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정신 분석 입문(지그문트 프로이트 저)②

연이야 2013. 7. 11. 23:08

 

3부 노이로제 총론

-정신분석과 신경의학

사례 1 : 젊은 장교가 장모의 치료를 부탁했다. 그녀는 53세의 교양 있는 부인이며 남편은 큰 공장을 경영하고 남편의 애정에 진심으로 칭찬하고 있다. 이들 부부는 어떤 불화도 없었고 두 자녀도 행복한 결혼을 했다. 그러나 1년 전 그토록 신뢰하는 남편이 묘령의 여자와 연애 중이라는 편지를 받았는데 부인은 그 편지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사건 이후 그녀의 행복은 완전히 깨져 버렸다. 이야기의 전모는 다음과 같다. 그녀의 집에는 가정부가 있는데 집안일을 터놓고 얘기하는 사이였다. 이 가정부는 출신이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자기보다 훨씬 성공해서 신사들과 교제하는 여자를 증오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인은 손님으로 방문한 노신사 앞에서 ‘만일 내 남편에게 애인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되면 얼마나 끔찍스런 일일까?’라고 말했다. 그 다음날 익명의 편지 한 통을 받았는데 사연인즉, 부인의 어제 한 말과 같은 내용이었다. 그녀는 반신반의했지만 이 편지가 짓궂은 가정부의 소행이라고 단정 지었다. 왜냐하면 남편 애인 이름은 가정부가 미워하는 그 여자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남편을 만나서 심한 비난을 퍼부었고 남편은 그런 사실을 완강히 부인했다. 그 후 두 사람은 가정부를 파면했지만 애인이라는 말을 들은 여자 쪽은 파면하지 않았다. 그 후 부인은 익명의 편지를 믿지 않을 만큼 냉정해졌다고 했지만 그 여자의 이름을 들먹이거나 길거리에서 그 여자만 보아도 폭발하였다.

 

결국 부인은 질투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데 그렇다면 망상은 어디에서 유래하고 어째서 망상의 내용이 질투일까, 질투 망상은 어떤 사람에게 나타날까? 하는 점에서 정신과 의사는 부인 집안의 유전적인 소인이라고 말할 것이다. 일면 타당한 면도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의문을 풀어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정신분석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우선 망상의 토대인 익명의 편지는 바로 환자 자신이 자극한 결과이고 망상은 전부터 이미 부인의 마음속에 잠재해 있었던 것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부인은 자기 사위에게 깊은 연정을 품고 있었다. 부인은 이 연정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고 혈연관계 때문에 부인의 연정은 사위에 대한 순수한 애정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부인에게 연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므로 의식의 표면에 나타날 수는 없었지만 계속 무의식 속에서 존재하여 무거운 압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래서 해결책으로 대치가 이루어진 것이다. 부인의 남편이 젊은 여자와 연애를 하고 있다면 자기도 젊은 남자를 사랑하고 있다 하더라도 부인의 양심의 가책은 가벼워질 것이다. 이 정신분석을 종합하면 망상은 의미심장하고 훌륭한 동기를 가졌고 환자가 겪은 감동의 체험과 인간관계를 갖고 있다. 그리고 망상은 반드시 다른 징후로 추측되는 어떤 무의식적인 정신 과정의 반응으로서 나타난 것이며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반대에 대한 망상의 저항은 위와 같은 관계 때문에 일어난다. 즉 망상은 그 자체로서 희망했던 것이며 위안의 일종이다.

 

물론 이 분석으로 모든 의문을 풀었다고 할 수는 없다. 어떤 의문은 좀 더 연구를 해야 하고 다른 의문은 특수한 사정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아무튼 정신의학과 정신분석학은 모순이나 대립보다는 상호 보완적이 되었을 때 완전할 것이다. 정신 생활의 심층에 있는 무의식 과정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과학적이고 심원한 정신의학의 연구는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증상의 의미

사례 2 : 환자는 30세쯤 되는 부인이다. 그 부인은 하루에도 몇 번씩 자기 거실에서 옆방 거실로 달려간다. 그리고 그 방 한가운데 놓여진 탁자 앞에서 일정한 자세를 취하고 하녀를 불러서 쓸데없는 일을 시키거나 어떤 때는 아무 일도 시키지 않고 돌려보낸다. 그런 다음 다시 자기 거실로 돌아온다. 이런 강박 행위는 10년 전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그녀는 나이 든 남자와 결혼을 했는데 첫날밤에 그가 발기 불능임을 알았다. 아침이 되자 남편은 ‘잠자리를 치우는 하녀에게 창피를 당하게 됐군’하면서 그 방에 있던 붉은 잉크병을 요에 쏟았다. 옆방 거실 탁자 위에는 큰 얼룩이 있다. 결국 부인은 하녀가 저 얼룩을 보게 하려고 탁자 옆에 서는 거였다.

 

이런 강박 행위에서 이 환자는 자기를 남편과 동일시하고 있다. 즉 부인은 남편이 이쪽 거실에서 옆 거실로 달려가는 흉내를 내고 있었다. 이 강박 행위는 붉은 잉크까지 필요로 한 남편의 발기 불능을 남편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고 있는 것이고 결국 첫날밤의 불행에서 남편을 건져내는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부인의 병에 숨어있는 깊은 비밀은 자기 병을 이유로 사회의 악평으로부터 남편을 보호하고 남편과의 이혼을 합법적인 것으로 만들며, 그가 생활을 편안히 보낼 수 있도록 해 주는 데 있다.

 

사례 3 : 환자는 19세의 건강한 부잣집 외동딸이다. 어릴 때는 말괄량이였고 명랑했지만 최근에는 뚜렷한 원인도 없이 완전히 신경질적으로 변해 버렸다. 어머니에게 언제나 불만이었고 우울하고 우유 부단하고 시기심도 강해졌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자기 혼자서는 광장이나 길을 걸어다닐 수 없다고 호소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취침 의례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방에 있는 쾌종시계를 멎게 하고 다른 시계는 모두 망 밖에 내놓는다. 그리고 화분과 꽃병이 뒤집어질까봐 책상 위헤 조심스레 늘어놓고 자기 방과 부모의 방 사이에 있는 문을 반쯤 열어놓게 한다. 이런 취침 의례는 조용하게 수면을 취하기 위한 방책이 아니라 오히려 소음을 일부러 들으려는 거나 다름없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침대 머리맡에 놓아두는 베개 받침이 목제 침대의 가장자리에 닿아서는 안되고 작은 베개는 커다란 쿠션 위에 반드시 마름모꼴이 되도록 놓아야하고 자기의 머리를 정확히 마름모꼴의 세로의 대각선상 위에 놓는다. 새털이불은 덮기 전에 털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고 속의 깃털이 다리 쪽으로 모두 모이게 되는데 그녀는 이 새털이불을 눌러서 반드시 다시 한 번 편편하게 만든다.

 

이 환자는 시계를 여성 성기의 상징으로 여기고 침실에서 추방했다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되었다. 화분과 꽃병도 여성의 상징이다. 첫날밤에 출혈하지 않고 처녀의 증거가 없다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감이 꽃병을 깨지 않으려고 조심했으며 이를 통해 처녀성과 첫 성교시의 출혈과 관련된 콤플렉스를 물리치려고 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쿠션은 여성이며 목제 침대 테두리는 남성을 의미하며 남성과 여성을 갈라놓고 싶었던 것이다. 즉, 성교를 하지 않도록 부모를 떼어놓으려 한 것이다. 새털이불을 흔들어서 속의 털을 모두 아래로 모아 불룩하게 만드는 것은 임신을 상징했는데 이불이 불룩해지면 도로 피곤 했다. 이는 부모의 성교 결과 아이가 태어나서 자기의 경쟁자가 되지 않을까 오랫동안 걱정했기 때문이다. 작은 베개를 마름모꼴로 놓고 머리를 대각선 방향으로 놓는 것은 마름모꼴은 여성의 음부를 상징하고 그녀는 아버지의 역할로서 자기의 머리가 음경을 대용하고 있었다.

 

사례 2, 3을 통해서 노이로제 증상은 오류나 꿈과 같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과 그 증상은 환자의 체험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증상에 있어서 개인차가 없고 여러 환자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정형적인 증상은 환자 개인의 체험과 연관시키기는 어렵다. 이 공통점 위에 환자마다 개개인의 조건을 둔다. 하지만 결국 정형적인 증상과 개인적 증상간의 근본 차이는 없다. 개인적인 증상이 환자의 체험과 관련되어 있다면 정형적인 증상은 그 자체로서 이미 정형적인 모든 인간의 공통적인 어떤 경험의 탓으로 돌릴 수 있다.

 

-외상에 대한 고착

사례 2, 3을 통해서 두 명의 환자는 과거의 한 부분에 고착되어 거기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현재와 미래가 단절되어 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사례 2의 환자는 현실적으로 오래 전에 포기한 결혼이 고착된 이유이고 사례 3의 환자는 사춘기 이전에 아버지에 대해서 나타난 성적인 애착이 이유이다. 외상성 노이로제는 정신분석의 견지에서 완벽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외상성 노이로제는 외상을 일으킨 사고의 순간에 대한 고착이 그 병의 근원이다. 이런 점에서 다른 노이로제와 공통적이다. 과거의 어느 시기에 대한 고착은 노이로제 이외의 영역에서도 많이 발견되고 어느 노이로제이든 고착을 포함하고 있지만 고착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노이로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사례 2)환자는 강박 행위가 그녀의 과거의 경험과 연관이 있는지 알지 못하고 강박 행위를 하는 목적(과거의 애타는 사건을 바꾸고 사랑하는 남편을 과대 평가하려는 목적)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른다.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그녀의 강박 행위는 심적 과정의 소산이며 무의식적인 심적 과정이 존재한다고 주장할 때는 이와 같은 상태를 일컫는다. 즉, 강박 노이로제의 관념과 충동으로 미루어 정신에는 무의식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확실할 수 있다. 증상의 의미는 항상 무의식적이라는 것을 알았고 무의식의 대상물이다. 증상은 방해받고 저지되고 무의식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안 되었던 과정에서 나타난다. 그래서 치환이 생겼다. 즉, 무의식적인 과정이 의식적으로 되자마자 증상은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이 과정은 환자의 내부적인 변화에 의거해야 한다는 필수 조건이 있으며 또한 목적을 가진 마음속의 작업에 의해서만 일어날 수 있다.

 

정신분석의 요법인 모든 병의 유인인 무의식을 의식으로 바꾸는 일은 환자 기억의 결손을 메꾸어 건망증을 제거해도 증상은 사라진다. 그렇지만 결국 전자나 후자나 마찬가지이다. 노이로제 증상의 발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노이로제 환자의 건망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 반박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사례 2환자는 첫날밤의 광경을 잊어버리기는커녕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고 사례 3환자도 비슷하다. 하지만 사례 2환자는 강박 행위가 첫날밤의 광경과 비슷하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했고 이 점은 사례 3환자에게도 적용된다. 즉 두 사람은 기억의 탈락은 없었지만 기억의 재생과 기억의 상기를 가져다주는 연결이 중단되어 있다. 강박 노이로제와는 달리 히스테리의 특징은 심한 건망증이다. 히스테리성 건망증은 정신 생활에 있어서 어렸을 때의 인상을 숨기고 있는 유아형 건망증의 직접적이며 계속적인 것이다. 한편으로는 최근의 경험마저도 잊어버릴 수 있고 병의 동기는 건망증에 의해서 전부는 아닐지라도 일부는 침식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히스테리와 노이로제는 증상의 유래, 목적(어디로), 이유(무엇 때문에)에서 비슷하다. 증상의 유래란 외부로부터 와서, 꼭 한 번은 의식된 후에 망각되어 무의식이 된 인상을 말한다. 그런데 증상의 목적과 의향은 애초에는 혹시 의식되었는지 모르겠지만 한 번도 의식에 떠오르지 않은 과정으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무의식에 머물러 있는 내부의 심리적인 과정이다.

 

마지막으로 현대 심리학의 연구는 자아는 정신생활의 주인이면서도 그 곳에서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아주 적은 보고에 만족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가장 심한 비난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이는 정신분석의 사명이다.

 

-저항과 억압

노이로제 환자는 치료 기간 동안 의사에게 집요한 저항을 보인다. 그렇다고 의사는 저항을 일방적으로 나무라서는 안 된다. 저항은 환자의 과거 생활에 대한 의미 심장한 재료를 많이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 저항을 치료적인 올바른 방향으로 돌리는 적절한 방법을 알고만 있다면 이 저항이야말로 가장 훌륭하게 분석을 돕는다. 저항의 극복은 분석의 본질적인 작업인 동시에 환자를 위해서 무언가 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상시켜 주는 작업의 한 부분으로 노이로제에 대한 정신분석의 역학적인 견해의 기초가 된다.

 

저항을 한다는 사실은 상태의 변화에 대한 저항이 강력한 힘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이 힘은 과거에 이 상태를 만들어 낸 것과 동일한 힘이라고 볼 수 있다. 증상은 어떤 문제에 심적 과정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때 의식상에 떠오르게 된다. 그 결과 이 심적 과정은 언제까지나 무의식에 머물러서 증상을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이와 유사한 반항이 분석 요법 중에도 작용하며,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바꾸려는 노력에 대해 다시 반항한다. 이것이 저항이며 저항으로 나타나는 병원적인 과정을 ‘억압’이라 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무의식적인 심적 과정이 모두 의식적인 심적 과정으로 옮겨갈 수 없다. 무의식이 의식으로 옮겨가기 위해서는 의식 문지기(꿈에 있어서 현재몽의 형성에 간섭한 검열)의 검열을 받아야 하는데 문지기에 의해 쫓겨났을 경우 이 움직임은 의식화 될 수 없고 이 상태를 ‘억압’이라고 한다. 분석 요법으로 억압을 없애려고 할 때 저항으로 알고 있는 것이 문지기이다.

 

꿈을 일으키는 ‘낮은 잔재’는 전의식적 재료이며 이 재료는 수면 상태에서 억압된 무의식적인 원망 충동의 영향을 받아 잠재몽을 만들 수 있다. 무의식 체계의 지배 아래서 이 재료는 가공을 받고 이 가공은 전의식 체계에서는 알려져 있지 않거나 예외적으로만 허용된다. 어떤 과정이 전의식과 무의식의 체계에 속하느냐는 의식과의 관계로써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의식이 전의식에 속하기 때문이다.

 

앞의 사례 2, 3뿐만 아니라 다른 사례를 분석하더라도 증상은 환자의 입장에서 성적 만족을 얻는다는 목적을 지향하고 있다. 다만 억압, 증상 형성, 증상 해석에 대해 이야기한 것은 (전이)노이로제의 세 가지 형태인 불안 히스테리, 전환 히스테리, 강박 노이로제에서 얻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아무튼 성적 원망의 만족을 현실에서 얻을 수 없으면 욕구 불만 때문에 발명한다는 점에서 증상은 실생활에서 채워지지 않는 원망의 대리 만족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물론 증상은 성적 만족을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든가 빼앗는다든가 하는 반대의 목적을 갖고 있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정신분석에서 상반성은 모순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증상은 두 가지 상반되는 지향이 충돌함으로써 생긴 타협의 소산이다. 히스테리는 대개 하나의 증상 속에 두 가지 목적이 동시에 있고 적극적인 원망 충족이 우세하며 강박 노이로제는 두 가지 목적이 대개 따로따로 떨어져 있으며 소극적, 금욕적인 성질이 우세하다.

 

-인간의 성생활

히스테리 증상에 관한 연구를 통해서 신체의 기관은 그 본래의 기능 외에 성감적인 의의를 갖고 있으며 만일 그 기관에 성감적인 요구가 너무 커지면 본래의 기능이 손상된다. 성과 무관한 기관에 나타나는 무수한 감각과 신경 흥분은 도착된 성충동의 충족으로서의 히스테리의 본성을 보여준다. 이 도착된 성충동에서는 성기의 의의가 다른 기관에 빼앗기고 있다. 다만 성도착은 쉽게 현상을 볼 수 있지만 히스테리는 증상 해석이라는 우회를 통해서야 알 수 있다.

 

성도착 경향은 유아기에 근원을 두고 있으며 개개의 충동으로 분해된 유아 성욕이 확대라는 점이다. 어린이에게는 성욕, 성적 만족이 없고 사춘기 때부터 눈 뜬다는 주장은 생물학적으로 근거가 없다. 다만 사춘기때는 육체적, 정신적 재료를 가지고 생식 기능이 눈뜬다. 이렇듯 생식 기능과 성욕은 다른 것인데도 불구하고 혼란을 일으키는 것은 교육의 결과다. 왜냐하면 어린이의 성본능을 억제시키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어린이에게서 성의 첫 충동은 생활에 필요한 다른 기능에 의존해서 나타난다. 어린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은 영양 섭취에 있다. 아이가 젖을 배불리 먹고 어머니 젖가슴에서 잠이 들 때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먹고 싶은 생각도 없으면서 영양 섭취의 동작을 되풀이 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 아이는 젖꼭지를 빠는 행위 그 자체에 만족감을 느낀다. 즉, 어린아이도 쾌감을 얻기 위해 행동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지점에서 교육은 쾌감과 영양 섭취의 조건을 떼어놓는다. 아무튼 쾌감은 입과 입술 부분에만 관계가 있고 정신분석에서는 이 부분을 성감라고 칭하고 젖꼭지를 빠는 것으로 얻어진 쾌감을 성적 쾌감이라고 부른다.

 

아이가 젖을 빤다는 행위를 하면 어머니라는 대상은 버려지고 자기 자신의 몸의 일부로 그것을 대용하게 된다. 자기의 손가락이나 혀를 빨고 외적인 동의 없이도 쾌감을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신체에서 제2의 성감대를 강화하려고 한다. 이를 통해서 유아 성욕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성적 원망의 만족과 결부되어 나타나서 자기성애적으로 표출된다. 그리고 아이에게 성생활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도착적인 성질이다. 왜냐하면 성욕이 생식 기능으로 바뀌기에는 아직 불충분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한편 생식 목적이 포기되어 있는 것은 모든 도착에 공통된 특징이다.

 

이번 강좌는 노이로제와 도착은 많은 관련이 있고 도착과 관련하여 유아 성욕에 대해 분석했다. 정신분석에서 성이라는 개념을 확대함으로써 이 개념은 도착자와 어린아이의 성생활까지 포함할 수 있게 되었다. 정신분석 이외에서 성의 개념은 생식과 관련되어 있지만 정신분석에서는 생식뿐만 아니라 독립된 목표로써 쾌감만 추구하는 것도 포함한다.

 

-리비도의 발달과 성의 체제

앞 강좌에서 봤듯이 성과 생식은 일치하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성적(性的)과 생식기적(生殖器的)을 동일한 것으로 여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성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 그들에게도 한 두 가지 도착의 특징이 있다. 우선 키스, 왜냐하면 키스는 쌍방의 성기 대신 성감대인 두 입을 결합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상에 접촉하거나 은근히 바라보는 행위, 성흥분의 절정에서 상대편을 꼬집거나 무는 행위는 반드시 성기에 의해서만 오르가슴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이들을 도착자속에 넣는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도착의 본질은 성적 목표를 잘못 갖거나 성기를 다른 것으로 대용하는 것은 아니고 도착이라는 이상 행위를 실현시키며 생식 목적의 성행위를 배타하려는 특성이 있다. 즉 도착이라도 정상적인 성행위를 강화시키는 수단이라면 도착이 아니다.

 

도착 성욕은 집중적이며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가고 부분 본능이 우세하다. 부분 본능이 자기의 목적에 다른 부분 본능을 종속시킨다. 이런 점에서는 성적 목표가 달라진 것 외에는 도착 성욕과 정상 성욕 사이에 차이가 없다. 반면 유아 성욕은 집중과 조직이 없고 각 부분 본능이 자기 식대로 쾌감을 추구하고 있다. 아이의 성생활은 3세 이후부터 어른의 성생활과 흡사해진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성기를 우선적으로 하는 견고한 체제가 결여되어 있고 도착의 특징이 뚜렷하고 욕구 전체의 강도도 약하다. 성의 발달 단계, 즉 리비도의 발달이 가장 흥미 있는 시기는 이 시기 이전이다. 한편 리비도 발달의 전환점은 모든 성적인 부분 본능이 성기기의 위력에 종속될 때 이루어지며 모든 성욕이 생식 기능에 쓰여지는 때이다. 즉, 유아기의 성생활은 분리된 성생활로서 각 부분 본능이 제가기 독립하여 활동하고 있다.

 

❋참고로 프로이트는 성격 형성 시기 다음과 같이 보고 있다.

첫 번째 시기는 구강성격 단계이다. 이 시기는 태어나서 한 살까지이다. 이 시기의 아이들의 욕구는 입에 있다. 이 욕구를 어느 정도로 만족시키느냐에 의해서 성격이 결정된다고 한다. 너무 차단해도 문제가 되고 지나치게 만족시켜도 문제가 된다. 두 번째 시기는 욕구가 항문에 있는 성격 형성 시기로써 두 살까지이다. 이때는 사디슴적인 부분 본능과 항문적인 부분 본능이 강하다. 세 번째 시기는 고환 성격 형성 시기로써 서너 살 때이다. 아들은 아버지를 어머니를 차지하려는 경쟁자로 본다. 이때 아들은 아버지를 이기려는 게 아니라 닮으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이른바 동일시의 욕구이다. 그럴 때 아버지가 잘 이해를 못해서 구박하면 동일시의 욕구가 깨지고 그렇게 되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잘못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가 잘못된다. 이것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 한다. 딸의 경우는 어머니와 닮으려는 욕구가 있는데 이것이 잘못되었을 때 아버지와 딸 사이가 잘못되는 데 이것을 ‘엘렉트라 콤플렉스’라 한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이처럼 태어나서 네다섯 살 까지가 주로 성격이 형성된다고 한다. 그 이후에는 사춘기부터 죽을 때까지이다. 이때는 성기적 대상에 대한 욕구이다.

 

다른 아이가 태어나면 오이디푸수 콤플렉스는 확대되어 가족콤플렉스가 된다. 남동생이나 누이동생을 증오하고 배척하고자 하는 의향을 갖는다. 그리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종종 노이로제 환자가 괴로워하는 죄의식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다. 아이들은 부모와 분리됨으로써 유아기를 마치고 사회의 구성원이 된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와 반목 상태에 있다면 화해하고 아버지의 지배를 받고 있다면 아버지의 압박에서 행방되는 것이다. 하지만 노이로제 환자는 이러한 과제가 해결이 잘 되지 않는다. 아들은 평생 아버지의 권위 아래서 굴복하고 자기의 리비도를 가족 이외의 성 대상으로 옮기지 못하기 때문에 노이로제의 핵심으로 간주된다.

 

-발달과 퇴행의 관점

리비도의 발달은 두 가지 위험성을 갖고 있다. 하나는 제지의 위험이고 다른 하나는 퇴행의 위험이다. 성충동의 어떤 부분은 계속 발달을 하지만 다른 부분은 발달의 조기 단계에서 정지해 있을 수 있고 이를 ‘고착’이라고 한다. 퇴행은 앞서 나간 부분에 후퇴 운동이 작용해서 초기의 단계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충동의 기능이 외부의 강한 방해 때문에 발휘되지 못하면 퇴행의 동기가 된다. 발달 도상에서 고착이 강하면 강할수록 기능은 고착점까지 퇴행하여 외부의 장애물을 더 피하게 된다. 퇴행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리비도에 의해서 충당된 첫 대상으로 역행하는 유형(이 유형은 근친 상간의 성질을 갖고 있다)과 성의 체제 전부가 초기의 단계로 되돌아 가는 유형이다. 이런한 퇴행은 노이로제에 나타나서 그 메커니즘에 큰 역할을 한다.

 

퇴행과 억압은 구분될 필요가 있는데 억압은 전의식 체계에 속하는 행위가 무의식 체계로 다시 되돌아가는 과정이고 무의식이 검열로 인해 밀려날 때도 억압이다. 즉 억압은 성과 관계가 없고 심리학적인 과정이다. 반면 퇴행은 리비도가 발달의 초기 단계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리비도의 퇴행에서 억압이 없이는 노이로제가 아닌 도착이 되어 버린다. 리비도를 만족시킬 기회를 빼앗기면 노이로제가 되는데 그 증상은 충족되지 않은 만족에 대한 대용물이다. 물론 리비도의 욕구 불만에 빠진 사람이라고 다 노이로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성적 흥분은 다른 것으로 대치할 수 있다. 대치할 수 있는 과정 중의 하나는 문화적으로 기여하는데 이를 ‘승화작용’이라 한다. 하지만 승화작용은 항상 리비도의 일부분만을 방출시킬 뿐이고 불만스런 리비도의 양에도 한계가 있다. 리비도의 발달이 불완전하면 리비도는 고착되고 그 결과 현실에서는 만족을 얻을 수 없다. 결국 리비도의 고착은 욕구 불만과 화합하여 노이로제 강력한 인자이다. 그럴 때 고착은 소인적, 내적 인자고 욕구 불만은 우발적, 외적 인자이다.

 

갈등은 욕구불만에서 생겨난다. 충족을 박탈당한 리비도는 다른 통로와 다른 대상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다른 대상과 통로는 인격의 다른 부분에 거슬리게 된다. 그래서 거부권이 행사되면 만족을 얻는 새로운 방법이 불가능해진다. 이것이 갈등의 조건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외적 욕구불만은 만족의 한쪽 가능성을 제거하고 내적 욕구불만은 만족의 다른 쪽의 가능성을 제거한다. 그 결과 갈등이 나타난다. 이럴 때 리비도의 흐름에 반대하는 힘을 ‘자아 충동’이란 한다. 즉 갈등은 자아와 성욕 사이의 갈등이다. 정신분석은 바로 성충동과 자아 충동의 구별 위에 세워진 것이다. 자아와 성욕은 애초부터 대립하고 있다기보다는 자아는 어떤 단계에서든지 성의 체제와 협조하고 적응하기 위해 노력한다. 리비도가 발달 과정에서 강하게 고착되었을 때 자아는 묵인하거나 그에 따른 정도로 고착되기도 하지만 이 고착에 대해서 자아가 찬성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때 자아는 리비도가 고착받은 곳에서 억압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노이로제의 원인은 ➀욕구 불만 ➁리비도의 고착 ➂리비도와 자아 발달에서 생긴 갈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