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입시

초등 수학 교과서, 어른도 쩔쩔매는 문제 수두룩

연이야 2011. 4. 8. 16:00

 

“장관님은 왜 ‘21÷3’의 답이 ‘7’인지 3가지 방법으로 설명하실 수 있으세요? ‘527+694’가 ‘1221’이라는 것을 초등학교 3학년생들이 3가지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까?” (한 학부모가 안병만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에게 보낸 편지)

 

초등학교 자녀를 둔 학부모라면 가끔 경험했을 것이다. 아이가 잘 모르겠다며 수학 교과서를 가져왔는데, 본인도 문제를 못 풀어서 쩔쩔맨 순간 말이다. 초등학교 교사 6명이 <교과서를 믿지 마라!>(바다출판사)라는 책을 냈다. 공저자 중 한 명인 충북 비봉초등학교 신은희 교사는 “학부모님들과 상담을 하다보면 ‘초등학생인데 교과서가 왜 이렇게 어렵냐. 우리 애만 이해를 못하는 거냐’고 묻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교사들이 학교 현장의 답답함을 견디다 못해 책까지 내게 된 이유다.

 

 

 

 

◇ 어른도 풀기 힘든 문제 = 위쪽 사진을 보고 한번 직접 풀어보자. 정답은 ‘347-417-487-557-627’이다. 답을 보고 나서야 겨우 유추가 가능하다. 이 문제는 중학교나 고등학교 시험문제가 아니다. 초등학교 2학년 1학기 수학익힘책 1단원에 나오는 문제다.

 

교과서는 또 창의력을 향상시킨다면서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를 상투적으로 질문하고 있다. 3학년 1학기 교과서를 보면 ‘영주가 사과 6개를 한 봉지에 2개씩 담습니다. 몇 봉지에 담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사과그림 6개 제시)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라고 묻는다.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답은 ‘3봉지. 직접 담아보니까’ 정도다. ‘몰라’ ‘그냥’이란 답변도 수두룩하다. 저자들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답에 생각을 물어보고 이유를 말하라고 하면 아이들은 오히려 답답해하면서 흥미를 잃는다”고 지적했다.

 

◇발달과정 무시한 뒤죽박죽 순서 = 아이들은 2학년이 되면 336+328-297 같은 세 자리 숫자 계산을 해야 한다. 3학년이 되면 7131-4285+3696 같은 네 자리 숫자 계산을 해야 한다. 그런데 계산 원리는 정작 4학년 때부터 나오면서 36+60-52로 더 작은 수를 계산하라고 한다. 3학년 1학기 수학익힘책 137쪽에는 ‘395초=6분35초’라는 계산식이 나온다. 이는 ‘나머지’가 있는 나눗셈 개념을 알면 쉽게 풀 수 있다. 그러나 ‘나머지’ 개념은 다음 학기인 2학기에야 나온다. 직전까지만 해도 ‘12÷3’ 같은 한 자리수 나누기를 배웠을 뿐인데 갑자기 중간 과정을 건너뛰는 셈이다.

 수학뿐이 아니다. 사회 3학년 1학기 교과서 16쪽은 ‘우리 고장의 자연환경’을 아직 배우지 않은 개념인 ‘지형’과 ‘기후’로 나누라 하고, 17쪽은 곧바로 미국과 네덜란드의 지형을 알아보자고 나온다. 저자들은 “산, 들, 하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세계 지형과 기후를 공부하라는 것은 지나치다”고 밝혔다.

 

계층 간 위화감을 조성하는 내용도 있다. 슬기로운생활 2학년 2학기 6단원에는 집의 모양과 쓰임을 배우는 ‘우리 집이 좋아요’ 항목이 나온다. 그런데 교과서에 제시된 사진에는 넓은 기와집과 근사한 단독주택 등 상류층의 부유한 집들만 등장한다. 저자들은 “우리나라 초등학생 중 몇 명이나 이런 집에서 사는지 교과서 만든 사람에게 따져묻고 싶다”고 말했다.

 

◇교과서 제작 구조 바뀌어야 = 교과부는 2009 개정교육과정에는 수학 교과서를 더욱 쉽게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저자들은 교과서 제작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정부가 현재 편찬 작업 중인 2009 개정교육과정에 따른 새 교과서도 비슷한 문제점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먼저 교과서를 만드는 기간이 너무 짧다는 것이다. 보통 교과서를 제작하는 기간은 1년 정도로 잡는다. 그러나 연구진을 공모하고 꾸리는 과정까지 감안하면 순수하게 제작에 걸리는 시간은 6개월에 불과하다. 게다가 아동 발달과정을 고려해 통합적으로 짜여져야 하는 초등교육과정의 특성이 무시되고 있다.신 교사는 “2007 개정교육과정의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해야 2009 개정교육과정에서 더 나은 교과서를 만들 수 있는데 정부는 교사들에게 설문지를 돌리는 것으로 대체하고 제대로 된 검토과정을 거치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예전에는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외국인과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만든다더니, 이제는 초·중학교 영어 목표를 외국인과의 의사소통으로 잡는 등 교육과정 목표 자체가 너무 높아 교과서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 경향신문 정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