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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은 진보적인가? - 협동조합 지나친 기대, 국가의 복지 축소 우려

연이야 2013. 1. 19. 08:07

 

협동조합이 현재 한국사회에서 진보적이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이 문제에 답하기 전에 먼저 진보적이라는 말을 이 글에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이라는 의미로 한정해서 사용하겠다. 왜냐하면 소위 진보진영에서 주장되는 협동조합논의는 대체로 서구에서 신자유주의 이후로 다시 활발해진 협동조합의 새로운 운동을 수입했고 이것이 신자유주의의 폐해에 대한 대안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 물음에 대답하는 것은 단순하지 않다. 협동조합이 했던 역할은 한 가지가 아니라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다양했고 신자유주의를 옹호, 유지하기 위해 사용된 논리와 사례도 많다. 한국에서의 협동조합논의와 실천이 외국의 선례를 되풀이 한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에 대한 무지 혹은 고의적 은폐는 협동조합이 외국의 사례에서 신자유주의와 맺었던 친화적 관계를 되풀이할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

 

신자유주의 이후로 협동조합 논의의 이론적 근거는 사회자본론, 사회적 경제론, 제3섹터론 등인데 각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셋이 공유하는 것은 국가 실패를 전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장의 불완전성도 인정한다. 그래서 시장과 국가의 중간 영역으로 제3의 영역을 설정한다. 이 영역의 경제적 조직이 협동조합이다. 이런 이론은 제3의 영역이 국가와 시장의 한계를 모두 넘어서고 따라서 국가와 시장의 장점만을 이어 받을 수 있다는 전제에 근거한다. 그러나 벤 파인의 말처럼 “사회적 자본은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효율성이 유효하다고 인정하지만, 그것의 ‘불완전성’이 걱정인 자본주의의 비판가들을 위한 맞춤옷이다. 따라서 국제기구(IMF와 함께 신자유주의의 세계적 확산의 주역이었던 세계은행이 이제는 UN과 함께 사회자본론과 협동조합 운동을 세계적으로 확산시키는데 앞장 선 것은 1990년대 동안 진행된 워싱턴 컨센서스에서 포스트 워싱턴 컨센서스로의 전환과 관련이 있다.-필자 첨가)는 자본주의를 조장하는 근본적으로는 보수적인 경제 정책들을 지지하면서도, 시장의 사회적 기초와 시장의 불충분함에 대한 이야기로 이를 감출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있다.

1. 제3의 영역이 현실적으로 어디까지인지 구획짓기가 힘들다.

2. 국가 실패의 사례로 현실사회주의와 복지국가의 폐해(특히 비효율성, 비민주성, 관료제 등)를 지적하지만 모든 국가 조직이 이런 한계를 결코 극복할 수 없으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3. 제3의 영역이 장점이 아니라 국가의 단점과 시장의 단점만을 물려 받아 되풀이 할 가능성도 있다.

4. 국가와 시장의 중간이라고 하지만 근본적으로 시장 경제, 자본주의 체제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제3의 영역이 아니다. 유럽의 제3의 길 노선이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제3의 길이 아니라 시장근본주의로서의 신자유주의와 개량적 시장주의인 사민주의 사이의 제3의 길을 의미한 것처럼 제3의 영역은 시장근본주의와 완화된 시장주의 사이의 어딘가에서 존재한다.

5. 현실적인 사례에서 드러나듯이 제3의 영역의 주체인 시민사회는 자본과 실질적으로 구분하기 힘들고 자본으로 수렴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그래서 시민사회는 국가의 기능을 시장으로 외주화하는 중간 단계로 기능할 수 있다.

 

제3의 영역에 설정된 협동조합은 위에서 나열된 문제를 모두 가질 수 있다. 이제 역사적인 사례에 근거해서 협동조합이 신자유주의와 어떤 관계를 가졌는지를 살펴 보자. 특히 협동조합이 국가가능의 외주화를 통해 복지를 국가가 민간에게 떠넘기는 알리바이를 제공하는 것이 문제다. 영국의 주택협동조합(영국에서의 명칭은 Housing Association)이 대표적인 사례다. 주거복지에 대한 대안으로 이야기 되는 협동조합 주택의 대표적 사례이어서 한국에서도 많이 참조하고 있고 사회적 경제가 경제 전체에서 큰 역할을 한다는 근거로도 자주 제시되는 것이 영국의 주택협회다. 협동조합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 혹은 완충책이라는 믿음과는 달리 영국의 주택협회는 복지국가를 해체시키고 신자유주의를 전면화 하는 역할을 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의 주택협회는 1960년대와 70년대 비버리지 복지국가의 특징을 명확히 하는 과정에서 질적, 양적으로 성장했다. 이 때의 주택협회는 공공성을 강화하고 공공부문으로 편입되면서 확장되었다. 이를 주택협회의 정부화라고 부른다. 그러나 1979년 대처의 집권 이후 주택협회의 역할은 급변했다. 양적으로 보자면 영국주택협회의 전성기는 공공주택에 대한 재정지출을 축소하기 위해 대처가 이끄는 보수당 정권이 주택협회를 활성화한 1980년대였다. 대처 정권은 주거부문에 대한 공공지출을 삭감하고 노동당이 장악하고 있던 지방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사회주택의 공급주체를 주택협회로 전환시켰다. 공공기능을 민간으로 이전시키는 과정은 보수당 집권기관 내내 계속되었다.

 

특히 1988년 주택법 개정으로 주택협회에 대한 공공지원 마저 감소되고 민간자금 의존도가 높아지게 된다. 1988년 이전에 80~100%이던 주택협회 주택사업의 공공자금 비중이 1988년 이후에는 50%까지 감소했다. 나머지 자금은 민간자본시장에서 조달하게 만든다. 민간자본시장에서 자본을 조달한다는 것은 복잡하고 위험성이 높은 금융시장에 편입됨을 의미한다. 여기서 또 다른 문제도 파생된다. 현대적 금융시장으로의 편입은 자원봉사자로 운영되는 소규모 주택협회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결국 전문적인 유급직원을 고용한 대규모 주택협회가 중심이 되었다. 이런 현상은 협동조합이 자발적이고 민주적인 소규모의 공동체로 남을 것이라는 희망과 배치된다. 금융 업무 외에도 사업의 대규모화는 조직 내부에서의 업무분화를 초래해 더 이상 자본주의적 대기업과 조직상의 차별성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보수당의 주택협회 활성화 조치 이후에 정부의 신규공공주택건설은 급격히 감소했다. 1967년 204만 호에서 1991년에는 11만호로 줄어 들었다. 신규주택건설 전체에서 공공부문이 차지하는 비중도 1979년의 35.6%에서 1992년에는 3.2%로 십분의 일 이하로 줄어들었다. 또 1980년 이후 150만 호의 공공주택이 자산을 살 권리 즉 Right to Buy라는 명분하에 개인에게 매각되거나 주택협회로 이전되었다. 한국의 어떤 협동조합 옹호론자들이 영국에서 협동조합 주택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것을 사회적 성격이 강한 것처럼 해석하는 글을 본적이 있는데 소위 주택부문의 사회적 경제 비중이 극적으로 높아진 원인이 바로 공공주택의 주택협회로의 불하 덕분이었다. 더 문제는 질이 양호한 주택만이 매각되고 최저소득층은 가장 질 낮은 공공주택에 그대로 남겨졌다는 것이다.

 

1988년의 주택법 개정이 주택협회에 민간금융의 대출을 활성화하게 만든 것과 함께 실시한 정책이 있다. 바로 임대료의 자율화이다. 민간금융이 주택협회에 대출을 해주려면 이윤과 상환가능성에 대한 보장이 있어야 한다. 임대료 상승은 이를 위해 필수적인 조치다. 새로운 협동조합 운동에서 가장 강조되는 협동조합의 제4원칙인 국가로부터의 자율성의 증대는 바로 임대료의 자유로운 인상으로 나타났다.

 

결국 주택협회의 역할 증대는 시장의 불완전성을 보완하기 위해 확대된 것이 아니라 정부역할을 축소시키기 위한 의도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로 나타난 현상이다. 문제는 한국에서 협동조합에 대한 지나친 기대가 그나마 부족한 국가의 복지 기능을 아예 축소시키거나 요구하지 못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복지국가 시기 영국의 주택협회가 주거의 정부화라는 방향으로 공공성을 증대시키는 역할을 했던 것처럼 사적 영역에 떠넘겨진 사회적 역할을 다시 공적 영역으로 돌려놓는 역할을 할 때만 협동조합은 진보적일 수 있다.

 

- 참세상 한형식(당인리대안정책발전소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