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① (존 몰리뉴 저)

연이야 2014. 4. 7. 01:33

 

1장 왜 철학이 중요할까?

사회주의 투쟁에서는 시위, 파업, 혁명적 봉기도 있지만 이데올로기 투쟁, 일상적 조직 활동도 있다. 이런 투쟁에서 지속적인 활동을 위해서 대안 세계관은 중요하며 대안 세계관의 핵심은 바로 철학이다.(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세력에게 이런 철학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이다.) 그래서 철학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모두에게 익숙한 철학 형태인 종교의 교리를 보면 인간 존재의 본질과 의미, 인간 본성의 특징, 지식의 기원과 진리의 기준, 도덕에 대한 견해 등인데 이런 주제는 철학적 문제에 대한 견해이기도 하다. 특히 시위, 파업을 벌어야 할지 말지 고민 중인 조직에게는 객관적 상황과 주관적 능력 사이에서 균형 잡힌 판단을 해야 하고 총파업이나 혁명의 순간에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문제에서 실천적 경험도 중요하지만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알고 있다면 큰 도움이 된다.

 

2장 마르크스 철학의 원천

마르크스는 엥겔스의 도움을 받아 20대 중반에 자기 철학의 기틀을 확립하였다. 맑스는 독일 고전 철학의 전통(헤겔의 관념론적 변증법, 포이어바흐의 수동적 유물론), 프랑스 공상적 사회주의(사회주의 이상을프롤레타리아의 역량에 의한 쟁취가 아니라 지배 계급에게 호소), 영국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의 고전 정치경제학(노동가치 등등)을 그냥 계승한 것이 아니라 비판과 변형을 바탕으로 새로운 종합을 하였다. 이런 이론적 혁명은 그의 뛰어난 지성도 있지만 노동계급의 관점에서 철학과 사회 이론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노동계급의 관점을 가졌다는 것은 노동자들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는 정도에 그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전복할 수 있는 혁명의 주체, 핵심으로 봤다는 것이다. 그리고 맑스가 노동계급의 관점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노동계급 운동이 이미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3장 소외, 착취, 계급투쟁

소외

소외의 원인은 사람들이 자신의 노동 생산물이나 노동 자체와 맺는 관계에서 비롯된다. 노동자가 노동 생산물에서 소외된다는 것은 노동 생산물이 낯선 것으로서, 생산자로부터 자립적인 힘으로서 노동에 대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맑스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노동자가 더 많이 노동할수록 ... 노동자 자신은, 즉 그의 내면 세계는 더 황폐해지며 노동자 자신의 소유도 더욱 줄어든다. ... 노동은 궁전을 만들어 내지만 노동자는 오두말에 산다.’(1844년 경제학 철학 수고) 현재에는 소외된 노동으로 인류를 멸종시킬 수 있는 핵폭탄 출현, 탄소 배출로 인한 재앙적 기후변화 가능성까지 있다.

 

노동자가 노동 생산물에서 소외된다면 생산과정에서, 생산활동 자체에서도 소외된다. 노동자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노동력을 파는데 이 과정에서 노동의 목적과 방법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강요된 노동을 한다. 따라서 임금노동 자체가 소외된 노동이며 소외된 노동을 폐지하려면 임금노동, 자본주의를 폐지해야 한다.

 

맑스는 노동이 동물과 구별되고 인간다움을 만들어 가고 역사와 사회의 바탕을 이룬다고 강조한다.

소외된 노동은 (1)자연을 인간으로부터 소외 기후변화, 환경오염 (2)인간을 인간 자신, 인간 고유의 능동적 기능, 인간의 생멸 활동에서 소외시켜서 인간을 유()로부터 소외시킨다. (3)... 소외된 노동은 인간을 자신의 신체(만성 비만, 식욕 부진, 성 상품화), 외부의 자연, 인간의 정신생활, 인간다운 생활로부터 소외시킨다. (4)인간이 자신의 노동 생산물, 자신의 생명 활동, 자신의 유적 존재로부터 소외된다는 사실의 직접적 결과는 인간과 인간이 서로 소외(인종 차별, 외국인 혐오(이주 노동자 차별), 희생양 만들기)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외된 노동은 소외된 사회, 세계를 만든다. , 통제 불능의 세계이다. 이 세계에서는 계급과 국가, 인종차별, 여성차별, 종교 갈등, 극심한 빈부 격차로 개인들이 서로 소외되고 성, 예술, 교육 등등의 것이 상품이 되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이런 상품을 살 수 없는 세계이다.

 

착취

맑스주의에서 착취는 모호한 도덕적 용어가 아니라 과학적 개념(한 사람의 악한 행위가 아니라 한 계급이 피착취계급의 노동에서 부를 뽑아내는 것)이며 역사상 모든 계급사회의 고유의 법칙이다.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서는 착취가 눈에 명백하게 보였지만 자본주의에서는 겉으로는 착취가 없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맑스는 노동력 상품의 특수성(생산수단이 없어서 생계유지를 위해 노동자 자신이 아닌 노동능력을 팔아야 한다)에 주목했다. 노동력은 살아 있는 인간과 분리될 수 없고 노동력 자체의 재생산 비용보다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는데 이 차이가 이윤의 원천이 되는 잉여가치이다.

 

잉여가치론 덕분에 착취율(잉여가치율 S/V), 이윤율(S/C+V)을 수학적으로 표현한다. 이윤율은 자본의 투자 수준, 고용 수준, 성장률, 자본주의 경제의 전반적 건전성이나 불건전성을 결정하는 요인이다. 무엇보다 잉여가치의 핵심은 자본주의 생산의 적대적 성격을 드러내고 계급투쟁으로 이어진다.

 

계급투쟁

현대 사회에서 계급 개념은 혼란이 많다. 계급을 사회적 출신 배경, 혈통, 가문, 세습적 특권으로 보는 관점은 부르주아가 봉건귀족의 특권에 맞서 평등을 옹호한 유물로써 현대에서는 계급이 사라지고 있다는 잘못된 생각의 출발점이다. 맑스주의 계급론은 생산수단에 대한 관계에 따라 계급을 정의하고 그 핵심은 계급간 착취이다. 이로 인해 자본과 노동자는 적대계급이 된다. 생산에서 비롯한 대립은 사회 전체로 확장된다. 세금, 의료, 범죄, 형벌, 외교정책, 군비 지출, 전쟁, 환경보호 같은 국가 정책과 공공 정책의 모든 쟁점에서 계급 대립으로 나타난다. 물론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에는 규모가 큰 프티부르주아도 있다. 주로 소상공인, 관리자 집단으로 이 중간계급은 독자적 계급이 아니라 자본계급과 노동자계급 사이에 낀 여러 계층들의 서열이다. 중간계급의 상층은 지배계급과 겹치고 하층은 프롤레타리아트와 겹치며 자본과 노동자의 투쟁이 벌어지면 양 계급의 힘에 따라 오락가락할 뿐이다.

 

맑스는 계급론에서 노동계급의 혁명적 구실을 규명했다. 자본과 노동자의 대립, 노동계급의 힘, 계급없는 노동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노동계급의 능력에서 비롯된다. 노동계급의 투쟁을 토대로 맑스주의가 생겨났으며 노동계급의 관점 덕분에 맑스가 노동가치론과 역사유물론 등 주요 이론을 발전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노동계급의 혁명적 구실이 맑스주의에서 핵심인 이유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주류 사상가 뿐만 아니라 강단 맑스주의자도 노동계급의 혁명적 구실을 비판하고 부정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현대 노동계급은 사라지기는커녕 그 어느 시기보다 수가 많고 2008 금융위기 이후로 세계 곳곳에서 노동계급의 전투성이 살아나고 있기 때문에 노동계급이 혁명의 주체라는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4장 유물론

철학에서 유물론과 관념론은 정신과 물질 가운데 어는 것이 인간의 역사를 형성하는 데서 선차적인가? 라는 차이에서 비롯된다. 유물론의 필수 명제 : 물질세계는 존재, 물질세계는 인간의 의식과 무관하게 존재, 세계를 총체적, 절대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인식하는 것은 가능(맑스는 인간의 사유가 객관적 진리를 파악할 수 있는지 아닌지는 실천의 문제로 실천을 통해 사실을 입증), 인간의 자연의 일부, 물질세계가 인간의 사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유는 물질세계에서 나온다. 앞의 네가지 명제에 대체로 동의하더라도 사회, 역사, 정치에서는 관념론의 경향을 많이 보인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냉전은 근본적으로 이데올로기의 충돌이었다사상, 신념, 가치가 사회, 경제구조의 본질을 설명해 준다고 생각한다. 이런 모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영향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계급이 사회를 변화시키려면 과학적 사회 분석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정책의 배후에 있는 물질적 이해관계에 대한 분석 등이다. 그래서 노동자 대중의 노동과 활동, 지배계급의 이해관계를 역사 이해의 출발점으로 삼는 유물론이 필요하다.

 

맑스 유물론의 관점은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결정한다이다. 가령 중세 유럽의 종교개혁을 맑스주의에서는 종교적 교리의 충돌이 아니라 신흥 부르주아와 봉건귀족의 계급투쟁,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의 이데올로기적 표현으로 본다. 가톨릭교회는 물질적으로 이데올로기적으로 봉건제 최대 지주였기 때문에 부르주아가 봉건제에 도전하려면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필요했는데 이것이 프로테스탄트이다. 관념론의 가장 큰 약점은 선차적이라고 여기는 관념들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등장했는지 합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반면 맑스주의 유물론은 역사의 동력은 경제 발전과 계급 이해관계로 본다. 또한 제국주의와 인종차별에 있어서도 그리스도교 유럽의 오래된 유럽 중심주의적 인종차별이 아니라 자본축적을 목적으로 원료, 노동력, 시장을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 즉 자본주의 운동의 반영으로 본다. 그리고 전쟁도 거창한 명분이 아니라 물질적 이해관계 때문이라고 본다.

 

5장 변증법

맑스는 역사의 원동력을 물질적 힘과 이해관계라고 봤지만 변화의 과정을 순조롭거나 점진적인 기계적, 자동적 과정으로 여기지는 않았는데 이것은 맑스가 최초의 변증법적 유물론자임을 알려준다. 변증법은 만물이 변화하고 운동은 변화의 기본 형태로써 현대 과학의 결과와도 일치한다. 이런 점에서 변증법은 혁명적 함의가 있기도 하다. 기존의 사회 질서가 강력하고 철옹성처럼 보여도 모두 소멸한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변화 뿐만 아니라 연속성도 존재한다. 이에 대해 엥겔스는 만물이 안정적이고 영속적으로 보인다면 장기적인 변화 과정 속에서 특정 순간에 그것을 봤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체적 관점

모든 현상, 사건, 정치 현상은 맥락과 상호 관계속에서 이해해야 하며 그 현상과 연관된 사건, 상황뿐 아니라 세계 자본주의의 전반적 상태, 국제 계급투쟁, 계급투쟁의 역사적 발전전과 현재 상태를 염두에 둬야 함을 의미한다.

 

구체적 관점

개별 사건은 전체와 관련지어서 이해하면서도 개별 사건의 구체적 특징을 염두에 둬야 한다.

 

양질전환

양적 변화의 꾸준한 누적은 어느 순간 전체의 성격 자체가 변하는 과정이다. 이것은 현실에서 혁명의 순간, 반혁명의 순간을 판단하는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다. ‘양질 전환이 이뤄지는 결정적 순간을 적시에 파악하는 것은 사회학을 포함한 지식의 모든 분야에서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다

 

대립물의 통일

양질전환은 사물 전체가 충돌하는 힘의 일시적 균형, 즉 대립물의 통일을 전제로 하고 있다. 사물의 모순된 부분들을 인식하는 것이 변증법의 정수이고 균형, 안정은 부차적이고 도약, 연속성의 단절, 대립물로의 전화, 옛것의 파괴와 새것의 탄생이 근본적이다.

 

부정의 부정

특정 상태가 내부 모순 때문에 변할 때 변화를 일으키는 힘 자체도 변하고 그 결과 과거의 일부 요소들을 보존하면서도 새로워진 상태(종합)가 출현하는데 이 종합은 과거의 부분들을 그냥 합친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이다.

 

엥겔스는 변증법이 자연에도 적용된다고 주장했는데 루카치가 이를 비판하면서 논쟁이 있었고 레닌, 트로츠키, 룩셈부르크, 그람시는 자연변증법을 옹호한다. 변증법은 변화와 발전의 원리이고 변화와 발전은 사회 뿐만 아니라 자연 어디서나 일어나기 때문에 변증법은 과학과 자연에도 적용할 수 있다.

 

6장 역사유물론

토대와 상부구조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서 생존수단을 능동적으로 생산한다. 따라서 인간의 역사 발전과 사회를 분석할 때 기초가 되는 것은 생산과 생산이 조직되는 방식이다. 맑스는 생산을 생산력과 생산관계로 구분하면서 서로 끊임없이 작용하여 영향을 미치는 단일한 과정의 양 측면이지만 생산력이 더 근본적이고 궁극적으로 더 결정적임을 밝혀냈다. 생산력의 수준에 따라 생산관계가 결정되지만 기계적, 절대적으로 결정한다는 뜻이 아니다. 생산양식을 이루는 생산력과 생산관계는 사회의 경제적 토대이며 이 토대위에 법, 정치적 상부구조, 사회적 의식의 형태들이 형성, 토대에 상응한다. 사회적 의식과 토대는 단순하거나 기계적이지 않고 물질적 기반이 사라진 뒤에도 관념은 살아남아 유지되는 경향이 있다.

 

상부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기구와 법률제도인데 현대에서 국가는 중립적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맑스는 국가는 늘 경제적으로 유력한 계급의 국가이며 국가의 주요 기능은 기존 사회 질서를 수호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법 역시 영원한 추상적 원칙이 아니라 특정 생산양식에 필요한 행동 양식을 집대성한 것일 뿐이다. 역사유물론은 경제결정론이 아니며 상부구조의 특정 요소들은 어느 정도 자율성을 누리면서 역사에 일정한 영향을 미친다.

 

생산력과 생산관계

생산관계는 계급 구조의 기초를 이루고 계급사회에서 지배계급은 국가권력과 이데올로기를 마음대로 이용하여 지배한다. 그리고 생산력은 기술 뿐만 아니라 인간들로 이뤄진다. 따라서 발전하는 생산력과 낡은 생산관계 사이의 모순은 계급투쟁이다.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충돌이 무르익으면 생산양식의 변화가 역사적 의제가 되는데 그 변화가 성취되려면 발전하는 생산력과 연결된 신흥 계급이 낡은 지배계급을 혁명적으로 전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