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다큐멘터리

아이즈 와이드 셧

연이야 2012. 6. 4. 23:35

 

줄거리
뉴욕의 크리스마스, 성공한 의사 빌 하퍼드(톰 크루즈)와 그의 아름다운 아내 앨리스(니콜 키드먼)는 빌의 친구 지글러가 여는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한다. 파티에서 두 사람은 각각 이성으로부터 강한 성적 유혹을 받는다. 그 다음날 앨리스는 빌에게 숨겨왔던 비밀을 털어 놓는다. 여름 휴가 때 우연히 마주친 한 해군 장교의 매력에 반해 그에게 강한 충동을 느껴 그와 하루밤만 보낼 수 있다면 남편과 딸 모두를 포기할 수 있을 것만 같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평소에 아내를 정숙한 여자라 믿어 왔던 빌은 커다란 충격을 받는다.
 
이때부터 빌의 '섹슈얼 어드벤처'는 시작된다. 죽은 환자의 딸은 약혼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빌에게 추파를 던지고 거리에선 창녀가 접근한다. 그리고 빌은 우연히 만났던 옛 친구를 통해 알게 된 어느 수상한 파티로 발길을 돌린다.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 작품인 ‘피델리오(Fidelio)'라는 암호를 대고 들어간 그곳. 가면무도회와 종교적 의식이 결합된 듯한 분위기로 시작했지만 그 파티는 한마디로 난장판이었다. 얼굴을 가린 사람들은 이곳저곳에서 흥청망청 섹스를 나누고 수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구경하며 파티에 고용된 창녀들은 스리섬으로 레즈비언 섹스를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초대받지 않았던' 빌은 곧 파티의 호스트에게 적발돼 쫓겨난다. < 아이즈 와이드 셧 >은 한 남자가 겪는 하룻밤의 섹스 악몽 같은 영화다. '피델리오' 파티에서 자신에게 도망치라고 속삭였던 한 여자는 다음 날 시체로 발견되고 길거리에서 만났던 창녀는 에이즈 보균자였음이 발견된다. 파티 의상을 빌리러 갔던 가게의 주인은 미성년자인 딸을 이용해 장사를 하는 포주였다. 그리고 빌의 머릿속엔 과거 아내가 어느 낯선 남자와 나누었을 격렬한 섹스의 장면들이 상상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가면 파티에서 절정 혹은 밑바닥에 달한다. 

 

이 영화는 스탠리 큐브릭의 유작이며 완벽한 카메라 연출과 장중한 시각적 형식미를 통해, 우리 내면의 욕망을 눈 앞에서 재현해 낸다. Eyes Wide Shut (1999)은 오스트리아 작가 Arthur Schnitzler의 드림 스토리(1926)를 각색한 작품이다. 큐브릭은 성과 그 성을 억압하면서 자신의 본성을 숨기는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한다. 사실 주인공 탐 크루즈는 하룻밤의 일탈을 경험하려 할 때마다, 오히려 죽음의 위험에 처하게 된다. 하룻밤을 보내려했던 매춘부는 AIDS에 걸려 있고, 암호의 나머지 반을 모르는 크루즈는 한 파티에서 목숨을 내놓을 뻔 하기도 한다. 이렇게 스탠리 큐브릭은 성을 죽음과 함께 병렬해 놓음으로써, 사실 인간의 내면에 얼마나 많은 억압과 죽음의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는지, 또한 성적 에너지인 에로스와 죽음의 에너지인 타나토스는 동전의 앞뒤면처럼 붙어 다닌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탐 크루즈는 그러한 면에서 우리의 또 다른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는 아내와의 말 다툼에서 자신은 전혀 여자 환자들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지도 않고, 파티에서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결백을 주장한다. 그러나 과연 그 말이 사실일까? 탐 크루즈가 참석한 부자들의 파티에서는 모두 다른 베네치아 가면을 쓰고 있지만, 그 가면은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겉으로 쓰고 있는 페르소나의 위선과 방어를 열어 젖히는 역할을 하게 된다. 파티에서 자신의 가면을 잃어버린 크루즈는 일종의 계시와도 같은 전갈을 받는다. 파티의 주인장으로부터 ‘더 이상 너의 가면을 찾을 생각을 말라.’ 는 말을 들은 것이다. 뜬눈으로 지새우고 집으로 돌아온 그에게 잠자는 아내 곁에는 그의 잃어버린 가면이 놓여 있다는 것을 알고 경악한다. 비로소 아내의 가면을 통해, 자신의 위선과 남들의 눈치만을 보았던 겉 껍질을 보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 가면을 보고 모든 것을 아내에게 고백하며 자신의 위선을 사과하는 탐 크루즈처럼, 우리가 진정 해야 할 일은 우리 자신과 대면하는 일이라고 넌지시 말을 건네는 것 같기도 하다. 아이즈 와이드 셧. 굳게 담은 두 눈. 그렇다면 아이즈 와이드 셧, '질끈 감은 눈'이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눈, 죽음과 금기로 굳게 다물고 있어 스스로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우리를 지칭하는 말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