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1848년에서 1850년까지의프랑스에서의 계급 투쟁, 루이 보나파르트 브뤼메르 18일

연이야 2014. 7. 28. 17:05

1848년부터 1851년까지 역사 연표

18482: 2월 혁명 발발 - 임시정부 시기, 공화파 BG, 브띠 BG, PT 등 다양한 세력이 동거한 불안정한 시기, 기존 국가기구 존속에서는 한계가 있어지만 보통선거제 실시

 

184854: 제헌의회(헌법제정 국민의회)시기-BG공화국 수립 시기(공화파 BG 지배/ 몰락의 역사)

공화파BG - 특정 생산조건에 의해 규정되지 않고 민족주의 정서

왕권에 대항한 BG의 반란이 아니라 자본에 항거하는 PT의 봉기를 분쇄함으로써 권력 장악, 국민투표에 의해 탄생되었지만 혁명의 결과를 BG범위로 축소시킴, 대토지 자본과 금융귀족 복귀, 군주정과 공화정의 단순 대립이 아닌 한 계급(BG)의 전제정 실시

 

623: 노동자 봉기 실패

노동자 - 혁명 능력 X 상설특별위원회라는 모호한 조직에 만족, 여타 제 계급으 로부터 고립 분산

 

1210: 루이 보나파르트 대통령 당선(공화파 후보 카베냑 낙선)

공화파BG와 질서당(왕당파-정통왕조파, 오를레앙파) 대립- 공화파 제거

루이 보나파르트 대통령 당선 의의

농민-조세폐지와 공화정 타도

PT- 카베냑 실각, 제헌의회, BG공화국 타도

쁘띠BG- 채권자에 대한 채무자의 지배

BG- BG 제분파 제거, 왕정복고 시작

군대- 기동대 반대

1849513: 입법의회 선거- 질서당 승리

 

보통 선거제 의의

BG 의회 공화정 탄생과 관련있고 보통선거 그 자체로 민주주의가 보장 X

노동자, PT 정당은 보통선거제를 정치적으로 활용 가능

보통선거는 정치적 반동의 수단으로도 악용(보통선거는 자본주의에 별다른 영향은 주지 않고 BG지배가 강화될수록 노동자는 개별 성향의 투표

 

528: 입법의회 소집

 

613일 쁘띠 BG 시위 분쇄 그 결과 질서당의 지배가 확립

주세 부과로 의회에 대한 농민들의 지지는 줄어들고 농민들의 삶은 피폐해짐, 농민들은 개별 자본가로부터는 저당, 고리대 자본가계급으로부터는 세금으로 착취를 당함 농민의 소유권이란 지금까지 자본이 농민을 사로잡는데 사용해 온 부적이며 자본이 농민을 부추겨 산업 프롤레타리아트에 반대하도록 할 때 사용한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프랑스 혁명사 3부작, P126)

그리하여 농민과 쁘띠BGBG독재에 항거, 사회 변혁 요구, 변혁 운동 수단으로서의 민주 공화제 유지, 혁명 세력인 PT 주변으로 집결 하였다.

 

1850310일 보궐 선거 질서당 패배

531일 질서당 보통선거제 폐지 질서당의 의회 독재체제

질서당의 정통왕조파는 대토지 소유계급, 오를레앙파는 금융귀족의 이익을 대변한다. , 이들은 상이한 형태의 사회적 존재조건에 따라 구분된다. 그리고 이들은 의회공화정 형태에서만 양대 분파가 단결할 수 있고 BG의 특권적 분파의 지배 대신에 그들 계급 전체의 지배를 그 시대의 질서로 삼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지배를 낳게 한 보통선거제를 스스로 포기한 이유는 계급투쟁의 국면에서 PT의 주요한 정치 투쟁의 무기도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즉 공화정은 BG의 사회기반을 잠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보나파르트와 대립할 때마다 공화파로 등장하는 이유는 분열을 최소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의회와 보나파르트 대립 격화

1851122일 보나파르트 쿠데타

 

맑스 정치경제학의 정점에 자본론이 있다면 정치학에서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이 있다. 브뤼메를 18일은 계급투쟁에 입각해서 1848년부터 1851년까지 정치 분석을 한다. 이 분석을 통해 맑스는 보나파르트의 영웅주의에 의한 쿠데타가 아닌 4년 동안 프랑스의 제 계급의 투쟁속에서 보나파르트 쿠데타의 필연성을 분석한다. 보통선거 역시 그 자체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계급투쟁과 관련지어 평가를 하고 있다. 현대에도 많은 선거가 있고 선거 국면의 전술은 각 계급의 역량과 계급투쟁속에서 나와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