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노동을 보는 눈(강수돌)①

연이야 2013. 3. 12. 23:14

우리는 노동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을 재생산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이런 노동에는 먹고살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하는 생계 활동의 측면이 있고 뭔가 부단히 창조하고자 하는 생명 활동의 측면이 있다. 과거에는 생계 활동의 측면이 강했지만 미래로 갈수록 생명 활동의 측면이 강해지고 있다. 이는 생산력의 발전과 생산관계의 변동과도 관련이 있다. 생산력이 발달할수록 생계활동보다는 생명 활동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고 노예나 농노보다는 자유로운 신분이 됐을 때 생명활동의 시간이 더 많아진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일정한 돈을 투자한 자본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도록 적극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자본주의 사회는 인류 역사에서 3∼7%밖에 되지 않으며 이윤을 얻기 위해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도 그런 상품을 구매해주는 인간 없이는 지탱하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이란 먹고살기 위해 불가피하게 해야 하는 측면과 자본의 축적을 가능하게 하는 물적 토대의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것이 자본주의에서 노동의 두 얼굴이며 이런 양면성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한다.

 자본과 노동은 임금 뿐만 아니라 상품 생산 과정에서도 대립하고 적대한다. 왜냐하면 상품의 가치에는 기계의 감각상각비, 원료비, 인건비, 이윤에 해당하는 추가분이 포함되어 있다. 이 추가분은 인간 노동이 만든 것이다. 그래서 사용자들은 더 많은 노동을 상품 속으로 녹여내게 하려고 노동자들은 가능한 더 적은 노동을 상품 속으로 녹여내려고 한다. 또한 자본은 생명과도 적대관계를 이룬다. 노동은 한편으로는 인간의 생명력이나 자연의 생명력을 이용해 자본을 축적하는 일을 하면서도 다른 편으로는 생명 세계의 일부로서 역동성과 주체성이 있기 때문에 자본에 저항할 수 있는 특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노동은 자본축적의 토대가 되기도 하지만 자본축적의 위협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은 복잡한 측면을 가지고 있는 노동, 하지만 먹고살기 위해 꼭 해야만 하는 노동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피고 노동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인간답게 살 수 있는지 탐구하기 위해 쓰여졌다.

 

1. 우리가 하는 노동, 우리가 하고 싶은 노동 - 우리가 알아야 할 노동의 철학

 노동에는 소재적 측면과 관계적 측면이 있다. 소재적 측면이란 물품이나 농산물을 만드는 활동 그 자체를 말한다. 관계적 측면이란 한 사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맺는 관계를 말한다. 상품의 사용가치(쓸모, 효용)는 소재적 측면과 상응하고 교환가치(가치의 표현형태)는 관계적 측면에 상응한다.

 진화생물학자나 인류학자들, 엥겔스 같은 사람은 노동이 사람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사람이 먼저 있어야 노동이 있을 수 있다는 입장도 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사람이 노동을, 노동이 사람을 상호 규정하고 작용한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경직된 성별 분업은 역사 발전의 한 부분이며 이런 경직성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즉 노동이 사람을 왜곡시켰다면 사람이 노동을 바꾸어서 경제활동에 평등하고 조화롭게 동참해야 한다.

 노예제 시대에는 노동을 천한 노예가 하는 일이라고 인식했다. 이런 노동관은 봉건시대까지 지속되었다. 하지만 (생산력 발달에 따른 부르주아의 성장에 따른)종교개혁과정에서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파하였다. 이렇게 되자 ‘노동을 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원칙까지도 등장하였다. 그런데 이 원칙은 이중으로 적용된다. 정치가나 자본가는 별다른 노동을 하지 않으면서도 과소비나 사치로 흥청대고 노동자들이 힘겹게 파업을 벌이면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을 갖다 댄다. 하지만 이런 신성한 노동도 노동과 자본의 힘 관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추락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기계의 발달로 노동자들은 그 틀속에 얽어 매여 삶을 억압하는 족쇄로 노동이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많은 노동자들에게 스트레스, 과로사, 산업재해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걸로도 증명된다.

 노동자들은 물품이나 서비스의 제조, 판매 과정에서 노동의 의미나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소외된 노동을 하기 일쑤이며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고립되거나 파편화된 인간관계만을 유지하면서 무한 경쟁속에서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하루 하루 연명할 생각만 한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남부 유럽 노동자들의 투쟁 등은 자본에 의해 왜곡된 현실을 희망적인 방향으로 고치기 위한 진지한 움직임이다.

 

2. 우리는 언제부터 돈을 받고 일하게 됐을까 - 노동시장의 탄생과 비밀

 칼 폴라니는 ‘거대한 전환’에서 노동, 토지, 화폐는 상품이 되어서는 안 되는 성질임에도 자본주의에서는 모두 상품이 됨으로써 인간의 삶이 불행해졌다고 본다. 삶의 터전이 되어야 할 토지, 거래의 수단이라는 성격의 화폐가 상품이 됨으로써 투기,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되었다. 그리고 노동력이 상품이 되다 보니 일을 통한 보람과 만족보다는 기계의 부품으로 전락했다. 노동력이 상품으로 자유롭게 거래되는 것은 노예제나 농노제에 비해서 진일보한 면이 있긴 하지만 노동력의 상품화야 말로 자본주의 사회의 특수성이자 자본주의 모순의 근원이다.

 노동력이 상품으로 거래되는 과정은 사람이 공동체에서 분리되는 과정, 그 과정에서 노동력과 생산수단이 분리되는 과정, 부르주아의 등장, 근대 계몽주의적 시민혁명의 과정이 있었다. 사람이 공동체에서 분리되는 대표적인 사례는 영국의 엔클로저 운동이며 한국의 새마을 운동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농촌 공동체로부터 개인이 분리된 것은 동시에 노동력과 생산수단이 분리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제 몸밖에 남지 않은 프롤레타리아트와 성공한 상인, 수공업자 출신의 부르주아는 형식적으로 자유로운 계약이나 자본가의 사적 소유권의 보장을 위해 시민혁명을 일으켰다. 사실 자유와 평등을 시민혁명의 핵심으로 알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소유권 보장이었다. 이런 것들이 노동력 상품화의 역사적 전제였다.

 신흥 부르주아의 필요와 요구에 부응하던 봉건국가는 구빈법 등등을 통해 농촌의 이주민, 거지, 도시 빈민을 공장에 보내기 위해 폭력적으로 강제하였다. 즉, 노동시장 형성과정에서 봉건국가가 적극 개입하고 있으며 이는 자본주의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점에서 국가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는데 실마리를 주고 있다. 생산적 복지, 고용보험 제도 역시 국가가 노동시장에 개입함으로써 자본주의 노동을 사실상 강요하는 대표적인 방법이다.

 그러면 자본주의에서는 노동력을 팔지 않으면 왜 생계가 곤란할까? 답은 노동력과 생산수단의 분리에 있다. 겉으로는 자유로운 선택으로 이뤄지는 노동의 이면에는 땅과 사람의 폭력적 분리, 이에 대한 개인적·집단적 저항과 저항의 실패, 그로 인한 좌절과 체념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 당분간은 이런 틀내에서 노동의 민주화가 과제가 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생산수단과 노동력의 분리를 지양하고 노동 생산물, 노동력, 토지, 화폐를 탈상품화하고 이윤이 아닌 사회적 필요에 맞는 생산을 하는 것이 인류를 진일보시킬 것이다.

 

3. 1등 노동자만 대접받는 세상 - 노동시장에서의 차별

 형식적으로는 차별이 정당화되기 어렵기 때문에 자본의 입장에서는 ‘정당한 차별’이라는 개념을 통해 사람들에게 수용하도록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인적자본론’이다. 사람을 자본으로 보고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교육, 훈련)를 많이 할수록 인적자본(사람)이 받는 보상도 크다는 것이 인적자본론이다. 이런 점에서 자본주의 경영학에서는 능력에 따른 차별을 정당한 차별로 본다. 이 능력이란 자본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되는 능력이며 그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자본이 원하는 방향의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또한 객관적인 차이가 주관적 차별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소통과 연대보다는 개인의 능력을 키우고 인정받으려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노동자들 내부는 분열과 경쟁이 심해진다. 이럴수록 자본은 노동 전반을 통제하기가 쉬워진다.

 성차별은 오랜 역사를 가졌지만 가장 체계적이고 구조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부터이다. 자본입장에서 여성 노동력은 미숙련 노동자이기 때문에 남성 임금의 절반만 주어도 되고 기업의 통제와 지시에 저항할 여지가 적었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었다. 현재 노동시장에서 구성원 수는 여성과 남성이 거의 비슷하지만 남성 가부장주의가 지배적인 사회구조상의 문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능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조직문화 및 사회풍토, 불평등한 가사 및 육아 노동의 분배, 편견 등등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상승 장벽(유리천장)으로 많은 차별을 받고 있다. 일차적으로는 남성과 여성의 평등을 중시해야 하지만 이차적으로는 남녀 모두가 현실의 잘못된 구조와 의식을 함께 타파하는 데 힘을 합쳐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남성 위주의 경제 활동 오류를 여성도 범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요구하는 개인의 능력은 과연 자유롭게 발전하고 발휘될 수 있을까? 현실에서 여성은 가사노동과 직장노동이라는 이중 삼중의 부담을 져야하기 때문에 마음껏 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또 사회 양극화는 교육 양극화로 이어져 상류층 아이들은 대학 입학과 노동시장에서 좋은 기회로 연결된다. 즉 경제적 차이와 성별 차이가 구조적 차별로 연결될 위험이 놓은 현실에서 누구나 동일한 역량을 발휘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와 기업이 요구하는 능력이란 돈 버는 데 도움이 되는 능력이며 거기에는 일 잘 하는 능력과 말 잘 듣는 자세까지 포함한다. 기업이 요구하는 이윤을 추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능력은 인간적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과는 차이가 있다. 사회와 기업에서 이런 능력을 강조하면 할수록 공동체적 인간관계는 약화되고 이기적 심성은 조장된다.

 

4. 마음대로 해고할 자유 대 마음 편히 일할 자유 - 노동유연화는 삶의 경직화

 2차 대전 이후 70년대 초까지는 자본주의 고도 경제성장 시기였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노동자들은 무미건조한 노동과정에 저항했고 복지국가의 재정 적자는 심화 되었고 자본의 이윤율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80년대부터 규제 완화, 노동의 유연화를 주장하면서 신자유주의가 등장했다. 결국 노동 유연화는 노동에 대한 자본의 역공인 셈이다. 구체적으로 노동 유연화는 첫째, 해고를 자유롭게 하거나 비정규직의 사용을 쉽게 하거나 노동시간을 탄력있게 짜는 것이다. 둘째, 노동자가 여러 가지 일을 수행하게 한다든지 시간,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을 수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셋째, 노동자에게 보상을 할 때 근속연수, 학력 보다는 능력, 성과, 업적에 비례해서 보상하는 것이다. 노동자 입장에서도 노동 유연화는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기업의 필요에 따라 이뤄지는 노동유연화는 사회보장 제도가 미비하고 온갖 차별이 심한 현실에서는 대량 해고와 비정규직의 급증으로 이어진다. 노동유연화는 겉으로는 자유로운 유목민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더 많은 삶의 자율성을 잃고 일자리나 돈벌이에 매달려야 한다.

 정리해고와 더블어 노동유연화의 대표적 수단으로 등장한 것이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은 세가지 차원에서 정의할 수 있다. 우선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 일용직, 임시직, 계약직 등이다. 둘째 노동시간으로 봤을 때 파트타임으로 시간제 근로, 아르바이트 등이며 어떤 경우에는 하루 종일 일하면서도 시간제라 하기도 한다. 셋째 직접 고용된 회사에서 일을 하지 않고 다른 회사에 파견되거나 용역 회사 소속인 경우이다. 현재 한국에900만 명 내외로 추정되는 비정규직은 노동과 생활이 불안정하고 여러 처우에서 차별이 심하다. 그리고 이런 차별은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긴다. 이런 점 때문에 더욱 외톨이가 되고 참된 사회 변화를 위한 소통과 연대는 갈수록 어려워진다.

 

5. 직장에서의 당근과 채찍 - 노동통제의 종류와 방식

 그러면 취업한 사람들은 직장을 통해 생계도 해결하고 자아실현도 하고 있을까? 답은 ‘아니다’이다. 위기 때나 행해졌던 구조조정이 이제는 수시로 행해진다. 노동조합을 통해 집단적으로 대응하면 좋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냐 탈락이냐? 하는 개인의 역량에 좌우된다. 이런 두려움은 은근히 자녀들에게 더 좋은 성적을 받아오라는 압력으로 나타난다. 이렇다 보니 가정, 학교, 직장에서 행복한 모습으로 살아가기 힘들지는 것이다.

 경영자들은 노동자들의 노동능력을 순조롭게 발휘시키기 위해서 많은 경우 돈, 포상, 승진 등의 외재적 동기부여를 한다. 반면 일 자체의 흥미, 도전감, 사명감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내재적 동기부여인데 이렇게 외재적 동기부여에 익숙해지면 자신도 모르게 내재적 동기를 잃어버리기 쉽다.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별 의미가 없는 일인데도 생존을 위해 순응하다 보니 자신이 하는 일과 자아를 동일시하여 시스템의 논리를 내면화함으로써 외재적 동기조차 내재적 동기인 것처럼 변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임금 인상, 승진이 마치 자아실현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는 사이 자신의 필요에 맞게 자율적으로 계획을 짜고 필요한 활동을 체계적으로 하는 역량은 줄어들게 된다. 이렇듯 기업의 과제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일인 것처럼 성과를 내는 데 이는 타율성이 변해서 자율성처럼 보이는 셈으로 자율화한 타율성은 경영자들 입장에서는 가장 효율적으로 노동력을 관리할 수 있는 상황이다.

 노동자가 노동과정을 스스로 결정하거나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자나 감독자가 노동과정 전반을 지휘하고 규제하는 것을 노동통제라 한다. 권위적 노동통제는 관리자가 말이나 행동으로 통제하는 방식으로 채찍질이나 욕설도 하였다. 기계적 노동통제는 관리자가 노동과정을 일일이 간섭하다 보면 저항 같은 부작용도 있는데 작업속도, 작업방식을 표준화하면 굳이 관리자가 직접 통제하지 않아도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이다. 인간적 노동통제는 노동능률을 올리는 데 물리적 환경보다는 인간적 관심 증대에 초점을 맞추고 비공식 조직을 활성화해서 인간적 친밀함을 높이는 것이다. 그리고 자율적 노동통제는 반자율적 작업팀이나 소집단에서 노동과정을 상당 정도 스스로 관리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노동통제는 노동의 관계적 측면은 그대로이고 소재적 측면만 일부 바꾼 것이기 때문에 노동 소외는 여전히 미해결로 남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생산과 소비의 전 과정에서 소외를 경험하는데 노동의 인간화란 노동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집합적으로 느끼는 소외감이 불만과 저항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개선을 해보려는 시도에서 나왔다. 하지만 생산수단과 노동력의 분리, 노동력의 상품화가 노동소외의 근본 원인인데 이 부분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노동과정, 생산과정의 개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