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프리드리히 엥겔스 저)

연이야 2014. 3. 11. 15:17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이하 기원)은 원시공산제 사회에서 계급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대한 최초의 포괄적인 분석이자 완성된 저서이다. 엥겔스는 국가의 본질은 계급의 권력도구라고 분석하며 국가는 일정한 발전 단계에 있는 사회의 산물로 인류는 국가 없이도 아주 오랫동안 생활해왔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엥겔스는 국가가 없었던 원시공산제 사회를 증명함으로써 계급 소멸과 국가 소멸의 역사적 가능성을 입증했다. 즉, 이 책은 사적유물론을 폭 넓게 심화시키고 다방면으로 확산시켰으며 맑스주의 국가론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 ‘기원’이 집필되던 시기의 맑스주의 5가지 쟁점

①국가의 역사, 본질, 기능-특히 독일의 비스마르크의 국가사회주의라는 복지국가 명제는 계급 착취와 대립을 국가를 통해서 조정할 수 있다는 환상을 조장했다. 그 시발점은 라살레주의였다. 이에 대한 비판이 고타강령비판이었다. 그리고 엥겔스는 맑스의 ‘철학의 빈곤’ 독일어 초판 서문을 이 쟁점을 논쟁하기 위한 기회로 삼았고 ‘기원’은 이 서문에 대한 구상과 거의 같은 시기에 이루어졌다. ②노동자 계급과 농민 계급의 관계, 국가와 조합제도의 관계, 자본주의 발전과 농민 집단의 관계-그 당시 독일 인구의 절반은 농민이었다. 엥겔스는 노동자, 농민에게 토지의 사유화는 공동소유를 기반으로 한 원시공산제 사회의 몰락의 결과라는 것을 보여주고 사유재산, 국가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에서 공동소유의 한계를 역사적으로 해명할 필요성을 느낀다. 즉, 착취 사회 내에서는 어떤 사회주의 생산양식도 발생할 수 없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③현재, 과거, 미래의 여성, 결혼, 가족의 역할-자본주의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은 구조적이다. 그 결과 혁명적 운동에 여성이 참여함으로써 여성의 차별도 폐지시킬 수 있다. 그래서 노동자 운동을 위해, 사회 안에서 여성의 지위뿐만 아니라 가족의 기원과 본질에 관해 이론적으로 명백하게 할 필요성이 있었다. ④진화론의 보급-다윈주의는 변증법적이고 역사적인 유물론에 반대하는 부르주아적 구상으로 이용될 수 있고 이용되기도 했고 현재에도 존재한다.(사회진화론, 사회생물학) 그래서 엥겔스는 이상주의적 진화론과 논쟁을 벌이면서 자연에 대한 유물론적 인식에 대한 확장성(‘원숭이가 인간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노동이 한 역할’에서는 동물왕국에서 인간사회가 생성되었고 자연사적 진화와 인간적인 사회의 역사를 규정하는 합법성 간의 질적 차이 강조하고 이 연구는 ‘기원’의 토대가 되었다)을 느겼다. ⑤과학적 사회주의에 대한 사이비 과학의 공격-여기에 대해서 엥겔스는 이론적이고 세계관적인 질문들을 추상적으로 다루지 않고 역사적 유물론적 인식과 보편화로 노동자대중이 공감할 수 있도록 역사를 기술할 필요가 있었다.

 

○모건의 ‘고대사회’와 엥겔스의 ‘기원’

다윈의 추종자인 모건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저술했고 이를 바탕으로 엥겔스는 인간의 성이 동물의 왕국에서부터 시작했고 계급사회로까지 발전했다는 이론을 정립하였다. 또한 모건은 사유재산, 계급, 국가 없이도 정상적인 기능을 하는 원시 상황으로부터 자본주의보다 더 높은 사회는 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경제와 사회현상과의 변증법적 관계에서 한계를 드러내는데 엥겔스는 이런 모건의 진화론적이고 기계적인 형태 변화에 사회경제적 토대를 연관시킨다. 그럼에도 엥겔스는 부권제 씨족 앞에 모권제 씨족이 선행한다는 모건의 발견은 다윈의 진화론, 맑스의 잉여가치론과 같은 정도의 의의가 있다고 평가한다.

 

○ 군혼, 대우혼, 가부장제

시 기

경제 생활

결혼, 가족 제도

사회 생활

야 만

낮은단계

채집

군혼(개별부부들의 일시적 대우관계 인정) 무규율성교(부모 자녀간, 형제자매간 성교 허용)

 

중간단계

채집, 어류

군혼(부모 자녀간 성교 금지→형제자매간 성교 금지),푸날루아1 가족, 족외혼

씨족단위, 군혼에서는 모계혈통만이 인정(모권 중심)

높은단계

채집, 어류,

수렵 본격화

활/화살 사용

미 개

낮은단계

토기 사용

대우혼2(결혼금지가 확대, 복잡해짐에 따라 군혼이 불가능)남자에게는 정조를 지키지 않을 권리, 여자는 정조 요구, 이혼 양쪽 모두 요구, 초기 모계혈통

농업과 목축의 최초의 사회적 분업, 노예발생→노동도구, 노예, 가축 개별 가장의 사적소유 발생→남편의 지위 강화→모권 중심주의 폐지, 씨족단위

중간단계

가축 사육, 관개 농업

청동기 사용

가부장제 가족(과도기)-노예통제

대가족공동체, 씨족단위

일부일처제, 남자 권위↑, 남성혈통중심

씨족해체과정

높은단계

철 사용, 대규모 농경

생활수단의 증대

 

원시공산주의적 세대의 가정에서는 여성의 지배가 일반적이다. 왜냐하면 자녀에 대한 모계 혈통은 확실하고 여자들은 대부분 같은 씨족에 속하는 반면 남자는 여러 씨족에 분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여성 지배의 현실적 토대가 된다. 그리고 결혼제도만 봤을 때 근친, 원친, 인척까지 배제되면서 군혼은 불가능하게되고 이와 같은 이유로 대우혼으로 이어진다. 이런 점에서도 개인적 성애라는 것 때문에 단혼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현재의 일부일처제와 사랑은 무관)

 

대우혼에서 단혼으로 이행한 물적토대는 원시공산주의 사회에서 서서히 그러면서도 혁명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의 시발은 지금의 인도 북부, 중앙아시아, 서남아시아였고 가축의 사육, 즉 목축이었다.(최초의 사회적 분업) 가축에서 생기는 우유와 고기에 대한 개별 가족의 사적소유가 발달하면서 이에 대한 노동력의 필요는 노예제를 동반할 수밖에 없었고 모권 씨족에 강력한 타격을 주었다. 즉, 대우혼은 친어머니와 함께 친아버지를 확인시켜 주었고 가족내 분업에 따라 노동도구, 가축, 노예의 소유자는 남편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자녀들은 상속자가 될 수 없었다.(아직까지 모권이 중요했기 때문에) 하지만 강화된 아버지의 지위는 자신의 자녀들을 위해 이 상속 순위를 폐지하려는 충동이 차츰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이 춤추는 욕망은 드디어 모권을 폐지하였다.

 

이리하여 남성 독재의 최초의 산물은 가부장제이고 일부일처제의 중간 형태이고 가장은 일부다처 생활을 하며 노예를 통제, 가족으로 조직하기 위함이었다.3

 

○일부일처제

아버지의 상승한 지위를 반영한 일부일처제는 아버지의 혈통이 확실한 아이를 낳자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자녀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우혼에 비하면 결혼 유대가 훨씬 더 공고해졌고 그럴수록 여자의 지위는 추락해갔다. 즉, 일부일처제는 원시적, 자연발생적 공동소유에 대한 (경제적 조건에 의한)사적소유의 승리를 기초로 한 최초의 가족 형태이다. 그리고 남녀 간의 합의에 의한 결합도, 성애와도 관련이 없고 한 성(性)에 의한 다른 성의 예속이다. 여기에 대해서 엥겔스의 말을 들어보자.

 

‘최초의 분업은 자식을 생산하기 위한 남녀 간의 분업이었다. ... 여기에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자 한다. 역사에 나타난 최초의 계급적 대립은 ... 남녀 간의 적대적 발전과 일치하며 ... 단혼은 역사상 일대 진보이기는 했으나, ... 온갖 진보가 동시에 상대적 퇴보이기도 하며, 한 사람의 행복과 발전이 다른 사람의 고난과 억압을 대가로 하여 실현 ... 단혼은 문명사회의 세포로서, 우리는 이것을 바탕으로 문명사회 ... 연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일부일처제의 최대의 도덕적 진보는 근대적인 개인적 성애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 근대적 성애가 전적으로 일부일처제 내에서만 발전했는 것은 아니다. 대우혼이 시작된 이래 지배계급은 부모가 정해 준 대로 계급적 위치에 의해 규정되고 그래서 언제나 타산적이다. 그 결과는 극심한 매음이다4. 또한 경제적 조건의 변화(사적소유)로 인해 생긴 일부일처제는 한편으로 계급 분화속에서 여자 노예의 성 강요, 자유민 여자의 직업적 매음을 발생시킨다. 그래서 동전의 양 단면처럼 문명의 한쪽은 일부일처제이고 다른 면은 매음, 간통이다.

 

○진정한 일부일처제

원시공산주의 세대에서 여성이 집안 살림을 맡아보는 것은 남성이 식료품을 획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활동이었다. 그러나 일부일처제에서는 집안 살림은 사사로운 일로 전락했다. 현대에서는 취업으로 이 길을 열어 주었지만 자기의 가정 살림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현대의 가족은 아내의 공공연한 또는 은폐된 가내 노예제에 기초하고 있으며 남편은 가족의 부양을 위해 돈을 버는데 이것이 남편 지배의 토대이다. 그래서 여성해방의 첫째 조건은 여성 전체가 사회적 노동에 복귀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개별 가족이 사회의 경제적 단위로 되지 않아야 한다. 즉 육아와 가사의 사회적 일로 만들어야 한다.

 

이렇듯 일부일처제로의 진행과정은 여자에게는 성적 자유가 박탈당하지만 남자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엥겔스는 ‘남자의 장기간의 약혼생활은 대부분 사실상 부부간의 부정을 공부하는 예비학교가 된다.’고 강조한다. 아무튼 재화가 남자의 수중에 집중함에 따라 그 재화를 그 남자의 자식에게 상속하려는 욕망이 일부일처제, 더 정확하게 아내의 일부일처제가 필요했다. 하지만 생산수단의 상당한 부분을 사회적 소유로 만든다면 상속문제는 최소화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일부일처제는 그때에도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제대로 실현되며 남자에게도 현실이 된다. 그리고 개별 가족도 더 이상 경제적 단위가 아니며 육아, 가사는 공공사업으로 전환될 것이다. 그리하여 처녀가 마음대로 사랑할 여건 막는 도덕적, 경제적 요인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매음도 자연히 청산된다. 대우혼에서 일부일처제의 진행에 있어서 사회적 지위, 경제적 이해 타산을 바탕으로 하는 계급 결혼이다. 따라서 자유로운 결혼은 자본주의적 생산과 소유가 지양됨으로써 실현될 수 있고 그때에는 남녀 상호 간에 애정 외에는 아무런 동기도 없다. 그럼으로써 남자는 돈으로 권력으로 여자를 사는 일이 없고 여자는 진정한 사랑 이외에 다른 어떤 동기로도 남자에게 몸을 맡기지 않을 것이다.

 

○씨족 해체의 물질적 토대

씨족은 야만의 중간단계에서 발생, 미개의 낮은단계에서 전성기에 이르렀다. 씨족제도에서는 지배와 예속이 없었다. 씨족이 몇 개의 단위를 이루어 포족을 형성하고 몇 개의 포족이 부족을 형성하였으며 다른 부족과 경계를 이루는 중립지대가 있었다. 분업은 자연발생적인 것으로 남자는 삼림에서 여자는 집에서 주인이고 남자는 도구의, 여자는 가구의 소유주이며 가정 살림은 원시공산주의 원칙에 따라 많은 가족에 의해 운영된다. 공동으로 이용하는 것은 공동재산이 된다.

 

그런가운데 목축과 다른 미개부족간의 최초의 사회적 분업이 나타났고 규칙적인 교환을 가능하게 해 주었으며 가축이 화폐의 역할을 하였다. 경작지는 처음에는 씨족, 세대공동체, 개인들이 이용하도록 양도되었다. 그리고 직기와 금속의 가공은 그 당시 산업활동 영역에서 거둔 성과였다. 이렇게해서 생산이 늘어나자 잉여생산물이 나오고 그럴수록 노동량이 증가하면서 새로운 노동력이 필요하였다. 이런 필요에 의해서 노예가 발생하며 최초의 계급 분화가 생긴다. 그리고 목축부족에게는 가족내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도구 뿐만 아니라 가축, 노예 등 잉여는 남자의 것이었고 이런 변화가 가족내에서 모계 중심에서 부계 중심으로 관계가 전복되었다. 부권의 도입은 대우혼에서 일부일처제로 이행을 낳았고 이것은 씨족제도와 대립을 낳을 수밖에 없다.

 

철의 가공과 사용은 두 번째의 사회적 분업인 수공업과 농업의 분리를 가져왔다. 철의 사용으로 인한 생산성 증가로 노예제는 보편화되고 분업과 맞물리면서 상품생산은 증가하였고 계급 분화는 가속화 된다. 토지의 사적소유도 계속 진행되면서 일부일처제의 진행과 맞물려 개별 가족이 사회의 경제적 단위로 나타난다.

 

한편으로 인구가 조밀해지면서 근친 부족간 동맹은 필연적이었고 영토 통합도 필연적이었다. 이에 따라 군사령관 등의 공직과 민회, 평의회는 씨족 사회의 주요 기관을 형성한다. 그 이전까지 복수, 영토 확장을 위해서만 일어났던 전쟁이 약탈만을 위해서 전쟁이 일어났고 전쟁은 생업으로 바뀌었다. 전쟁의 상시화는 군사령관을 비롯한 지휘관의 권력을 강화 관습적으로 선출하던 공직이 세습적 권력으로 찬탈된 세습 권력으로 마침내 세습적 왕권과 귀족의 기초가 된다. 이에 따라 인민의 의사를 대변해 주던 씨족 기관이 인민을 지배하고 압박하기 위한 독립적인 기관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여기에 제 3의 분업 상업을 낳았고 상인이 등장한다. 이들은 보잘것없는 노력의 보수로 국내외 생산으로부터 고량진미를 짜냈고 막대한 재부와 사회적 영향력을 획득하였다. 상인과 더블어 금속화폐의 출현은 필연적이다. 토지 소유제의 확립은 금속화폐의 등장과 더블어 저당권이 등장하면서 소수에 의한 토지의 집중은 강화되었다. 이런 모든 변화로 소수에게 부가 집중되면서 자유민내에서도 재산정도에 따라 계급분화가 일어났다. 이렇듯 분업의 발달과 계급으로 분열되면서 씨족제도는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국가로 대체될 수밖에 없었다.

 

○국가의 발생과 특성

결국 국가는 외부로부터 사회에 강요된 권력이 아니며 윤리적 이념의 현실태도 아니고 일정한 발전 단계에 있는 사회의 산물이다. 경제적으로 모순되어 이해 관계를 가진 계급들의 투쟁에서 사회를 파괴시키지 못하도록 외관상 사회 위에 서 있는 권력, 충돌을 완화시켜 사회를 유지시킬 권력이 바로 국가이다. 국가는 국민을 지역에 따라 구분하고 무장인민과 일치하지 않는 공권력(상비군, 감옥, 각종 강제기관들)이 필요하다. 공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세금과 국채를 발행하고 관리들은 공권력과 조세징수권을 가짐으로써 사회위에 군림한다. 국가는 계급 충돌이 발생하면서 계급 간 대립을 억제하기 위해서 생겨났기 때문에 지배 계급의 국가이다. 고대 국가는 노예 소유주들의 국가였고 봉건국가는 귀족들의 국가였고 현대의 대의제 국가는 자본의 국가이다.

 

 

-인류가 처음 지상에 태어났을 때부터 가족, 사유제, 국가는 있었고 영원불멸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기원’은 국가 이전에 인류는 오랜 시간 군혼을 통해 씨족단위로 생활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물질 생산 발달에 따른 계급의 분화, 이것이야말로 국가 탄생의 핵심이다. 계급의 대립, 사유재산의 발전의 토대위에 선 국가는 당연히 지배계급의 국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소위 진보라고 자처하는 진보정당들, 시민단체들, 심지어는 보수야당까지도)은 국가가 중립적이고 조정의 역할을 제대로 하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현실적으로 엄연히 계급 사회인데도 불구하고 피지배계급에게 계급의식을 빼앗는 치명적 결과를 낳는다. 지배계급들은 어느 시대에서나 역사적으로 철저한 계급의식을 가지고 자기들의 특권을 지키려고 했고 현재 한국의 지배계급 역시 마찬가지이다. 현실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중립적 국가, 조정자 국가를 떠드는 세력은 자기들을 민주공화주의자로 포장한다. 하지만 무지에서든 고의적이든 이들은 철저하게 지배계급에게 복무하고 피지배계급에게 칼을 겨누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또한 ‘기원’에서는 가족제도의 변화에 대해서도 보여주고 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정, 부부간의 진정한 사랑, 영원한 사랑, 이것은 우리 시대에서 뿐만 아니라 어떤 시대에서든 화두였다. 하지만 엥겔스는 분명히 밝히고 있다. 물질 생산의 증대에 따른 남편 경제력 강화와 사유제의 발달이 상속, 여자의 지위 변화와 맞물려 가족 형태의 변화로 나타났다. 진정한 사랑, 실질적 일부일처제, 자식애는 사적인 가사와 육아가 공적으로 변화되어야만 가능하고 바로 이 지점에 여성해방이 있다. 성 차별과 매음을 없애기 위해서는 계급 해방 나아가 계급 철폐 없이는 불가능함을 알아야 한다.

  1. 군혼이 허용된 가족형태, 남편이나 아내를 공유한 배우자들을 이르는 하와이 말 [본문으로]
  2. 한 혈족의 형제자매와 다른 혈족의 형제자매가 교차해서 짝을 짓는 혼인 형식 [본문으로]
  3. ‘현대의 가족은 그 맹아 속에 노예제뿐만 아니라 농노제도 포함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처음부터 농경을 위한 노력과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 가족은 그 후 사회와 그 국가에서 광범하게 발전한 온갖 모순을 축소판의 형태로 내포하고 있다.’맑스 [본문으로]
  4. ‘아내의 매음이 더 흔하고 이 아내가 보통의 매춘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여성 임금노동자가 자기의 노동을 도급제로 팔 듯이 자기의 육체를 도급제로 파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육체를 영영 노예로 팔아 버린다는 것뿐이다.’p121 그래서 엥겔스는 아내와의 관계에서 성애가 규범으로 될 수 있는 경우는 피억압계급 사이에서뿐이라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일부일처제는 재산의 보존과 상속 때문인데 그들에게는 이런 재산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 부부사이에서 아내는 실질적으로 이혼할 권리를 획득했으며 이들의 결혼은 일부일처제이지만 역사적 의미에서는 일부일처제가 아니다.p122∼123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