 면죄부를 부여하는 계기이다. 즉, 과거의 극복은 과거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도덕적 죄의식과 수치심을 자각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진실과 화해 위원회’는 아파르트헤이트의 범죄에 대해 사면을 약속하는 대신 범죄자의 고백과 참회를 통해 사건의 진상을 밝혀 책임있는 사회적 기억을 보존하였다.

 

③ 세습적 희생자라는 자기 규정은 우리 자신도 식민주의의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자기 비판을 근원적으로 막는다. 그리고 친일과 반일을 가르는 선은 우리와 그들 사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그들의 내부에도 존재한다. 탈식민의 전제는 내부에 존재하는 일본으로 표상되는 내재화된 가치 체계를 전복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세습적 희생자라는 신성화된 기억의 내부에는 제국/식민지 구도를 부정하기 보다는 우리가 제국이 되어도 좋지 않겠냐는 (무)의식이 도사리고 있다. 이 지점에서 남과 북의 권력이 즐겨 사용한 권력 담론의 준거점이다. 즉, 세습적 희생자 의식은 강력한 민족 국가에 대한 갈망으로 시민 사회에 대한 국가 권력의 헤게모니를 강화시켜주는 기제가 된다. 세습적 희생자 의식이 밖으로 향할 때 뒤늦은 근대화에 대한 자각으로 나타난다. 즉, 제국에 대한 선망과 근대에 대한 동경을 그 밑바탕에 깔고 있다.

세습적 희생자 의식이 매개하는 식민주의적 유죄와 민족적 무죄의 단순한 대립은 삶의 다양한 문제(게급, 신분, 젠더)를 단순히 민족 문제로 환원한다. 즉, 세습적 희생자로 간주하는 한 가해 주체로서의 이등 국민인 자기 위치에 대한 성찰은 불가능하다.

또한 일본 좌파 지식인들의 선의가 한반도 민족주의 우파와 좌파 지식인의 세습적 희생자 의식과 결합할 때 한반도의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고 이는 일본의 민족주의를 다시 강화시킨다. 그래서 한일 민족주의는 적대적 공범 관계를 유지한다.

 

④ 고구려사 귀속을 둘러싼 한•중 양국간 논쟁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시대착오적이고 비역사적인 싸움이라 할 수 있다. 2000년 전에 존재했던 고구려에 (근대 동아시아의 경우) 20세기에서야 등장한 근대국민국가라는 개념을 그대로 투영시켜 버리는 것이 지금의 논쟁구도인데, 이건 시대착오이다. 고구려사가 한국사라 주장하는 이들은 고구려인이 한민족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민족이란 개념 자체가 생겨난 게 고작 100여 년 전이다.

국사 자체를 민족과 결부시켜 서술하는 지금의 국사 교과서는 거의 왜곡 수준이다. 국사라는 게 과거에 대한 이미지를 신화화시켜서 만들어 내는 속성이 있다. 사실 국사 자체가 국가 -이를테면 대한민국이나 일본-에 정통성을 부여하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수단이다. 국사에서 어딜 가나 발견되는 특징은 지금의 국민국가를 정점으로 하고, 과거의 역사를 지금의 국가가 만들어지는 발전과정으로 보고 지금의 국가를 만드는 과정에 불필요하거나, 모순되는 사실들은 다 제거하게 된다.

당장 중국이라는 강대국에서 ‘역사침략’을 시도하며 땅 내놓으라고 할지도 모르는 판국이라면 우선 방어논리부터 구축하고 봐야지, 학문적으로 무엇이 더 옳은 견해인지를 따지는 것은 적의 공격적 민족주의 앞에서 스스로를 무장해제하는 효과를 가져올 뿐이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중국도 내셔널리즘, 일본도 내셔널리즘 하니까 우리도 내셔널리즘으로 붙어보자는 논리는 굉장히 위험하다. 리얼리즘적 시각에서만 생각할 때, 우리가 과연 인민해방군이나 자위대랑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중국의 동북공정의 논리, 즉 ‘고구려사는 중국사’라는 논리와 ‘고구려사는 한국사’라는 논리는 현상적으로는 서로 팽팽하게 적대하고 있지만 사유의 틀을 공유하고 있다. 국사라는. 근대국가를 과거에 투영하는 인식의 틀을 공유하고 있으며 이는 “너네는 한국사로 주장해라 우리는 중국사로 주장할게”가 된다. 그 다음에는 힘의 논리만 남는다.

그래서 국사라는 인식틀을 해체하는 게 훨씬 더 실용적인 해법이다. 우리가 그런 국사의 틀을 깨뜨린다면, 그건 동북공정이 기반하고 있는 인식론적 틀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비판이 된다. 고구려사가 중국사라고 중국이 주장 하면 우리가 주장해야 할 건 “이거 한국사다”가 아니라, 동북공정의 주장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것인지, 중국 역사학이 얼마나 국가권력에 종속되어 있는지를 밝히는 것이어야 된다.

우리’끼리 자부심을 가지고 살 수 있다면, 그것 자체로 그저 좋은 것이라 볼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한국의 민족주의가 강해질 때, 상대국의 극우파 - 민족주의 또한 같이 강해진다. 바로 '적대적 공범관계'가 형성된다. 여기에 또 ‘저항적 민족주의’를 과대평가해서 팽창적 민족주의와 동급으로 본다는 반론도 제기될 수 있다. 제국의 경험을 가졌던 나라의 민족주의와 식민지의 경험을 가졌던 나라의 민족주의는 역사적 경험이 대칭적이지는 않다. 근데 문제는 그 비대칭성을 우리가 충분히 인정을 하지만, 저항적 민족주의라는 이름과 비대칭성이 권력담론으로서 혹은 지배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담론의 모습을 은폐하는 기능을 쭉 해왔다.

어느 하나의 국민이나 민족국가의 단위로써 국사보다는 다양한 문화들이 서로 만나고 교류하는 장으로 보는 변경사(Border history)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 안에서 문화적 긴장이 생기고 거기서 역동성도 생겨나는. 그러나 사실 200년 동안 근대역사학이란 게 국사의 틀로 짜여져 온 것이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완벽한 대안이 나올 수는 없다.

우선 국가간 경계라는 것은 근대국민국가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선처럼 확실히 그어진 게 아니었다. 대충 보고 ‘저기까지가 우리땅이다’ 하는 식이었다. 즉, 복수의 점들로 산포되어 여기에 속하기도 하고, 저기에 속하기도 했다고 볼 수 있다. 꼭 변경사가 대안이 아니라도 로컬 히스토리(local history) 등등이다.

 

⑤ 국사는 민족 국가의 역사적 신화를 과학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국가권력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 장치이다. 그리고 국사의 이데올로기 기제는 학교 교육, 국민적 기억의 공식 행사(현충일), 제도화된 국경일(제헌절, 개천절), 전쟁 기념비, 국립 박물관, 역사 소설/ 드라마 등등 굉장히 공고하고 단단하다. 또한 동아시아 정치 지형(북한의 핵은 일본 재군비의 강화로 이는 다시 남, 북, 중의 민족주의 강화)에서 국사는 철저히 민족주의 강화에 복무한다. 현상적으로는 동아시아 민족주의는 대립하지만 사유의 틀, 이데올로기 전략은 공유한다. 즉, 권력의 강화, 시민 사회의 역사의식을 민족주의로 규율 권력이 강제하기 않아도 아래로부터 자발적 호응, 지지를 생산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적대적 공범관계를 이룬다. 국사는 이렇듯 공고화하기 때문에 해체작업은 일국 차원이 아닌 개별 국가에서 세계로 이어지는 국사의 대연쇄의 해체가 되어야 한다. 이로 인해 유럽 중심의 세계사 근절하고 적대적 공범관계의 해체, 민족국가의 이름으로 기득권이 내부 모순을 은폐, 억압을 해체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