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조선공산당 재건운동① (최규진 저)

연이야 2015. 9. 1. 14:45


 

1장 당재건운동사 이해를 위한 전제

1절 자본주의의 위기, 1930년대

소련은 일국사회주의로 나아가면서 세계 사회주의운동도 1928년 코민테른 6차 대회를 계기로 새로운 모습으로 진행(일국 사회주의, 자본주의 전반적 위기 3기론, 사회파시즘론)

조선 사회주의자들은 공황탓에 더욱 궁핍해진 민중이 격렬하게 투쟁하기 시작, 조선혁명의 열기가 높아지고 있다고 판단, 또한 대중들은 사상적으로도 급진화

 

2절 당재건운동의 복원과 해석

당재건운동은 혁명적 노동조합, 농민조합운동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 따라서 당재건운동사는 1930년대 사회주의운동사 전체를 포괄

 

2장 당재건운동의 배경

1절 조선공산당 해산과 12월 테제

1. 조선공산당 해산

-조선에 사회주의가 유입된 시기: 1918, 4 한인사회당 - 이르쿠츠크공산당 한인 지부 - 일본 유학생, 노동자 사이에 유입

- 1920년대 초 국내에도 유입 - 서울청년회, 북성회, 신사상연구회, 조선공산당

- 19254월 조선공산당 결성(김재봉: 책임비서) - 자매단체: 고려공산청년회

당원은 조선노농총동맹, 조선청년총동맹 등에서도 활동

2차 조선공산당(강달영: 책임비서) - 6.10만세운동 주도

* 1, 2차 조공: 화요계가 중심

-3차 조선공산당 - 통일전선기관 신간회’/ ‘근우회등 민족협동전선운동

- 4차 조선공산당(차금봉: 책임비서)

* 조공은 직업적 혁명가들이 조직한 비합법 정당으로서 민족해방을 위한 정치 결사체

조공을 빼고는 1920년대 민족해방운동사를 이해할 수 없다

 

2. 12월 테제

조선 사회주의자들은 코민테른을 세계 혁명운동의 총본부로 여김

1926331일 코민테른집행위원회 간부회의에서 조선문제에 대한 코민테른 집행위원회의 결의를 채택, 조공을 코민테른의 정식 지부로 인정. 다만 조건-당에 가입하고 있지 않은 공산주의자를 가입시키려고 노력, 당에 반대하지 않고 코민테른을 지지하는 공산주의자라면 다른 공산주의 그룹도 코민테른과 연락할 수 있다.

- 1928년 코민테른 6차 대회 직후 조공지부 승인 취소 후 조선농민과 노동자의 임무에 대한 테제’(12월 테제)를 발표

일제의 속박에서 조선을 해방하고 토지혁명을 위한 지속적이고 결정적인 싸움을 하려면 공산당은 필요. 그러나 조공은 오랫동안 파벌투쟁으로 발전을 지연시켰고 볼세비키적인 당도 조직적으로 건강한 당도 아니었다고 비판

조공이 위기를 벗어나려면 공산주의 세포를 의식적이고 지속적으로 형성해야 하고 지식인 서클조직을 청산하고 공장과 노동조합에서 볼세비키 대중사업을 하며 빈농을 당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힘써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의 이념적 통합을 이룩하여 분파투쟁을 청산하는 일에 코민테른이 적그 나섬조선 사회주의자들이 분파투쟁을 벌이는 원인: 적대계급이 내부파쟁을 조장, 조공의 구성이 인텔리였으며 노동자와 연대가 없음, 사회주의자들 사이의 이념이 통합되지 않음

, 인텔리 조직인 조공의 분파투쟁을 없애려면 조공이 노동자와 빈농이 중심이 되어야 함

 

3. 9월 테제, 10월 서신과 혁명적 노동조합운동

pt의 굳건한 혁면적 당이 없는 상황에서 혁명적 노동조합이 반드시 있어야 함. 혁명적노동조합은 산업별 원칙에 따라 만들어야 함.

혁명적노동조합 활동가들이 파업위원회를 만들어 개량주의 지도자의 영향력을 막아야 하며, 실업자위원회를 만들어 실업자 대중을 단결시키고 취업노동자와 실업노동자 사이의 통일전선 이룩

당재건의 터를 닦는 일이 바로 혁명적 노동조합운동이며 당의 진정한 볼세비키화는 적색노동조합 확립 없이는 불가능. 적색노동조합을 확립하기 위한 투쟁은 당의 볼세비키화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투쟁

 

2절 국내외 정세와 당재건

1. 국제정세

1930년대 조선 사회주의자들은 코민테른 6차대회의 인식처럼 사회주의 대 자본주의 모순, 제국주의 자체 내부의 모순, 자본주의 국내의 자본계급 대 무산계급의 모순, 제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사이의 모순, 몰락의 종점에서 방황하는 세계자본주의는 부패와 모순에 빠진 조직의 수명을 연장하려고 마지막 발약을 하면서 제2 제국주의 전쟁을 빠르게 준비

이런 국제정세에서 세계 무산계급의 가장 큰 임무는 제국주의 약탈 전쟁을 국내 혁명전쟁으로 전화시키기 위해 굳건한 비밀조직을 확립하는 일, 소비에트 연방 사수, 중국 노농 혁명 지지, 사회민주주의자와 민족개량주의자들에 대한 이론적, 정치적 투쟁을 강화하는 것

 

2. 식민지 조선의 정세와 주체역량

대중들은 좌경화, 경제 공황으로 노동자 궁핍, 노동자 투쟁도 거세지고 있다. 하지만일제의 백색공포 자산계급과 지식분자 일부분이 우경화, 민족개량주의 활개 사회주의자들 사이에 민족지상주의, 반동적 노동조합상층 일부 관료배, 사회투기주의, 청산주의, 합법주의가 나타남 전위의 역량과 대중조직이 미약

이런 이유로 일부는 침체기로 규정하기도 함

- 1929년 원산총파업 등을 주목하면서 대중이 혁명적으로 진출, 그런 투쟁에 전위들의 목적의식적 지도가 없고 전위의 역량이 대중의 자발적 투쟁에 크게 못 미치고 있는 것이 문제

, 객관정세와 주체역량 사이의 틈새를 메우려면 주체 역량을 키우고 온갖 기회주의를 물리치려면 볼세비키당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 함

 

3절 새로운 당 개념의 형성

1. 1920년대 사회주의운동과 분파

사회주의 여러 그룹들은 지난날의 운동을 평가할 때 12월 테제를 하나의 기준으로 삼아 파벌투쟁과 지식인 중심의 운동을 비판하는데 모두 뜻을 같이했다. 그러나 자신들의 처지에 따라 앞으로 실천해야 할 방향에 따라 미묘한 곳에서 차이가 났다.

 

2. 분파청산

코민테른은 조공 승인을 취소하고 그 대신 조선 사회주의운동가들을 국내에 파견하는 등의 활동을 해서 조선에 볼세비키당이 건설되는 것을 지원하려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분파는 극복하지 못했다. 당재건운동가들이 지적하는 분파투쟁의 원인은 일제의 세련된 지배방법 코민테른에서 파견한 사람들의 조직역량 취약 코민테른/프로틴테른 파견자들과 당의 이름으로 운동하는 사람과 노동조합의 이름으로 운동하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과 경쟁 완성된 당이 없는 점

 

3. 볼세비키당

조선 사회주의자들은 신간회 같은 통일전선 조직을 당으로 발전시키려 했던 것은 잘못이었다고 지적. 당재건운동가들은 자본가나 소부르주아와 함께하는 당을 거부하고 노동자, 농민이 중심인 당을 건설할 것을 분명히 했다. 일제의 폭압밑에서 공산당이 합법정당이 될 수 없고 굳건한 지하조직을 갖고 있고 공장, 광산, 농촌의 대중과 함께 직접 연결되어 있는 당을 건설하려 했다. 거의 모든 사회주의자는 조선 혁명운동에서 반드시 당이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1930년대 거의 모든 사회주의자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자생성 숭배와 트로츠키주의를 거부했다.

, 당재건운동가들은 볼세비키당을 강조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코민테른의 방침과 밀접하다. 5차 코민테른대회에서 당의 볼세비키화를 내걸었다. 독일의 10월 혁명이 실패하고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당내 투쟁이 강화되며 자본주의가 안정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코민테른은 위기에 빠졌다. 유럽혁명은 실패했고 소련은 홀로 서 있고 분파적 논쟁은 코민테른과 공산당을 위협했다. 그리고 1924년 레닌의 죽음, 스탈린주의의 중앙집중화 관료화가 나타났다. 즉 자본주의가 상대적으로 안정되는 국면에서 러시아 공산당의 복잡한 국면을 코민테른에 그대로 반영시키면서 볼세비키화의 표어가 나타났다.

코민테른이 말한 당의 볼세비키화는 러시아가 코민테른과 그 회원 공산당을 지배하는 경향, 로자 룩셈부르크의 자생성과 트로츠키주의를 반대하고 레닌주의로 통합, 각국 공산당이 러시아공산당 다수파에 완전히 충성, /내부의 적에 맞서 소련의 이익을 보호, 어떤 분파, 경향, 그룹을 허용하지 않는 중앙집중화된 당

 

식민지 조선에서 볼세비키당 건설론은 분파를 너무 심각하게 다루었고 조선 사회주의자들이 하나같이 기계적으로 코민테른의 방침을 따른 결과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