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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교양인을 위한 오세철 강의➃

연이야 2013. 6. 27. 17:52

3강 소련에서의 계급의식과 붉은 파시즘

러시아 혁명이 프롤레타리아혁명이었다는 데는 큰 이견이 없다. 그러나 스탈린주의로의 반혁명이 왜 형성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볼세비즘과 레닌주의와의 연속성을 파헤치는 논거는 적다. 혁명 이후 몇 달 안에 이루어진 신분제/군대 계급 폐지, 철도 노동자 1일 8시간 노동 실시, 낙태법 제정 등등의 소비에트 제도적 성과는 높이 평가해야 한다.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의 포위, 독일 혁명 실패, 내전과 같은 불가피론이 아닌 노동계급의 소외에 대한 진지한 분석과 성찰이 있었는가에 대해 레닌을 포함한 볼세비키 지도자들 누구도 그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당과 노동계급은 혁명에 대한 열정, 대외적 군사투쟁, 사유재산 몰수 운동 등등에 일치했다. 하지만 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해석과 권력 집중, 노동 군사화 정책, 강제 노동, 임금 차별, 식량 분제, 지역 간의 차이 문제에 대해서는 상호불신과 불편한 관계였다. 그렇게 되면서 볼세비키의 투쟁 대상이 반혁명 세력이 아니라 노동이탈자나 소극적인 노동대중에게로 옮겨졌다. 노동계급은 점점 배제되었고 대상화되었으며 생산과 권력에서 소외된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은 소멸되어 갔다. 소비에트는 노동자의 참여가 권력의 결정적 기반이었지만 1918년 4월부터 12월까지는 위기를 맞고 쇠퇴하는 시기이다.

 

소련에서 폭력과 억압의 사이클은 네 가지이다. 첫째는 1917년부터 1922년 말까지로 레닌이 권력 장악과 함께 폭력과 억압을 내전의 필요한 부분으로 본 시기이다. 두 번째는 농민에 대한 스탈린주의의 집단적 공격이 일어나고 폭력은 일상화된다. 집산화는 농민에 대한 군사적, 봉건적 착취이며 1933년 대기근에서는 스탈린 체제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를 기록한다. 대테러(1936∼38)시기인 세 번째는 스탈린 시대 사형선고의 85% 이상이 이루어졌다. 네 번째는 새로운 지역에서의 소비에트를 통한 ‘위대한 애국전쟁’의 시기로 조선인 추방 같은 새로운 희생자가 생겨난다.

 

볼세비키는 유럽의 맑스주의 전통을 계승했지만 러시아의 혁명적 토지 운동에 강한 뿌리를 두고 있다. 19세기 동안 이러한 혁명 운동의 한 부분이 폭력 활동과 연결되어 있다. 이는 서구의 혁명적 전통이 제공한 초기의 폭력의 정당화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정치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러시아 볼세비즘의 특성을 만든다. 즉, 아래로부터의 대중봉기라는 민중주의적 전략과 위로부터의 엘리트 테러와의 결합이 러시아에서 일어나게 된 배경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볼세비키의 극단적 폭력 경향성을 설명해주지는 못하고 이는 당과 레닌에 의해 부과된다. 레닌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군사 규율의 지하조직과 연관된 직업혁명가로 구성된 혁명당의 새로운 개념을 만들었고 이 목적을 위해 네카에프 모델을 채택하고 발전시켰다.

 

4강 중국에서의 마오주의의 환상과 적색 테러

이강에서는 계급투쟁의 역사를 보는 맑스주의 관점을 유지하면서 맑스주의 사상과 실천으로부터 유리된 문화, 이데올로기와 사회심리적 조건들을 검토한다. 중국 혁명 과정은 전 자본주의 생산양식으로부터 임노동에 기초한 국가자본주의와 같은 것으로 가는 이행에 불과하다. 1928년부터 노동자는 더는 집단으로 당에 참여하지 않았고 당이 더는 공산주의당이 아닐 때 적군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농민과 룸펜프롤레타리아트가 당에 들어왔다.

 

중국에서 문화의 개념은 밖의 세계를 인식하거나 개념화하는 방식의 구체적 표현일 뿐만 아니라 그를 강화시키고 영속화하는 것이며, 세계를 지각하고 인식하는 올바른 방식으로서의 세계관을 의미한다. 즉 사상은 경제적 토대에 따를 필요가 없으며 사회주의가 자동으로 프롤레타리아 사상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이는 인간의 힘에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인간 자원을 지나치게 혹사하는 문제와 맑스주의와의 충돌을 가져온다. 중국인민혁명 이후 문화(이데올로기)의 기능은 인민의 수동성을 생산적 에너지로, 가족에 대한 충성을 국가에 대한 충성으로 변형시키면서 국민성의 나쁜 부분을 고치려는 노력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마오주의는 제국주의 전쟁에서 애국의 깃발 아래 노동하는 대중을 동원하는 부르주아 전선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마오주의는 공식적 스탈린 교본의 세속적 표현이고 스탈린 반혁명의 이념적 체계를 적용한 것에 불과하다. 결론적으로 마오주의는 모든 혁명 원칙을 버리고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의식을 혼동시키고 가장 어수룩하고 편협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로 대체시킬 뿐이다. 마오시대는 제국주의 위협에 대항하는 민족 정체성의 유지나 노동자, 농민에 대한 높은 착취를 기반으로 하는 자급자족적 명령경제를 확립함으로써 자본주의의 다음 단계로의 기초를 마련했지만 1978년 자유시장 경제개혁으로의 이행은 수많은 실업자와 노숙자가 넘쳐나는 중국으로 변모시켰다.

 

마오주의가 전통적 중국문화의 절충적 선택을 통하여 맑스주의의 원칙과 관련 없는 유토피아적 환상이 된 데에는 절대다수의 인민인 농민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대약진 운동도 그 목적이 유토피아적 환상을 실현하는 데 있었다. 하지만 대약진이 실패하자 자본주의가 급속하게 확산되었는데 이는 마오식 공산주의에 대한 징벌이었다. 계급의식이 없는 농민을 중시하는 마오주의의 중국은 자연스럽게 반지성주의와 연결된다. 이런 상황은 중국의 뿌리 깊은 관료주의와 연결된다. 중국 관료주의는 하층 소유 사회의 정치에 의해 좌우되었고 우량화는 정화로 바뀌었다. 권세가 있는 기층 지도자들은 자신과 견해를 달리하는 자들을 배제하고 자신의 권력 환경을 정화하였으며, 자신에게 보복하려는 자와 권위에 위협이 되는 자들을 제거하였다. 권력은 우량화 된 이후 감독받지 않았고 부패하였다.

 

1927년에서 1946년까지 중국 혁명은 테러와 분리될 수 없다. 1927년에서 1928년의 몇 달은 문화혁명의 시기와 맞먹는 민주적 테러 체제의 확립시기였다. 1946년에서 1957년 시기는 농업 개혁과 도시에서의 숙청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1949∼52년 동안만 2백만 명이 숙청당했다. 그리고 1966년부터 1976년의 문화혁명은 무정부적 전체주의 시기이다. 이 시기의 사망자는 40만∼100만 내지 100만∼300만 정도로 추산된다. 유교전통과 농민에 기반한 공산주의는 결국 말의 향연과 관념론에 빠지고 과도한 의지주의에 근거한 폭력과 열광으로 나아가 파시즘적 토대를 형성한다.

 

덩샤오핑의 자유주의 시장개혁은 마오의 2단계론에 근거하고 있다. 사회주의라는 머나먼 미래를 위해서는 장기간의 자본주의 발전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1989년 천안문 사태까지의 1차 개혁은 대다수 노동자의 개인 소득이 오르지 않았고 당 간부 자녀의 도시 실업문제가 발생했다. 그리고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려 했지만 마오 시대의 명령 경제는 장애가 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의 자유주의 개혁은 특별기업지역, 중앙계획의 폐지, 국가 금융 및 개혁의 재조직화였다. 중소기업은 당과 국가기구의 하급 수준으로 위양하여 이윤분배협정을 맺고 지방관리와 공장관계자의 이윤추구를 허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천안문 사태로 다시 경제에 대한 직접 통제로 전환된다. 개혁으로 나타난 자본가계급은 당과 국가의 틀 속에 포괄되었고 국가관료주의에 종속되었다. 이 새로운 계급은 권위주의적 일당국가의 정치적인 현상유지를 방어하는 공통 이해를 지닌다.

 

일당국가의 지속적 지배와 중국 부르주아의 응집성과 배타성 때문에 1990년대 초 이후 일어난 경제개혁에서 중국의 새로운 자본가 계급은 중심적 구실을 하고 있다. 199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두 번째 개혁이 진행되고 있는데 경제 관계의 상품화와 화폐화로 이행하고 있으며 이는 지구적 자본축적으로 통합됨으로써 거대한 노동력을 착취할 수 있고 계급투쟁을 봉쇄하여 산업 평화를 유지하는 중국 정부의 능력으로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한편 미국은 80년대까지 경제성장은 채무로 유지되었다. 이후 높은 군사비 지출, 동북부의 노조가 있는 제조업 중심에서 남서부의 노조 없는 컴퓨터 산업으로의 이전은 노동계급의 약화, 임금 동결, 절대적 잉여가치를 증가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부채 기반의 소비거품으로 자본의 취약성을 은폐하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의 부채는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다. 왜냐하면 미국은 아직 과학기술의 세계적 중심이며, 세계의 광범위한 산업기지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세계 최대시장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윤율 저하와 선진 자본주의 내에서 투쟁적 노동계급 사이에서 짓눌려있던 1970, 80년대 자본은 주변부의 값싸고 복종적인 노동력을 찾아야 했고 그것이 신흥공업국에서 중국으로 이동했다. 중국의 부상은 미국 헤게모니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헤게모니를 강화시키고 있다. 즉, 중국의 공업화는 거대한 수출단지로 중국을 이용하는 초국적 기업과 서구시장의 거대한 할인소매점의 합작품이다.1 중국의 본질적 문제는 시장의 무정부성으로 인한 사회적 재앙과 특정 계층으로의 부의 집중이다. 중국 자본주의는 노동집약적, 노동억압적, 불평등하고 무정부적이고 환경파괴적인 자본주의이다. 부패의 만연, 알코올 중독, 매매춘 등 모든 사회 악이 노동자의 독립적 역할을 억압했고 시장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중국은 중국 자본가와 세계 자본 이해의 집단적 대리자이며 노동계급을 자본의 논리로 무자비하게 착취하는 국가 자본주의국가이다. 중국 노동계급의 투쟁은 광범위하게 전개되고 있고 이에 맞서 중국 정부는 무자비한 억압을 자행하고 있다. 이는 억압의 상황을 뚫고 일어나서 세계혁명의 주체로 등장할 가능성도 있지만 계급의식이 민족주의로 변질하여 세계전쟁으로 비화하고 중국식 파시즘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

 

5강 볼리바르 혁명의 부르주아 민족주의와 노동자계급에 대한 억압

21세기 남미의 좌선회는 과거의 보호주의, 국유화, 수입대체산업육성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남미 좌파 정부는 가치생산의 제약과 사회적 폭발을 방지할 필요 사이에서 운신할 여지가 적기 때문에 미국 헤게모니에 어떤 위협도 될 수는 없다. 그래서 남미 자유무역지역은 반양키를 위장한 자본주의 지구화의 핵심적 요소를 암묵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여전히 미국은 라틴 아메리카의 무역 파트너이며 투자 자본의 가장 큰 원천이다. 남미 좌파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노동계급과 대중에 대한 통제를 유지하는 것뿐이며 그것은 양키에 맞서는 대중을 동원하여 라틴 왕국을 꿈꾼 부르주아 혁명의 노예주이며 지도자인 시몬 볼리바를 닮는 것이다.

 

1959년 집권한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는 강제노동수용소와 감옥을 운영하는 붉은 게슈타포와 특수타격부대를 창설하여 학살과 정치범을 양산했다. 카스트로와 게바라가 지도하는 쿠바 혁명의 주력인 게릴라 부대는 기본적으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로 치장하고 있다. 즉, 부르주아의 한 분파가 다른 분파를 전복하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군사적 표현이었다. 스탈린주의, 마오주의, 카스트로주의의 공통적 특징 중 하나는 대중의 의식에 지식인이 이끄는 혁명의 주체를 신화적 빈농으로 만들면서 노동계급을 불신하고 경멸하는 것이다. 쿠바에서 노동계급을 통제하는 주요기관 중 하나는 노동조합이다. 이미 1960년대 쿠바 지도부는 관료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 모형에 기반한 스탈린주의 노동조합으로 전환시켰다. 노동계급에 대한 이러한 공격은 미제 반대와 쿠바 인민의 방어로 정당화되었다.

 

차베스주의의 승리는 볼리바르 사회주의, 즉 베네수엘라 부르주아가 지역 권력으로 재확인되는 국가 경영의 모델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선동적인 민중주의 전략은 민중들에게 빈곤을 극복할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주고 있다. 하지만 차베스주의는 불안정한 관리, 즉 중간 계급 뿐만 아니라 노동자와 최빈곤층을 더 가난하게 하고 하향 평준화하는 평등주의를 의미한다. 세계 자본의 제국주의 시대에는 어떠한 독립적 자본주의도 나타날 수 없고 80, 90년대를 거쳐 2000년대에도 민족해방투쟁에 대한 환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민족해방투쟁은 두 가지 다른 형태 반세계화 운동과 미제국주의 반대운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반세계화운동은 ‘자본주의를 오직 하나의 가능한 체제이고 그 개혁이 하나 뿐인 대안이다.’와 같은 부르주아의 이념적 선전을 밑바탕으로 삼고 있다. 미제국주의 반대운동은 반미라고 하는 민족주의 정서와 빈곤화되는 농민과 도시빈민과 노동자의 사회 불만을 밑거름으로 삼은 남미의 민중주의 경향이다. 이른 두 흐름의 결합이 ‘차베스주의’이다.

  1. 매년 600억 불 이상이 수천만 농민의 프롤레타리아화로 이루어진 값싼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 중국으로 쏟아지고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