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세속의 철학자들 (로버트 L. 하일브로너 저, 장상환 옮김) ①

연이야 2011. 11. 10. 04:15

인류는 생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①관습/관례, ②사회 권위, ③각 개인의 이윤 추구 방법을 사용하였다. ①, ② 시절에 경제학은 필요가 없었지만 ③ 시대에 와서는 사회 유지에 대한 확신이 불확실하였기에 경제학이 필요하였다. ③ 시대에 와서야 이윤 추구의 동기가 보편화 되었다. 즉, 이윤 추구는 근대 이후 보편화되었고 소수가 아닌 다수가 부를 향한 전반적 투쟁이 널리 퍼져 있는 상태가 되었다. 시장은 근대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전체 사회가 시장을 통해 지속, 유지되는 메카니즘이라는 견지에서 봤을 때 그 이전과는 차이가 있다. 그 이전에는 토지, 노동, 자본이라는 생산의 추상적 요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①, ② 에서 ③으로 변화는 자생적/다변적 과정이었다. 국민 국가를 단위로 법과 도량형, 화폐의 통합으로 르네상스의 세계관은 종교적 정신을 쇠퇴시켰고 특히 신교는 부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도시의 성장은 화폐의 활성화를 가져왔고 과학적 호기심의 증대 등 이런 과정을 통한 경제 혁명은 이윤을 추구하는 경제 인간을 탄생시켰다.

 

애덤 스미스

 글래스 대학에서 도덕철학을 강의하였고 이 시절 ‘도덕감정론-도덕적 용인, 금지의 근원을 탐구한 책’(이기적인 존재인 인간은 어떻게 이기심을 누르고 더 높은 차원으로 변화시키는 도덕적 판단을 할 수 있는가? 스미스는 그 해답이 자신을 제삼자, 즉 불편부당한 관찰자의 위치에 놓음으로서 사건의 객관적 장점을 공감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에 있다고 주장했다.)은 스미스의 명성을 널리 알리는데 기여하였다. 이 결과 그는 1764년 가정교사를 하면서 프랑스 여행을 하였다. 프랑스 여행은 스미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농업 노동만이 부 창출의 원천이라는 중농주의 학파와의 만남은 노동이 가치의 원천으로 파악하는데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1776년 국부론이 출간되었다. 2년 후엔 연봉600파운드의 에든버러 세관국장에 임명되었고 아흔 살까지 생존한 모친과 함께 평생 독신생활을 하였다. 이 책은 바늘의 생산과정에서 일어나는 분업을 해설한 유명한 구절에서 시작하여 ‘아메리카 식미지의 최근요소’, 옥스퍼드 대학생들의 시간낭비, 1771년 이후 청어 어획 통계 등과 같이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900쪽에 달하는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1770년대 영국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 볼 수 있다. 이 책은 백과사전형식으로 상세히 설명하고는 있지만 정확한 순서를 갖추어 서술하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결론을 간단한 구절로 표시하지 않고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설명을 하는데 50쪽이나 할애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 스미스는 반노동도 반자본도 옹호하지 않았고 소비자의 편을 들었고 소비대중의 이익보다 생산자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체제들을 혹평했다. 스미스는 자본가들의 야비한 탐욕을 비난하였지만 자유롭고 방해받지 않는 시장을 옹호하는 스미스의 찬사 때문에 자본가들의 지지를 받았다. 왜냐하면 스미스의 이론은 분명히 자유방임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국부론은 사회가 서로 결합되어 돌아가는 메카니즘(각자 사익 추구가 어떻게 공익에 부합하는가?)에 탐구를 하였다. 그리고 자연적 자유 체계의 작동/생성 원리를 밝혔다. 자기 이익과 경쟁에 바탕을 둔 시장은 상품의 양, 가격, 소득까지 규제한다고 하였다. 즉, 작은 규모의 경쟁 시장은 수요의 증감에 따라 가격이 상승, 하락하고 이는 생산, 고용의 변화에 자극을 준다. 여기서 임금의 증대와 감소까지 설명 할 수 있다. 부의 축적은 생산설비 증가를 낳고 노동력의 필요에 따른 임금 상승, 이에 따라 노동자 수의 증가는 노동자간 경쟁 심화로 임금의 감소로 이어진다. 스미스의 자유경쟁 시장 메카니즘에 대한 긍정은 정부의 시장 개입을 반대하였지만 보펀적 복지, 외부 침략 방어, 정확한 사법 행정, 공공기관, 공공사업에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며 또한 독점은 시장의 장애물이기 때문에 반대를 하였다.

 그러나 스미스는 산업혁명직전에 살았기 때문에 거대기업이 시장체제를 위협(거대기업의 독과점)하는 것을 보지 못했고, 그 시대에는 ‘경기순환’이라고 불릴 수 있는 뚜렷한 현상도 없었고 추악한 공장제도, 새로 시도되는 기업조직 그리고 권익옹호 조직을 만들려는 직공들의 허약한 시도 등에서 새롭고 강력한 사회적 힘이 움트고 있음을 미처 알지 못했다. 그러나 스미스는 시장이 어떻게 사회를 결합시키는가를 이해하도록 만들었으며, 자신이 성취한 해석을 바탕으로 사회질서의 체계를 세웠다.

 

맬서스/ 리카도

 맬서스는 지주 이익을 옹호하였고(지대는 과거의 힘과 솜씨에 대한 보상임과 동시에 현재의 용기와 지혜에 대한 보상이기 때문) 인구 증가는 인류, 특히 하층계급에게 큰 재앙이므로 빈민구호 반대, 품행절제를 통한 적당한 인구 유지를 주장하였다.(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상승하지만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 그 결과 인구폭발은 피할 수 없고 이는 하층계급에게 큰 재앙이 될 것이라고 주장) 실질을 숭상하는 성직자로서 자본주의에서 과잉생산의 가능성을 언급하였지만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못하였고 프랑스 세이에 의해 반박당한다.

 리카도는 성공한 증권업자로서 42세에 은퇴하였고 지주 이익에 반대하였다. 맬서스와 달리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자본주의에서 지주는 유일한 혜택을 받는 계급이라고 보고 있다. 지주의 지대는 인구 증가에 따른 토지 확대로 토지간 비옥도에 따른 차액지대이다. 이는 가장 열악한 토지를 기준으로 곡물가가 형성되므로(경제 확대에 따른 인구 증가로 덜 생산적인 토지를 경작해도 이윤이 나올 정도로 곡물의 수요가 높아지면 더 생산적인 토지에서 곡식을 재배하는 것은 엄청난 이윤이 남기 때문이다.) 지대는 올라가고 그러면 지주는 가만히 앉아서 지대를 가져간다. 그에 따라 곡물 가격이 상승하고 노동자의 임금도 상승하므로 자본가는 손해를 보게 된다. 그리고 임금상승에 따른 인구 증가는 장기적으로 임금의 감소로 나타나기에 노동자에게도 손해이다. 그리고 전반적 과잉에 대해서도 논리적으로 불가능 하다는 점을 밝혔다. 장 바티스트 세이에 따르면 상품에 대한 욕구는 무한하고 구매 능력 또한 보장된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생산비는 누군가의 소득이 되며, 상품에 대한 수요가 존재한다면 그것을 살 수 있는 소득도 존재한다. 구매자들을 찾을 수 없는 경우는 일시적 현상으로만 보았다.

 맬서스와 리카도, 애덤 스미스는 이윤동기, 시장의 역할, 정부의 위치에 대한 인식과 노동계급을 본질적으로 수동적인 존재로 보는 시각은 같았으나, 스미스가 관찰한 사회의 작동방식과 맬서스, 리카도가 관찰한 방식은 달랐다. 스미스에 있어서는 분업의 효과이지만 맬서스와 리카도가 만나게 되는 공업기술은 이러한 제한된 전망을 벗어나 경제적 팽창이 제한된 생산 능력을 돌파하는 즐거움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하게 됨에 따라 인구정장이 훨씬 위협적인 양상을 띠게 되었다. 같은 방식으로 공업적인 경제성장의 전망이 확장됨에 따라 지주계급은 더욱 치부하게 되었다. 따라서 맬서스와 리카도의 경제학이 설정한 문제의 성격은 기술적 지평이 확대됨에 따라 비전이 변화되는 데 따른 분석적 결과에 그 근본적 요인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리카도와 맬서스 두 사람의 주된 공헌은 낙관론인 당대의 견해를 비관론으로 전환시켰다는 점이다.

 

로버트 오언, 생시몽, 푸리에 존 스튜어트 밀

 오언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방직기계 제작자에서 공장장 그리고 마침내 뉴래너크의 공장을 인수한다. 오언은 자본주의 문제점을 간파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화폐 페지, 실험공동체운동을 한다. 임금 인상, 노동조건 개선, 주거 환경 개선, 어린이 노동 금지와 교육을 실험공동체에서 하였지만 고립된 지역에서 운동은 실패 할 수밖에 없다.

 생시몽은 귀족출신이며 자유와 평등의 열정적 신봉자였다. 프랑스 대혁명 기간중 그는 교회 토지를  사들이는 부동산 투기로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 이후 이재산을 지적 탐구에 쏟아 부었다. 그는 정말로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배우기 위해 애썼지만 백과사전식 지식추구는 재정 파탄이라는 결과를 초래 했다. 생시몽은 산업 종교를 창시하였다. 이는 일종의 형제회로 서로를 ‘아버지와 아들’이라 부르며 파란색의 수도복을 입었다. 결실을 함께 나누기 위해선 모든 사람이 노동을 해야하지만 현실은 가장 적게 일한 자가 가장 많이 차지한다. 생시몽은 자본주의의 불의를 이처럼 지적하였지만 실현 방도와 지침을 제시하는 못한다.

 푸리에는 상상 속의 모험가였다. 그는 지구의 정해진 수명은 8만 년이며 4만 년은 상승기이고 나머지 4만 년은 하강기이며 그사이에는 8000년의 ‘행복의 절정기’가 있고 우리는 상승기의 8단계 중 제 5단계를 살고 있으며 이 시기는 혼돈, 야만, 가부장주의, 잔인성이 지배한다. 그다음에는 보증기 그리고 조화기의 최고의 절정기가 온다. 이를 바탕으로 한 그의 처방은 아주 빈틈이 없었다. 푸리에는 세부사항까지 지침을 마련하고 팔랑스테르라는 협동마을 조직하고 모든 사람의 노동을 통한 공동소유를 주장한다. 하지만 팔랑스테르는 실현 가능성이 낮았다. 왜냐하면 너무나 이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들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부르조아의 선의에 호소하고 지엽적 공동체 운동의 한계도 있었지만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상주의를 주장할 수 있는 용기를 보여주었고 부르조아에게도 사회변혁이 그들의 이해에 득이 된다고 설득한 개혁가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이윤추구 경제법칙은 생산영역에만 적용하고 분배는 우리가 바라는 대로 즉, 사회의 관습, 법률에 의해(사회주의적 방식) 결정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생산과 분배는 명확하게 나누어지지 않고 분배는 생산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밀은 사회의 ‘자연적’ 행위로 인해 임금이 억제되거나 이윤이 평균화되거나 지대가 오르거나 하는 일 따위에 신경 쓰는 것 보다는 사회가 그 행위의 ‘자연적’ 결과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이것을 바꾸기만 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사회는 세금을 걷고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으며 징발하고 재분배할 수 있다. 사회는 그 부를 몽땅 왕에게 바칠 수도 있지만 거대한 자선시설을 운영할 수도 있다. 사회가 그 결실을 분배하는 방식을 정당화하는 ‘법칙’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회가 분배구조를 바꿀 수 있는 자유에는 한계가 있다는 비판이 ‘우파와 좌파’ 모두에게서 제기되었다. 자본주의는 개혁 될 수 있으며 실제로 미국의 뉴딜과 스칸다나비아의 복지 자본주의는 도덕 가치를 통해 사회의 자연적 작동을 교정하고자 한 밀의 비전을 직접 실현한 것이다. 또한 그는 다양한 유토피아 개혁가들이 제시한 ‘공산주의’구상에 대한 검토(마르크스주의는 포함되지 않음 밀은 그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로 나아지만 부정적이다.(이유: 발전의 원천으로써 경쟁의 긍정성, 획일화) 그리고 밀은 노동계급이 자신들의 맬서스적 위험을 이해하도록 교육받을 수 있고 그래서 자발적으로 인구를 조절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축적 과정의 여러 상황 때문에 임금이 상승하게 되지만 이제는 임금이 이윤에 가하는 압박을 감소시키는 출산의 홍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결과 임금이 실제로 오르게 되고 자본 축적은 종말에 다다른다. 밀은 정상 상태(경제 전체로서의 산출량 수준에 변화가 없이 생산·교환·소비 등이 같은 규모로 순환하고 있는 상태)를 자본주의와 경제 진보를 사회주의의 첫 단계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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