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다큐멘터리

다양성으로 번영했던 마야 문명

연이야 2012. 6. 7. 00:19

 

마야 문명은 유카탄 반도를 중심으로 2천 년간 존속한 문명이다. 이 지역은 강이 없는 밀림지역이며 70여개의 도시(독립 주의 형식)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고대의 문명이 강 옆에 위치하는 것은 식수와 농업용수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자연의 특수성을 역으로 이용하며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 이 단서는 마야 최대의 도시 티칼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지역의 지반은 석회암으로 이루어졌기에 비가 오더라도 빗물은 금방 땅으로 스며든다. 하지만 석회암을 가루로 만들어서 물과 반죽을 하면 석고를 얻을 수 있는데 이 석고는 물이 스며들지 않는 방수 작용이 뛰어나다. 그래서 티칼의 모든 건축물의 외부는 물론이고 땅바닥까지 석고를 발랐다. 그리고 지면도 평지가 아니라 1.76도의 경사로 되어있어 비가 오면 물은 땅으로 스며드는 것이 아니라 지면의 낮은 경사로 모이고 이 곳이 저수지의 역할을 하였다. 물론 저수지 바닥도 석고로 방수 처리를 하였다. 이런 저수지가 티칼 주변에는 3개가 있다. 식량은 옥수수가 주식이고 옥수수는 화전 농업으로 재배되었다. 밀림을 제거해야 토지를 얻을 수 있고 나무와 풀을 태운 재는 비료의 역할도 하였기에 화전 농업이 발달할수 있었다. 하지만 화전 농업은 특성상 토지의 지력을 위해 일정 정도 휴경을 해야 되었기에 도시 성장의 한계가 되기도 하였다.

 

인간이 거주하기 힘든 밀림에 정착한 이들에게 화전 농업은 더없이 중요하였다. 그래서 마야문명에서는 천문학, 역법, 수학이 발달하였다. 0의 사용만 하더라도 인도보다 3백년 앞서 있으며, 천문학은 더욱 놀라운데 그들은 1년이 365.2420일이라 하였는데 이는 오늘날 정확한 과학조사로 밝혀진 365.2422일과 불과 17.28초 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또한 달의 운행은 29.5320일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현재 밝혀진 것과 겨우 0.00039일 차이이다. 또 치첸이사 중심에 서 있는 엘 까스띠요 신전은 정 사면체이고 91계단을 쌓아 만들었다. 맨 아래 계단에는 뱀 머리가 있다. 특히 춘분에는 오후 5시에 해가 기울면서 9개의 난간에 걸친 그림자는 아래로 움직인다. 이를 신호로 씨앗을 뿌리며 1년 농사가 시작된다. 왜냐하면 이후에는 우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척박한 환경의 적응 결과 마야인의 천문학은 놀랍도록 정교하였다.

 

마야 문명은 강력한 중앙집권세력 대신 도시 간 교역을 통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함께 번영을 구가하였다. 물론 이들도 전쟁은 있었다. 도시 간 전쟁은 평민은 참가할 수 없으며 왕과 귀족만이 참여하였다. 그렇다 보니 소규모였고 전쟁기간도 따로 정해져 있다. 패배한 도시를 파괴하는 일도 없었으며 패배한 왕 역시 지위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렇듯 마야내 전쟁은 서로를 극단적으로 배제하지는 않았고 공동의 번영을 함께 누렸다. 하지만 이런 전통은 8세기 거대 도시 티칼의 탄생으로 위기에 직면한다. 거대 도시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숲이 파괴되었고 농경의 어려움은 갈수록 심해졌다. 식량 부족은 결국 티칼의 멸망 뿐 아니라 이웃 도시를 침입하였고 그동안 유지되어온 전쟁의 원칙은 물론 타도시의 파괴까지 낳았다. 이후 다시 위기를 극복하고 평화를 되찾았지만 스페인 침략직전에 다시 마야 문명은 내분으로 혼란을 겪는다.

 

한정된 자연자원을 배타적 독점하느냐 다양성과 상호부조를 인정하느냐는 그 문명 번영을 결정한다. 하지만 계급사회에서 상호부조는 한계가 있으며 문명이 발달할수록 상호부조에서 배타적 독점으로 이어졌다. 현재의 쇠퇴하는 자본주의는 이윤확보 경쟁으로 문명뿐만 아니라 지구생태계와 종 전체에 위기를 가하고 있다. 위기의 원인을 파괴하지 않는 이상 야만의 길은 피할 수 없다.

 

참고 : NHK 문명의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