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자본주의의 역사로 본 겅제학 이야기 ① (안현효 저)

연이야 2011. 6. 23. 00:51

 

2008년 이후 계속된 세계경제대공황으로 대중들의 경제에 대한 관심은 어느 때 보다 뜨겁다. 이런 관심은 경제 공부로 이어지지만 처음부터 경제원론를 공부한다면 경제학의 맥락을 제대로 짚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안현효는 경제학사 공부를 통해 경제학의 개념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며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 그는 마르크스 ‘자본론’의 현대적 해석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즉 이 책은 비주류의 관점에서 경제학사를 구성하여 놓은 것이다.

 

1장 경제학이 없었던 시기의 경제학

고대, 중세의 경제학은 윤리적 성격이 강하였다. 근면, 성실과 생산은 용인하였지만 상업 이윤의 추구는 용인하지 않았다. 정당한 부와 그렇지 못한 부를 구분하였다. 특히 거래의 공정성을 평가하기 위해서 어떤 상품의 정당한 가치를 각 상품에 들어 있는 노동량에 의해 측정하였는데 이는 고전학파의 노동가치론의 맹아가 된다.

 

부의 축적이 추상화 된 화폐의 획득이 되는 자본주의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돈이 모든 재화를 구매 할 수 있는 시장의 보편화, 그 다음에는 자본주의적 인간형(근대인)의 출현, 마지막으로 생산의 혁명적 변화(공장, 기계, 노동력)이다. 자본주의 기원은 크게 두 가지 정도이다. 하나는 상업, 유통의 활성화이다. 시기적으로는 13∼15 세기이며 중상주의와 밀접하다. 또 하나는 공장과 임노동자의 출현이고 시기적으로는 17∼18 세기이다.

 

중상주의는 개인의 돈을 벌면 국가도 부유해진다고 여겼다. 상업이 부의 확대를 가능하게 한다고 본다. 그리고 상업차액(유통마진)을 얻기 위해서는 경쟁의 제한, 즉 독점을 인정했다. 마지막으로 부는 금, 은 등 귀금속이라고 생각하였다.

 

중농주의는 토지를 부의 원천으로 하여 상업자본을 물리치려고 하였고 이 과정에서 현대 경제학 이론의 기초가 만들어진다. 부의 원천으로써 토지에 대한 관심은 유통보다 생산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부는 농업 생산에서 시작되고 공업, 상업은 부의 재분배에 불과하다. 그래서 부는 금, 은 뿐만 아니라 노동에 의해 생산되는 재화까지 포함된다. 이 때 새로이 창조된 부를 순생산물이라 한다. 이는 현대적 의미의 가치론이며 중세의 도덕적 가치판단이라는 주관성을 극복하고 투하된 노동의 양에 의해 결정되는 크기, 노동가치론의 속성을 가졌다.

 

2장 자본주의의 시작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 시대는 산업혁명 직전으로 상업이 융성하였고 자본주의적 수공업이 팽창하였다. 이 시기는 각자 이익만 추구하면 사회가 붕괴되지 않을까? 상인, 자본가의 돈벌이가 어떻게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가? 라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에 애덤 스미스는 각 개인의 이익 추구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사회 전체 이익 증대에 기여한다고 본다. 중농학파처럼 부의 원천은 금, 은 뿐만 아니라 생산물의 양에 의해 규정되며 그렇다면 부를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생산요소를 더 많이 투입해야 된다. 뿐만 아니라 애덤 스미스는 분업에 의해서도 생산성은 향상된다고 봤다. 이처럼 이익 추구의 이기적 행위가 복지와 충돌하지 않는 것은 다수의 수요자와 다수의 생산자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시킨 결과 가격이 형성되고 이 가격은 모두를 만족시키며 전체의 후생을 증진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본주의가 발달하면 할수록 노동자의 삶은 개선된다는 낙관론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독점적 이익 추구는 반대하였다.

 

고전학파

맬서스는 인구론에서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빈곤은 확대된다고 봤다. 과잉 인구는 과잉노동공급을 야기하고 저임금을 고착화 시켜 빈곤과 아사의 증가로 하층 계급의 수는 조절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빈민구호는 불필요하다고까지 주장하였다. 또한 자본가는 끊임없는 축적을 목적으로 하기에 이윤보다 적게 소비하고 저축을 하기 때문에 ‘일반적 과잉 생산 가능성’을 인정하였다. 이는 지주계급의 옹호로 이어진다. 왜냐하면 노동자는 생존임금밖에 받을 수 없기에 일정 수준 이상의 소비는 불가능하지만 지주의 소비는 무궁무진하기에 과잉 생산의 문제를 해결하리라 보았다. 여기에 대해 프랑스의 세는 저축은 소비를 위해 하는 것이므로 장기적으로는 과잉생산 없이 모두 소비된다고 보았다.(세의 법칙)

 

한편 리카도는 계급간 분배 법칙을 정하는 것이 정치경제학의 주요 문제라고 보았다. 특히 지주의 지대는 차액지대라고 정의하였다. 차액지대란 토지의 비옥도에 대한 차이이다. 왜냐하면 토지의 농산물의 가치는 가장 열악한 토지의 생산성에 의해 결정 되기 때문이다. 이 차액지대는 노동가치론의 산물이며 자본주의 비관론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인구 증가, 곡물 수요 증가로 곡물가격은 상승하고 지주의 이익은 증가하고 그로인해 노동자의 명목임금 역시 증가하고 이는 자본가의 이윤 감소의 결과로 이어져 저투자, 저성장의 원인이 된다. 이를 리카도는 정체상태라 하였다. 또한 비교우위론에 의거 자유무역이론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고전파에 대한 도전

자본주의는 생산력의 증대를 가져왔지만 빈부격차 심화, 환경 파괴 등등 수많은 문제도 있다. 그래서 새로운 사회체제에 대한 관심 또한 증가하였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에서는 사유제 폐지, 공동소유, 필요에 따른 분배 등 공상적 사회주의 내용을 주장하였다. 그 밖에도 러다이트 운동(기계 파괴 운동), 차티스트 운동, 사회주의 운동이 전개되기도 하였다. 특히 뉴래너크 운동은 노동시간의 감축(16시간→11시간), 어린이 노동자 금지를 실현하였다.

 

푸리에가 주장한 생산 공동체 팔랑스테르는 적성에 맞는 직업, 필요에 따른 분배를 실현하고 실제로 현실에서 실험되기도 하였다. 프루동은 사유제와 자본주의를 비판하며 화폐 없는 노동 교환을 주장하였다. 국가와 자본주의로부터 자립한 공간 건설을 위해 사적 소유 뿐만 아니라 국유화도 반대 하였고 생산자 협동조합을 주장하였다. 독일의 리스트는 자유무역은 선진산업국의 이익에만 부합하기에 보호무역을 주장하였다. 존 스튜어트 밀은 생산은 고전파의 논리를 분배는 사회주의 방식을 지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