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한국경제성장 자본인가 노동인가 ? - 한국자본주의 성격논쟁①

연이야 2013. 5. 27. 15:00

 

1. 들어가는 말

작년 프레시안 등의 인터넷 매체에서 저명한 경제학자간에 한국 경제 성격에 대한 뜨거운 논쟁이 있었다. 이 논쟁은 독점 재벌 체제를 대체할 대안적인 자본주의 상을 둘러싼 논쟁이라는 점에서 과거 사구체 논쟁에 비해 이념적 지향이 경제민주화나 복지국가론에 한정된 특징이 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비정규직과 청년 실업의 고통은 이미 일상화 된지 오래고 하루 평균 40명 이상이 자살하는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은 진정한 경제민주화를 통한 복지국가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 해를 훌쩍 넘겼지만 이 논쟁에 대한 비판적 검토는 여전히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논쟁의 쟁점과 각 주장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경제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의 본질적인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다. 재벌이 해체되면 경제가 민주화된다는 편협한 시각이나 서유럽 복지국가 성격에 대한 무지와 비유럽지역에서 신자유주의 매커니즘에 대한 몰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복지국가론에 대한 비판을 넘어 이 글은 우리 사회의 근원적 문제를 인식하고 변혁운동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명확히 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2. 경제민주화인가? 생산의 사회화인가?

①재벌과 대타협을 통한 복지국가건설론 대 자유주의적 법치주의 확립을 통한 재벌해체-경제민주화론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는 재벌과의 타협을 통한 복지국가건설을 주장하고 있다. 복지국가건설론(이하 복지국가론)은 재벌에게 기업경영권 유지를 보장해주되 투자와 고용 및 조세 부담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대타협론을 주장한다. 그리고 논리적으로 재벌에 대한 국유화를 배제하지 않으며 현실적으로 비정규직 철폐운동과 다양한 영역에서의 복지국가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복지국가론자들은 경제민주화론자들이 재벌 해체를 통한 경제민주화를 말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해외 투기 자본에게 한국의 기업들을 팔아넘기는 모양새라며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즉 경제민주화론의 실체를 영미식 주주자본주의, 금융주도 자본주의로 보고 있다.

 

이에 반해 김상조, 유종일, 홍종학은 재벌해체-경제민주화(이하 경제민주화론자)를 주장하고 있다. 경제민주화론은 구자유주의 원리에 입각한 공정한 시장 규칙과 법치주의가 필요하며 경제민주화를 달성하기 위해 한국의 재벌 체제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경제민주화론자들은 논자마다 궁극적인 이념 지향이 다양하다. 영미식 주주자본주의를 자유주의적 법치주의의 모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부터 한국의 독점 재벌 체제를 개혁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영미식 주주자본주의의 몇 가지 논리들을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입장까지 있다. 현실적으로는 소액주주운동을 포함함 시민사회의 재벌 개혁 운동+기업집단법, 이중대표소송제, 공정거래법과 하도급법 개정 등을 통한 기업 지배 구조 개선운동 등을 주장한다. 경제민주화론자들은 한국재벌체제는 낙후하고 천민적이기 때문에 재벌을 해체하고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한국 경제민주화를 달성하기 위한 초석이라고 보고 있다.

 

②자유주의

경제민주화론자들은 한국사회가 자유주의를 거치지 않고 압축 성장을 달성한 상태에서 무분별하게 도입된 신자유주의는 결과적으로 재벌의 영향력만 확대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최소한의 합리적 시장 규칙 확립 후 복지국가 건설을 주장한다. 고전파에 의해서 주장된 고전적 자유주의는 시장의 합리성을 바탕으로 생산량, 가격, 소득, 인구수까지도 시장이 조절 가능하므로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반대한다. 하지만 시장에 대한 국가 개입의 반대는 자본의 이윤 추구 자유와 부르주아의 소유권 절대화를 핵심으로 하고 있다. 그런 고전적 자유주의가 추구하는 자유경쟁 자본주의에서 자본의 집적과 집중을 통한 독점자본주의로 전화는 필연적인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자유주의 시장은 역사적으로 빈부격차, 환경오염, 공공재의 부족, 실업과 주기적 공황 등의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면서 많은 비판을 받아오고 있다. 그리고 현재의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중앙은행의 이자율, 통화량 조정 등 국가는 자본의 이윤 추구의 자유 보장과 강화를 위하여 적극적인 개입을 하고 있다. 이처럼 국가 없이는 시장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복지국가론자들의 주장처럼 기회균등의 자유는 공상에 불과하다. 그리고 복지국가론자들은 재벌 해체를 위한 자유주의 질서는 주주자본주의를 옹호하고 결과적으로 해외금융자본에만 이익을 주는 꼴이기 때문에 경제민주화론자들을 좌파신자유주의자들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③신자유주의

이 논쟁에서 한쪽은 재벌옹호론자 다른 쪽은 좌파신자유주의자라고 서로 비판하고 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 배경과 특징, 의미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또한 신자유주의의 실체에 대한 파악은 한국 사회의 본질적 문제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10년 전부터 신자유주의와 금융 자본주의, 주주 자본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해온 사람들이다.’

‘한국의 진보 개혁 세력이 주장하는 '반재벌'은 ... "좌파 신자유주의"에 불과하다.’

-정승일/프레시안

 

위에서 보듯이 정승일은 신자유주의를 금융 자본주의, 주주 자본주의로만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단순한 경제 운용원리가 아니다. 2차 대전 후 서유럽의 약화된 자본가계급이 강력해진 노동자계급과의 타협으로 케인스주의를 바탕으로 한 복지국가가 탄생했다. 하지만 장기간 타협에 의존해 유지하던 체제(케인스주의)가 작동하지 않으면서 자본 이윤율에 심각한 위기가 도래하였다. 결국 신자유주의는 이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자본가들의 대대적인 반격으로 기획된 일련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조류를 일컫는다. 70년대 전반적 위기(스태그플레이션)는 케인스주의의 결과였다. 케인스주의의 한 축은 성장, 한 축은 공황구제이다. 성장을 위해서는 시장이 필요한데 사회보장제도를 통한 노동자 계급의 소득 증대가 시장과 유효수요를 제공했다. 국가에 의한 독점자본의 구제는 독점자본의 과잉생산 설비, 과잉생산 능력을 그대로 보존하므로 과잉은 증대되고 독점적 경쟁은 격화되었다. 그런데 국가에 의한 독점자본의 구제 방법은 지불수단을 공급하는 방식이며 이는 중앙은행의 불환은행권 증발에 의존하므로 악성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되었다. 이렇게 되면 유효수요 창출을 통한 성장도 한계에 이르면서 공황, 침체와 인플레이션이 결합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게 된다. 이 현상은 70년대부터 본격화되었고 이때 반케인스주의를 외치며 등장한 것이 신자유주의이지만 80년대 초반 미국의 항공관제사 파업과 '불만의 겨울(Winter of Discontent)'이라 이름 붙여진 영국의 광부 파업을 진압한 후 본격화된다. 이런 점에서 신자유주의는 일부 사민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단순한 자본의 전략이 아니라 자본에 대한 노골적인 옹호, 노동계급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가 핵심이며 이윤율 위기를 극복하려는 자본의 필연적인 경향이다.

 

④과두지배세력

무엇보다 신자유주의는 지역과 국가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유럽에서는 노동자의 힘이 강하기 때문에 노동을 적대로 하는 신자유주의가 80년대부터 나타나지만 노동자의 힘이 약한 지역에서 신자유주의는 얼마든지 발전주의 국가와 결합할 수도 있으며, 토건 개발주의와도 결합할 수 있다. 주주자본주의와 금융자본주의는 재벌과 같은 독점 대자본 체제와 경쟁도 하지만 얼마든지 서로 공생 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다. 사실 이런 점에서 우리 사회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존재감조차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과두지배세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과두지배세력은 재벌, 관료, 언론, 사회 기득권층들 그리고 국제금융자본이 동맹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과거 권위주의 체제속에서 조직되고 성장해 온 한국의 특권 집단들은 정치적 민주화 이후에도 사회경제적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지속성을 유지해 왔을 뿐 아니라,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 거꾸로 국가를 포위, 자신의 이익 추구의 도구로 삼는 지배자로 성장했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국제금융자본의 침투는 재벌들과 잠시 동안 긴장 관계를 형성했지만 이후 공생 관계로 전환했다. 왜냐하면 국제금융자본의 입장에서는 재벌이 정치력까지 장악한 한국에서 경영권 교체로 재벌의 안정성이 떨어져 자신들의 이익 창출 구조가 위험해지는 것보다는 재벌 총수 일가의 지배를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양자의 구별은 의미가 없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재벌들을 포함한 많은 기업들 역시 주주가치 경영을 중요시하게 되었고 주주를 내국인과 외국인으로 구별하는 것 역시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아졌다. 즉 주주자본주의의 수혜자는 해외 자본만이 아니라 재벌들에게도 해당되며 재벌 스스로 자본소유자로서 막대한 자본 축적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렇듯 한국의 특권 과두 지배 동맹 체제는 개발독재식 발전주의 시스템과 신자유주의적 요소들이 혼재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장하준 등은 재벌과 국제금융자본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는 독특한 지배 체제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 하고 있다.

 

⑤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

한국에서 신자유주의는 80년대부터 실시되지만 본격적인 구조조정은 김영삼 정권부터 시작된다. 특히 OECD에 가입하면서 개방화⦁자유화의 혜택은 전적으로 재벌이 누리면서 단기 외채가 늘어나고 동아시아 전체의 과잉과 맞물리면서 위기가 터졌다. 한국경제의 위기상황에서 집권한 김대중 정권은 신자유주의를 전면적으로 실시한다. 이런 점은 ‘4대 구조개혁 과제’라는 구조조정 정책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노동자에 대한 대량해고를 법제화한 정리해고제 전격실시와 이른바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들, 자본시장 전면개방과 해외자본 적극 유치, 노동조합운동의 체제내화를 위한 노사정위원회 설치와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투쟁하는 노동조합에 대한 물리적 탄압과 배제이다. 반면 재벌 정책은 독점자본의 강화와 그 휘하로 중소자본의 재편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은 해외 직접투자 유치를 위해 김대중 정권 시절부터 실시해 온 금융시장 개방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그 총론으로 제시된 것이 이른바 '동북아 금융허브'인데, 그 완성판이 바로 노무현 정권 말기인 2007년에 만들어진 '자본시장통합법'과 한미 FTA 체결이었다. 그 결과 한국 주식시장은 "세계적 투기자본의 ATM(현금인출기)"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해외 투자자들의 놀이터가 되어버렸다. 즉, 장하준·정승일·이종태 그룹이 경고해온 '주주 자본주의'의 모든 조건을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만들어 놓았다.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부터 실시해 온 작은 정부, 민영화, 규제완화, 시장원리에 의한 경쟁, 노동시장의 유연성, 사회복지의 축소 내지 시장화 등을 계속 추진했다. 게다가 법인세·종부세·양도세 등의 부자 감세, 재벌기업에 대한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금융 산업 구조개선을 위한 법률(금산법)' 완화, 수도권 규제 완화, 공기업 민영화, 사회복지의 축소, 건강보험 민영화 등 신자유주의 이념에 너무나도 충실한 경제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는 이윤은 자본이 독식하고 고통은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시키는 정책을 수행하였다.

 

⑥재벌 해체 - 경제민주화론의 실질적 의미

김상조 유종일, 홍종학의 ‘한국 경제 새판짜기’에서는 한국 경제의 문제를 크게 3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첫째, 자유주의를 거치지 않고 압축 성장을 달성한 데 따른 문제와 이에 덧붙여 무분별하게 신자유주의를 도입했고 미국과 비교했을 때 최소한의 합리적 시장 규칙도 존재하지 않는 천민자본주의라고 규정한다. 둘째, 중상주의적 관치가 나타나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재벌에게 경제력이 집중되어 중소기업의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 제도적 차원에서 포괄적 집단 소송제, 이중 대표 소송 제도 등을 재벌 해체와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해 출자총액제, 기업집단법 제정 등을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법과 제도를 제공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리고 이병천은 소액주주운동 등의 주주자본주의 개혁에 대해서는 비판적 입장이지만 경제민주화를 위해서 재벌은 해체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정태인은 이해 당사자 이론1에 입각해서 ‘협동 진화의 규칙들이 잘 지켜지도록 하는 것이 재벌 문제의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역사를 볼 때 원시적 축적과정2이나 자본주의 발전과정은 노동자, 민중을 수탈하여 자본을 축적하는 과정으로 그 자체가 폭력적이었다. 그런데도 천민자본주의로 한국 자본주의의 성격을 규정할 경우 논리적으로 천민적이지 않은 이상적인 자본주의 상을 전제하게 된다. 이럴 경우 홍종학처럼 영미식 주주자본주의가 되거나 수정된 개혁 자본주의의 어떤 모델이 존재한다는 관념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고전적 자유주의의 모델인 영국이나 2007년 이후 국제금융위기를 일으킨 미국식 주주자본주의 모델 역시 축적의 과정은 폭력적이고 노동력에 대한 착취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즉 천민적이지 않는 자본주의는 없다.

 

그리고 이병천은 ‘제 2민주화가 또 한 번의 민주화가 아니라 질적으로 새로운 단계의 민주화, 새로운 질(質)의 사회경제적 민주화, 민생 진보의 길이 되어야 한다.’ 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재벌해체만으로 협소하게 본다는 점이다. 자본주의에서 소득(이윤, 임금, 이자, 지대)은 생산관계에서 비롯된다. 생산수단을 가진 자본가는 이윤을, 노동력을 파는 노동자는 임금을 가져간다. 즉 자본주의의 문제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교환, 분배, 소비를 결정하기 때문에 단순히 부의 분배만으로는 해결에 한계가 있고 생산수단의 사회화가 진정한 의미의 경제민주화이다. 이런 점에서 정태인 역시 마찬가지이고 이들의 재벌해체, 경제민주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호하고 실질적으로 경쟁자본주의로 돌아가자는 주장에 불과하다.

  1. 재벌 시스템을 구성하는 이해 당사자 즉 총수 등 지배 주주, 경영자, 노동자, 하청 기업(supplier), 은행 등 채권자와 같은 1차 이해 당사자뿐만 아니라 재벌의 영향을 받는 소비자나 지역 공동체 등 2차 이해 당사자가 모두 참여해서 공동의 성과를 거두는 생산 시스템 [본문으로]
  2. 자본의 원시적 축적의 중요한 사례는 인클로저 운동으로 인한 봉건적 농업 인구의 추방, 식민지 약탈과 노예무역(원주민 섬멸과 노예화, 동인도의 정복과 약탈, 아프리카의 상업적 흑인 수렵장 전환), 거대한 가격 인플레이션(즉 16세기 항해술의 발달로 아메리카에서 약탈한 무수한 금/은이 유입되고 곧바로 물가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소지주와 노동자는 소득보다 비용이 늘어나면서 파산했지만 자본가는 실질 임금이 낮아진데다 원료를 사서 재고를 보관하기만 하면 높아진 가치 덕분에 많은 이윤을 얻었다,)이다. 이런 식으로 토지에서 밀려나거나 예전의 생산수단을 이용할 수 없게 된 농민과 장인은 부랑자가 되거나 거지가 되었고 일부는 노동 계급이 되었다. 이렇듯 자본의 원시적 축적 과정은 사람이 공동체에서 분리되는 과정, 노동력과 생산수단이 분리되는 과정이 있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