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부르주아지배를 정당화하는 선거환상에서 벗어나자

연이야 2016. 4. 18. 20:34

들어가며

4.13 총선이 지나갔다. 보수정당들(새누리당, 더민주당, 국민의당)은 겉으로는 국민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있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명분은 빛살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며 계파 이익을 위한 이전투구에 불과하다. 여기에 소위 진보정당, 진보인사들뿐만 아니라 변혁을 추구하는 집단까지 노동자정치라는 명분을 내걸고 노동자들에게 선거환상을 심어주고 있다. 노동자정치라는 용어 자체도 애매모호 하지만 한국에서 자유민주주의는 1980년 광주민중투쟁, 1987년 6월민중투쟁으로 쟁취하였지 선거를 통해서 실시되지 않았다. 세계적으로도 자유민주주의는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인 자유주의가 부르주아의 양보가 아닌 노동자들의 힘에 밀려 민주주의를 일부 수용하면서 성립하였다.


자유민주주의는 부르주아민주주의

한국에서 자유민주주의는 대의제 방식에 따라 4년마다 국회의원 선거를 한다. 초등학교때 부터 대의제를 민주주의로 배워왔기 때문인지 대의제는 대의제일 뿐인데도 한국사회에서는 민주주의라고 한다. 9만9천km² 국토와 5천만 인구로 대의제는 불가피한 선택일 뿐 대의제는 소수에 의한 정체(귀족정, 신권정치)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대의제에서 후보로 등록하거나 뽑히는 대부분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부르주아거나 쁘띠부르주아 혹은 그들의 이익에 복무하는 이데올로그들이 대부분이다. 즉, 자유민주주의는 부르주아에게만 민주주의를 적용하는 부르주아민주주의에 불과할 뿐이다.


자본주의사회는 인격적 자유와 토지 등 생산수단으로부터 추방(생산수단으로부터 자유)으로 탄생하였다. 즉 형식적으로는 평등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경제적 불평등, 지배-피지배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결국 지배-피지배의 문제가 경제적 관계에서 발생한다면 정치영역에서 민주주의 문제는 그 사회의 경제적 영역을 근거로 해서 논의해야 된다. 그럼에도 자유민주주의의 상징이자 부르주아 소유권과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방어하는 근본적인 역할을 하는 국회는 경제적 불평등을 무시하면서 무산자에게 정치적 무관심만을 조장하고 있다.


선거 환상-의회주의 전술 비판

①의회주의 전술의 역사적 배경

그럼에도 진보정당에서부터 변혁 추구 집단까지 노동자정치 운운하며 선거에 대한 환상을 유포하고 있다. 이들이 선거에 참가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크게 의회주의 전술과 선거 공간을 선전선동의 장으로 활용하자는 2가지로 볼 수 있다.

 

의회주의 전술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독일사민당이 본격적으로 시도하였다. 19세기 말 유럽에서 노동운동은 급성장하면서 맑스주의와 결합을 한다. 하지만 독일사민당의 베른슈타1인은 노동자계급의 실질임금과 생활수준 향상, 소규모 상인, 중소자본가, 자영농 등 자본가 증가, 그리고 자본주의는 위기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근거로 의회를 통해서도 사회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자본주의에서는 잉여가치 때문에 생산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착취를 발생시키며 그것에 의존해서만 살아남을 수 있다. 그렇다면 생산양식 자체를 다른 생산양식으로 바꾸지 않는 한 문제는 없어지지 않는다. 결국 독일사민당은 1918년∼1923년 독일혁명 당시 권력을 잡았지만 부르주아편에서 프롤레타리아를 공격하고 이후에는 당 강령에서도 사회주의를 삭제한다. 독일사민당뿐만 아니라 그 당시 의회에 진출한 유럽의 공산당은 결국 노동자계급을 배신하고 기회주의 본성을 드러내었다.


의회전술은 러시아적 상황에 적합한 볼세비키 전술을 다른 유럽국가에도 적용하려는 코민테른의 일반화에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즉, 정세의 정확한 판단 및 각 국가의 특수성이라는 상황속에서 전술을 세워야 함에도 그렇지 못하였다. 역사적으로 레닌과 호르터의 선거전술 논쟁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1920년 레닌은 ‘좌익공산주의: 유아적 무질서’(한국에서는 ‘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으로 알려져 있음)에서 공산주의자는 가장 반동적 제도라 할지라도 대중이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라도 들어가서 노동자들에게 계급의식을 주입하는 방법을 배워햐 한다고 강조한다. 즉, 의회와 노동조합 참여를 통하여 노동자에게 계급의식을 주입해야 한다며 그 당시의 독일/네덜란드 좌파를 비판하였다.


레닌에 대한 답은 호르터2에 의해 전개되었다. 호르터는 짜르즘의 봉건체제인 러시아의 상황과 부르주아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안착된 독일의 상황은 다르다고 반박하였다. 독일은 의회와 노조참여가 아니라 평의회, 공장조직을 기반으로 하고 자본주의 국가와의 직접적인 대면을 통해 계급의식을 형성하는 좌익공산주의 전술을 주장했다. 위에서 보듯 러시아적 상황에 맞는 의회주의전술을 유럽각국에 적용하려는 코민테른의 전술은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②자본주의 쇠퇴기3

19세기 자본주의 상승시기에 의회주의는 분명 노동자투쟁형식으로 적합하였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는 쇠퇴의 단계로 들어섰다. 자본주의는 잉여가치 일부를 실현하기 위해 비자본주의국가와 교환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임노동에 대한 자본의 착취는 가능한 한 임금을 최소로 줄이도록 강제한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구매력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자본주의는 비자본주의국가로 상품의 판로를 찾아야 한다. 식민지 쟁탈전인 세계대전은 경제위기의 직접적 결과는 아니더라도 경제위기의 산물이며 그 이후의 전쟁역시 마찬가지이다. 즉, 자본주의 쇠퇴기는 자본의 자기 파괴없이는 생존, 유지를 할 수 없다.


또한 자본주의에 항구적으로 존재했던 산업예비군과는 성격이 다른 1929년 이래 대량실업은 쇠퇴기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경제가 발전할 여지가 충분하지 않다는 상황에서 자본은 경쟁에 이기기 위해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을 고도화(기계 등 불변자본 비율을 늘리는 것)를 통해 노동력을 줄였다. 즉 1929년 이래 대량실업은 과잉생산의 영구적 위기의 표현일 뿐이다.


자본주의 쇠퇴기에는 노동자들의 투쟁조건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실질적인 권력기관은 의회가 아니라 국가관료, 정보기관, 생산수단의 통제자 등이다. 또한 의회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국가의 계급 본성을 숨길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가 의회를 이용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고 어떤 개혁도 얻을 수 없다4. 일반화 된 전쟁과 군비경쟁, 야만사회에서는 전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의 권력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선거 환상-선전선동의 공간으로 활용 전술 비판

변혁을 위한 선전선동은 노동자계급이 스스로 권력 장악을 위한 투쟁에 나서는데 목적이 있다. 그럼에도 선거와 의회라는 공간에서 정치 대리인들은 노동자계급의 권력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오로지 개량주의적 공약과 입법화에만 정력을 쏟고 있다. 개량주의적 공약과 입법화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변혁이라는 전망이 부재한 상황에서 공약과 입법화에만 매몰되기 때문이다.


한편 지금의 현실은 조직된 노동자들은 노동자계급 전체의 연대를 위해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연대가 폭넓게 있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조직 노동자들은 과거의 성과를 그럭저럭 유지하거나 이를 위해서 취약한 노동자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 결국 이런 문제점은 전체 노동자 중 조직된 노동자가 저조한 이유 중 하나이다. 또한 노동자계급은 각종 지배이데올로기에 포위당한 채 계급의식은 거의 실종되었다. 즉, 현재의 한국 노동자계급은 무기력한 상태에 있다.


선거 시기 노동자들은 선거를 활용하지 않으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반문이 있다. 이 질문은 선거 시기외에는 노동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과 본질적으로 같다. 작년의 노동개악투쟁은 한해를 관통하며 대규모 대중투쟁으로 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4.13 총선시기 전국의 투쟁현장은 고립속에서 투쟁을 하였고 작년 하반기와 같은 대중투쟁은 사라졌다. 선거공약보다는 공약의 내용을 가지고 대중투쟁을 활성화 시키려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 전망을 상실한 상태에서 노동자계급의 힘이 허약할수록 투쟁을 통해서 전망을 세우고 역량을 더욱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개량도 투쟁없이는 절대 얻을 수 없다. 그렇다 보니까 선거를 활용한 선전선동 전술은 노동자들의 힘을 강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환상을 심어주면서 그들을 철저히 대상화 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변혁을 지향하는 선전선동은 계급으로 단결할 수 있도록 강조해야 한다. 물론 노동자계급이 새로운 사회의 주체라고 외친다고 혁명적 계급이 되는 게 아니다. 노동자계급은 노동해방과 인간해방의 능력이 있는 유일한 계급이라는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자본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유일한 계급임을 알려야 한다. 계급투쟁을 강화하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계급이 국가권력을 스스로 쥘 수 있는 능력과 조직을 키워나가는 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에서 선거는 철저하게 부르주아 지배를 정당화 시켜주는 도구이다. 이런 이유로 노동자가 선거에서 이길 수도 없지만 계급투쟁을 강화하지 않는 선전선동은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을 더 모호하게 만들뿐이다.


부르주아 선거의 환상에서 벗어나자

부르주아 선거판에서 투표를 하는 행위는 노동계급을 자신의 주장이나 목소리 없이 정해진 규칙과 객관식 선택지 안에서의 수동적인 개인들로 축소시킨다. 개별의 투표함과 투표소 안에서 노동계급은 작업장의 동료들과도 투쟁현장의 동지들과도 차단된 채, 부르주아지와 얼굴도 모르는 지역주민들과 섞여 분간하기도 힘든 1개 정당과 정치인을 자신들의 대표로 뽑아주어야 한다. 즉, 이러한 부르주아 선거판의 투표 속에서는 그 어떠한 계급연대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투표행위를 두고 지배계급은 ‘우리 국민(주민)’들이 이 정부를 위해 투표했다는 것을 임기 내내 홍보하고 협박해 댈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그들의 투표보다 더 민주적이고 더 계급적이고 삶에 더 도움이 되는 투표인, 노동계급의 파업을 위한 투표나 투쟁을 위한 정치적 의사표현 행위(계급투표)에 대해서는 온갖 법 제도의 세부조항과 규칙들을 자신들에게만 유리하게 적용해 인정하지 않거나 무시하는 이중적 태도를 취한다. 분단 상황을 이용하여 지배계급이 반세기 동안 반공이데올로기를 세뇌시켜 왔다면, 80년대 이후 노동계급의 성장과 함께 대중의 뇌리에 각인 시킨 것은 선거=민주=합법 대 파업=폭력=불법이었음을 상기해보자.


이러한 이중적 태도는 우리가 그들의 민주주의 규칙에 복종하고 놀아나는 한, 결코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자본주의 합법성과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환상을 넘어서야 하는 이유이다.‘(이형로 ’부르주아선거의 의미와 계급투표‘)


나가며 : 노동자정치- 노동자들의 계급투쟁만이 노동해방을 쟁취할 수 있다.

비록 지금의 노동자계급이 힘이 약하더라도 노동해방세상은 노동자 외에 어떤 계급도 대신해 줄 수 없다. 투표소가 아닌 투쟁사업장과 투쟁의 현장에 가서 투쟁의 쟁점을 걸고 파업을 위한, 연대를 위한, 저항을 준비해야 한다. 고립되거나 투쟁으로 지쳐있는 노동자 투쟁에 계급적으로 연대를 호소해야 한다. 노동자계급 스스로 전망을 가지고 계급을 조직화하는 지난한 과정에서만이 노동자는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있다.


  1. 독일사민당 베른슈타인 수정주의는 룩셈부르크에 의해 반박된다. 베른슈타인 주장의 전제는 역사 발전은 과거의 지속적인 누적이고 이 누적을 위해서는 단절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룩셈부르크는 혁명이란 기존 체제의 전복이자 단절이며 입헌적 질서 내에서의 개량으로는 현존 사회의 틀을 벗어날 수 없다고 반박한다. 개량은 혁명에 의해 만들어진 입헌적 질서의 틀 내에서만 가능하고 따라서 혁명과 개량은 다른 범주에 속하며 비교해서 선택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것이다. [본문으로]
  2. 헤르만 호르터(1864-1927) 독일 사민당의 리더이자, 그 내부분파인 트리뷴 그룹의 리더였다. 네덜란드 공산주의자당(CPN)을 창설 하였고, CPN에서 좌익공산주의자들을 분리하여 네덜란드 공산주의노동자당을 창설함. [본문으로]
  3. 자본주의 쇠퇴기는 생산력 발전의 중지가 아니라 생산력 발전에 대한 항구적인 족쇄가 존재하고 국가 개입을 통해 단기간의 번영시기도 있다. 2차대전 이후 1960년대까지 전세계적인 상대적인 경기상승은 군수산업 성장, 마샬플랜, 제국주의 블록(IMF, 세계은행 등등), 비자본주의 시장의 효율적인 착취(탈식민지정책으로 주둔군 비용 절감 및 상품판매)로 인한 모순을 잠시 연기시켰을 뿐이다. [본문으로]
  4. 박근혜정권의 노동개악 사례에서 보듯이 노사정위원회를 통하여 여론 조성 및 국회 압박과 가이드라인 혹은 행정지침을 통하여 의회밖에서 실질적인 개악을 시도하였다. [본문으로]