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노동을 보는 눈(강수돌)②

연이야 2013. 3. 12. 23:19

 

6. 일하다 죽어도 좋아? - 과로, 일중독, 일터에서의 죽음

 한국은 대학진학률도 세계 1위이지만 산업재해율도 1위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부에서는 산업안전 예방 뿐만 아니라 통계 수치에도 많은 신경을 쓴다. 그로 인해 안전사고나 직업병 등 업무상 사고가 나더라도 산재 인정을 받기가 힘든 경향이 있다. 특히 LG전자나 삼성전자 같은 재벌 기업에서 발생하는 직업병, 안전사고는 수많은 현실적 장벽으로 인해 산재 신청을 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거기다가 한국은 OECD 나라 중에서 최고의 노동시간을 자랑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과로사, 소진, 스트레스 왕국처럼 되었다.

 노동자가 자신의 속마음을 억누른 채 상대방의 만족을 위해 늘 밝고 웃는 표정을 지어야 하는 것을 감정 노동이라 한다. 이 감정노동은 서비스업 뿐만 아니라 제조업에서도 일어나고 부하와 상사사이에도 일어난다. 감정노동을 오래 하다 보면 더 이상 자신의 참된 모습을 알아볼 수 없고 세대가 바뀌고 많은 세월이 흐르면 예전과는 상당히 다른 사람의 모습이 나타날 수 있다. 감정노동은 더 나아가 자본주의 노동과정을 직접 체험하는 노동자는 물론 온 사회로 확산되고 있다. 이런 현상을 ‘감상적 프롤레타리아트화’라 한다. 감상적 프롤레타리아트화는 경제적 프롤레타리아트화와는 달리 폭력적 강제 뿐만 아니라 노동자 스스로 자발적 선택에 의해 일어난다는 점이 다르다.

 그럼 왜 사람들은 건강이 망가지고 생명이나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잃을 정도로 일을 할까? 흔히 생계 문제라고 한다. 하지만 이 답은 진실의 일부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한국보다 훨씬 적게 일하는데도 삶의 질은 높은 나라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동일한 자본주의이지만 사회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강력한 노동조합 운동을 바탕으로 노·사·정 사이의 대화와 협상이 가능한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고 개인 권리 의식과 더블어 사회적 책임 의식을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점 등등의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회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인한 경쟁 압박이 작용해서 일중독의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7. 노동자가 사장을 투표로 뽑을 때 - 노동자의 경영참가

 공장 밖에서는 민주주의가 있을지 몰라도 공장 안에서는 경영의 독재, 자본의 독재가 팽배하다. 노동 3권, 노동자의 경영 참가 등을 포함하는 산업민주주의는 이런 배경에서 논의되기 시작했다. 또한 공장을 넘어 전체 경제 차원에서 민주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경제민주주의도 있다. 정치적 민주주의는 형식적이고 절차적 민주주의에 그치는 한계가 있지만 일상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경제 전반의 의사결정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이뤄지는가는 대단히 중요하다. 이런 면에서 경제민주주의는 성장과 분배의 조화, 독과점 규제에만 머물러서는 안된다. 보다 근본적인 생산수단과 노동력의 재결합, 노동, 토지, 화폐의 탈상품화를 토론하고 합의하는 것으로 발전해나가야 한다.

 경영참가에는 노동자가 직접 자본을 소유하게 되는 소유참가가 있다. 미국의 종업원지주제, 스웨덴의 임금소득자 기금제, 스페인의 몬드라곤 협동조합, 구 유고의 자주관리제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그리고 결정참가는 기업의 의사결정에 노동자나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것이다. 현재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시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분배참가란 기업의 성과나 이윤을 노동자에게 일정 부분 나눠주는 것이다. 한국의 성과 상여금 등이 사례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것은 소유참가이다. 소유 구조에 따라 권리가 달라지며 분배/결정참가 수준이나 내용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식을 100% 소유한 노동자자주관리 기업조차 시장경쟁에 노출되다 보니 결정/분배참가를 계속 유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하지만 키친아트, 우진교통, 한겨레/경향신문, 달구벌교통 같은 노동자자주관리회사 등은 이런 상황에서도 일할 맛이 나는 현장을 만들고 있다.

 경영참가는 경쟁체제와 이윤동기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는 많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첫째, 자본주의 경제를 관리하는데 일종의 공동경영자, 공동의 위기관리자로 참여하는 것에 불과하다. 둘째, 종업원지주제 같은 소유참가는 노동자가 열심히 일을 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노동자는 자본의 소유주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윤 증대를 위해 온갖 비용을 줄이거나 노동 강도를 강화하는데 적극 동참한다. 셋째, 현실에서는 경영참가를 제대로 하는 기업보다는 야비한 기업이 더 경쟁력이 높은 경향을 가진다.

 

8. 노동자와 기업의 끝나지 않는 싸움 - 진정한 노사협력의 가능성

 노사관계는 분배 뿐만 아니라 생산과정에서도 갈등을 겪는다. 노동 속도, 방식, 환경, 유연성, 고용안정 등 여러 차원에서 갈등의 소지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은 가능한 한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뭉쳐 있기보다는 개별적으로 나누어져 있는 편이 좋다. 노동자들이 개별적으로 서로 경쟁한다면 전체 노동자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다음의 조건이 성립한다면 노사협력의 가능성은 있다. 첫째, 신뢰관계 형성 그리고 상호 존중과 약속은 철저히 지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 기업의 생산물이 사회적 필요에 걸맞아야 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의 현실은 이와는 다르다. 이와 같은 조건이 있더라도 세계시장의 경쟁 격화나 재정적자 만성화 등등의 요인으로 노사협력 및 사회적 합의도 얼마든지 붕괴될 수 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이윤 동기나 경쟁체제를 넘어서야 한다.

 

9. 도대체 파업은 왜 하는 걸까? - 시민권과 노동권의 대립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에 따라 파업을 하면 임금을 받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는 이유는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그리고 파업에 대한 단서 조항이 많아 노동자의 집단행동권은 많은 제약을 받아 형식적으로는 권리가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무권리 상태가 되기 쉽다. 즉 파업 같은 쟁의행위는 노동권 보호 차원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경영권 내지 자본주의 체제 자체는 공격하지 못하게 막는 시스템 보호의 차원도 있다. 그래서 노동법의 테두리 안에서 노동문제를 푸는 것은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헌법에는 노동3권이 보장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이나 사회에서는 노동조합을 가능하면 없어야 할 존재, 무언가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는 존재로 여긴다. 이는 정치적으로 기업과 권력의 입장에서는 노동조합을 야당 내지 재야 세력으로 간주하고 노조가 개입하면 돈이 많이 들고 원하던 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노조를 가능한 한 배제하려고 한다. 게다가 반공이데올로기로 인해 자본주의에 비판적일 수밖에 없는 노동조합 운동을 더욱 삐딱하게 보게 된다. 그리고 사회심리적으로는 기업이나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노조는 방해만 될 뿐이라고 사람들은 인식한다. 이런 사회적 편견은 언론, 교육 등 여러 이데올로기 장치를 통해서 재생산되고 있다. 이런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인권/ 민주시민교육과 사회 전반에서 평등하고 민주적 토론과 합의를 이루어내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파업이 일어나면 정부는 물론 언론도 원인은 제대로 따지지 않고 불법 파업이라고 규정한다. 게다가 파업에서 요구하는 내용이 단체교섭 대상(임금, 복지, 근로시간, 해고 등 근로조건)의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에도 불법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그 해석 자체가 너무 편협하다. 특히 인사권, 경영권은 기업의 권리이지 노동자가 개입할 사안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파업권은 헌법과 노동법이 보장하는 법률적 개념인 반면 인사권과 경영권은 사회 통념에 불과하다. 즉 파업권이 우선이다. 그리고 소유권은 자본주에게 속하지만 경영에 관한 내용은 사회적 차원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공동결정이 소유권을 침해하는 것은 아니다.1 이런 점에서 정부의 해석은 편협하다. 노동자들의 파업이 불법으로 치닫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그 과정을 살펴보면 기업 측의 교섭 거부 등의 무성의와 기업과 정부가 협력하여 노동조합이 불법적인 행동을 저지르게끔 유도하는 경우가 많다.

 철도나 전기와 같은 공공부문이 파업을 하면 정부나 언론은 ‘시민의 발목/목숨을 잡은 파업’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렇게 되면 시민권과 노동권이 대립하는 형국이다. 반면 의사 등의 고수익 전문가들이 파업을 하면 원인을 진단하고 당사자들의 의견을 듣고 토론을 열어 합리적인 해결책을 모색한다. 이런 이중성은 전문직, 정치가들은 높은 사람이고 노동자들은 낮은 사람이라는 뿌리 깊은 편견과 평소 공무원, 공공기관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파업 같은 사태로 폭발해서 그런 반응이 나오고 반공이데올로기도 원인이다. 이중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파업이 일어났을 때 다소 불편하더라도 당연한 노동자의 권리 또는 사실 모든 시민이 결국 노동자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1. ‘공동결정법’ 위헌제소에 관한 독일헌법재판소의 판결이며 우리나라 법원 판결에서도 ‘기업의 인사권이나 경영권에 관한 사항들 중에서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은 노동조합과의 교섭대상이다’는 내용이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