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자본주의에 불만있는 이들을 위한 경제사 강의⑦

연이야 2013. 5. 15. 21:10

-현대 미국 자본주의와 그 옹호자들

미국은 2차 대전 이후의 번영으로 불평등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극심해졌다. 수천만 명이 극단의 빈곤에 시달리는 반면 부유층 5%가 전체 소득의 29%를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세금은 소득 분배의 불평등을 줄이기 보다는 오히려 소득 분배의 불평등을 확산시키고 있다. 매출세, 소비세, 재산세, 사회보장세 등이 모둥 부자에 견줘 가난한 사람의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6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까지 대다수 노동 계급의 실질 소득은 줄어든 반면 부유층의 실질 소득은 훨씬 더 높은 수준으로 급증했다.


신고전파 경제학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주요 전파자이며 30년대 이래 수학적으로 더 복잡해졌다. 그러나 신고전파 이론의 토대는 과학적 근거에 입각하거나 경험과 이론의 측면에서 제대로 확립되지 않았다. 신고전파의 복잡한 이론을 대중적으로 알리기 위해서 많은 단체들이 활동하는데 대중화한 설명에는 자유 시장의 공급과 수요의 힘은 정부의 계획보다 항상 더 바람직한 결과를 낳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문헌들 중 어떤 것도 대기업 권력의 집중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노동조합의 권력과 정부의 사회주의적 복지 정책만을 문제로 삼는다.


그러자 경쟁을 중시하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특성은 유지한 채 집중화된 법인 권력의 존재를 인정하는 이데올로기를 세우려는 시도가 진행되었다.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의 대항력 이데올로기와 마시모 살바도리의 인민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대표적이다. 갤브레이스는 하나의 권력은 다른 권력 지위를 통해 중화되기 때문에 거대한 권력 집단이 존재한다고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가령 강력한 노조가 강력한 영리 기업을 중화하고 강력한 구매자 협회가 강력한 판매자들의 독과점을 중화한다. 그 결과로 만인의 이익을 조화시키는 시장의 균형이나 보이지 않는 손이 자리잡는다. 살바도리는 기업의 주식 소유권과 다른 종류의 자산 소유권이 폭넓게 분산되는 현상은 다수가 빠른 속도로 자본가로 변신하면서 특권을 공유하는 체제가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또 다른 자유주의 옹호론은 전문 경영자들을 내세워 공공복지의 가부장적 관리인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이런 옹호론은 낡아빠진 사고 바탕에 깔려있고 혁신적인 사상은 등장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반공주의는 1930년대 이래 자본주의의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였다. 보수주의자들은 늘 자본주의 비판자들을 악의 세력으로 묶어 보수적 선전 공세를 펼쳤다. 이런 전술의 이점은 사람들의 마음을 걸어 잠가 비판자들의 사상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게 했고 정부나 우파들이 비판자들을 폭력적으로 억압하는 사태를 대중이 묵인하게 만들었다. 구체적으로 반공주의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된다. 첫째, 모든 공산주의자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파괴 둘째,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모든 사람은 공산주의자다. 셋째, 자본주의에 불평등의 문제가 있다는 견해는 스파이의 핑계에 불과하다. 마지막으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사람과 제3세계 정부의 입을 막고 전복시킨다.


이런 상황에서도 신고전파에 대한 비판은 1930년대부터 계속되었다. 오스카르 랑케와 프레드 테일러는 순수하고 완전하게 경쟁적인 경제가 최적의 자원 할당으로 이어진다는 신고전파의 주장을 받아들였지만 이런 경제가 반드시 자본주의일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사회주의역시 최적의 효율 상태에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고 나아가 사회주의에서는 불평등한 소득 분배가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J. 드V. 그라프는 신고전파의 제한적 가정들이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다고 설명한다. 가령 신고전파는 어린이, 마약 중독자, 범죄자, 정신 이상자 등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언제나 자신에게 최선인 것을 선호해야 하며 또한 어떤 위험이나 불확실성도 존재하지 않을 것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경영자 이데올로기도 많은 비판을 받는다. 대기업을 움직이는 동인이 사회복지나 사회적 효율이 아니라 사적 이윤과 독점 권력이며 이런 상황에서 경영자 역시 자본가와 같이 이윤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사실 대다수 자본가와 경영자는 이윤 추구 압박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이런 상황에서 사회 복지와 경제 복지의 가부장적 관리를 기대할 수는 없다고 비판한다. 반공주의에 대한 비판은 모든 좌파 비판론자가 공산주의자가 아닌데도 모조리 공산주의자라고 공격하고 지적 왜곡을 통해 공산주의를 악마의 세력으로 묘사하고 공산주의에는 언제나 선진 산업 자본주의 경제를 어떻게 더 자유롭고 민주적이며 인간적인 사회로 바꿀 수 있을까 하는 전망이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반공주의는 공산주의 국가들의 인권 억압은 철저하게 비난하는 반면 친자본주의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극악한 억압은 무시하는 이중 기준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현대 미국 자본주의와 급진적 비판자들

흑인들의 평등을 위한 투쟁은 1950년대에 이르러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흑인들에게 투표권을 확대하는 민권 법안은 평등을 향한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기는 했지만 정치적 참정권만으로는 흑인들이 겪는 경제적 불평등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많은 민권 운동가들이 흑인들의 평등을 가로막는 가장 커다란 장벽은 경제적 요소이며 흑인들이 겪는 불평등한 현실을 이해하는 수단으로 미국 자본주의에 관한 비판적 분석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급진적 비판을 부활시키는 또 다른 요인은 베트남 전쟁이었다. 반전운동은 미국 곳곳의 대학 캠퍼스로 확산되었고 이런 과정에서 비판자들은 반공주의보다 다른 어떤 동기가 미국 정부를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닌지 묻기 시작했다. 이런 의문은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에 관한 예전의 급진적 이론들을 진지하게 재겸토하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민권 운동과 반전 운동, 여성 해방 운동을 거치면서 미국 자본주의의 기본적 제도를 비판하는 문헌이 쏟아져 나왔다. 자유주의 비판이나 급진적 비판이나 부와 소득, 정치권력의 불평등과 사회적 소외, 환경 파괴, 에너지원의 비합리적 사용,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인정하고 비판한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그러나 자유주의 비판자들은 정치 개혁만으로도 미국 경제의 왜곡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들은 정부가 공평무사하고 모든 시민의 복지를 극대화하려는 욕망에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부가 주도하는 개혁을 통해 자본주의의 해악을 완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급진적 비판자들은 불평등과 군국주의는 자본주의에 고유한 것이며 미국에서 높은 이윤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저발전 국가를 상대로 제국주의적 착취, 소수 민족 집단과 여성을 상대로 하는 고질적인 차별, 공해와 자원 고갈을 통제하지 못하는 현상 등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본의 사적 소유 폐지와 시장의 사회적 결정 영역에 제한을 가하자고 주장한다.


60년대와 70년대 풀뿌리 운동의 조직화가 고조되는 데 대응해 자본가들은 하원과 상원 선거에 쏟아붓는 돈의 액수를 크게 늘려 정치적 통제력을 공고히 하려고 했다. 이런 돈은 대부분 기업 중역과 부유한 자본가들로부터 나온다. 즉 부유층과 권력층이 미국 정치를 좌지우지한다고 봐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는 자본가들의 권력을 강화하는 도구이지 자본주의를 개혁하는 수단은 아니다. 정치가 빈민, 소수 인종, 노동자의 요구에 부응하게 만들려면 풀뿌리 대중 운동의 활성화, 강력한 제3의 정당 출현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은 사회주의에 대한 저자의 전망으로 끝맺고 있는데 그대로 여기에 옮겨보겠다. 사회주의는 산업혁명과 더불어 태어났고 자본주의가 가져오는 최악의 결과를 근절하기 위해 줄곧 싸웠다. 또한 자본주의를 완전히 철폐하고 민주적인 사회주의 사회를 세우려고 줄곧 싸웠으며 앞으로도 그 싸움을 계속할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언제까지나 더 나은 사회를 창조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발언하고, 글을 쓰며, 조직하고 행동할 것이다. 동유럽 사회주의가 붕괴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사회주의 역시 생명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에 기반해 평가하자면 사회주의는 이제 사실상 사회주의 사상과 거리가 멀던 정부들과 한데 묶이는 오명을 벗어 던지게 됐으며 20세기에 대부분에 유지하던 것보다 더욱 밝은 장기적 전망을 갖게 됐다고 저자는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