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자본주의에 불만있는 이들을 위한 경제사 강의⑤

연이야 2013. 5. 15. 21:04

-법인 자본주의의 대두와 이데올로기적 옹호

1840년대 중반부터 1873년까지 시기는 경쟁 자본주의의 황금기였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마르크스가 자본의 집중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견한 요인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더욱 효율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공장의 규모를 키워야 했고 이 과정에서 소자본은 파산했다. 대규모 경쟁자들은 카르텔이나 트러스트, 기업 합병 등을 통해 공동의 생존을 확보했다. 금융 시장을 통해 많은 개인, 소기업이 보유한 소액 자본이 대규모 주식회사 수중으로 들어왔다. 이런 특성으로 주식회사라는 단일 사업체가 거대한 자본량을 지배할 수 있는 효율적 수단이 됐다. 이렇듯 독점자본으로 향하는 추세는 몇몇 주식회사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이런 산업의 집중 현상과 더불어 소수에게 소득이 집중되는 모습도 두드러졌다.


어떤 개별 기업도 시장 가격이나 판매량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없고 기업의 행동은 시장에서 표현되는 소비자의 취향과 많은 다른 소기업의 경쟁에 따라 결정된다는 고전적 자유주의는 독점 자본의 등장으로 내팽개쳐져야 하지만 오히려 공리주의와 결합되면서 대수학과 미적분학을 통하여 새롭게 변신했다. 이 역할을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이 떠맡았다.


신고전파는 다수의 소생산자와 소비자로 구성된 경제를 가정했고 최종 생산물과 생산 요소의 가격은 기업이 좌우하지 못하고 주어진 것으로 간주한다. 개별 가구들 역시 시장에서 결정된 가격으로 노동뿐만 아니라 토지와 자본까지 판매하고 그 대가로 다양한 재화와 용역을 구입하는데 이때 상품들의 효용을 극대화하려고 노력한다. 상품은 쾌락이나 효용의 궁극적 원천이며 상품에서 나오는 효용은 수량화가 가능하다고 가정한다.


신고전파의 한계효용이론은 정교하고 신비적인 분석을 통해 최적의 상품 조합과 가치를 극대화하는 양만큼 생산되는 자유방임 경제체제를 옹호했다. 당연히 이런 최적의 결과에 도달하려면 시장에 정부는 최소한으로 개입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소득 분배마저도 받아들여야 하며 특히 존 베이츠 클라크는 자유 시장에서 달성된 소득 분배를 옹호하려고 까지 노력했다. 즉 각 생산 요소는 생산 과정에 기여하는 한계 가치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는 분배 정의의 모델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런 체제가 공정하려면 생산 요소의 소유에서 공평한 분배가 전제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부의 대물림이라는 상속으로 전혀 공평하지 않다. 그렇다 하더라도 경제 이론과 경제 현실 사이에 거대한 틈을 만들어 낸 덕분에 신고전파들은 고전적 자유주의의 자유방임에 대한 지적 옹호론을 세우는 데 성공했다. 이렇듯 신고전파들은 현실의 경제 문제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수리 모델 구성이라는 난해한 분야에 틀어박혀 사소한 문제를 신비화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여러 가지 결함으로 신고전파들이 구상하는 경제체제는 완전 경쟁을 특징으로 하지 않는다. 그 결함이란 독과점 횡포, 공공재 부족, 한 상품의 생산 비용은 사회적 비용(가령 생산과정에서 환경 오염)과 다르고 공황으로 낭비 초래, 극심한 소득 불평등이다. 이런 결함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이들은 폭넓은 정부 개입(자유주의자)을 사소하다고 생각한 이들은 최소 개입(보수주의자)을 주장한다. 그렇다하여도 자유주의자이든 보수주의자이든 신고전파 경제 이론을 활용해서 자본주의를 정당화하는 것은 동일하다. 그리고 사회다윈주의자들도 자유방임 자본주의를 옹호하지만 이론적 틀은 신고전파와는 다르다. 상향 진보를 위해서는 경쟁을 통해서 약자는 도태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정부의 소득 불평등 완화 정책은 진보를 더디게 만들고 인류를 멸망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들은 대규모 독과점을 진화의 유익한 결과라고 환영한다.


신고전파의 이데올로기는 경제 현실과 점점 괴리되면서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등장하였다. 새 이데올로기는 기독교 가부장 윤리의 봉건적 형태와 빼닮았다. 즉 소수 엘리트 집단(재벌)은 자연적으로 우수하며 대중을 돌보는 가부장과 같은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경쟁은 반사회적이며 협력을 통해 사회를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는 경쟁하는 기업들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독점 기업에게는 세금을 면제해서 경쟁을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사회, 경제 개혁은 자본가들이 협력적인 법인 집단주의체제를 통해 자발적으로 실행해야 하고 정부는 기업에 대한 간섭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생각은 뉴딜초기의 입법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독점 권력의 강화와 베블런

남북전쟁 이후 미국의 산업화 초기 단계에서는 자본가들 사이에 경쟁이 치열했다. 그 결과 기업 연합, 트러스트, 합병이 형성됐고 이제 자본 축적은 대규모 법인으로 제도화됐다. 이에 따라 자본은 국제화의 토대를 갖추었고 자본가내에서 다수는 소유를 통해 들어오는 소득을 즐기는 순수한 금리생활자 계급이 된 반면 소수는 관리 기능에 참여하면서 전체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보호하는 집행위원회로 활동했다. 이 시기를 가장 완벽하게 반영한 경제학자는 소스타인 베블런이다.


베블런은 부모 본능, 호기심 본능과 관련된 ‘제작자 본능’과 갈등과 정복, 성적/인종적/계급적 착취와 관련된 ‘착취 또는 약탈 본능’은 각 시대의 사회 제도와 행동 양식을 통해 드러난다고 주장한다. 두 집합의 행동 특성을 대조적으로 제시하고 사회 제도와 일치하는 정도를 보여주는 게 베블런 사회 이론의 중심이고 이런 맥락에서 자본주의를 분석한다. 사회심리학 관점에서 착취 성향에 지배받는 계급이나 개인과 부모 성향, 호기심 성향의 개인이나 계급을 구분한다. 경제학의 시각에서는 이윤 추구의 기업과 유용한 상품 생산의 산업을 구분하고 사회학의 시각에서는 유한계급의 의식 중심주의, 스포츠맨십과 보통사람에 특유한 창의적이고 협동적인 행동 사이의 차이로 나타난다.


이처럼 베블런은 두 주요 계급으로 구성된 사회를 분석하는데 계급의 토대에는 사적 소유가 전제되었다는 것을 밝힌다. 인류의 초기 사회에서는 생산성이 낮아서 제작자 본능이 지배하였고 생산이 충분히 효율적으로 바뀌고 기술과 도구가 사회적으로 축적되어야 착취가 가능해진다. 사회의 다른 구성원을 차별하는 구분역시 이 시점에서 가능해지고 강탈과 착취는 정당한 사용권을 갖게 되고 그 결과인 보유는 주거(사적 소유)를 통해 불가침이 된다. 사적소유와 약탈 본능은 노예 시대와 봉건 시대의 약탈적인 계급 분화 사회로 이어졌고 자본주의는 봉건제의 산물이었다. 자본주의에서는 제작자 본능이 크게 성장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제작자 세력과 착취 세력이 투쟁을 벌이게 됐다. 노동자에게 성공의 본질이 제작자 정신이나 생산적 창조성을 의미하는 반면, 소유자나 기업가에게는 타인보다 착취에서 우위에 서는 것을 의미한다. 베블런은 기업의 산업 지배 본성을 ‘깽판 놓기’라고 한다. 깽판 놓기는 효율성의 주의 깊은 철회라고 정의한다. 즉, 사실 기업주들이 보기에 합당한 이윤이란 획득할 수 있는 최대의 이윤을 의미한다. 자본주의에서는 대규모 산업과 제작자 정신 세력이 주어진 자원과 노동자의 양을 가지고 만들 수 있는 생산량을 언제나 늘린다. 그러나 불굥평한 소득 분배를 감안했을 때 가격이 꽤 많이 떨어져야만 팔린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높은 가격에 적은 양을 파는 것보다 이윤이 적게 남는다. 그렇게 되었을 때 공장은 조업을 전부 또는 일부 중단하고 노동자들은 정리해고 된다. 그러는 사이 온갖 종류의 상품과 용역이 크게 부족해진다. 즉 기업가들에게 충분한 이윤이 없다는 이유로 공장의 조업은 중단된다.


자본주의 체제의 궁극적인 권력은 소유주들의 수중에 있다. 어떤 사회에서든 물리적 강제를 제도적으로 정당화한 수단인 정부를 그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부는 기존의 사회 질서와 계급 구조를 보호하기 위해 사유재산법을 집행하고 소유와 관련된 특권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와 소유자 사이의 계급투쟁에서 언제나 승리하는 쪽은 소유자들이다.


소유자들이 국민의 이익이 법인 기업의 이익과 일치한다고 국민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을 거둔다. 이렇듯 애국심은 기업의 이익을 위해 정부의 공격적인 제국주의 정책에 관한 지지를 확보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민족주의적 정서였다. 베블런이 보기에 제국주의가 소유자들에게 안겨준 이윤이 제국주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아니었다. 제국주의는 사회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보수적인 사회 세력이었다. 자본주의에서 생산성의 증대는 제작자 본능과 연관된 사회적 특성(경쟁보다는 협동, 평등, 평화, 사회적 상호관계 등등)이 성장하는 토대이다. 소유자들에게 제작자 정신, 협동, 평화 등이 지닌 전복적 효과를 중화할 수 있는 수단이 제국주의였다. 호전적 기업 정책의 문화적 가치는 대중에게 보수적인 정신을 강화하는 것이다. 전쟁 추구의 훈육 효과는 대중의 관심을 부나 의식주의 공평한 분배보다는 고상하고 덜 위험한 문제로 돌리게 만든다. 호전적이고 애국적인 선입견은 복종과 규범의 권위 같은 야만적인 덕목을 강화한다. 호전적이고 약탈적인 생활 계획의 습관화야말로 평화로운 산업과 기계화 과정으로 초래된 현대 생활의 통속화를 중화하고 또 쇠퇴하는 신분 의식과 차별적인 품위 의식을 회복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훈육 요소다.


소유자들의 불로소득은 약탈자의 관습이나 문화의 금전적이고 기업적 측면이 문화와 사회를 지배하는 데 의존한다. 모든 계급 분화 사회에서는 유한계급의 직종과 보통 사람의 직종 사이에 언제나 근본적으로 중대한 차별이 존재했고 이런 상황에서 가치 있는 일자리는 착취로 분류될 수 있는 것이고 무가치한 것은 뚜렷한 착취 요소와 무관한 일상적이고 필수적인 일자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약탈적인 덕목이 보이지 않아서 쉽사리 존경을 불러일으킬 수 없었다. 따라서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용맹을 드러내기 위해서 과시적으로 소비하며 과시적 소비는 과시적 낭비와 일치한다. 금전 문화는 불쾌한 차별의 문화였다. 개인의 인격적 가치가 불쾌한 차별이라는 금전 체계 안에서 주로 평가된다면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보수주의의 가장 중요한 보증인인 모방이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힘으로 손꼽히게 된다. 그래서 자본가들은 애국심, 민족주의, 제국주의와 모방적 소비라는 문화 훈육과 사회 통제 수단에 의존한다. 사람들이 모방적 소비에 매달리면 얼마만큼의 소득을 얻든 간에 만성적인 불만을 가진다. 노동자들의 불행은 가난하게 사는 일부 노동 계급의 경우에만 물질적 박탈에서 기인하고 나머지 노동자들의 불행은 노동의 사회적 타락과 모방적 소비와 결부된 만성적 불만 때문에 생겨난다. 그런데 이 불행이 치유하기 힘든 것은 노동자들의 반응 탓에 불행이 영속화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흔히 더 많은 것을 획득하고 더 많이 소비하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반응한다. 그래서 빚을 지고 승진하고 더 많은 소득을 확보하는데 더 매달리며 결국 만성적 불만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고용주를 기쁘게 하고 혼란을 일으키는 말과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럴수록 노동자는 체제나 소유자를 탓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탓하며 따라서 자존감과 자신감이 더욱 약해지고 금전 문화에 더욱 집착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