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위험 수위를 넘어선 경쟁사회

연이야 2011. 3. 28. 15:58

 

한국 사회는 60년대부터 국가 주도의 산업화가 진행되었고 그 결과 30∼40년만에 산업화를 이룩하였다. 하지만  국가 주도의 산업화는 소수 재벌 자본집중을 낳았고 그들은 이제 정치권력을 능가할 정도다. 또한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신자유주의를 내세워 끊임없는 경쟁을 전 사회에 유포하고 있다. 경쟁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의식속에서 사회 전체의 구조, 사회 관점의 결여, 공동체 의식의 약화를 가져왔고 이는 필연적으로 약자의 연대를 막고 있다. 이런 구조에서 각 개인은 생존을 위해서 승리위에는 다른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다. 결국 개인은 극단적인 개인주의, 이기주의화 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역사는 이미 증명하였다. 극단적인 개인주의, 이기주의는 결국 우리 모두 파멸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을. 인류사에서 상호 경쟁 뿐 아니라 상호 부조의 전통이 인류의 생존을 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크로포트킨은 얘기하였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위기, 우리 사회의 사교육비 증가는 이런 연장선상에 있다. 아니 조금 더 범위를 좁혀서 타인에 대한 배려, 양보는 이제 우리 사회에서 미덕이 아니라 약자의 처세술로 전략한지 이미 오래되었다. 작든 크든 공동체의 규범을 지키지 않고 자기 위주의 행동을 하는 것 역시 경쟁사회의 한 단면이다. 아마도 계속 이런 식으로 간다면 약육 강식의 사회, 모두가 절망인 사회, 각 개인이 철저하게 파편화 된 인간소외의 사회만이 우리 앞에 남게 될 것이다. 이런 사회를 원한다면 계속 경쟁만을 강조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경쟁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었다. 신자유주의식 자유 경쟁 논리는 인간을 황폐화시키고 경제 동물 그이상도 그이하도 아닌 존재로 만들 뿐이다. 경쟁의 지양과 공동체 의식의 복원, 자본의 이윤 추구를 위한 대상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풀뿌리 민주주의(시민 자치, 시민 단체, 이웃 공동체까지 포함)의 활성화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물론 우리 모두 경쟁의 폐해에 대해 절실히 느껴야 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